2013년 8월 14일 수요일

암흑기에 대처하는 팬들의 자세

 학교 부근에서 자취를 하는 나는 매년 봄마다 주정뱅이가 되어 거리를 몸으로 빗자루질하며 친구들에게 끌려가는 애들을 많이 목격한다. 대개 그네들의 주정 패턴이라는 게 다 똑같다. '나는 xx를 이렇게 좋아하는데 걔는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혹은 '나는 짱짱맨인데 왜' 에서 벗어나는 꼬라지를 본 적이 없다. 암흑기를 맞은 스포츠 팬들의 징징거림도 대동소이할 것이다. 따라서 내가 겪었던 암흑기 그딴 구구절절한 사연은 굳이 시시콜콜히 적지 않겠다. 암흑기가 오는데야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성경에서 종말이 도둑같이 온다고 하듯, 속으로는 곯고 있지만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다가 어느 순간 훅 가는 케이스도 적지 않다. 2008년 한화 이글스나 2013년 기아 타이거즈는 아주 좋은 예이다. 이렇게 한번 뻥 터진 팀이 한해만 훅 가는 경우는 드물고 대개 암흑기가 시작된다. 한시즌 일부러 탱킹하고 이듬해 좋은 픽 받고 외국인 선수 잘 뽑으면 6강은 가는 농구가 아닌 이상 좁은 국내 스포츠 판에 단기간 리빌딩 개념은 가능성도 없고 의미도 없다. 2001년부터 지금까지 삼성, SK 두 팀 중 최소 한 팀은 한국시리즈에 나갔는데 저 팀들이 탱킹을 통한 리빌딩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는가. 근래 4강권 예측에서 빠진 적이 없었던 두산도 같은 경우다. 반대로 말하면 잘나가는 팀은 계속 잘나가고 못나가는 팀은 계속 못나가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이야기인데, 얼핏 생각해도 팀 자체의 시스템이나 인프라 투자의 문제일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팀의 암흑기를 재단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십여년이 넘게 게시판을 눈팅한 결과 한가지 명료한 법칙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방법은 자신이 관심을 가지는 팀이 아닌 다른 하위권 팀의 팬들의 글을 눈팅할 때 정확성을 담보받을 수 있다. 방법은 다음과 같다.

 하위권 A팀팬 1 : 우리 팀에 지금 부족한 건 무엇일까요.
 " 2 : 무슨 포지션이 취약하니 FA나 트레이드로 甲이나 乙을 데려오면 좋겠습니다.
 " 3 : 甲을 데려오느니 차라리 丙,丁을 키우는 게 낫지 않을까요. 
 " 4 : 乙은 그 돈 주고 데려오기에 너무 비싼 것 같아요. 차라리 아껴서 시설을 짓죠.

 팬 사이트에서 매우 일상적인 대화지만 우리는 저런 대화를 통해 투자가 없다고 가정했을시의 그 팀 미래를 대강 짐작할 수 있다. 어차피 FA로 누굴 데려올 돈으로 다른 시설을 확충하는 경우는 없다. 게다가 만약 당신이 甲을 데려오기 위한 팬들 나름대로의 트레이드 베잇에 오른 유망주나 키워보자는 유망주 이름을 들었을 때 듣도 보도 못한 친구들 이름이 가득하다면 앞으로도 그 친구의 이름을 기억할 확률은 매우 희박하다. 프렌차이즈를 이끌고 나갈 진퉁들의 이름을 기억하는건 한순간의 임팩트면 충분하다. 애초에 그럴 가능성이 있다면 언론에서 3대 투수, 4대 유격수 이런 식으로 패키지로라도 묶어 보도를 했을테니 기억하지 못할 확률도 적다. 따라서 우리는 타 팀의 암흑기가 지속될지 여부를 비교적 높은 확률로 예측할 수 있다. 마구마구 게임을 해본 사람이면 알겠지만 노말카드 3장 돌린다고 레어카드를 주진 않으니 트레이드 확률이 없을 것임도 자명하다. 물론 응원팀의 유망주는 당신이 이름을 기억할 확률이 높기 때문에 저 방법을 사용하기 부적합하다. 

 다시 글의 제목으로 돌아가자. 만약 응원하는 팀에 암흑기가 도래한다면, 당신은 다음과 같은 루틴을 반복할 확률이 높다.

 1. 충격 & 부정과 고립의 단계





















 냉혹한 순위표와 저질스러운 팀스탯을 부정하고 일시적인 부진일 거라며 고립 상태에 빠지게 된다. 당신이 취해야 할 일은 다양한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팀의 현 상황을 냉정하게 진단하는 것이다. 어차피 같은 팀팬들끼리만 얘기해봐야 냉정한 진단을 하는 사람 이야기는 듣지도 않을텐데 병을 악화시키는 행위다.

 2. 분노의 단계













 계속되는 패배로 온갖 성질을 다 부리며 선수, 감독, 심판은 물론 타팀팬에게까지 패악질을 부리지만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는 단계이다. 어차피 밥먹으라는 엄마한테까지 짜증부리다 등짝스매싱을 당하지 않는 이상 무슨 합리적인 말을 들어도 백약이 무효하니 배설할 사이트를 찾는 것이 좋다. 물론 익명 사이트가 나을 것이다.

 3. 타협의 단계


 어차피 루징 시즌은 확정되었고 당신도 반쯤은 받아들였으나 괜히 쓰잘데기없이 내년도 픽을 예상해본다거나, 그 때 그 경기를 잡았더라면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거나 나아가 몇승 몇패를 하면 4강에 갈 수도 있을 거라는 식으로 누구와 하는건지도 모를 타협을 하는 시기이다. 사실 이 시기에 계산이랍시고 하는 짓 중 실익있는 것은 하나도 없으니 드라마를 보는 것이 가장 이롭다. 

 4. 우울의 단계 
















 이미 시즌이 끝났다는걸 인지하고 과거의 '좋은 날들' 즉 빛나던 팀의 시기를 회고하며 추억담을 나누는 시기이다. 옆에서 보고 있자면 노인네들이 왜정 때가 좋았네 하는 것 같은데 막상 자기들은 무척이나 진지하다. 이 단계를 설명하는 관용어로 '94년 신바람 야구'가 있다. 

  5. 수용의 단계


 대개 다른 팀이나 종목으로 관심사를 돌리거나 생업에 집중하게 되지만 간혹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성불하지 못하는 지박령같은 자들도 있다. 이런 자들과는 멀어지는 것이 좋다.


 한번 온 암흑기는 치과 치료처럼 언제 끝날지 알 수가 없다. 이미 팀의 모든 여력이 소진되었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기약없는 기간 동안 팀과 함께 고난을 겪든, 그 기간 동안 잠깐 덕질을 쉬든 자유지만 멘탈은 챙겨야 하지 않겠는가? 순종 2년 이후로 한번도 우승을 못한 시카고 컵스같은 팀팬들도 있는데 징징거린다고 팀이 잘하는 것도 아니고 덕질에도 예의가 있는 것 같다.

2013년 7월 21일 일요일

스팀 여름세일 득템 후기

 이제 본격적인 방학 시즌이 찾아왔다. 게임은 좋아하긴 하지만, 장마같이 징글징글한 꼬꼬마들과 소환사의 협곡에서 개똥밭을 구르기는 싫다면 패키지 게임을 하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나는 근 10년 전에 카운터 스트라이크 하려고 스팀에 씨디키만 등록해놓았을 뿐이지 저런 온라인 게임 유통 플랫폼을 선호하지 않았는데, 이사다녀야 하는 처지에 게임 패키지 건사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해외 결제 카드를 만드는 것도 일이고 결제대행 업체를 이용하면 수수료도 만만찮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MLB TV랑 아이튠즈 때문에 카드 하나 만들어놓은 후에야 본격 스팀 탐방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이번 스팀 여름 세일 기간에 노린 것은 엑스컴 : 에너미 언노운, 배트맨 : 아캄 어사일럼과 아캄 시티 3개였다. 출시일이 좀 되어서 몇 번 할인된 게임들이라 세일 확률도 높았고, 평도 괜찮은 게임들이라 벼르고 있었다. 그런데 세일 기간 동안 정신없이 클릭질을 하다보니 보관함에 추가된 게임은 확장팩을 포함하면 7개나 되어서 지갑에 궤양이 날 지경이었지만, 다 지를만한 이유가 있는 게임들이었다는 걸로 위안을 삼기로 했다. 단시간내에 모두 다 클리어할 순 없었으므로 수박 겉핥기식 리뷰를 덧붙인다.

 구매할 게임을 고르는 기준 중 중요한 것으로 공식이든 비공식이든 한글패치 유무를 따졌다. 여태까지와 마찬가지로 게임을 돌린 시스템은 데네브 955, 램 8기가, 라데온 7850 / 지포스 GTX460 두 개다.

 1. 엑스컴 : 에너미 언노운

XCOM Enemy Unknown Game Cover.jpg

 장점 : 지하에 외계인 때려잡는 비밀기지 만드는 거 누구나 다 해보고 싶지 않은가? 직관적인 인터페이스와 과도한 피칠갑을 배제한 연출도 마음에 들었다. 턴제 게임이니 자칫하면 진행하며 늘어질 수 있는데, 이 게임은 억제기 앞에서 포킹조합 상대하듯 쫓기는 것처럼 시간이 지나가니 진행하며 느끼는 루즈함도 작다.

 단점 : 게임 내외적인 부분, 그러니까 그래픽이든 사운드든 스토리든 연출이든 모든 걸 통틀어봐도 딱히 특출난 부분이 안 보인다. 턴제 게임이라 상대적으로 전투가 펼쳐지는 맵에도 눈이 많이 가는데, 맵타일이 많은 것도 아니라 심심하다. 

 총평 : 수작이라는 얘기는 못 듣겠지만 한 일주일 즐기기엔 충분하다. DLC 사고 싶은 마음은 안드는데 나중에 생각나면 또 잠깐 할만하다.

 2. 문명 5 골드에디션 + 멋진 신세계 확장팩


 장점 : 어마어마하게 방대한 컨텐츠를 자랑한다. 

 단점 : 특성상 플레이 시간이 길어도 너무 길다.

 총평 : 파고 들면 한도 끝도 없는만큼 즐길거리도 많다. 

 3. 토치라이트2


 장점 : 깔끔한 그래픽에 시원한 핵 앤 슬래쉬.  

 단점 : 볼륨도 작은데 정식 한글화를 지원하지 않는다. 비공식 한글패치는 존재함.

 총평 : 디아블로 2.5 정도의 게임이다. 이런 류 게임이 다 그렇듯 잠깐 즐기기에 괜찮을 것 같고 가격도 착하다. 

 4. 배트맨 : 아캄 어사일럼














 장점 : 뛰어난 연출, 세세한 스토리, 착 가라앉은 분위기에 육중한 타격감까지 전체적인 짜임새가 좋다.

 단점 : 액션게임이지만 마치 데메크 시리즈마냥 약간의 길찾기 요소와 퍼즐이 존재하는데 내가 그런 걸 안좋아한다. 어쌔신크리드처럼 미니게임까지 많으면 화가 났겠지만 그렇지는 않아서 다행이다.         

 총평 : 잠입 액션이라고 하지만 메탈기어 솔리드나 시프 류는 아니다. 지포스는 필수이고 엑박패드가 있으면 더 재밌다.

 5. 배트맨 : 아캄 시티

배트맨: 아캄시티 PC 버전, 내달 국내 정식출시

 아캄 어사일럼을 클리어 못해서 안해봤지만 1이 재밌으니 2도 재밌겠지 뭐

 6. 발더스 게이트 : 인핸스트 에디션












 장점 : 시스템적으로는 크게 변한 것이 없고, 그저 원작의 그래픽을 일신하고 약간의 MOD를 추가한 수준이지만 그래도 원작이 재밌다.

 단점 : 이 정도 볼륨을 가진 게임에 기본적인 한글 패치도 없으면 좋은 소리를 하긴 힘들다.그것도 발매 전에 곧 해준다고 약속하던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개발사-유통사간 분쟁이 어떻든 한글화 작업 자체도 처음부터 팬들에게 맡긴 모양인데 그냥 어처구니가 없다. 싸게 나온 게임이긴 해도 야 니들 돈 좀 써.

 총평 : 그래서 발더스 게이트3는 언제 나오냐 

2013년 6월 24일 월요일

망하거나 팔지 않고 살 수 있겠니 - 넥센 히어로즈 수난사

 써놓고 마음에 드는 글은 대부분 앉은 자리에서 한번에 써내려갈 때 나오던데 돈되는 일도 아니고 내 블로그에 내가 쓰는터라 써보고 싶은 소재도 몇 주 걸리는 게 예사다. 넥센 히어로즈에 대한 이 글도 허접하다 뿐이지 참 오랫동안 썼던 글인데 쓰는 사람 마음에도 차지 않으니 길기만 하고 영양가없지만 추린다고 최대한 추려보았다. 4월에 쓰기 시작한 글인데 롤 랭겜 돌리고 와우하느라 이제야 업로드하게 되었다.

 I. 개요

 돈으로 흥한 현대 유니콘스는 돈 때문에 망했다. 어떻게 건질 수도 없는게 일찌감치 연고지 먼저 팔아먹고 진작 보증금 다 까먹은 무단 월세 살고 있는 판이었다. KBO가 운영비를 대주고 선수협이 10억을 모금했으나 고별 시즌이라도 치룰 수 있었던 게 다행이었다. 이장석 넥센 히어로즈 구단주는 바로 이때 야구판에 등장한다. 박동희 기자의 칼럼에 따르면 이장석 구단주는 본래 구색갖추기용 버리는 카드였던 모양이다. KBO는 이장석 구단주와 협상하며 최소한의 예의도 갖추지 않았고, KT 인수가 불발되고 나서야 매달리기 시작했다. 이장석 구단주가 오퍼나 들어보자는 심정으로 KBO를 방문했을때 이미 기자들을 잔뜩 불러놓은 상황이였다하니 타들어가는 폭탄이 얼마나 급했는지 알 수 있다. 명목상 센테니얼이라는 투자자 그룹이 우리 담배라는 업체의 네이밍 스폰을 받아 우리 히어로즈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2. 히어로즈의 탄생

 연고지도 없고 돈 문제도 복잡한 팀을 계승하길 원하는 사람은 없으니 히어로즈는 유니콘스 해체 후 재창단 형식을 밟았다. KBO-히어로즈-선수단 세 측 모두 양보하거나 혹은 양보를 강요당했다. KBO는 현대 운영비를 모두 회수하진 못했겠지만 폭탄을 넘겼고, 히어로즈는 SK 와이번스와 같은 재창단 신생팀 혜택을 받진 못했지만 알토란같은 선수단(+현대의 해외파 특별지명픽까지)을 모두 인수했고, 선수단은 하한선 없는 연봉 삭감과 FA 계약 파기를 강요당했다. 2007년 현대 유니콘스의 페이롤 총합은 41억 2970만원이었으나, 2008년 우리 히어로즈의 페이롤은 26억 6900만원이었으니 그 해 겨울이 추웠던 건 대대 왕고로 혹한기 훈련을 뛰었던 나 뿐만은 아니었으리라. You will never walk alone.

 히어로즈가 재창단을 했기 때문에 현대 유니콘스 시절 계약을 무효화하려는 것은 납득이 된다. 그러나 장원삼은 현대에게 다 못 받은 입단 계약금 미지급분을 히어로즈로부터 받았으니 지명권을 인정할 수 있는 것처럼 계약이 없으면 선수 보유권도 같이 잃는 것이 옳다. 특히 2005년 현대와 FA계약을 맺으며 계약금 없는 3년 계약을 한 송지만을 주목할만하다.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한 건 현대 유니콘스이고, 송지만 본인의 귀책사유는 전혀 없다. FA 보장 금액은 인정하지 않는데 히어로즈의 보유권 승계는 인정하는 신묘한 유권해석 덕에 무려 3억 8천만원을 삭감당한 새 계약서에 도장을 찍어야 했다. 팀이 계약을 승계할 의사가 없다면 송지만을 곧바로 무적 선수로 공시하거나, 최소한 가입금 받은 KBO에서 원래 연봉과의 차액을 보장해야 했다. 그렇게 뒤숭숭한 와중에도 KBO 총재는 연봉 1억 8천에 월 1000만원 판공비 따박따박 챙겨갔으니 세상이 말하는 고통 분담이란 가장 약한 자에게 가장 큰 짐을 안겨주는 것이다. 전준호, 김수경도 비슷한 대우를 받았다. 정민태는 그냥 방출되었지만 배려라기보단 전력 외 방출이었다. 시즌이 끝나고 저 세 선수들에게 FA 자격을 부여하긴 했으나 조건없는 자유계약 선수로 공시했어야 마땅하다. 보상금, 보상선수 생각하면 저 선수들 데려갈 곳 찾기 어렵다.

 히어로즈에게 대금 결제 문제가 자주 있던 것만 봐도 실탄이 빡빡했고, 메인스폰서도 그다지 입금일을 잘 지키는 편은 아니었던 듯하다. 폭탄을 떠넘긴 KBO는 입을 씻은지 오래고, 다른 구단은 애초에 도와줄 생각이 없었다. 다섯번에 걸쳐 내야할 가입금 120억원, 창단 당시에 12억원을 먼저 계약금 조로 건네고 나머지 108억원을 4번에 걸쳐 분납하기로 했다. 그러나 두번째 납부일인 2008년 6월부터 문제가 생겼다. 5,6월 스폰서비가 연체되며 당장 실탄이 없었던 모양이다. 메인스폰서를 구해주기로 한 KBO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듯 가입비 납부 유예 요청도 거부되었고, 이장석 대표가 언론플레이로 시간을 끄는사이 어렵게 돈을 마련해 납부했다. 최근 이장석 대표와 송사를 벌이고 있는 홍성은 레이니얼 그룹 회장이 대여금(혹은 투자금) 20여억원을 전달한 것도 이 즈음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우리담배는 이장석 대표의 시간끌기를 빌미로 스폰서 계약을 해지했고(그리고 이 회사는 히어로즈보다 훨씬 빨리 망했다) 시간은 흘러 세번째 납부일인 12월이 다가왔다. 급전을 마련하기 위해 이장석 대표가 선택한 길은 이미 쌍방울의 전례가 있던 장기밀매였다.

 정리해보면, 히어로즈는 장원삼-이현승-이택근-황재균-마일영-고원준을 보내며 박성훈-김상수(유격수 아님)-금민철-강병우-박영복-김수화-김민성-마정길-58억원+@를 받았다. 일반적인 야구팬이라면 히어로즈가 보낸 선수들의 이름이 받은 선수들보다 훨씬 익숙할 것이다. 받은 선수들은 굳이 기억하지 못해도 연말 시상식 보는데 별 지장은 없다.

 3. 의외의 행보

 2008년부터 2010년까지 그 와중에도 7위-6위-7위를 거둔 히어로즈를 칭찬해야할지 만신창이 팀보다도 못한 적 있는 팀들을 비웃어야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콩팥을 한두개도 아니고 와장창 떼다 판 히어로즈의 전력은 점화맞고 부쉬로 달아나는 티모처럼 불안해보였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징후가 있었다. 분명 내일 문닫을 팀처럼 핵심 전력들을 현금화하고 있는데, 다른 운영은 길게 보고 하는 것이 보였다. 뭐하는 사람인지도 모르는 연예인 시구 대신 환경미화원, 소외계층 등을 마운드에 올려 '개념 시구'를 하는 거야 백번 양보해 일회성 이벤트라고 쳐도 '돈드는 일'을 아끼지 않았다는게 신기했다. 현대 시절 그대로 플로리다에 전지 훈련을 보내고(이듬해부터는 일본으로 바꿨지만 연습 상대팀 문제이지 재정 문제는 아니다), 재활군은 필리핀으로 보냈다. 외부 영입 없이도 페이롤 상승분도 리그 2위에 달할 정도로 상당했다. 더 칭찬받아야 할 점은 아마야구 지원에 인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면 드래프트는 2008년부터 실시되었다.
출처 : 국회의원 전병헌 블로그
  KBO 하는 일이 매번 그렇듯 연고지 드래프트 폐지라는 중요한 일을 결정하며 아마야구 공동지원에 대한 합의도 도출하지 못했으니 시작과 동시에 공유지의 비극이 연출될 거라는 건 뻔했다. 전면 드래프트를 찬성하던 삼성, 엘지, 두산, 한화는 곶감만 빼먹고 입을 씻었고, 반대하던 구단들은 발을 뺐다. 히어로즈는 달랐다. 없는 살림에도 불구하고 꽤나 큰 지원을 했다. 임수혁 데이같은 행사도 감동적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2010년부터 넥센 타이어를 메인 스폰서로 잡으며 일단 자금난 우려도 해소할 수 있었다. 되도않게 창단 초기에 삼청태를 은근슬쩍 구단 역사로 잡으려는 역사 조작질을 하려고 한 것은 그냥 해프닝으로 넘어가자.

 4. 영웅의 역습

 2011 시즌이 시작됐다. 헌혈만 해도 반나절은 어지러운데 장기를 저렇게 떼어다 팔았으니 팀 전력이 나올리가 없다. 어떻게 비집고 성장한 선수도 있었지만 그렇잖아도 여럿 나간 자리에 이제 떠날 준비를 하는 사람들까지 겹치니 잘봐줘도 본전치기다. 그때 KBO의 산타클로스 엘지가 손을 내밀었다. 8년 연속 4강 탈락의 사슬을 이어나가지 않으려고 노력하던 엘지는 불펜 보강이 절실했다. 히어로즈에 전화를 걸었고, 히어로즈는 송신영과 김성현을 보내는 조건으로 박병호와 심수창을 내줬다. 믿을만한 베테랑 불펜과 덜 긁은 영건을 급한 팀에게 주고 긁은 복권 두 장을 받아왔으니 현금이 끼지 않았다는 해명은 TV동물농장 이웅종 소장이나 되야 알아먹을법한 개소리다. 김성현은 아깝지만 송신영은 시즌이 끝나고 FA 자격을 취득하는데다 연봉 3천만원 받는 심수창이야 예비 전력으로라도 부담없고 히어로즈도 이숭용 자리에 누군가 채워넣긴 해야했기에 2군에서 ops 1.1찍던 박병호면 지금까지 받아온 카드에 비교하면 특급이니 가마솥 떼주고 엿한가락 얻는 셈 치고 넘어가려는데..

 트레이드 당시 포텐이 어떻든간 1군에서 600타수를 넘게치는 동안 타율 .190에 BB:K 비율이 0.3에 불과하던 선풍기가 2012년 MVP로 클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물론 엘지로 간 송신영도 나름의 활약을 했지만 4강 진출은 실패했고 시즌 후 한화로 이적하며 엘지를 떠났다. 김성현은 야구꿈나무 대신 이웃집 토토로의 길을 걸었다. 여기서 영웅의 진격은 멈추지 않았다. 현대의 해외파 특별지명을 승계받아 김병현을 영입한데 이어 FA 자격을 얻은 이택근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며 자팀 FA 후려쳐보려던 엘지의 품에서 다시 데려온다.


 영리하게도 유망주들을 협상 전에 대거 입대시켰기에 엘지는 보상선수를 고르기도 어려웠고, 경찰청에 입대 예정인 윤지웅을 픽하며 2년을 그냥 보내게 되었다. 게다가 주전 포수였던 조인성의 SK 이적 공백을 메우지 못했기에 서동욱을 주고 최경철을 받은 것도 한쪽으로 쏠리는 트레이드다. 이장석 대표는 2013년엔 NC와의 트레이드로 송신영도 다시 복귀시켰으니 히어로즈와 엘지의 선수 이동을 최종적으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히어로즈 IN - 이택근, 송신영, 박병호, 심수창, 서동욱, 30억+@

 LG IN - 최경철, 윤지웅, 나성용(송신영 FA 보상선수), 김성현, 8억 4천만원(FA 보상금)

  또한 히어로즈는 두산에 백업 1루수 오재일을 보내고, 외야수비가 가능한 DH슬롯 이성열을 영입하는 스틸 트레이드를 성사시키기도 한다. 나는 두산 김진욱 감독의 타격론에 의문을 가지고 있는데, 오재일 영입이 대실패로 돌아가고 김진욱 감독 역시 자신의 타격론에 의문을 가졌던지 홍성흔을 영입해 1루/DH슬롯 뎁스만 김동주, 홍성흔, 오재일, 오재원, 윤석민, 김재환 요일별 뎁스를 구축하는 희안한 행보를 보였다. 김시진 감독과 결별하고 엘지에선 무슨 흑막 취급을 받던 염경엽 코치를 감독으로 선임한 것도 현재까지는 성공으로 보이지만 아직 전반기도 안 지난 시점이니 아직 평가는 보류하고 싶다.

 5. 성공 비결은?

 아무튼 히어로즈는 '공짜로도 안 데려갈' -엄연히 KBO 관계자 입에서 나온 소리다- 천덕꾸러기에서 벗어나 서울 한켠에 자리를 잡았다. 작년 700만 관중 돌파에서 1/8 쯤의 공헌은 한 셈이다. 결코 이장석 대표 혼자한 일은 아니지만 숟가락 얹을 자격은 넘친다. 히어로즈가 다른 구단과 달리 트레이드나 외부 영입에 적극적일 수 있었던 것은 구단 수뇌부가 보고나 받고 돈 타다쓰는 바지 사장이 아니라 최종 결재권자였기 때문이라고 본다. 무엇보다도 이장석 대표 본인부터 프로 뿐만 아닌 아마 야구까지 스카우터 수준으로 꿰는 전문가 수준이라는 평가다. 무슨 세이버 스탯을 가지고 판단한다 그렇게 보이지도 않는 게 선수 시장 가치에 대한 분석이 놀라운 수준이다. 드래프트나 트레이드 때마다 오랫동안 지켜본 선수 가치에 대한 정보와 평가가 확고하게 있으니 마치 주식장에서 개미 가지고 노는 기관을 보는 듯하다. 가령 히어로즈에서 지방팀으로 (팔려)간 투수는, 재능이야 훌륭하다만 분명 워크 에식에 문제가 있었다. 어차피 운영비로 누군가 팔아야하는거 고점에서 비싸게 판 셈이다. 반대로 박병호는 말할 필요도 없이 저점에서 산 케이스다.

 비록 경질되었지만 꼴찌 전력을 가지고 고군분투한 김시진 감독 이하 코칭스탭의 공도 크다. 운영에선 분명 미흡한 면이 있었지만 굳건하게 팀을 지켰고, 온갖 악재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연봉 삭감에도 불구하고 팀을 지킨 송지만, 전준호, 김수경도 분명 팀의 버팀목이 되었으리라.

 게다가 히어로즈는 다른 야구단만 호구를 잡은 것도 아니고, 언론 노출을 필요로 하던 지자체나 단체들에도 호구를 잡았다. 경제성 제로라 지어질리 만무하던 안산돔 이전 협약을 맺는 대가로 20여억원을 받았다. 물론 돌려줄 필요가 없는 꽁돈이었다. 선문대에 2군 구장을 산학 협력 명목으로 지은 것도 자기 돈 한 푼 안 들이고 연습구장을 마련한 좋은 약장사였다.

 6. 불안요소는 없을까.

 베이징 올림픽 이후 지금까지 프로야구는 선순환을 거듭해왔다. 2000년 50억원 대이던 중계권료는 2012년 250억원 수준으로 올랐고, 관중은 동기간 270만 명에서 7백만까지 올랐다. 객단가 역시 4,480원에서 8,853원까지 올랐으니(링크 참조) 대단한 성장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봤을 때, 프로스포츠에 오가는 돈의 규모는 그렇게 크다고 보기 어렵다. 국내 프로스포츠에서 프로야구는 어느 종목과도 비교할 수 없는 절대강자다. KBO는 2012년 역대 최다 매출을 거뒀다며 350억원을 벌었다고 공시했는데, 이 때 모바일 게임 개발사인 게임빌, 컴투스는 각각 650억원 이상을 매출로 공시했다. 700만 관중이 대단하긴한데 영화도 1년에 한번꼴로는 천만관객 나오는 판이고 블록버스터래봐야 야구단 1년 운영비 예산보다 훨씬 적게 든다. 이유야 심플하다. 모바일 게임과 영화가 잡고 있는 큰 손 중장년층을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처럼 농구장은 표 싸니까 자주 간다지만 야구장 갈 때는 예매 사이트 가격 공고보고 손떠는 사람들이 돈을 써봐야 뭐 얼마나 쓴단 말인가. 더구나 인터넷에서 쉽게 프로야구를 볼 수 있는 것도 한번 더 생각해봐야하는데, 네이버 같은 경우엔 게임데이만 안나올 뿐이지 MLB TV 뺨치는 서비스를 자랑하지만 무료 컨텐츠니 저게 구단 수입에 직접적으로 큰 도움이 될지, 혹은 수익이 더 나올 수 있게 유료 전환했을 시엔 얼마나 볼지 생각하면 암담하다. 그만큼 광고에만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선순환이 끊긴다면 다른 돈줄이 적은 히어로즈는 키코 크리 맞은 중소기업처럼 휘청일 수 있다.

 20년 동안 우승을 하지 못한 팀은 존재 가치가 없다는 무가치한 팀의 무가치한 사장의 말대로 성적도 성공의 중요한 판단기준이다. 상위권 성적을 내는 게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을때, 히어로즈가 파이어세일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런진 모르지만 반대로 상위권 성적을 낼 수 있어도 과연 우승을 목표로 거액의 지출을 할 수 있을 것인가도 생각해볼 문제다. 리빌딩의 마지막 퍼즐은 십중팔구 고비용 고효율의 외부 영입 선수이기 쉬운데, 포스트시즌 배당금과 따라붙을 광고들은 불확실한 수입이고 인건비는 고정비니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히어로즈의 대권도전 적기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 이택근-박병호가 건재한 가운데 강정호가 FA로 풀리기전이니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올해부터 1,2년 정도가 가장 중요하다. 다른 FA선수들을 잡지 않는 이상 외국인 선수만한 전력이 없는데 물론 지금 나이트-헤켄이 잘해주고 있지만, 이들을 놓치거나 교체해야할 때 아무래도 해외 스카우팅 시스템이 타팀보다 양적으로는 덜 구축되어 있을 히어로즈가 저들만한 선수를 쉽게 구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민사소송이 이장석 대표의 경영권이 흔들리는 쪽으로 흘러갔을 때 팀이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는지 여부도 큰 변수이다. 가능성은 무척 매우 아주 희박하지만 다른 구단들이 그룹 승진인사에서 상대적으로 밀린 사람이 아닌 전문 스포츠 경영인을 앉힌다면 히어로즈의 상대적 무기 우위도 퇴색될 수 있다. NC가 롯데에서 이상구 단장을 영입했듯 다른 팀도 그러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지는 않다.

 7. 총평

 전후사정이 어땠든 히어로즈가 지속적으로 팀의 주축 선수들을 대거 파이어세일한 것은 사실이니 팬들의 분노를 물론 이해한다. 트레이드 대박이 어쩌고 해도 결국 트레이드는 트레이드 당시의 가치로 평가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그건 현대 유니콘스가 다른 가난한 팀에게 했었던 짓과 크게 다르지도 않고, 자기가 만든 버블에 허우적대다 돈줄 끊기고 독자생존 안되던 그 팀이 그 정도 가치를 가지고 있던 것도 사실이다. 선수들이 뿔뿔히 흩어져 7개 구단으로 리그를 파행 운영하는 것보다 이장석 대표가 오늘날 만들어놓은 8번째 구단의 가치가 비교하지 못할 정도로 훨씬 높다고 본다. 주축선수를 보내고 현금을 받아온 걸 비판하는 사람들 말대로 베테랑을 보내고 유망주를 받아왔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막말로 송지만 받고 가입비 대납에 유망주도 얹어줄 팀이 세상에 있는 것도 아니고, 모금운동 해줄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다. 선수 안팔고 개인 빚으로 가입비 냈으면 2009시즌에 시즌권 17장 팔린 저 구단 대표는 지금쯤 노역장에서 빚갚고 있던가 국민행복기금 절차밟고 있을텐데 전자는 내 알 바 아니라고 해도 후자는 내 세금인데 그렇게 하라곤 못하겠다.

 아무튼 히어로즈는 템파베이처럼 금융인 출신이 전면에 서면서 나름 재미를 보고 있고, 최고의 재능을 드래프트하진 못했지만 템파베이가 싹수보이는 애들 장기 노예계약 하는 것과 비슷하게 KBO 제도가 보장하는 무려 8,9년의 FA 자격 취득 시스템의 꿀을 제대로 빨며 현재까진 나름 괜찮은 성과를 내고 있다. 템파베이가 주차장을 무료로 개방한다거나 음식 반입을 허가하는 것처럼 히어로즈도 팬서비스를 확대하면 좋겠지만 템파야 구장 입지가 헬이고 히어로즈는 서울팀인데 그럴 필요를 못느낄 것이니 지역 밀착 마케팅을 지속하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 될 것 같다. 

2013년 5월 29일 수요일

일베는 폐쇄되어야 하는가

 민주당이 일간베스트(이하 일베) 웹사이트에 대해서 운영금지 가처분을 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무리한 주장이다. 표현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는 원칙에서도 그렇고, 비단 5.18 민주화 운동이 아니더라도 민주화 운동에 부채감을 느끼는 사람은 상대적 소수라는 현실에 비추어봐도 그렇다. 바그다드에서 사담 후세인 동상을 끌어내린 사람들이 폭압에 분노하다 해방군을 맞은 시민이 아닌 CIA가 동원한 엑스트라였다던 이야기에 의심보다 수긍이 먼저였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총칼 앞에 광장에 나가고 싶어하는 사람보다 집에 있고 싶은 사람이 항상 더 많은데 반란수괴는 목을 치고 잔당들은 목에 팻말걸고 조리돌림한 것도 아니고 뭔가 보이는 임팩트가 있어야 부채감도 드는 거 아닌가. 괜히 바이블에서 보지 않고 믿는 자가 진복자라 하는 게 아니다. 삼대가 망한다는 독립투사들보다 민주화 운동을 주도한 세력이 받은 보상이 '상대적으로' 낫기도 했다. 물론 보상을 못 받은 사람이 양자 모두 더 많겠지만.

 일베와 비슷한 컨텐츠를 가진, 정확히 말해 디씨인사이드의 각 갤러리 일간베스트 글을 모아놓은 사이트에 처음 간 것은 대략 2009~2010년 경이다. 친구가 야갤 짤방 링크해줄 때마다 들어갔으니 꽤나 자주 간 셈인데 사이트 이름이 특이했다. 4camel이었나 사이트에 낙타 그림이 있었는데 이름이 별로 한국 냄새 나지 않아 언젠가 유래를 찾아본 것이 기억에 남는다. 평소부터 아프리카 여자 BJ들을 별창녀라 조롱하며 방송을 방해하던 흔한 디씨 미치광이들이 조작인지 진짜인지도 모를 당해 BJ가 낙태를 몇번을 했느니하는 짤방을 보고 흥분해 평소하던 짓거리하다가 고소당하고난 뒤 지들끼리 낙태를 낙타라 표현한 것이 사이트 이름의 정체였던 것이다. 디씨는 고딩 때부터 디카 사고팔러 다녔고 야갤도 2004년 한국시리즈 때부터 짤방보러 다녔지만 저 4camel이 있을 때는 이미 각종 비하 문화에 질려 떠난 시점이었고, 가뜩이나 글들도 마냥 웃을 수 있는 것보다 아닌 게 더 많았는데 사이트명 유래까지 알고나니 더 가기 싫어졌다. 디씨 특유의 해학적인 상호자학이 싫었다기보단, 언제부터인가 큰 갤러리에서 병신 카스트 제도를 만들어 자기보다 다른 사람을 더 비하하고 조롱하는 것이 마음에 안들었다.

 그렇게 디씨와의 인연이 끝났으면 좋았을텐데, 격리소에서 만족하지 못한 미치광이들이 온갖 사이트에 브나로드 운동하듯 혹은 매저키스트적 욕망을 가지고 등장해 분란의 씨앗이 되며 연이 이어지게 되었다. 역시 한미 FTA 하의 소고기 수입 협상에 대한 태도가 가장 들기 쉬운 케이스인데, 광우병 발병에 대해 확률이나 위험성을 지나치게 과장한 자들을 비웃는 것은 디씨 스타일이다. 그러나 똑같은 이유에 따라 협상 과정에서 여러가지 월급 아까운 짓을 하고 협정문 하나 제대로 번역을 못하는 행정력을 보여준 정부를 비웃었느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성역없던 비판과 해학적 조롱에 애국보수로 끼리끼리 정의내린 우리편 니편의 잣대가 생겼다. 학교 커뮤니티에도 그렇게 의도를 가지고 편집된 자료를 들고 오는 사람이 생겼다. 처음엔 하나하나 살펴보고 반박을 했지만 토론에서 당연히 있어야 할 피드백이 하나도 없이 그냥 퍼오는 걸로 땡이었다. 공부를 더 잘했으면 킹왕짱 대학에 가서 생각없이 퍼나르기만 하는 좀비 대신 저런 광우뻥식 자료 만드는 놈과 직접 게시판에서 제대로 된 토론을 할 수 있으려나 그건 모르겠지만, 뭐 저렇게 만든 놈이야 지 자료가 취사 선택의 결정판인걸 알테니 토론을 하려고 하지 않는 건 퍼나르기 좀비와 똑같을 것 같다.

 현 여당계열 지지자들이 성향을 드러내며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고, 그 고충을 이해한다. 원래 빠는 것보다 까는 걸 더 쉽고 재밌는데 그렇다고 독재까지 빨 순 없으니 고작 할 수 있는게 이놈이나 저놈이나 똑같다고 양비론을 펴거나 경제성장론을 두둔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니들이 어려서 그런다 하다가 털리고 선을 넘어 멀리 간 사람도 많이 봤다. 뭐 여당 알바야 VT 때부터 있었지만 돈 받는 것도 아닌 지지자가 여당 헤이터 혹은 야당 지지자들에게 알바로 몰리거나 거친 말을 듣는 것도 부지기수였을테니 때로는 동정도 간다. 차라리 저렇게 힘들게 살(?) 바에야 다른 커뮤니티에서 노는 게 좋을텐데 생각도 해봤지만 이 사이트는 이게 싫고, 저 사이트는 저래서 싫은 법이다. 세상의 인터넷 사이트의 수만큼 싫은 부분도 있으니 오래 이용할만한 사이트를 찾기란 사람을 사귀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여당 지지자라고 사람이 다 똑같은 게 아닌데 엠코, 개폐위 그런데랑 모든 코드가 맞을 수는 없다. 지금도 일베 코드가 싫어 헤매이는 여당 지지자가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일베는 어떤 사이트기에 이렇게 거대하게 성장할 수 있었나. 첫째는 디씨가 상당부분 잃어버린 익명성에 기반되었고, 둘째는 지역비하/여성비하를 필두로 한 따돌림과 조롱이 일상화되어있고, 세번째는 유저 스스로가 직접적 혹은 묵시적으로 그런 코드에 대해 수인하고 있다. 수인의 이유는 간단하다. 어차피 철저하게 익명을 추구하고 친목을 배제하는 곳이니 특정한 종류의 비하와 조롱만 못본 척 넘어가거나 관대한 척 무시하면 그 외의 모든 것들을 똑같이 물어뜯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기들의 코드에 항의를 받으면 진지병 환자라거나 씹선비라 비하하는게 자존감을 유지하는 길이다. 가령 강제징용 위안부에 대해 원조 원정녀라고 패악질 부리던 놈이 있던 걸 돌이켜보면 당시엔 그런 정신나간 친구들이 미쳐 날뛰고 있었는데 이젠 그런 발언을 유저들 스스로 규탄하고 있다니 신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따지고보면 별로 이상한 일도 아니다. 그 정도 거대 사이트에서 원정녀 소리를 보고 불쾌감을 느끼는 애가 설마 하나도 없었을까. 그때는 그것만 안 짚고 넘어가면 다른 패악질을 할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었고, 이제는 그냥 넘어가면 내가 패악질 부릴 멍석이 홀라당 없어질지도 모른단 불안감이 들기 때문에 그렇다. 똑같은 이치로 일베 유저 중에 호남 거주자나 여성이 있는 것도 의외의 일이 아니다. 호남 거주자는 지역 비하만, 여성 거주자면 여성 비하만 감내하면 다른 대상에 대한 모든 조롱과 비하를 다 할 수 있다. 물론 그런 비하 코드들이 쌓인 것에 대해 동의하지 않거나 수인할 수 없으면 아예 일베에 들어가질 않을테고 그게 일베가 대한민국 최대 사이트가 아닌 이유다. 간혹 일베는 '좌빨'들의 증오의 반작용이 모여 생긴 사이트다 그런 소리하는 사람도 있는데 솔직히 탄압받은건 그쪽이 아니지.

 여담으로 저런 이지메 사이트가 망하는 방법은 온라인이건 오프라인이건 친목질 시작되서 서로 버릇 못고치고 색깔 싸움하다가 사분오열되는 게 제일 빠른데, 기사를 통해 유저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점은 확실히 규제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 친목질, 당파질도 인간의 본성이라 생각하는데 비하의 대상에는 내가 물어뜯을 자유를 들먹이다가 내부 단속엔 저런 탄압(?)을 벌이는 모순된 집단이 일베 하나도 아니고 그냥 익명 격리소에서 자기들끼리 놀고 바깥에만 안나와주길 바라는 게 일베 비이용자에겐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 아닐까 싶다. 더구나 폐쇄 의견에 동의할 수 없는게 일베는 자살 사이트나 뽕쟁이 사이트처럼 범죄 모의를 위한 곳이 아니다. 각종 범죄자들이 활동하긴 했으나 일베 유저라 범죄자가 된 것도 아니다. 독일의 반나치법의 예를 들지만 입법을 통한 해결을 하기도 어렵다. 서두에 이야기했듯 애초에 민주화 운동에 대한 부채 의식을 느끼는 사람도 얼마 없는 판에 무슨 수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낼 것인가? 일베의 본질은 배설이라고 생각하지만 미성년자가 아닌 이상 유해사이트의 판단은 본인이 할 일이고 국가가 개입하는 것이 아니다.일베의 문제라고 하는 역사왜곡에도 이전 정부의 책임이 크다. 초병이 경계에 실패하기만 해도 처형할 수 있는 것이 엄정한 군법이고 사형폐지론자들도 군법의 사형은 반대할 명분이 없다. 그런데 전통을 계승하는 의미에서 반란수괴 칭구칭구들을 능지처사하진 못할 망정 정치적 고려를 한다고 살려놓고 복권까지 해놓으니 이 사단이 안 날 수가 없다.

2013년 5월 12일 일요일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 판다리아의 안개 리뷰

 어느새 와우는 9년째를 향해 달려가고 어느덧 내가 하는 시골섭 공개 채팅창은 추억팔이로 살아가는 사이버 탑골공원이 된지 오래다. 수능끝나고 와우가 정식 오픈했을 때 계정비가 비싸다고 오픈 불매운동하는 사람들을 보고 '그럼 만원 더 내고 리니지하든가' 생각하며 사전결제를 했었고, 군대 전역하자마자 와우용 컴퓨터를 샀지만 내가 시작했을 때가 제일 재밌었다는 올드비 추억담들엔 동감할 순 없다. 강동엔 강동의 이쁜이가 있고 강서엔 강서의 귀요미가 있듯 확장팩마다 나름의 재미가 다 있었고, 그만큼 발전해왔는데 이제와서 옛날 시스템으로 돌아가면 불편하기만하지 재미있을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정액제 MMORPG는 꾸준한 구매력이 부족한 저연령층, 고액 결제 비중은 높지만 캐쥬얼한 게임을 훨씬 더 선호하는 중장년층 모두에게 외면당하기 쉽건만 와우도 참 징그럽게 오래 버텼다.

 1. 개요

 데네브 955, 램 8기가, 라데온 7850 / 지포스 GTX460 두 시스템에서 30프레임 중상옵 이상으로 그럭저럭 돌아간다. 40인 이상 필드 레이드 공격대나 대규모 전장에서 프레임 드랍이 있다. 두 VGA의 세대가 다르니만큼 권장 옵션의 세부 내역이 꽤 다르긴 하나 지포스 쪽이 한결 부드러운 모습. 언제나 그랬듯 블리자드 게임은 인텔-지포스 조합이 진리고 특히 CPU 쪽에서 인텔 쪽의 퍼포먼스가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본편 워크래프트에서 출발한 스토리는 리치왕의 분노에서 큰 줄기가 대강 완결되었고, 기존 비중은 드래곤볼 레드리본군 박사 정도지만 위상이라 짱짱맨인 데스윙까지 잡았으니 이제 아즈샤라 여왕쯤이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했다만, 예상과 다르게 넵튤론 떡밥도 회수 안하고 판다리아의 안개로 넘어오게 되었다. 불성보다도 외전 느낌이 심하게 나는게 임진록하면서 풍신수길 죽었다고 좋아하는데 갑자기 다음 스테이지 브리핑에 누르하치가 나오더니 우리 도와주러 러시아로 와봐라 하는 수준의 스토리 전개다. 스토리 라인 자체가 얼기설기한게 한두개는 아니다. 고대신을 섬기는 사악한 사마귀 부족을 도와줘야 하질 않나 밑도 끝도 없이 잔달라 부족이 새로 등장한 적 세력인 모구의 리즈시절 동맹이라 하질 않나 어이가 없지만 MMORPG를 스토리만 보고 하는 건 아니니 우선 넘어가보자.

 워크래프트3에 나온 NPC 첸 스톰스타우트의 종족 판다렌이 얼라이언스와 호드 양 진영 모두 선택할 수 있게 등장했고, 수도사라는 새 직업이 추가되었다. 탱,밀리딜,힐 모두 가능한 하이브리드형 클래스인데, 어차피 밀리는 어디서나 취직이 어렵고 탱커로서의 성능도 이제 막 재평가되는 중이라 힐 위주로 쓰이고 있다. 여담으로 PvP에서 제일 핫한 힐러가 바로 운무 특성 수도사이다.

  PvP는 새 전장 코트모구의 사원과 은빛수정 광산이 추가됐고 5.3 패치에 하나 더 추가될 계획인데, 전체적으로 의미없는 길싸움을 배격하고 테러와 주자원 확보 양자의 유기적인 조화가 강조된 디자인이다. 클래스별 유불리를 대격변 때와 간략히 비교해보면 진격의 파흑, 야드의 몰락, 주술사 전 특성 취업대란 정도가 눈에 띈다. 큰틀이 변했다는 느낌은 없고, 5.3 패치에서 탄력 - 위력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바뀐다는 소식인데 지금처럼 지속적으로 PvE ,PvP 유저 분리가 고착되는 것은 개발사가 바라는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PvP 유저층은 전체 유저 중 항상 소수이며 대다수의 유저들은 일퀘하다 필드 뒷치기에 짜증을 내고 말지 굳이 보석 마부 다시 해가며 제작템 맞춰 전장갔다가 투기장도 가고 하며 PvP 아이템을 맞추지는 않는다. 7년 반이 다 되가는 게임에 이제 와서 새로 전장 입문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2. 장점

 판다리아의 안개가 아무리 확망팩이라 해도, 와우는 언제나 기본은 하는 게임이다. 오래된 게임이라 한계는 있지만, 이번 확장팩에서도 일신된 그래픽을 볼 수 있고(슬슬 오리지널 여덟 종족들 기본 모델링도 다시 만들어주면 좋겠지만), BGM은 내 취향이 아니라 그렇지 배경과 이질감 없이 잘 어우러진다. 여담이지만 이번 클라이언트는 오프라인에서 DVD를 팔지 않아 동봉되어 있던 OST를 구하고 싶으면 디지털 스토어에서 구매해야 할 것 같다.

 와우는 만렙부터란 격언이 있을만큼 우선 만렙을 찍어야 뭘 할 수 있으니 그때까지의 과정이 지루한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최대한 퀘스트 동선을 단순화하고 저렙 특성을 강화해 자연스레 레벨업 속도가 높아졌고 지루함을 줄였다. 위상 변화를 활용해 새롭게 추가한 '농장 경영' 시스템도 잔재미를 주는 것과 동시에, 전문기술 숙련도를 올리는 것에 큰 도움을 주게 되었다. 앞마당에서 점프하는 걸로 하루를 보내던 PvP 하드 유저들은 채집 기술 부캐를 키우지 않는 이상 전문기술 올리려면 현질로 골드사서 경매장 이용하는 것 말고 딱히 방법이 없었는데, 이젠 농장에서 나오는 재료만으로도 쉽게 습득이 가능해졌다.

 컨텐츠의 핵심인 던전 디자인은 현재 최상위 던전인 천둥의 왕좌의 경우 시골섭 + 딜러 + 후발주자 삼위일체 크리를 맞아 가기가 힘들어 공격대 찾기로만 해봤고, 일반 공격대는 너프된 하위 레이드만 다녀왔을 뿐이지만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다년간 경험이 축적된 블리자드의 레이드 던전 디자인이 매너리즘에 빠질지는 몰라도 크게 실망스러울 것 같지도 않다. 레이드 자체가 바닥 피하는 매스게임이라는 비판이 있지만 울티마 온라인부터 아키에이지까지 다 살펴봐도, 에버퀘스트를 벤치마킹해 계승 발전한 와우보다 레이드가 낫긴 커녕 비슷한 수준에 도달한 게임도 없었다. 과거 인기 있던 인던인 붉은 십자군 수도원, 스칼로맨스의 리메이크도 반갑다.

 메즈, 점감, 클래스 조합으로 대표되는 다대다 PvP 시스템 역시 와우의 전통적인 장점이지만 판다리아의 안개만의 장점은 아니니 길게 쓰진 않는다. 대격변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된 직업별 버프 평준화에도 불구하고 저 세 요소의 조화 덕에 PvP쪽은 재미를 잃지 않았다.

 게임 자체적 재미는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이용자가 감소해 도시섭-시골섭 양극화가 극단으로 치닫자 서버 통합을 추진하고 있는 것도 좋은 일이다. 특정 서버같은 경우 한 진영이 그야말로 멸종하다시피 했는데 산소 호흡기를 씌웠다 정도 의미는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얼라는 듀로탄, 호드는 아즈샤라, 중립은 하이잘 가야 게임하기 편한 것은 변함없다.

 3. 단점

 역대 최악이라 불릴만한 후진 시네마틱(링크)을 가볍게 까면서 시작해보자. 귀요미 짱짱맨 첸 스톰스타우트가 싫다는 게 아니라, 안두인과 가로쉬의 갈등을 다루는 게 주제에 더 부합했다.

 라이트유저와 하드유저간의 간극을 좁힌다고 내놓은 일일 퀘스트의 압박이 너무도 크다. 기존에 존재하던 하루 일일퀘스트 제한 25개도 없앤만큼, 일퀘의 양 자체가 어마어마한데, 문제는 핵심 평판 진영의 일퀘로 얻는 평판을 확 줄여 확고를 찍기가 어렵다. 유저들의 항의에 뒤늦게 평판 보너스를 주는 아이템을 추가하고 평판템 구입 가능 기준도 하향했지만 갓만렙 달면 하루 종일 일퀘만 하다가 나간다는 말이 허언이 아니라(2,3시간이 넘게 걸릴수도 있다) 타겟으로 잡았던 라이트 유저들마저 일퀘에 질려 떠나게 되었다. 공찾 시스템에서의 아이템 드랍은 결국 운의 문제이고, 예전처럼 하루에 인던 하나씩만 돌아도 점수를 모아 에픽템을 바꿀 수 없고 평판까지 올려야 한다는 건 분명 부담이다.

 기존 확장팩과 달리 이번 시리즈에선 본편 스토리와의 연관 요소가 희박한만큼 플레이어와 세계관의 일치에 많은 신경을 기울여야 했는데, 안두인 린 구하려고 갔다가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면 진시황릉 같은데 들어가 싸우고 있으니 그런 면모를 찾아보기 어렵다. 레벨업 구간 동안 이용할 수 있는 인스턴스 던전은 4개에 불과하고(따라서 아이템 테이블도 극히 한정되어 있다), 만렙이 되어서야 영웅급 던전으로 9개가 열리는데 엄연히 아제로스에 있는 수도원, 스칼로맨스를 왜 판다리아에 있다가 별 퀘스트도 없이 뜬금없이 가야하는지 모르겠다. 최종 보스로 정해진 가로쉬도 샤가 꼬시든 고대신이 꼬시든 아무튼 때되면 미칠 이북 삼부자 같은 놈인데 굳이 판다리아까지 갔다와서 때려잡을 친구는 아닌 것 같다. 새 종족인 판다렌의 시작 스토리에도 왜 얼라이언스나 호드를 선택해야 하는지 필연성이 부족해보인다. 세계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와중에 티리온, 실바나스, 메단 같이 뭔가 좀 해야할 친구들이 놀고 있는 것도 이상하고.

 지엽적인 문제지만 현지화에도 아쉬운 부분이 있다. 고유명사는 음역하고, 일반명사는 훈역하는 게 와우의 오랜 현지화 원칙이었는데, 판다리아의 안개 배경은 상해혁명 훨씬 이전 고대-중세 중국에 가까워 표기에 애매한 부분이 생긴다. 물론 판타지 세계니 어떻게 현지화하는지야 제작사 마음이고 고심해서 옮겼겠지만 White Tiger Temple은 백호사로 번역하면서 탕랑 평원은 사마귀 평원이나 당랑 평원 대신 중국어 발음에 가깝게 표기하는등 일원화되지 않는 모습이다. 대부분의 한국 플레이어들은 공자라고 하면 알아들어도 콩즈라고 하면 모르는만큼 더 어색한 건 이름 쪽이다. 한자를 그대로 읽는 게 더 익숙하니 예컨대 천둥왕 레이 션(雷神)은 '뇌신'으로, 샤(煞)들은 살풀이 굿 할 때의 그 '살'이니 그대로 표기했으면 훨씬 이질감이 덜했을 것이다. 물론 인명은 원어 표기를 따르는 것이 옳겠지만 중국인들이 인명 말하는 건 성조때문에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던데 걔들은 내가 레-이-션 그렇게 읽으면 알아듣냐?

 오래 지적되어온 단점이지만 근접 전투에서 별로 타격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다른 건 다 어떻게 할 수 있어도 이 문제는 클라이언트를 완전히 새로 만들지 않는 한 영원히 해결 못할 것 같다.

 4. 총평

 여러군데서 혹평을 듣고 있는 판다리아의 안개지만 기본적으로 와우가 지금까지 쌓아온 컨텐츠는 방대하다. 생활이 없는 유저건 라이트 유저건 할 것은 항상 널려있고 계정비만큼의 재미는 한다. 비자발적 라이트 유저가 되니 점점 비싸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롤하면서 일베애들이랑 놀아야 하는 것보다 와우하면서 와갤러들이랑 노는 게 차라리 낫다.

 하지만 와우가 너무도 오래된 게임이라는 데 한계가 있다. 익숙해진 유저들이야 다 하던 감이 있다지만 와우는 빨리 익숙해지지 않는 게임이다. 각 서버에 서포터 길드를 만들어 유저들이 자체적으로 뉴비들에게 여러가지 지원을 해주기도 하나 당장 나부터 서버 옮기고 1부터 키우라고 그러면, 레벨업은 둘째치고 전문기술 때문에 엄두가 안 난다. 하물며 애드온의 A부터 배워야 할 뉴비들에게 장벽은 더욱 크게 느껴질 것이다. 사실 그건 판다리아의 안개가 지금보다 훨씬 잘 만든 확장팩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와우를 하기 전에도, 한 후에도 많은 MMORPG를 해봤지만 와우만큼 잘 만들고, 관리된 게임은 없었다. 상대적으로 찐따 비율이 높은 부분 유료 게임은 내가 잘 안 건드려서 못 찾은 것일수도 있겠지만 다른 장르의 게임을 한다면 모를까, 굳이 다른 MMORPG를 할 매력은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결국 이 장르의 가장 큰 컨텐츠는 얼마나 많은 유저가 게임을 하는지 여부라고 봤을 때, 꾸준히 유저가 줄고 있는 와우의 미래는 불투명하고 그동안 던졌던 떡밥 회수하며 얼마나 잘 연착륙하는지의 여부만 남았을 뿐이다. 북미와 중국에 빨대가 꽂혀있으니 아무리 망해도 몇년은 거뜬하겠지만, 내 지갑도 덩달아 거뜬한 건 아니다. 

2013년 3월 31일 일요일

춘계진지공사 시즌 특집 심시티5 리뷰

 어릴 때 읽던 학습만화에는 16비트 시대를 지나 32비트 컴퓨터가 보급되면 무슨 '퍼지'니 '뉴로퍼지'니 하는 최첨단 시스템이 구축되며 터미네이터 스카이넷이라도 등장할 것처럼 설레발을 떨었는데, 도스 때 쓰던 맥스나 MSN에서 쓰던 심심이나 말하다보면 복장터지는 건 똑같았으니 다행히 근시일내에 스카이넷이 우리 동네로 미사일을 쏠 것 같지는 않고 초비츠가 동네에 쓰러져 있을 일도 없는 것 같다. 난 뭐 공대를 나온 것도 아니라 퍼지 시스템이라고하면 금성 세탁기에 붙어있던 스티커밖에 생각 안 나더라. 심시티 2000은 그런 시절 게임이었고, 그렇게 재미 붙이며 한 게임도 아니라 근 10년만에 신작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얼핏 듣고도 별로 감흥이 없었다. 그런데 발매 이틀뒤 뒤늦게 본 트레일러가 내 마음에 불을 질렀다. 패키지는 다음과 같다.

영화 블루레이를 틀었는데 대영팬더 로고는 왜 안 나오냐고 의아해하지 않듯 이제 큰 케이스와 두툼한 매뉴얼로 상징되는 패키지 게임은 이제 컬렉터스 에디션 같은 형식이 아니면 찾기 어려울 듯 하다. 
 뒤에 있는 것은 특전으로 온 큰 사이즈의 마우스 패드이고 DVD케이스 크기의 패키지를 열면 설치 디스크도 없이 오리진에 등록할 수 있는 코드가 적힌 카드가 전부다. 디스크가 동봉된 버전이 따로 있는지는 모르겠다. 보다시피 단촐한 사이즈인데, 처음 설치 파일만 오리진에서 받고 실제 게임 설치는 심시티 전용 서버를 통해 이뤄진다고 한다. 하드를 고객센터로 들고가 게임 까는 게 더 빨라보이는 오리진 저질 서버를 생각하면 다행인 대목이다. 현재는 오리진에서 리미티드 에디션 대신 스탠다드 에디션을 팔고 있으니 기존 리미티드 에디션 패키지 재고를 사길 추천한다. 포함된 영웅과 악당들 DLC는 별 쓸모가 없긴 하지만 오히려 가격 면에서 오리진 스탠다드 에디션보다 더 싸다.

 1. 개요

 고지된 최소/권장사양은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게임을 돌린 데네브 955, 램 8기가, 라데온 7850 / 지포스 GTX460 두 시스템에서 30프레임 고/중옵 이상으로 무리없이 돌아간다. 심시티 돌리기엔 뭔가 부족한 것 같아서 오랫동안 함께한 라데온 5770을 처분하고 7850으로 갈아탔는데 그럴 필요까진 없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도시에 대악마나 외계생명체가 나타난 게임은 아니니 배경 설명은 필요없고, 런쳐에서 서버를 선택하고 간단한 튜토리얼 미션을 마친뒤 직접 게임을 만들어 시작하게 된다. 전작에 있던 시나리오 모드는 없고, 같은 서버에 있는 모든 도시의 수요-공급이 (개발 계획상으로는) 연동되어있어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내 도시에 들어갈 수 없다. 처음엔 아시아 서버가 없어 추가해달라는 요청에 EA코리아 직원이 별 말같잖은 소리를 하다 까이는 일도 있었는데, 차차 서버를 늘려 아시아 1, 2 서버가 차례로 들어섰다. 실제로 각 지역에 서버가 있는 건 아니고 서버 이름으로만 구분을 하는 것 같지만, 스타1하다 반응속도 느린 북미 서부서버에 치를 떤 경험이 있어서 이름도 보기 싫은 북미 대신 아시아 서버를 택했다.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일본 사람 옆 도시에 원전 멜트다운을 시키고 싶다거나, 중국 사람들에게 황사의 복수로 범죄자를 한도 끝도없이 잠입시키고 싶다거나 대만 사람들과 반도체 치킨게임을 하고 싶다면 아시아 서버에 가는 것이 편하다.

맵마다 광역, 도시의 수는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3,4개 도시가 모여 한 광역을 이루고 큰 맵의 경우는
 광역이 3,4개 정도 있다. 







 2. 장점

다양한 교통수단으로 목적지로 향하는 심들 

















 게임 특성상 자기가 꾸며놓은 도시가 쌩쌩 돌아가는 걸 보며 하악거리는게 낙이니 깔끔하고 유려한 그래픽과 단계별로 성장하는 디자인이 필요한데 디테일까지 신경써서 괜찮게 잘 만들어놓았다. 가령 도시의 소득, 교육수준에 따라 도시 곳곳이 실시간 재개발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앞으로도 건물 DLC 같은 거 엄청나게 팔아먹을테니 더 예쁜 건물들도 나올 듯 하다. 게임을 하며 듣게 되는 BGM도 괜찮다. EA가 숱한 명작들의 후속작을 말아먹는 와중에도 유일하게 까이지 않던 부분이 사운드였고 이번에도 만족스럽다. 심 시리즈가 대부분 그렇듯 이번 작도 직관적인 인터페이스와 명료한 아이콘 사용으로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지만 익숙해지는 것엔 많은 경험이 필요해 접근성과 몰입성도 뛰어나다. 교통-수도-전기의 운반 시스템을 따로 두지 않고 도로로 일체화해 손 가는 부분을 줄였고, 도시의 주민들은 요구사항은 물론 개선방향도 적극적으로 제시한다. 멀티플레이 요소가 들어가니만큼 도시간의 교류도 활발해졌다. 각종 특성화 시설을 통해 내가 원하는 도시의 방향도 잡을 수 있다. 예컨대 카지노 도시를 만드려면 범죄 예방에 중점을 둬야하고, 관광 도시를 만드려면 관광객들의 편의를 위해 교통에 많은 신경을 써야하는 식이다. 고레벨 공장들은 일반 화재 대신 위험물 화재가 발생해 소방 시스템을 정비해두어야 편하다. 이러한 과정은 나 도지산데 거기 이름이 뭐요 그런다고 제공하는 서비스들은 아니고, 시설 업그레이드 또는 연구 개발이 필요해 목표를 세우고 실행해가는 잔재미를 더해준다. 실시간으로 움직이는 거주민들의 시뮬레이션도 깨알같은 재미다. 심들은 출퇴근을 위해 자동차를 이용하지만, 대중교통 시스템이 갖춰져있으면 인근의 주차 겸용 정류장에 차를 놓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움직인다거나 하는 식이다.
 영어로 되어있다고 못할 게임은 아니지만 모든 텍스트를 한국어로 번역해준 것도 좋았던 요소다. 다만 각종 공지사항까지 즉각 한국어 페이지에 올려주진 않는다.

 3. 단점

 무엇보다 큰 문제는 서버 문제로 원래 계획된 게임을 구현할 수 없는 데에 있다.
버그로 도시 내 건물들이 증축단계에서 멈춰 있다.
기존 도시가 교통 버그로 인해 망한 자리에 다시 지었건만
또 이러니 지층을 파보면 슐리만의 트로이 발굴처럼 될듯
심시티 같은 인기 시리즈가 안팔릴 것 같아서 서버를 적게 마련하진 않았을테고 꿈만 큰 시스템 덕에 정확히 어떤 요소가 구현되고, 구현되지 않고 있는지도 모호하다. 가령 본래 설명으론 무역은 글로벌 시장이란 명목 아래  각종 자원의 시세가 실시간으로 변동,조정된다는데(1차 자원은 금방 고갈되는데 그 문제는 어찌할지는 차지하고서라도) 지금 서버로 가당키나 한 일인가 모르겠다. 결국 자원 시세를 고정시키고 무한수요, 무한공급의 배후 글로벌시장을 만들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버 문제는 여러군데서 현재진행형이다. 광역이 공유하는 시설인 대역사의 삽을 뜨려면 이틀내내 서버 승인이 안나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었고, 도시간 자원이나 인구 이동도 한참이나 걸리는데다 도시간 통근,통학 시스템은 이뤄지는지도 잘 모르겠다. 자잘한 AI 버그도 있는데 옆도시에 재활용 수거 차량을 보내면 높은 확률로 재활용센터의 가동이 중단된다거나, 스크린샷처럼 건물의 밀도가 늘어날 때 건설이 0%에서 멈춰 결국 도시가 용산 재개발지구처럼 된다거나(기존에 있던 도시를 모두 철거하고 새롭게 건설했을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길찾기 AI가 마비되어 도로 상태가 멈추면 각종 공공 차량이 움직이지 못해 선 자리에서 도시가 망하기도 한다. 맵 사이즈가  '도시'가 아닌 '구' 수준으로 작은 것도 아쉬운 요소다. 최종테크 건물들은 죄다 덩치도 커서 가뜩이나 좁은 부지가 미어터지는데  전작처럼 지형을 편집할 수도 없어서 언덕지형 도시는 개발이 어렵다.

 4. 총평

 문명 5 이후 오랫만에 국내에서도 바람을 불어일으킨 패키지 게임답게 여러 군데에 신경을 쓴 티도 나고 재미도 있다. 다만 그놈의 상시 온라인 모드가 플레이어, 회사 모두에게 큰 타격을 줬다. 보상 게임 준 것도 잘 받아먹었으니 크게 뭐라고 하고 싶지는 않은데,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이용자가 좀 빠진다고 하더라도 제작 의도대로 시스템이 잘 돌아갈지도 알 수 없다. 따라서 재밌지만 미완성된 게임을 하는 기분이고 EA야 장기적인 패치보단 DLC 발매에 더 관심있는 회사라 한켠에 찜찜함이 남는다. 기왕 DLC 팔거면 심콥터나 스트리트 오브 심시티같은 연동 게임도 나와주면 좋겠지만 계획이나 있을런지 모르겠다.

2013년 3월 21일 목요일

때늦은 WBC 리뷰 - 소잃고 외양간 까기 특집

 각론을 이야기하기 전에 총론을 짚고 넘어가자. 나는 모든 국가대표 운동선수들에게 경외심을 가지고 있고 그건 그들의 능력 때문은 아니다. 학창 시절엔 수련회 갈 때마다 왜 돈내고 개뻘짓하는지 이해를 못하고 커서는 예비군 가는 것도 짜증나는 나로서는, 꼭 돈되는 일이 아니더라도 국대라고 집떠나 강제정모를 벗삼는 그런 삶을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WBC 대표팀의 애국심이나 승리를 향한 열정엔 한 점 의심이 없다. 교복입은 배우가 나오는 야동을 본다고 전자발찌 찰 사람이 된다는 근거가 없듯, 억지로 국대 유니폼을 입는다고 애국심이 갑자기 생길리는 없고 애초에 사명의식이 있으니 참가했을 것이다. 결과가 조별예선 탈락이라고 의도를 폄하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들에 대한 존경과는 별도로 이번 WBC대표팀의 행보는 복기해봐야겠다. 코칭스태프 선정, 선수단 구성, 훈련 및 연습과정, 경기 운영 순서대로 짚어보자.

 1) 코칭스태프 선정

 거두절미하고 도대체 국대 전임 감독을 두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KBO는 경질된 감독들을 데려다 경기감독관으로 쓰는데, 단기전 감독 하나 못 맡길바에 뭐하러 월급 주며 쓰는지 모르겠다. 류중일 감독은 물론 한국시리즈 2연패, 아시아시리즈 우승을 일군 좋은 감독이고 대표팀에도 최선을 다했겠지만 수신제가 치국평천이라고 월급주는 삼성팀 돌보는게 우선이지 대표팀 감독을 맡길 당위성이 없다. 당장 재야에 김성근, 김인식, 조범현 감독처럼 여러모로 성과를 보여준 사람들이 있다. 하긴 백날 팬들이 말해도 바뀔 일은 없겠고 또 다음 호구를 기다리겠지. 코치들은 현역을 쓰더라도 감독은 소소한 대회들도 계속 있겠다 국대 전임 감독을 선임하는 게 합리적이다. 부수적이지만 중요한 전력분석팀은 우리나라에서 누가 제일 잘하는지 모두가 다 아니 지금 그대로 가면 될 것 같다.

2) 선수 선발

 투수진 : 류현진은 다저스 5선발 경쟁이 급하고 봉중근, 김광현은 아프다니 벌써 로스터가 허전하다. 설상가상 선발 한 축을 맡아줄 윤성환과 필승조 안지만도 나오지 못하게 되며 투수진에 비상 사태가 걸렸다. 역대 WBC 대표팀은 절대적으로 투수진에 의존해왔다. 총 19경기 동안 88득점, 49실점을 기록한 것만 보면 투타 모두 정상급으로 보이지만 한번 자세히 뜯어보자. 19전 중 3점 이상 실점한 경기의 승률은 1승 5패, 5점 이상 실점한 경기는 0승 5패. 3점 이상 실점한 6경기의 득실마진이 무려 -25점이다. 꽁꽁 틀어막을 땐 확실하게 막았으나 맞을 땐 따라가지 못했다. 1,2회 토너먼트 이전 라운드에서 더블 엘레미네이션 방식을 취한 것도 영향이 있겠지만 결과가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저기 구멍나니 투수진을 꾸리는 것도 어려웠다. 4강도 못간 기아에서 선발 3인방을 몽땅 뽑아가려고 했던 것도 한 팀의 입장에서 보면 기둥뿌리 뽑는 짓일지 몰라도 얼마나 다급했으면 저랬을까 이해가 된다. 악조건 속에서 최대한 있는 자원을 추려가는 것이 맞는데, 대표팀은 악수를 두었다. 물론 국대 감독이 될성부를 미필 떡잎 하나 알박기 하는 것은 인건비로 쳐주는 것이 상도례겠지만 김상수로 족했지 차우찬 선발은 너무 나갔다. 국대 유니폼은 옛날 오락실에서 10원짜리 동전에 감아 100원짜리로 만들던 절연테이프가 아니다. 무슨 수로 노말카드를 레어카드로 만드나? 선발 자체가 워낙 상식밖이라 감독이 직접 뽑았을 거라고 믿을 수가 없을 지경이다.

 야수진 : 역대 대표팀 최강 타선이라는 말도 공허하다. 2011년 일본에서 이승엽은 OPS 0.622, 김태균은 0.663의 처참한 성적을 거뒀다. 한국에 돌아와서 각각 0.886, 1.01로 아예 다른 사람이 된 건 저들이 성장해서 돌아왔기 때문이 아니다. 성공적으로 일본 첫해를 보낸 이대호는 다른 이야기지만 셋 다 1루/DH 슬롯인 이상 저 셋 중 두 명에 추신수가 가세하는 것보다 효율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다른 측면에서 보자. 뛰어난 젊은 선수들인 강정호, 최정이 김태균에 견줄만한 성적을 거뒀다쳐도, 상위 라운드에 진출하면 어디선가 만날 일본 대표팀과 비교한다면 나은 타선은 아니다. KBO 라이언 가코가 딱 2011년 NPB 이승엽, 김태균 수준 스탯을 찍었을 것이다. 그럼 가상의 상대팀을 떠올려보자. 베스트 9 중 가코보다 나아보이는 타자가 한 명(이대호 정도 레벨이라고 치자), 가코 정도 타자가 서너명, 나머지는 가코보다 못치는 팀이다. 이 팀과 우리나라 국대가 만났다면 최강의 타선을 만났다고 지레 겁먹기보단 야구보면서 무슨 치킨을 먹을까 고민할 가능성이 높다.

 3) 훈련 및 연습과정

 2월 11일부터 소집해 훈련을 했고, 각종 기사를 보면 강도가 부족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할만큼 했다고 생각한다. 컨디션이 늦게 올라온 것을 아쉬워할 순 있겠지만 그냥 해도 안된거다. 훈련이 부족해 잦은 수비 실책이 나왔다는 분석도 있고 그만큼 주루 플레이도 아쉬웠지만 최선을 다했으면 됐다. 병역혜택이 없었기 때문에 설렁설렁 했을 것 같지는 않다. 대표팀의 정신적 리더였을 이승엽만 봐도 이악물고 했는데. 김상수가 뻘소리했다가 어그로를 잔뜩 끌긴 했지만 솔직히 한달만에 집에 가면 아쉬움을 떠나 기분은 좋을 법도 하다.

 4) 경기 운영

 복기할 순간은 단 하나, 네덜란드전 그 급박한 상황에서 왜 차우찬을 냈는지 모르겠다. 대회 규정을 몰랐는지 몰라도 3:0으로 지고있는 무사 1,2루. 규정상 다음 리운드 진출과 실점이 직결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패전처리를 낸다? 류중일 감독은 규정을 몰라서 그랬던 건 아니라고 부인했고, 당시 낼 수 있는 LOOGY 카드 중 장원삼, 박희수는 아프고 장원준은 선발카드라 그랬다는 분석도 있지만,박희수가 나머지 두경기에 다 나온 마당에 옳은 해석이 될 수가 없다. 결과적으로 2승 1패를 하고도 귀국행 비행기를 탄 것은 저 한번의 투수교체가 너무 뼈아팠다. 애초에 좋은 투수들을 더 뽑지 못한 게 아쉽지만, 그나마 있는 자원을 효율적으로 쓰지도 못한 셈이다.

 5) 총평

 단기전은 모른다는게 여실히 증명된 대회였다. 올림픽과 다른 대회규정의 특성상 나올지 안나올지도 모르는 5선발급 투수가 얹혀가는 것보다 3인 로테이션을 돌리더라도 확실한 불펜 투수가 가는 게 중요했는데 선발 과정에서나, 운영에서나 그렇지 못했던 게 아쉽다. 야수진에서도 1루/DH 자원에 3명이 들어가고 유격수만 세명을 뽑아놓으니 말로는 내야유틸로 쓸 수 있다 해놓고 정작 써먹기가 힘든 모습이었는데 어지간하면 2,3루 백업요원도 고려해서 뽑았으면 한다. 포지션별로 제일 잘하는 선수 한 명에 베테랑 혹은 스페셜리스트 한 명 꼴로 뽑아도 충분하거늘 꼭 그렇게 했어야 하는지가 아쉽다. 국대에서 못쓸 자원은 미필/아마추어 시드 고려해야하는 대회 아니면 안봤으면 한다. 그나마 대만전에서 유종의 미를 거둔 걸로 정신승리라도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