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8일 화요일

시즌3 롤드컵 관전평

 1. LCS 효과?

 올해부터 도입된 북미-유럽의 LCS, 즉 장기리그 체제가 팀들의 기량에 얼마만큼 영향을 끼쳤는지 계량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다만 시즌2 롤드컵에서 북미팀들은 1승 7패, 유럽팀은 8승 9패를 기록했으나 시즌3에선 북미 6승 13패, 유럽 20승 15패(다른 방식의 플레이오프를 통해 올라온 게이밍기어는 유럽팀으로 분류하지 않았음)로 나름 의미가 있는 성적을 거뒀다. 사족으로 양대륙간의 상대 전적은 시즌 2 1승 1패 동률, 시즌3 북미 3승 6패로 역시 유럽이 한발자국 앞서 있는 모습이긴 하다.

 2. 개막 전 예상과 결과

 개막 전엔 한국과 중국 팀들이 우승 후보로 꼽혔고, 거기에 대항마 격으로 가마니아 베어스가 TPA의 재림이 된다면 모른다 정도의 분위기였다. 결론만 말해 우승은 SKT1, 4강에 한국 2팀, 중국 1팀, 유럽 1팀이 올라왔으니 크게 틀린 예상은 아니었다. 8강으로 놓고 봐도 한국 2팀, 중국 2팀, 유럽 2팀, 북미 1팀, 대만 1팀인데 한국이 3팀이 아니라는 거 빼곤 크게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유럽과 북미를 같은 쩌리로 보던 게 틀렸다면 그건 맞는 이야기지만..

 3. 양이메타에 대한 위정척사메타의 우위

 롤드컵은 메타와 메타의 충돌이라는 클템의 말대로 한국에서 잘 안 쓰이던 챔프나 메타가 나왔고 재미를 보기도 했다. 아트록스 정글, 텔포 카사딘, C9의 부자 정글러 메타 등 새 문물을 두고 한국팀이 선전/고전할 때마다 고인에서부터 선진문물까지 재평가가 반복되었다. 그러나 강한 라인전 - 정글러를 동반한 빠른 타워 철거 - 시야 확보 - 스노우볼링 극대화로 이어지는 한국의 위정척사 메타 앞에서 초반에 승부를 거는 아트록스나 라인전이 약한 텔포 갓사딘은 부담스러운 카드였다.    

 4. 생각보다도 더 강했던 SKT T1

 어느 라인 하나도 약점이 없었고, 로얄과의 결승전에서 동전 던지기에서 이기고도 퍼플팀을 선택할 정도로 챔프폭도 넓었다. 모든 라인이 다 잘 풀리는데, 서포터 푸만두의 슈퍼 세이브까지 계속 나오니 한두번 무리시에이팅이 나오는 것 같아도 15승 3패라는 압도적인 결과가 나왔다. 임팩트가 버티는 탑라인이 T1에서 그나마 약한 라인이라는 얘기도 뭐 매덕스-글래빈-스몰츠 중에 그나마 스몰츠가 제일 해볼만하다는 말이랑 똑같다. 사실 결승전 용산가서 봤는데 2세트에서 로얄 카사딘이 쿼드라킬먹을 때 피자먹다 체할뻔했음 헉헉

 5. 과거의 영광에 취한 자는 죽은 자다 - 최연성 前 프로게이머

 삼성 갤럭시 오존이 조별 예선에서 광탈하고, 시즌1 퇴물쯤으로 여겨지던 프나틱이 4강 간 것 정도가 이변이라면 이변일텐데 오존이 떨어진 이유야 당연히 '못했기 때문에'지만, 사족을 붙이자면 인터뷰에서부터 보이던 자만이 화를 불렀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조별예선 동안 오존이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준 경기는 갬빗과의 2차전 정도에 불과했고, 챔프 폭이 좁은 것을 저격당한 다데는 내내 팀의 구멍이었다. 그렇다면 오존의 자랑인 봇라인이 게임을 이끌어 갔었어야 했는데, 대회 직전 큰 패치로 메타가 변한 와중에 임프가 삼위일체 기반 원딜을 하지 못한다는 것도 컸고 마타는 평소처럼 라인전에서 킬을 떠먹여주지 못했다. 게다가 미드가 연신 털리니 맵장악에도 어려움을 겪고 역으로 끊기기 일쑤였다. 요컨대 끝나고보니 뭐 믿고 그렇게 자신감 넘쳤는지 알 수가 없다. 반면 서킷 포인트 제도의 맹점으로 진출했다던 혹평을 듣던 나진 소드는 8강에서 갬빗 게이밍을 꺾고, T1에게 2패를 안긴 유일한 팀으로 남았다.

 6. 좋았던 점

 클라이언트 오류나 버그로 인한 경기 중단이 시즌2처럼 잦지 않았던 걸 가장 먼저 꼽고 싶다. 조별예선 후에는 경기를 하는 팀의 국적에 따라 어느 정도 해당국 시청자들을 감안해-특히 아시아권- 경기 시작 시간을 조정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는데, 이건 내가 사전 공지된 일정들을 잘못 확인한 것일수도 있으니.. 조별예선에선 풀리그 방식으로 경기수와 일정을 확대한 것도 볼거리가 많아지니 좋은 일이었다. 살짝 루즈한 감도 있었지만 어차피 본격적인 재미야 토너먼트 들어가서 나오는 거 아닌가.

 7. 보완할 점

 가령 가마니아 베어스 같은 팀은 팀은 8강 직행권을 받아 조별예선에 출전하지 않았으나 2경기만 치르고 집에 가야했다. 3경기하고 집으로 돌아간 C9도 마찬가지다. 각 지역별 최다 서킷 포인트 획득팀에게 주어지는 혜택이라지만 8강 직행권은 과도하게 크다. 월드컵의 '시드' 개념처럼 최다 서킷 포인트 획득팀들끼리 조별 예선에서 만나지 않는 정도로 배정하는 정도가 적당하다고 본다.

 풀리그 조별예선 -> 토너먼트 본선으로 계속 갈거라면 장기적으로는 16강 4개조 방식으로 대회를 확대하는게 더 나아보인다. 게임의 질을 위해선 더블 엘리미네이션 방식이 더 낫다고 생각하지만 후술할 블루/퍼플 진영 문제가 마음에 걸린다.

 더 큰 문제는 동일한 조건에서 블루팀이 퍼플팀보다 항상 밴픽에서 자유롭다는데 있다. 블루팀이 첫번째 픽을 하게되니, 어느 패치에서나 가장 핫한 OP챔프가 있기 마련이고 퍼플팀이 그 챔프를 밴하지 않으면 블루팀이 가져가는 건 기정사실이다. 따라서 퍼플팀은 밴카드에서 적어도 한 장 이상 손해를 보고 시작하는 셈이고 밴카드의 소모는 바로 저격밴 불가로 이어진다. 그런 중요한 변수를 만드는 블루/퍼플팀 배정을 동전 던지기로 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승패 동률 상황에서 맞이하는 마지막 세트는 서로 블루/퍼플팀을 번갈아가면서 했지만 승부를 가리지 못해서 일어나는 것이니만큼 블라인드픽으로 하는 것이 공정하다.

 TSM 팬보이들의 극성을 빼면 딱히 장건웅이나 레지날드같은 눈맵귀맵 치터놈들도 없었지만 어지간하면 외부와 차단되는 부스도 만드는 게 좋을 것 같다. 롤드컵이나 올스타전 말고는 쓸데가 없어서 그런진 몰라도 LCS에서 쓰면 되지 뭐.

 마지막으로 어지간하면 3,4위전도 했으면 좋겠다. 사실 어느 토너먼트나 결승전보다 4강이랑 3,4위전이 더 재밌는 게 다반사아닌가?

 8. 총평

 비웃음의 대상이던 TSM조차도 미드 뺀 나머지 라인은 경쟁력 있을 정도였고, 사실상 초청팀인 게이밍기어나 미네스키 정도를 빼면 전반적인 수준 향상이 돋보였던 대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