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23일 토요일

신이라 불릴뻔한 사나이

 PED(경기력 향상 약물) 스캔들에 피해자가 있다면 로저 클레멘스, 앤디 페팃, 알렉스 로드리게스를 모두 좋아했던 양키스 팬인 나 역시 피해자일 것이다. 영화 옹박 홍보문구 '이소룡은 죽었다. 성룡은 늙었다. 이연걸은 약하다'를 처음 봤을 때처럼 충격적이었다. 저 트리오는 은퇴하고, 늙었고, 약한 것도 아니라 사이좋게 약을 했고, 덕분에 멘붕도 3배로 왔다. 뭐 내가 약을 빨라고 시킨 것도 아니고 로켓,페팃은 어차피 말년이니 은퇴하고 나서 밝혀지지 않아 차라리 다행이라 정신승리하긴 했지만 2007년 시즌 후 10년 최대 300M 연장 계약을 맺은 에이로드는 도대체 어찌해야 되는가 눈앞이 캄캄했다. 양키스가 계약 당시 32세의 3루수에게 저렇게 큰 계약을 선물한 이유를 생각해보자. 그가 42세까지 최고의 기량을 뽐낼 거라고 확신했다기보단, 배리 본즈의 얼룩진 최다 홈런 기록을 핀스트라이프 유니폼을 입고 깰 백기사를 위한 선물이라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행크 스타인브레너 양키스 부사장이 '우리는 양키스를 정상의 자리에 올려놓고 우주의 질서를 되찾을 것이다' 선언했을 때 내 머릿속엔 '포스의 균형을 되찾아줄 젊은 스카이워커'가 떠올랐다. 당연히 양키스 유니폼을 입고 2번의 MVP를 딴 에이로드가 그 주인공이었다. 친구 민케노비치의 글러브를 손으로 친 기행은 그저 경기장 안에서의 승부욕이 과도하게 표출됐을 뿐이고, 가을의 빈타야 곧 스탯 회귀의 법칙에 따라 맹타로 바뀔 거라고 생각했다. PED 스캔들 이후에도 내 상상의 반은 맞았다고 생각한다.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젊은 스카이워커인 것은 맞았다. 루크 스카이워커가 아닌 아나킨 스카이워커였기에 문제다.



  이제 부질없어진 마일스톤을 치우고 아나킨을 항상 미심쩍어했던 요다의 시선으로 돌이켜보면, 에이로드에겐 뭔가 어두운 구석이 있었다. 머니볼에서 스캇 해티버그가 비디오 분석을 하다 타석에 들어선 에이로드가 포수의 위치를 힐끔 곁눈질하는 걸 발견하는 장면이라거나, 에스콰이어 인터뷰에서 괜히 지터를 디스한다거나, 스포츠맨쉽보다는 게임맨쉽에 가까운 많은 면들이 그랬다. 사족이지만 500홈런, 600홈런을 칠 때 겪었던 극심한 아홉수를 보고 난 미국에도 당연히 아홉수란 말이 있을 줄 알았는데 없다기에 놀랐던 적도 있다. 이렇게 기록을 의식하고 항상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원하는 성격이 그 자신을 끊임없이 담금질해 최고의 선수로 만들어줬을지는 모르나 (더 합리적으로는 약을 빨아 그렇게 됐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반대급부로 여린 멘탈도 가져다 주었다. 프레셔를 즐기는 능력을 슈퍼스타의 자질이라고 본다면 에이로드는 분명 그러한 요소가 결여되어 있었다. 아마도 프로이트를 좋아하는 친구들은 에이로드를 분석하며 '어릴 때 부모의 관심을 못받았을 것이다' 예상할 것 같은데, 나는 정신분석학과는 거리가 멀고 그렇다고 성적표 행동발달란을 볼 방도도 없으니 저 가설을 증명할 수야 없다.

 에이로드는 2009년 첫번째 PED 스캔들 때, 텍사스 레인저스 시절 고액연봉자로서 부담을 느꼈고 그때만 잠깐 스테로이드를 복용했다 주장했고, 2008년 미첼 리포트에 이름이 올라있지 않은 것은 맞지만 약쟁이의 말을 사람들은 쉽게 믿지 않았다. 당장 저 스캔들을 처음 폭로한 SI 셀레나 로버츠는 책에서 그가 고등학교 때부터 스테로이드를 복용했다는 내용을 싣었다. 그 기자가 대형 오보를 내고도 별다른 사과를 하지 않은 전력이 없었더라면 누구나 에이로드가 받았던 전미 최우수 고교 야구선수상도 잘못된 수상이였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안이 엄청났던만큼, 에이로드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양키스가 보인 반응은 차가웠다. "앞으로 로드리게스는 경기만 뛰면 된다. 노동자(Worker)일 뿐이다. 일 하고 난 후에 급료를 받고 끝나면 사라지는 존재다." 실제로 이후 양키스는 에이로드가 위기에 닥칠 때 그를 보호하지는 않았다. 

 파문이 어떻든간, 양키스는 에이로드와의 재계약을 주도한 행크 부사장을 일선에서 물러나게 할 순 있었지만 여전히 2016년까지의 계약은 유효했다. 약빨도 떨어지고 자연스레 노화도 오니 금강불괴같던 에이로드도 슬슬 한군데씩 아프기 시작했다. 양키스 이적후 홀수해에 잘하고 짝수해에 '비교적' 못하던 징크스도 깨졌다. 2009년엔 12년 연속 30홈런 100타점 기록(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차치하고서라도)도 깨지기 일보 직전 마지막 경기에서 극적으로 2홈런 7타점을 기록하며 간신히 이어나갈 수 있었다. ALDS, ALCS에서 시리즈 MVP급 활약을 펼치며 양키스의 27번째 WS 우승에 기여했지만 ALCS MVP는 동료 사바시아의 차지였다. 물론 사바시아도 3일 로테이션을 강행하며 엄청난 활약을 펼쳤지만 PED 스캔들이 아니었더라면, 오랜 가을삽질을 중단한 에이로드가 MVP를 받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듬해에도 어떻게 13년 연속 30홈런 100타점 기록은 이어나갔지만 그 후는 없었다. NBA 피닉스 선즈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 부활하겠다며 설레발을 쳤으나 두 시즌 동안 100경기 넘게 결장했다.

                                                 홈런왕에서 페북왕으로      

 그렇다면 떠넘길 팀은 있을까. 인센티브는 빼도 잔여 연봉만 1억불이 넘게 남았다. 쇠퇴한 경기력을 생각하면 연봉보조 퍼줘가며 넘기지 않는 한 받을 팀도 없거니와 무엇보다 저 친구한테 트레이드 거부권이 있으니 처분도 어렵다. 그러나 양키스의 대응은 내 생각 밖이었다. 에이로드를 핵심전력으로라도 봤으면 보호하는 움직임을 취했을텐데, 캐시맨 단장이 트레이드 논의를 한 적도 없다고 부인하긴 했으나 이미 뉴욕발 언론들이 덤핑처리 방법이나 은퇴시킬 방법을 연일 보도하고 있는 판에 소스 없이는 나가기 힘든 보도가 아닌가 싶다. 팀 페이롤을 20M 정도 줄일 구상을 가지고 있는 양키스로서도 에이로드가 부상으로 선수생활 못하게 되어서 은퇴한다는 뻥카를 치면, 페이롤은 페이롤대로 줄이고 보험금은 보험금대로 받아 지불할 수 있긴 하다. 양키스 팬 입장에서 은퇴를 마다할 이유는 없겠지만 그런 식의 꼼수는 양자간 합의가 됐을 때나 써먹는거니 은퇴 종용에 정떼기 수순에 가깝다.

 2013년 시즌을 앞두고 에이로드는 또 수술을 받았다. 전반기 복귀는 불가능한 것은 물론 시즌아웃 확률도 높아보인다. 양키스도 발빠르게 3루 대체 자원으로 유킬리스를 데려왔다. 단년계약이지만 12M이 추가지출 되었으니 가뜩이나 먹튀소리 듣기 딱 좋은 판에, 두번째 PED 스캔들이 터졌다. 다른 선수들의 이름도 거론되고 있지만 마이애미 약팔이 앤소니 보시에게 에이로드가 직접 성장 호르몬을 주사받았다는 주장이 핵심인데, 에이로드 측이 즉각 부인하긴 했지만 약팔이가 직접 작성한 기록이 남아있고, 같이 훈련을 하던 멜키도 명단에 있다니 의심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 성장 호르몬이라니 부상 회복을 위해 썼을 개연성도 충분하다. 아직 조사가 끝난 것은 아니지만 사실로 드러난다면 첫번째 스캔들 당시 했던 말도 믿기가 어렵다. 구단이나 지터가 그를 두둔하지 않는 것도 자업자득이긴 하다.

 이제 에이로드가 설령 763홈런을 친다 해도 그는 건강한 미키 맨틀이 아닌 제2의 배리 본즈라 불리는 것이 마땅하다. PED는 아무리 좋게 포장해도 '한때의 실수'가 아닌 '부정한 행위'다. 이미 명예의 전당에 그러한 치터가 이미 들어가있다고 믿고 있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덜미 잡힌 치터는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에이로드가 남은 거액을 포기하고 은퇴하리라 보기는 어렵다. 다만 그가 양키스를 위해 할 수 가장 좋은 일은 연신 삼진을 당하고 덕아웃에 들어와 박수를 치는 게 아니라 지터의 3500안타를 축하하는 페이스북 글에 좋아요를 눌러주는 일같다. 그래도 작년까지는 절치부심해서 30홈런은 쳐주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그걸 바라기도 힘들다. 

2013년 2월 7일 목요일

기억에 남는 견제구들

 팬의 관심을 먹고 자라는 프로스포츠는 필연적으로 미디어와 친해질 수 밖에 없다. 레너드 코페트가 '야구란 무엇인가'에 괜히 미디어에 대한 지면을 할애한 것은 아니다. 리그 전체의 흥망도 미디어가 좌우한다. 데이비드 스턴 NBA 커미셔너같은 사람도 미디어와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긴다(반대로 미디어와의 관계를 중시해 데이비드 스턴이 NBA 커미셔너가 됐을수도 있다). 전국방송으로 중계되는 샌안토니오가 원정 6연전 마지막 경기였던 마이애미전에서 주전들을 아예 경기장에 데려오지 않았다고 25만달러 벌금을 먹였을 정도다. 자극적인 소재를 좋아하는 게 미디어의 본질이니만큼, 팀과 팀이건 개인과 개인이건 혹은 팀과 개인이든 갈등 구조도 매우 반긴다. 사실 중요한 순간의 신경전은 팬 입장에서도 재밌다. 서로 편을 가르는 원초적인 재미가 있기 때문인 것 같은데 주먹다짐이나 욕설이 나오면 보기 불편하기도 하고, 가끔 무톰보같이 눈치없게 건드려서는 안될 사람을 건드리다 웰컴 투 NBA 한마디와 함께 후세에 길이 남는 경우도 있지만 그 정도가 아니라 재치있는 입담을 주고 받는 정도면 즐겁다. 최근 기억에 남는 '견제구'들을 몇 개 모아봤다.

 1. 추어탕이나 비빔밥이나 

 프로농구 08-09시즌 플레이오프 4강에서 모비스를 꺾고 챔피언결정전에 올라간 삼성 안준호 감독이 포문을 열었다. '비빔밥(전주 KCC)이든 추어탕(원주 동부)이든 (누가 올라오건) 삼성 선수들은 식욕이 왕성하다'며 자신감을 과시했다. 역시 대진표 건너편에서 4강 대결 중이던 동부 전창진 감독과 KCC 허재 감독은 각각  '요즘은 치악산 한우가 더 유명하다' '전주는 콩나물국밥이 더 맛있다'고 대응했다. 비록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KCC에 석패해 준우승에 머무른 안준호 감독이었지만, 추어탕-비빔밥의 여운은 오랫동안 남았고 안 감독이 꾸준하게 밀던 사자성어 시리즈는 금방 잊혀졌다. 솔직히 억지 사자성어 '무한도전'보다는 '니갱망'이나 '승리했을때 영웅이 나타나'가 더 와닿지 않는가?

 2. 이 나라는 Yankee Country지 Red Sox Nation이 아니다

 쿠바 출신 호세 콘트라레스가 보스턴의 더 나은 오퍼를 뒤로 한채 양키스 계약서에 사인했다. 다이아몬드를 사주고도 심순애를 뺏긴 김중배에 빙의된 보스턴 래리 루키노 사장은 뜬금없이 양키스를 악의 제국이라 비난했고 이것이 이후 감정싸움의 도화선이 되었다. 로켓-페팃-부머를 모두 떠나보낸후 투수력에서의 우위를 잃어가고 뻥타선으로 연명하던 양키스는 2004 ALCS 악몽같은 리버스 스윕을 시작으로 몇년을 헤매는 중이었다. 조지 스타인브레너 양키스 구단주의 큰아들 행크 스타인브레너 부사장은 보스턴의 WS우승으로 2007 시즌이 끝나자 뉴욕타임즈의 인터뷰에서 거친 발언을 했다. "이 나라를 돌아다니다보면 양키스 모자랑 재킷 입은 사람들은 많은데 보스턴 물품들은 볼수가 없다. 레드삭스 네이션(보스턴의 팬클럽 이름)그딴 개소리는 보스턴 구단과 ESPN이 지어낸 소리고 미국은 양키 컨트리지 레드삭스 네이션이 아니다. 우리는 양키스를 정상의 자리에 올려놓고 우주의 질서를 되찾을 것이다." 굉장히 격한 발언이었는데 보스턴의 존 헨리 구단주는 행크에게 레드삭스 네이션 회원권을 보내며 관심에 감사하다고 영리하게 응수했다. 조지 영감이 나이먹고 유해진 걸 슬퍼하던 양키스 팬들은 역시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며 좋아했고 보스턴 팬들도 구단주가 똑똑하다며 즐거워하며 윈-윈으로 끝난 해프닝이었다.

 3. 모이어처럼 던져봐라

 사실 행크 스타인브레너의 엄한 소리는 보스턴 디스뿐만이 아니었다. 젊은 시절 아버지를 그대로 빼닮은 행크는 공신들에게도 가혹한 면이 있었다. 4번이나 팀의 우승을 이끈 조 토레 감독와의 결별이 시작이었다. 토레와 양키스가 헤어질 때가 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영구결번 당연한 공신인거 그냥 좋게 구단 임원 자리를 제안하든지 그게 싫으면 굿 럭 한번 해주고 헤어지면 될 것을 굳이 인센티브를 건 오퍼를 제시해 노감독의 빈정을 상하게 했다. 마치 삥소위가 보급관한테 '자네가 보급관인가' 하는듯한 모습이었는데 이런 면은 베테랑 선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2007년 극히 부진했던 마이크 무시나가 2008년 시즌 초반에도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자 '무시나는 제이미 모이어의 투구 스타일을 배울 필요가 있다'고 또 뻘소리를 작렬한 것이었다. 의도가 어떻던간에 구단 부사장이 18년차 무시나에게 할 소리는 아니였고 무시나는 '나에겐 왼손투수용 글러브(모이어는 좌완투수였다)가 없다'고 간단히 응수한 후 생애 첫 20승을 찍고 은퇴했다. 이 해 무시나는 꾸준히 떨어지던 직구 구속을 보완하기 위해 슬라이더 비중을 늘리고 오프스피드 피칭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니 행크의 무례함도 일리는 있었던 셈이다. 다행히 조지 스타인브레너 구단주는 후계자로 자기를 닮은 행크 대신 아우구스투스 격인 차남 할을 선택했다. 할이 1년만 더 일찍 간택되었으면 에이로드의 재계약 기간이 조금 줄었을지도 몰랐을텐데 아쉽다.

 4. 이치로의 30년 발언

 2006년 WBC에서 이치로가 출사표를 던지며 '싸운 상대가 30년은 일본을 넘볼 수 없게 이기고 싶다' 말한 것이 도화선이 되었다. 자기 페이스북에 올려도 좋아요 눌러주는 대신 열도의 흔한 기개.jpg로 돌아다닐판에 일본 언론부터가 한국, 대만을 말하는 것이라고 주석을 달아줬고 한국 기자들도 신나게 달라붙어 구도를 만들어주니 살이 붙고 하며 가히 이치로가 이토 히로부미-고이즈미에 이어 망언 삼대장에 등극하는 순간이었다. 이 발언에 대해 김병현은 펜웨이파크에서 공개했던 가운데 손가락을 다시 꺼내는 대신 '그냥 만화를 많이 봐서 그런 것 같다'고 촌평했다. 이후 이치로는 야구에서 가장 오래된 방식의 보복을 당했음은 물론이다.

 5. 마이크 스탠튼과 브라이스 하퍼의 친목질

 "아오 빡쳐" 마이애미의 차세대 거포 마이크 스탠튼이 단단히 화가 난 상태로 트윗을 했다. MLB의 창원시장격인 로리아 마이애미 구단주가 간만에 지갑을 열어 호세 레이예스와 마크 벌리를 질러놓고, 생각처럼 성적이 안나오자 1년만에 둘을 다시 트레이드 시킨 것이다. 방망이 깎는 노인도 아니고 백날 천날 기약없이 리빌딩을 가장한 사치세 분배만 받고 있으니 선수 입장에서 욱할 법도 하다. 이 때 워싱턴 내셔널즈(Nats라고도 부른다)의 슈퍼루키 브라이스 하퍼가 멘션을 날렸다. "이리와서 Nats에서 함께 뛰는 건 어때?" Stanton의 대꾸가 걸작이었다. "내 이름을 거꾸로 한게 Not Nats가 아니었으면 그랬을걸 ㅇㅇ"

 6. 클템과 막눈의 초식육식 논쟁

 올림푸스 롤챔스 윈터시즌 파이널에서 아주부 프로스트와 나진 소드가 격돌했다. 경기전 인터뷰에서 진행자가 아주부의 정글러 클라우드템플러에게 '나진 정글러 와치가 육식 동물같은 플레이를 보여주는데 반해 클템은 초식성 플레이를 선호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 묻자 클템은 센스있게 '와치는 육식동물로 치면 하이에나 급이지만 나는 초식 동물의 제왕 코끼리다' 답변했다. 하지만 마이크를 이어 받은 막눈이 '코끼리는 물론 화가 나면 무섭다. 하지만 하이에나는 똥을 싸도 조금만 싸지만 코끼리는 똥을 와장창창 싼다' 쏴붙이자 순간 장내가 뒤집어졌다. 이 경기에서 정말 클템은 와장창창 싸며 3:0 패배의 주역이 되고 말았다.

 견제구는 아니고 빈볼 : 윤호영은 동부에 있어서 윤호영

 KBL 11-12 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 정규시즌 승률 8할의 동부와 창단 첫우승을 노리는 KGC가 만났다. 시리즈가 시작되기 전 매치업 상대가 될 윤호영과 양희종을 인터뷰한 기사에서 양희종의 발언이 문제가 됐다. "호영이와는 대학 때 늘 매치 업이 됐다. 그 때는 호영이가 많이 넣어야 한 두골 정도였는데….(웃음)" 이런 대목이었다. 김태술과 양희종이 어릴 때부터 주목받으며 연대 전성시대를 이끌어간 주역인 것은 맞지만 윤호영도 중앙대 52연승 주전 멤버다보니 자연스레 두 팀의 감정이 고조됐고 1차전 동부 승리 후엔 윤호영이 "양희종이 나를 막으면 감사하다." 2차전 KGC 승리 후엔 양희종이 또 "광재가 자신 있다고 하던데, 오늘 광재 때문에 이겼습니다. 아까 레이업 상황에서 공중으로 던진 볼, 옆으로 날아가는 포물선이 너무 아름다웠어요. 의리를 배신하지 않은 광재한테 잘 해줬다고 말 해주고 싶습니다. 이말 꼭 써주세요." 겐세이를 던진데 이어 "윤호영이 동부에 있어서 윤호영이라고 생각한다. 동부에 특화된 선수다" 등 던지기 시작했다. 이쯤 되면 자존심 대결이라 두 선수 모두 부상투혼을 발휘하며 경기에 임했고, KGC가 우승을 차지하자 정규시즌 MVP를 받고도 분이 풀리지 않았던 윤호영은 취중 인터뷰를 했다가 또 둘 모두 가루가 되게 까이기도 했다. 프로 선수들의 신경전이니만큼 말잘하고 이기면 그만이긴 해도, 경기장에서 플레이하는 거 유심히 보면 생각이 달라지는 건 어쩔 수 없다. 

2013년 2월 1일 금요일

하마평과 결과의 괴리

 위나라의 군주 문후가 재상을 맡길 적임자 후보 둘 중 누가 더 나을지 신하 이극에게 물었다. 이극은 특정한 인물을 추천하는 대신 다음 다섯가지 기준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며 한 발 물러섰다. 1) 불우했을 때 어떤 사람과 친하게 지냈는가 2) 부유했을 때 누구에게 나누어 주었는가 3) 높은 지위에 있을 때 어떤 사람을 등용했는가 4) 궁지에 몰렸을 때 그른 행동을 하였는가 5) 가난했을 때 욕심껏 재물을 탐하지 않았는가

 얼핏 보면 허울좋은 도덕성과 여론만 강조한 것 같고 흔한 용인술의 기준인 능력위주 선발, 적재적소 배치 그런 이야기가 없으니 심심하게 보인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면 재상 후보들에 대한 의견을 물은 것이고 공채 시험을 봐서 부처를 정해준다는게 아니니 적재적소 배치란 건 의미가 없고, 그런 후보 최후의 2인에 오를 정도면 능력도 내외적으로 검증이 끝났을 법하다. 그렇다면 당연히 여론이 중요하다.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은 없을지 몰라도 잘못의 경중은 다르니 기왕이면 덜까이는 사람을 뽑으면 되지 굳이 더 까이는 사람을 쓸 이유가 없다. 최고 인사권자가 미리 여론을 짐작할 수 있게 간을 보는 방법 중 하나로 후보자 명단을 살짝 흘린 뒤 하마평을 들어보는 것이 있다.

 근래 프로야구에서도 '마지막 한 자리'를 두고 하마평이 뜨거웠던 적이 몇 번 있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는 임태훈과 윤석민의 경쟁(?)이 여러 사람들의 키보드를 뜨겁게 달궜고 2009년 WBC에서는 김성근 감독이 감독직을 고사하며 감독을 누가 맡을지를 놓고 치열한 눈치 싸움이 있었다. 전자는 김경문 감독이 욕심을 부렸으나 후에 용단을 잘 내렸고, 후자는 KBO가 참 생각없이 일을 했다 라고 평가내릴 수 있다. (이 틈에 국가대표 전임감독제 얘기를 잠깐 짚고 넘어가자. 어차피 전직 감독들 사실상 전관예우 성격으로 경기운영위원으로 쓰면서 그 중에 길어야 1년에 두달쯤 하는 국대 감독감 하나 없으면 뭐하러 돈주면서 쓰나 모르겠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위 두 사건과는 다르게 야구팬들 심심해있을때 떡밥 하나 제대로 떨어지면 어떻게 불타오르나 보여준 사건이 있었다. 2011년 시즌 후 LG트윈스 감독 하마평이었다.

 2002년 김성근 감독이 팀을 한국시리즈 준우승까지 올려놓고서 해임된데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지금은 어디 구청장을 하고 있는 모 사장은 '김 감독 야구스타일이 LG 신바람야구와 달라 정규시즌 기간에 해임을 고려하기도 했'으나 잘 참고 한국시리즈는 보고 김 감독을 해임했다. 요새는 그때 모든 LG팬들이 궐기했다 그런 식으로 여겨지는데 사실 내 기억에 꼭 모두가 해임을 반대하진 않았다. 아무튼 그 해 월드컵 8강전에서 승부차기 성공시키고 머리 찰랑이며 뒤로 달려가던 홍명보가 올림픽 대표팀 감독이 되어 메달을 따오는 동안, LG는 연속시즌 가을야구 불참 기록을 매년 경신하고 있었다. 이러던 와중에 박종훈 감독의 경질은 확실했고 후임 감독 하마평에 오른 사람은 대략 김성근, 선동열 투탑에 대항마로 양상문, 내부 인사로 김기태 수석코치 정도였다. 뭐 다 각자의 장단점이 있겠지만 절대다수의 LG팬들은 김성근 감독을 원했고 그 염원의 힘에 온갖 카더라가 난무하는 대팬픽시대가 도래했다. 시즌 최종전을 앞두고 박종훈 감독이 사퇴하던 그날 밤은 바야흐로 Y2K 버그를 앞에 둔 1999년 12월 31일 이후 가장 설레발 가득한 날이었다. 그러나 다음날 LG 트윈스 감독직에 오른 사람은 김기태 코치였다.

 지금와서 돌이켜보면 김성근 감독의 LG 복귀는 프론트 입장에선 엄청난 결단을 내려야 가능한 일이었고, 선동열은 라이벌(?) 구단인 삼성에서 경질된 사람이니 무리였다. 롯데에서 해임되며 한번 들이받은 양상문도 부담스럽고, 애초에 박종훈 전임 감독의 내부 대항마로 영입한 김기태 수석코치가 가장 현실성있는 예상이었다. 물론 현실성과 기대치는 전혀 비례하지 않았고 팬들이 폭발하는 건 어쩔 수 없었고 LG트윈스 홈페이지 자유게시판 담당자는 강제 휴가를 가야했다. 결국 김기태 감독은 김ㄱ1태가 아닌 김7ㅣ태 감독으로 머물렀지만 전 감독, 전전 감독, 전전전 감독, 전전전전 감독보다 특별히 못하지는 않았으니 유별난 일도 아니다. 차라리 팬으로 먹고 사는 프로야구단이 왜 팬의 기대와 유리된 행동을 하는지 분석해보는게 더 의미있겠다.

 첫번째, 김기태 감독의 능력을 김성근 감독보다 높이 평가했을까? 이건 말할 필요도 없다.
 두번째, 김성근 사단의 운영비가 부담스러웠을까? 김재박 감독 시절 이미 정진호-김용달-양상문 코치가 각각 전임 감독 이순철과 비슷한 수준의 연봉을 받았는데 오래전부터 야구단에 투자 많이 해온 LG가 딱히 코칭스태프진 운영비를 어려워할 것 같진 않다.
 세번째, 김성근 감독의 지휘 스타일(전권 요구)을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가장 합당해보인다. 과거 김성근 감독을 경질한 그 사장도 김 감독이 코칭스태프 인사권에 개입하는 것을 이유로 들었기 때문이다. 그럼 자연스럽게 의문이 생긴다. 감독은 자기가 부리는 직원들인 코칭스태프 인사권에 개입하면 안되는가?

 물론 감독의 임무는 선수 기용이지 인사가 아니다. 감독, 코치진, 선수진을 아우르는 인사는 어디까지나 단장의 몫이다. 그런데 그건 단장이 전문성이 있을 때의 얘기다. 단장이든 사장이든 마찬가지다. 가령 나는 양키스 단장 브라이언 캐쉬맨이 감독을 필두로 코치진을 자른다면 '그럴수도 있지' 하고 말겠지만, 스타인브레너 구단주가 자른다면 '오너는 경영만' 생각할 것이다. 캐쉬맨은 양키스에서 인턴부터 시작해서 프론트 수업을 받은 사람이고, 현 구단주는 M&A하다 자리 물려받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전문성의 문제다. 그럼 LG구단의 구조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겠다. 사장은 기업인이고 단장도 기업인이다. 실질적인 운영업무를 하는 6개의 팀 중 운영팀장, 육성팀장은 스카우터 출신이다. 마케팅팀장은 2대에 걸쳐 LG트윈스 프론트를 지냈고, 최근 대기 발령을 받았다는 홍보팀장-경영지원팀장 자리에는 그룹 인사가 앉았다고 한다. 대개 다른 구단도 마찬가지다. 김응룡 전 사장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코칭스태프 인선도 사장-단장보다는 프론트 내부 팀장급 인사나 감독들이 훨씬 더 잘 아는 분야이다. 문제는 MLB처럼 스카우터부터 시작한 팀장급 인사들이 단장급으로 승진하는 경우도 극히 드물거니와(일단 그 자리는 그룹 내부 인사 것이다) 승진엔 실력과 실적 외에 다른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데 있다. 구단 고위층과 줄창 싸우던 김성근 감독의 행동을 월권이라고만 보기 어려운 이유다.

 이런 사정이 있으니 팬들의 기대와 프로야구단의 행동은 유리될 수 밖에 없다. 프로스포츠단이 정말 수익을 창출할 길이 없는진 모르겠지만 운영 자체가 모기업에 종속되어 있으니 마켓의 크기와 팀의 전력을 고려해 운영을 하기 보단 상전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 팬이 생각하는 최선과 조직의 최선은 다르기 때문이다. 하기사 여론의 눈치를 봐야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도 상전 눈치에 벙어리 시늉하고 있는데 야구판이야 그냥 공놀이 비지니스니 팬들 눈치 안보는거야 별 문제도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