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17일 월요일

KCC의 전창진 수렴청정 해프닝

 이제 20년 좀 넘은 KBL에서 명장 랭킹을 세워보면 유재학 감독이 제일 먼저 꼽힐 것이고 그 다음이 신선우냐, 전창진이냐 설왕설래가 있을텐데 아무튼 전창진 감독은 지도자가 아닌 주무로 프론트 생활을 시작해서 동부(현 DB)에서 세 번의 우승을 일궈낸 명감독이다. 오랫동안 몸 담았던 동부를 떠나 부산 kt로 갔을 때도 우승은 하지 못했지만 최하위권이었던 kt를 곧바로 정규시즌 2위, 이듬해엔 1위까지 끌어올리며 능력을 증명했다.

 혹자는 전창진의 우승은 김주성 전성기를 갈아마신 혹사액기스빨이 아니냐고 하지만, 그 김주성도 전창진이 떠난 후엔 우승을 한 번도 하지 못했고 유재학도 뭐 양동근-함지훈 없었으면 모르는 거니 농구가 원래 선수빨이 있어야 우승할 수 있는 스포츠가 아니겠는가? 그럼 전창진이 성적을 내 온 비결이 뭐냐 생각해보면 첫째가 수비전술이고 둘째가 단짠단짠 당근과 채찍으로 선수단을 휘어잡는 리더십이고 셋째가 인맥으로 덕 볼 일을 만들어내는 인싸력이 아닌가 싶은데, 아니러니하게도 승승장구하던 전창진의 발목을 잡은 것도 그 인싸력이었다.

 두번째 감독직을 맡은 kt를 떠나 2015년에 KGC로 떠날 때도 자기 사단들(코치 뿐만 아니라 트레이너와 직원까지)을 함께 데려가며 '전 감독이 예전에도 동부가 짠돌이짓하니 자기 연봉 깎아 트레이너 연봉을 올려줬었는데 이번에도 자기 사람 챙긴다' 그런 미담 기사를 양산할 때까지는 좋았는데, 오프시즌이 한창이던 5월 갑자기 승부조작에 연루됐다는 기사가 뜨더니 기나긴 법정싸움에 들어가게 되며 농구판을 떠나게 된다. 

 아무튼 2018년 12월 현재 기준으로 전창진 감독은 승부조작에 관하여서는 무혐의, 지인들과 바둑이를 했다는 단순도박에 관하여서는 2심에서 벌금 100만원을 선고받은 상태다. 사실 억대 연봉 받는 사람이 지인들이랑 바둑이 좀 했다고 벌금형 맞은 건 좀 과한 감이 있고 벌금액수도 중대한 범죄는 아니니 다시 농구판으로 못 돌아올 건 없을 것 같지만 문제는 그놈의 인싸력이다.

 이미 절친한 친구인 강동희 전 감독이 승부조작으로 영구제명을 당한 전력도 있거니와 전 감독이 KBL에도 돈을 걸었던 지인 토쟁이들한테 사채를 끌어다 돈을 빌려주고, 명색이 통신사팀 감독이었음에도 그들과 통화할 땐 몽골인 명의의 대포폰으로 한 것은 수사에서 확인이 된 데다가 아직 단순도박 사건의 최종심이 끝나지 않은 상황이니 승부조작이 무혐의라도 KBL입장에선 뭔가 찜찜한 것이다.

 지금 전창진 감독이 KBL에서 받은 처분은 엄연히 말하면 징계가 아니다. KBL 구성원이 아니라 감독 선임 단계에서 처분을 받은거라 영구제명도 아닌 무기한 등록불허 처분이었다. 그랬으니 도박죄 대법원 판결 기다리는 동안 봉사활동이라도 하면서 업보스택을 좀 줄이기만 했어도 아마 다음 시즌에는 복귀할 수 있었을텐데 갑자기 KCC 구단의 조급증이 발동해 역풍을 좀 세게 맞게 되었다.

 이번 시즌 부진으로 시즌 중에 추승균 감독을 중도경질한 KCC가 외국인인 오그먼 코치를 대행으로 세우고, 이것도 못 미더웠는지 전창진을 데려다가 수석코치에 앉혀서 상왕노릇을 시키려고 한 것. 그 전에도 KCC에서 원래 일하던 통역 대신 전 감독의 아들을 통역으로 새로 데려온 걸로 봐서 이미 사전 논의는 있었던 것 같다. 이런 건은 구단 고위관계자가 좀 조용히 KBL에 의견을 타진해봤으면 적어도 '지금은 곤란하다 조금만 기다려달라' 이런 취지의 답변이라도 들을 수 있었을텐데 정면승부한답시고 기사 먼저 터뜨리고 KBL에 코치 선임계를 냈으니 일이 더 커졌다.

 KCC가 저렇게 세게 지른 건 1) 그동안 농구계에 KCC가 이것저것 돈을 많이 냈다 2) 현 크블 총재가 모비스 사람이고 지금 KBL 최대 현안이 결손금 채우는거라(전자랜드에 20억 빌려줬다가 못 받고 그 외에도 빵꾸난 돈이 160억을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음) 큰손 KCC한테 입바른 소리하기 힘들다 3) 어차피 농구 인기가 개뿔도 없어서 김민구 징계 때처럼 스폰 좀 하면 조용히 묻을 줄 알았음 이 정도였을텐데 사실 나도 무난하게 올시즌 오그먼 꼭두각시 조종하다가 시즌 끝나면 감독 취임식하겠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전창진을 수석코치로 등록해주냐 불허하냐 가지고 열린 재정위원회 결과는 의외로 불허 결정이었고, KCC는 삐져서 또 추하게 '아 그럼 정식 코칭스탭 명단에는 못 올린다는거지? 그럼 이름 안 올려도 되는 고문으로 쓴다' 이러면서 사실상 재정위원회 결정에 불복을 해버림. 조금만 참고 대법원 판결 기다린 다음에 무죄나 감경 됐을 때 이번 시즌 끝나고 다시 선임계 냈으면 구단 얼굴을 봐서라도 두번이나 빠꾸 먹이지는 않았을거고 나도 이 정도면 크블이 할 만큼 했네 했을텐데 정말로 100% 통과될거라 믿고 있었나보다.

 아무튼 KCC는 지금 외국인 선수가 개판을 쳐도 교체할 생각이 없어보일 정도로(오그먼 대행이 성과를 내는 게 반가울 게 없음) 전창진 승계 프로젝트에 열심이고 KBL도 그렇다고 니들 전창진 쓰지마 절대 안 받아줘 이럴 수는 없으니 뭐 시기가 문제지 전창진이 복귀하긴 할 것 같다. 야구에서 염경엽 감독이 SK감독 절대 안 함 나 그런 사람 아님~ 이러다가 SK단장 찍고 회전문 타서 감독하는 거 보고 KCC가 비슷하게 할 생각이었나 잠깐 생각도 해봤는데 그거랑 이거는 너무 모양새가 차이나지 않나?

 농구가 인기가 오죽 없으면 구단 하나가 저렇게 막나가도 통제할 방법이 없나 싶기도 한데 개인적으로는 올거면 얼른 와서 쫄~딱 망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도 든다. 나도 왕년에 이상민 좋아했어서 KCC에 호감이 있었고 모비스를 너무 싫어해서 그 이상의 극불호팀이 생기게 될 거란 예상은 못했는데-저번 챔결에 DB팬들이 되도 않는 SKBL 소리 할 때도 네 다음 욕설상범하고 넘김- 장판은 지금 돈 많이 낸다고 유세 떨면서 업보스택 계속 쌓은 게 몇 년 돼서 그게 언제 터질지 많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