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25일 수요일

각종 컴퓨터 부품들 AS후기

 용산 가까이 살고 성질은 급하고 배송파손 싫어해서 부품들 살 때나 팔 때나 어지간하면 직접 다녀오는 편이다. 마찬가지로 AS를 받을 때도 방문 접수를 선호하고 택배 AS는 센터가 서울에 없을 때나 한다. 그러다보면서 생각한건데, 택배 AS 말많은 업체는 있을지 모르겠다만 방문 AS가 개판이다 싶은 곳은 본 적이 없다. 가령 사운드 블라스터 팔 때부터 불친절함의 대명사 쯤으로 통하는 제이씨현도 막상 가보면 그냥 평범하다. 택배로 온 물건 검수절차와 방문 검수절차가 달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느낀 바는 그렇다.

 물론 가장 좋은 건 한번 사서 수명 다 할 때까지 쓰는 거겠지만 그렇게 천수를 누리는 부품은 구증구포한 숙지황만큼이나 드물 것 같다.

 완제품 노트북

 좋은 이야기가 아니라 업체명은 안 적는다. 유명한 국산 업체고 대기업이나 요새 잘나가는 회사는 아니다.

 2010년말에 싼맛에 리퍼비쉬 제품을 샀다가 개피를 봤다. 초기 액정 기스 있었고, 처음에 개봉할 때 확인을 못했고 크리스마스가 겹쳐 즉각 교환을 하지 못했다. 3일쯤이나 지났나 혹시 몰라 한번 용산 센터에 들고 가봤는데 생활 기스가 있을 수 있는 품목이라 어쩔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해서 수긍했다.

 문제는 리퍼 제품 AS 기간인 3개월이었나 6개월이었나 지나자마자 액정에 파란색 줄이 한 줄 세로로 뙇 생기고, 메인보드 건전지가 방전되어 CMOS 저장이 안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물건 아껴쓰는 편이라 충격은 단 한 차례도 없었는데, 무상 기간을 알고 샀으니 어쩔 수 없이 교체를 문의했더니 유상 AS 비용으로 패널값 14? 15만원이었나 20만원이었나를 청구하던데, 패널값이야 워낙 비싸니 어쩔 수 없지만 40만원짜리 사고 저 돈 내고 고치느니 그냥 쓰다 버리는 게 나을 것 같아서 그냥 건전지만 갈아달라 했더니 건전지값 5천원, 공임비 2만원.. 우선 개봉을 하면 워런티가 거부되니 센터에 가서 교환하려 했던건데 참 충격적이었다. 리퍼비쉬 제품이라고 복구 영역을 다시 잡거나 OS를 설치받는것도 4만원을 달라니 다 합치면 뭐 거진 30만원인데 돈 10만원 아낀다고 저 꼴 보지 말고 노트북은 새것 사는 게 낫다.

 딱 보증기간 동안은 고장 안나게 만든 저 회사가 무슨 잘못이야. 믿고 산 내가 잘못이지. 물론 다시는 그 회사꺼 쳐다도 안본다.

 CPU

 정상적인 사용시 가장 고장이 드문 부품이라 문제가 생겨서 가본 적은 없고 얼마 전에 내 실수로 amd FX-8350 핀 휘어먹어서 제이씨현에 전화로 물어본 적은 있다. 결론은 한두개면 어떻게 펴주겠는데 이게 무슨 전문적인 장비로 펴주는 건 아닌 수공업이라 여러 개는 힘들다고 하는데, 눈 딱 감고 택배 AS로 보내고 나몰라라 하는 경우도 있다지만 난 그렇게는 못하겠고 대충 사설 업체 알아보거나 새거 사는 게 낫다.

 램

 세종대왕 펜티엄 2 몇년 쓰다 램슬롯에 그냥 새 램 꽂고 전원 켰는데 컴퓨터가 펑 터진 황당한 기억이 있는데, 이건 램 때문은 아닐테고 세진 컴퓨터랜드는 망해서 왜 터졌는지 알 길도 없었던 슬픈 과거 빼면 고장나본 적이 없다. 근데 오버용 고가램 쓸 거 아니라면 예전에
방열판 달려있던 EK램이랑 일반 삼성램이 살 때는 차이없었는데, 팔때는 가격 차이가 좀 많이 났던 기억이 있어서 그냥 삼성꺼 사는 게 나은 것 같다. 다나와 업자한테 삼성꺼 DDR2램 2기가 두개 팔고 역시 삼성 DDR3램 2기가 두 개 사는 거 문의했는데 차액 받아가라던 경우도 있었다.

 메인보드

 초기불량도 꽤 있고 사용하면서 생기는 고장도 많은 부품인데, 생각해보면 용산 왔다갔다하던거 80%는 다 보드 때문이었다. 오버클럭도 안하고 그냥 쓰기만 해도 시간 지나면 갑자기 문제가 생긴다. 모델명까지 대강 기억날 정도로 쓰던 제품만 적는다. 쓰다가 사망했지만
미처 AS받지 못한 제품도 적는데 애즈락이 굉장히 많아보이는 건 아마 착각일 것이다.

 기가바이트

 GA-M56S-S3 (제이씨현) AM2보드였는데 잘 쓰다가 어느날 갑자기 CD만 넣으면 컴퓨터가 버벅버벅 거리면서 정신 못 차리는 증상이 있어서 들고 방문했다. 저게 뭐 때문인지 몰라서 DVD ROM도 제조사 센터에 들고가보고 별 짓 다 했는데 가자마자 기사가 테스트 쓱 해보시더니 고장이 맞다며 리퍼 제품을 줬다. 그래도 문제가 한번 있었던 제품을 또 쓰는 게 싫어서 리퍼받은채로 팔고 asrock n68-ucc로 넘어감.

 ASROCK

 amd용 보드는 디앤디컴 / 에즈윈 두 곳에서 유통하고 있는데 정확하게 어느 유통사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을 수 있지만 두군데 다 그냥저냥 친절했다. 대기표 받고 기다리고 있으면 택배 기사가 물건 수레로 싣고 들어오던데 보고 있으면 저걸 다 언제 점검하나 싶다.

 ASRock N68-S UCC(아마 디앤디컴). 사실 싼맛에 넘어온 보드였는데,  DDR2 기반 보드지만 데네브까지 호환 가능해 추후를 위해 AM3슬롯으로 가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해서 샀다.문제는 그 추후 업그레이드때 발생했는데, 데네브를 쓰고서 얼마 후 컴퓨터가 자주 프리징되거나 꺼졌다. 처음엔 파워 문제인줄 알고 파워업체 센터를 가봤는데 (이건 후술), 파워는 문제없었고 지금 생각하면 보드 발열이나 전원부 문제가 있지 않았나 싶다. 그 당시 기준으로도 전원부가 튼튼한 제품은 아니였기 때문이다. 그때는 보드 고장이라 생각하고 센터에 갔는데, 이것도 역시 불량 판정받고 리퍼를 받았지만, 기왕 데네브 쓰는 김에 AM3+로 가자 하고 바로 팔아서 어떤 문제였는지는 모르겠다.

 ASRock M3N78D (에즈윈) 여자친구 컴에 쓰던 AM3 보드였는데 랜을 잘 못 잡다 급기야 부팅이 되지 않는 문제가 있어서 방문해서 교체받았다. SATA2까지밖에 지원되지 않는 구형 보드지만 아직까지 잘 쓰고 있다.

 ASRock 870icafe r2.0 (디앤디컴) N68-S UCC에서 넘어온 제품이다. AM3+ 초기에 나온 리비전 제품인데, 싼맛에 AM3+보드를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가격 대비 나름 튼실하고 별 무리없이 썼는데 데네브(95W)에서 FX8350(125W)로 넘어오니 프리징 증상, SATA 포트 제대로 못잡는 증상이 발생했고 전원부나 칩셋 발열 문제인 것 같아 교환을 받았고, 케이스도 미들타워에서 빅타워로 넘어왔지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결국 팔고 기가바이트 970보드로 가려다 CPU 핀이 휘는 대참사가 발생해 인텔로 넘어왔다. 프리징 증상에 대해선 이것저것 물어봤는데 딱히 이렇다할 답변은 받지 못했다. 아, 그리고 이 보드는 현재 라데온 R9 시리즈 VGA를 인식하지 못하는 희한한 현상이 있다는 글을 보기도 했는데 솔직히 이 회사 보드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 자고 일어났는데 컴퓨터가 쵸비츠로 변신해도 그러려니 할거다.

 MSI

 MSI 870-C45 (대원) 동생 컴퓨터에 해준건데 업자가 구형 770 칩셋 쓰는 저가형 아수스 보드보단 저게 낫다고 해서 그렇게 결정했지만 2년 넘기기 전에 사망했다. 내가 집에 있었으면 용산 들고가서 바꿔줬을텐데 그게 아닌터라 그냥 컴퓨터 AS 체인점에서 AS절차 밟으라고 그랬다. 아마 출장비 두번 + 리퍼 대행 비용 포함해 10만원인가 줬다는 것 같은데 최근에 한번 더 부팅 문제가 있었고, 내 마음 속에서 애즈락과 MSI는 같은 카테고리에 묶였다.

 VGA

 HIS 라데온 5770 (당시 앱솔루트 코리아) - 업자에게 중고로 12만원인가 주고 샀던 제품인데, 이 이후로 업자 중고는 꺼려하게 됐다. 겉모습은 깨끗하고 담배 냄새 안나길래 괜찮다 싶었는데 3D 게임만 하면 VGA가 뻗었다. 당시 구로에 있었던 센터로 쫄래쫄래 가보니 쿨러가 잘 안돌았다고 한다. 내심 쿨러는 소모품이라 돈내라 하지 않을까 했는데, 별말없이 리비전된 리퍼 제품을 받았고 그 후로는 갈아탈 때까지 잘 쓰다 보냈다.

 ASUS 지포스 GTX760 OC D5 2GB DCII (STCOM) - STCOM은 다른 부품 문제 때문에도 갔던 곳인데 뭐였는지 잘 모르겠다. GPU에 이상이 있어서 화면 깨지길래 갔었고 30분 안에 리퍼를 받았다. 별로 친절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나쁜 짓을 하지도 않았다. 소음이 크고 듀얼모니터가 안되는 불량을 받아서 나중에 한번 더 간 건 함정.

 지포스 제트스트림 (이엠텍) - 여기도 센터가 멀리 떨어져있다. 서비스로 찬양받는 곳인데 물량이 없어서 한달이 넘게 걸렸다.

 파워 서플라이

 뻥왕, 뻥궁으로 불리는 파워들 둘다 써봤고 천궁은 지금 여자친구 컴퓨터에도 꽂혀 있지만 둘다 별 이상은 없었다. 저거 쓰면 컴퓨터 곧 터질 것처럼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뭐 450w 파원에 데네브 955에 4850꽂아도 잘 됐다. 쓰다가 효율 떨어져서 이상 생길진 몰라도 기본도 안된 묻지마 파워는 아닌거지. 그렇다고 두 메이커를 추천하는 건 아닌게 어차피 중저가형 파워는 별 사고 없이 어느 정도 알려진 업체꺼 쓰는 게 마음 편하지 굳이 문제 있었던 업체꺼 쓸 필요는 없다. 나보고 지금 사라면 시소닉꺼 살 것 같은데, 10년 다 된 컴퓨터에서 독야청정 멀쩡하던 부품이 시소닉 파워밖에 없었던 경험이 있어서 그렇다.

 태왕 450w 듀얼2.2 (aone) - 정확히 모델명이 맞을지는 모르겠는데, 태왕 제품으로 나온 것은 맞다. ASRock N68-S UCC에 데네브 물렸을 때 컴퓨터 뻗는 거 보고 처음에는 파워를 의심해 점검을 받으러 갔는데 친절하게 점검해줬고, 파워에는 별 이상이 없다고 했다. 특이한 점은 이 회사에서 안텍 제품을 유통해서 AS센터를 통합해 운영하는 것 같은데 안텍 AS가 나쁘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고 내 경험도 괜찮았으니 고객 응대는 좋은 편인 듯 하다.

 슈퍼플라워 600p12a (뉴젠) - 센터가 원효대교 북단에 있어서 가기 불편했던 거 빼고 만족했다. 팬에서 베어링 갈리는 소리가 나서 갔는데 (파워는 팬쪽 뜯으면 워런티 불가라고 적힌 경우가 많아서..) 결과적으로 큰 이상은 없었던 모양이지만 새 박스 뜯어서 교환을 해줬다. 콘덴서가 교체된 버전이라 마음에 들었음. 나중에 SATA 전원 케이블 불량으로 탑파워로 넘어갔다.

 ODD

 삼성 - 어느 서비스센터를 가도 과도하게 친절했다. 그런 대우를 받으면 불편해하는 성격이라 부담스럽다. DVD롬 두개를 각각 교체/점검 받아봤는데 둘 다 만족했다.

 공유기

 iptime - 여태까지 iptime 제품 3개를 샀었는데, 두개는 문제없었지만 하나가 쓴지 1년 정도 지나자 와이파이 연결이 안되는 문제가 있었다. 서울에 센터가 없어 택배로 받아야 했지만 전화도 굉장히 늦은 시간까지 받고, 고객 응대도 친절한 편이다. 솔직히 노답 전화 받을 때도 많을 것 같은데 보살들일 것 같다. 1년 반쯤 전에 서비스 받았던 것 같은데, 보낸 날 포함해 처리는 4일 정도가 걸렸고 리퍼 제품을 받아서 여태까지 잘 쓰고 있다.


 다녀올 때마다 계속 추가함.

2013년 12월 20일 금요일

자의식 과잉의 시대

 비상교육에서 나온 한국사 검정 교과서에서는 3.1 운동을 기술하며 전국 218개 군 중 211개 군에서 1,500여 건의 시위가 일어났다고 되어 있는데 대강의 참가 인원도 기술되어 있지 않아 자료를 찾아보았다. 조선총독부의 자료에 따르면 약 106만명이 참가했다하며 역사학자 박은식은 약 200만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1919년 조선 인구가 1700만명 정도라는 다른 통계와 함께보면 박은식의 셈을 따라도 8명 중 한 명도 참가하지 않았다. 4.19 혁명도 자료는 없지만 대략 10만명으로 참가 인원을 추산하고 있는데, 2013년 관악구 인구가 50만명 정도 되고 명동 하루 유동인구가 100만명을 넘게 잡으니 저 숫자가 많은지 적은지는 각자 생각할 일이지만 당신이 참여하거나 찬동하지 않았다고 현재진행중인 일이 의미 없는 게 아니라는 반증은 될 수 있다.

 인터넷의 발전으로 많은 사람들의 많은 글을 보게 되는데, 과거에는 세상이 자기 본위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미친 자들이 거리에서 아무리 목놓아 개소리를 해도 그냥 지나가면 그만이었지만 이젠 클릭 한번, 터치 한번만 잘못해도 눈 썩는 글을 높은 빈도로 볼 수가 있다. 왜 굳이 여러 사람이 볼 수 있는 커뮤니티에서 정신병 인증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의식 과잉 환자들에겐 관심병도 같이 따라붙는 모양이라 멍청한 지 머릿속을 남에게 오픈시켜야만 만족하는 듯하고 저런 병은 병세가 심해지면 심해졌지 차도가 있는 게 아닌터라 이젠 화면 안이 아닌 현실에서도 병자들이 횡행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물론 대낮에 남들 앞에서 할 짓이 아닌 건 알아 주로 남들 안 볼 때 헛짓거리를 하지만, 관심병 특성상 내가 미친 짓거리를 했어요라고 널리 알리고 싶어하기에 곧 덜미가 잡혀 후회의 시간을 맞이하곤 한다. 

 굳이 사이버 세계가 아니더라도 많은 정보의 홍수를 접하다보면 멍해져서 현실감과 판단력이 모호해지는 것을 느끼곤 한다. 책을 읽어도 오랫동안 잡고 있자면 비판없이 무작정 수용하고 있다고 느껴 흠칫할 때가 있다. 객관적 사실이 존재한다는 것이 그 사실을 내게 전달한 사람의 의도도 객관적이라는 증명이 되지는 못하는데, 아무리 생각할 능력이 없어도 타자에게 생각을 맡길 땐 타자의 의도대로 내가 행동할 가능성이 있다는 건 알 법도 하다. 또 나에겐 중요한 일도 타인에게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 있거나,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는 것을 아는 것도 너무나 상식적인 일이다. 그럴 때 폭력적인 방법을 동원하는 것도 유아기에나 할 법한 일이지만 사람의 본성이기도 한데, 그게 남들에게 자랑할 일은 아니라는 건 알아야 한다. 광장에서 들은 주장을 광장에서 반박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폭력은 최후의 수단으로 쓰고 생각부터 좀 하라는 이야기다.

 미친자들을 보면서도 와 설마 저 이상의 미친 짓을 하진 않겠지 하는 사회통념과 경험칙에 기준한 어떤 선이 있다. '저것들도 사람새끼인데 설마'하면서 인간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최소한의 믿음을 가지고 있는 셈인데, 요새는 그 선을 과감히 포기해야하나 생각하고 있다. 못난 놈들은 지들 얼굴만 봐도 좋다고 헤헤거린다고 미친자들은 지들끼리 모여있으면 그게 정상인줄 알고 더 미쳐 날뛴다. 

2013년 12월 16일 월요일

GTX770 장착. 윈도우 8.1에서 지포스 -> 라데온 교체 후 부팅시 검은 화면에 마우스 커서만 나오는 증상

 업글병은 멈추지 않아 결국 새 VGA를 알아보았다. 라데온 3850-4850-5770-7850 거쳤으면 이제 지포스 써도 될 것 같았다. 내년 새 모델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까 생각했지만 관뚜껑 닫기 전에 컴퓨터 맞출 생각 아니라면 이때다 싶을 때 질러야 한다. 마침 하이엔드 시장을 라데온 290이 올킬한 상황이라 지포스 중고 가격이 요동치는 상황이었다. gtx680을 노리고 중고 장터에 잠복했지만 매물 자체가 별로 없어서 며칠동안 눈팅만 하다 쿨매로 나온 770을 구했다. 기존에 쓰던 7850에 비해 7cm 가까이 긴 기판이라 기존에 쓰던 구형 미들타워 케이스였다면 장착이 아슬아슬하거나 하드디스크 위치를 조정해야 했었을 듯하다. 사용시간이 거의 없다는 말대로 vga 외관은 깔끔했고, 작동에 이상이 없는지 hwmoniter와 3d mark 프로그램을 돌려 테스트를 해봤다. 7850이 워낙 발열과 소음에선 우월하다보니 그 점에선 아쉽지만 성능 격차가 크니 감수해야 할 문제다. 와우 권장옵션을 예로 들면 4670+7850 조합은 안티안먹힌 최상위 옵션 25인 레이드에서 30대 프레임을 뽑았지만, 770은 안티 8배 먹인 풀옵임에도 훨씬 부드러운 프레임을 뽑아낸다.

 7850을 팔려고보니 as기간 2년 넘게 남은 양품을 보내는게 아까워 여자친구 컴퓨터에 있는 gtx460 대신 장착하기로 했다. 460은 입양보내려고 했는데 받을만한 놈 둘 중에 한놈은 며칠전에 컴퓨터를 팔아버렸고 다른 놈은 연락이 안됐으니 이래서 인생은 타이밍이다.

 우선 포스웨어(지포스 드라이버)를 언인스톨하고 7850을 끼운 뒤 카탈리스트(라데온 드라이버)를 설치했다. 그런데 재부팅을 하니 윈도우 로고 뜨는 부팅 화면은 잘 나오지만 윈도우에 진입하면 온통 검은 화면만 나온다. 마우스를 흔들어보니 커서는 보이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내내 검은 화면이다. 방금 전까지 쓰던 vga가 맛이 갔을리는 없고 뭐지 싶어 460을 끼워보니 잘 부팅이 된다. 혹시 몰라 카탈리스트를 싹 언인스톨한 뒤 포스웨어를 재설치해봐도 특별한 문제가 없지만 다시 7850을 끼우면 마찬가지로 검은 화면에 마우스만 보이고 넘어가질 않는다. 이럴 때 의심해야할 상황은 1) 유일한 변인인 vga 2) 혹시 모를 파워 공급 문제 3) 명불허전 asrock 메인보드 4) 드라이버 충돌 5) 부품 간 궁합이다.

  좀 전까지 7850을 잘 쓰고 있었기에 1번 제외, 460보다 7850이 소비 전력이 낮기에 2번도 제외, 5번은 뭐 고주파를 뿜어내는 것도 아니고 확인할 길이 없으니 3,4번이 남았다. 둘 다 자웅을 겨룰 수 없을만큼 유력한 후보지만 정황상 3번 쪽이 더 의심스럽다. 카탈리스트가 근래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5770 쓸때만 해도 카탈리스트 깔아놔도 실행하면 아무 반응도 없이 먹통인 기억이 생생하다. 프레임워크를 재설치하면 된다 그런 말도 있지만 나한테는 소용없었다.

 안전모드로 들어가 그래픽카드 관련 드라이버, 프로그램을 모두 삭제하고 다시 한번 카탈리스트를 깔아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아무리 F8을 눌러도 부팅 메뉴가 안 뜬다. 찾아보니 윈도우 8에선 따로 설정을 하지 않는 이상 부팅 메뉴를 띄울 수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강제로 안전 모드로 들어가게 하면 된다. 뭐긴 뭐야 윈도우 로딩 중에 파워 서플라이 전원 내리는거지. 당연히 권장할 수 없는 방법이지만 뾰족한 수가 없어 그렇게 했더니 과연 안전 모드 진입 여부를 묻는 화면이 나온다. 안전 모드에선 정상적으로 화면이 나오니 드라이버 충돌이 맞다는 심증이 굳어진다. 

 정리해보면 카탈리스트가 깔린 상황에서 지포스로 부팅하면 이상이 없으나, 포스웨어가 깔린 상황이나 아무것도 깔리지 않은 상황에서 라데온으로 부팅을 하면 검은 화면이 뜬다는 것이다. 혹시 몰라 안전 모드에서 지포스 드라이버를 삭제하려고 시도했다. 드라이버 스위퍼를 사용하려고 했으나 안전 모드 상에서 랜 드라이버를 찾지 못해 그냥 언인스톨을 눌렀다. 그런데 어................? 시스템이 프리징된다. 참 더럽게 꼬였나보다.

 이럴 땐 다 집어치우고 포맷이 답이다. 어떻게 복구를 한다고 해도 삭제되었는지 남아있을지 모를 각종 드라이버, 레지스트리가 언제 무슨 문제를 일으킬지 알 수 없다. 결국 포맷하니 깔끔하게 해결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위의 다섯가지 의심스러운 정황 외에도 다른 요인도 생각나는게 있지만 컴퓨터 쓰다보면 항상 찜찜한 문제가 있기 마련이다. 남들보다 부품의 발열이 높다거나 부품 어딘가에서 고주파 소리가 난다거나 하는 문제들이 그런데, 차라리 못느끼는 게 더 나은 경우가 많다. 일일이 다 원인을 찾아내 해결하긴 정말 어렵다. 하기사 AMD-asrock-라데온 삼위일체 조합을 안 썼으면 나도 컴퓨터로 게임이나 했지 이런저런 쓰잘데기없는 잡지식은 알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한줄요약 : 드라이버끼리 충돌할땐 그냥 포맷하세요 

2013년 11월 29일 금요일

안녕 AMD : i5 4670으로 대격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세번째 확장팩 대격변에 처음 접속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데스윙에게 박살난 스톰윈드였다. 그때 스톰윈드 시민들의 마음들을 나도 이해할 수 있던 사고가 터졌다. 저가형 870 칩셋 보드를 대체하려 주문한 970 보드가 도착해(데네브에서 비쉐라로 업그레이드를 한 후 보드 전원부의 발열 문제로 추정되는 시스템 프리징이 발생했다는 것은 이전 글에 썼으니 다시 자세히 적지는 않는다.) 컴퓨터를 열고 부품들을 떼냈다. 지금 생각하면 보드를 아예 케이스에서 뺀 상태에서 안전하게 쿨러를 분리했으면 됐을텐데, 별 생각없이 기본 쿨러 뽑듯 약간 힘줘 뽑다 참사가 일어났다. 바다2010 쿨러에 CPU가 딸려 올라왔는데 핀들이 확 휘어져 나온 것이 보였다. 순간 시계를 보니 시간은 5시........ 얼른 선인상가 하트전자 가야되나 생각해봤지만 계산해보니 잘해봐야 CPU값=수리비라 하루도 제대로 못쓴 FX-8350은 쓰레기통으로 향했다. 눈이 내려서 다행이었다.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 있어서.

 이렇게 된 이상 새 보드는 뜯지도 않았으니 환불하고 인텔로 간다. 아침 일찍 용산에 가 i5 4670이랑 asrock H87 performance 보드를 사왔다. 보드는 다나와 최저가에 구하는 것이 어렵지 않은데, CPU-램은 최저가 낚시가 매우 심한 품목이다. 단품구매 뿐만 아니라 다른 부품을 한두개 같이 사도 마찬가지다. 램은 원래부터 용산 램테크 장난질이 심했으니 제외하더라도 CPU는 애초에 조립비를 받을 것을 전제로 올려놓는 듯하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돈을 내밀며 처음부터 그냥 좋게 저거 샀으면 i5가 아니라 i7에 아수스 보드를 사고도 남았다 생각이 절로 났지만 그런 대형사고가 터질 줄 알았나. 보드도 오버할 생각이 없어서 어정쩡한 포지션인 H87 칩셋 대신 싼 B85를 쓸까하고 보니 아수스, 기가바이트 중급 이상 B85랑 그래도 나름 페이탈리티 라인 막내인 asrock H87 performance랑 가격이 똑같은데 차라리 sata3 슬롯이 두개 많은 후자가 낫지 뭐. 언제쯤이면 asrock의 노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펜티엄2 이후에 인텔 CPU를 써본 적이 없어서 장착은 어떻게 해야되나 매뉴얼을 꼼꼼하게 읽고 동영상까지 본 후에 조립에 들어갔다. AMD처럼 쏙 넣고 지지대 내리면 끝나는 게 아니라 지지대가 생각보다 훨~~~~~씬 빡빡하고 끼익끼익거려서 과장 좀 보태 CPU가 두동강 날 것 같아 내가 제대로 하고 있나 몇번을 다시 확인했다. CPU 대신 보드 소켓에 핀이 있는 구조인데 고장나게 딱 좋게 생겨서 무서워서나중에 서멀도 다시 못바르겠다. 기본 쿨러보단 사제쿨러가 낫겠지 싶어 어제 나를 엿먹인 대역죄인 바다2010의 브리켓을 인텔용으로 다시 조립해 붙여줬다. 실제로 조립해보면 이지클립 대신 손나사로 쿨러와 브리켓을 연결해도 전원부 방열판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조일 공간이 나온다. 물론 편하게 조일 수는 없다.
 다 조립한 후 이상한 현상을 발견했다. CPU 온도는 30도인데도 쿨러는 1600rpm 가까이 돌고 있다. 바다가 저소음이긴 해도 1600쯤 돌면 소리가 날 수 밖에 없다. 검색을 해보니 보드 자체 설정의 문제란다. 사일런트 모드로 바꿔놓으니 rpm은 1100대로 낮아졌으나 그렇게 해도 해결되지 않는 사람은 저항을 다는 것이 낫겠다는 의견이 있었다.

 나머지 조립을 모두 마치고 일단 부팅을 시켜보았다. 그런데 메인보드 제조사가 같아 그런지 일단 정상적으로 부팅이 된다. 드라이버를 잡지는 못하지만 신기했다. 그래도 보드 칩셋이 바뀌면 윈도우를 새로 까는 게 나중을 생각해서라도 낫다. 이더넷 드라이버만 CD를 통해 깔고, 나머지 몇개 필요해보이는 드라이버는 최신 버전을 홈페이지에서 다운받았다. 아수스와 달리 애즈락은 드라이버 다운로드 센터에서 한글을 지원하지도 않고, 해외 서버라 다운로드 속도도 엄청나게 느리다. CD 한장 분량도 안되는 크기를 받는데 40분 정도는 족히 걸리는 듯 하다. 초기 셋업을 다 한 후 일단 와우에 들어가보았는데, 기존 FX-8350에 970보드가 아닌 870보드를 물려놔서 성능을 제대로 못뽑았다해도 4670이 거의 모든 상황에서 10프레임씩을 더 뽑아준다. 같은 블리자드 게임인 디아블로3에서는 별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의도적으로 CPU에 모든 부하를 건 상황이 아니더라도 다중 사용 환경에서 사용자의 이용 패턴에 따라 분명 FX-8350이 더 나은 부분도 있긴 하다. 가령 게임을 하면서 각종 드라이버를 다운받고, 스팀-오리진을 동시에 켜서 다른 게임들을 설치하는데 당연히 쿼드코어인 4670이 8350에 비해 CPU 점유율이 훨씬 높게 나타났다. 그런데 그렇다고 굳이 비슷한 가격에 8350을 쓸 이유는 없다. 배틀필드4를 돌리고 싶다면 몰라도 차라리 i7을 사용하는 게 나을 것이다.

 나를 괴롭히던 온갖 증상들(프리징, 구형 하드 AHCI 미인식 등)도 시스템을 바꾸며 모두 사라졌다. 애슬론XP부터 함께한 AMD지만 이제 몇년은 볼 일이 없겠다. 인텔로 넘어오세요. 편해집니다.

2013년 11월 27일 수요일

현재진행형 좌충우돌 컴퓨터 프리징 해결기

 2008년 봄에 전역을 하니 월급 통장에 60만원 정도 돈이 모여있었다. 특별히 PX를 싫어해서는 아니고, PX에 못가게 하던 내무부조리 덕이 제일 컸다. 3만원 이상 지출에 별 취미가 없어서 뭘 할까 잠깐 고민한 끝에 양친에게 건 건강검진이나 한번 받아봐라 권유했지만, 건강보험이 이미 기초적인 검진을 제공하고 있었다. 그럼 컴퓨터나 사야지 하며 며칠 견적을 짜서 브리즈번 4200, 기가바이트 ga-m56s-s3, 라데온 3850을 주축으로 가성비킹 시스템을 맞췄다. 그렇게 2년 정도 쓰다가 어느날 갑자기 DVD를 잘 못 읽고, 읽어도 시스템이 현저하게 느려지는 증상이 생겼다. 옛날에도 중고로 RW를 산지 한달만에 문제가 생겨서 서비스 센터에 다녀온 기억이 있었지만 그땐 아예 못 읽으면 못 읽었지 시스템에까지 영향을 끼치진 않았다. 사실 DVD는 별로 쓸 일이 없으니 나중에 가야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시간이 더 지나서 본격적으로 시스템에 갑자기 프리징이 왔다. 블루스크린이 뜨는 것도 아니고 그냥 갑작스럽게 화면 그대로 멈춰버리는 증상이었다. 포맷을 해봐도 그때뿐이고 DVD 잘 안 읽혀서 윈도우 한번 까는데 한나절이 넘게 걸렸으니 더 시도하기도 고역이었다. 중딩 때 보드에 램 추가하고 전원키자마자 이유없이 보드에 쇼트가 나서 다 태워먹은 적이 있어 -당시 썼던 컴이 세진 컴퓨터 제품이었는데 회사가 망해서 AS는 안녕이었다- 하드웨어는 건들기 싫었지만 해줄 사람 없으면 배워서 해야지. 이유를 찾다 친구에게 물어보니 하드디스크 배드섹터 문제일 것 같다며 마침 남는 레고르 CPU 하나 가져가라고 해서 얻어왔다. 근데 왠걸 어떻게 뺐는지 CPU 핀이 휜 게 아닌가. 아무튼 거센 비난을 해주고 하드 새로 하나 사서 거기다가 윈도우를 깔아봤더니 프리징이 좀 없어진 것 같았다. 마침 다른 친구가 라데온 4850 안쓰는 거라고 줘서 이 기회에 업그레이드나 해보자 하고 CPU도 데네브 955로 바꿔버렸다. 바이오스 업그레이드로 지원이 가능해 보드 교체없이 CPU만 바꿨는데 신나게 와우를 하다보니 어 30분마다 그냥 컴퓨터가 뚝 꺼진다. 블루스크린이라도 뜨면 로그나 볼텐데 그냥 꺼지니 분석도 안된다.

 하드디스크 교체로 문제를 해결했고 전원 다운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할 때라 엇나간 추측이긴 하지만 나름 근거가 있는 추론이었다. 데네브는 브리즈번보다, 4850은 3850보다 고발열-고전력 VGA니까 발열을 잡아보자 싶어서 친구에게 양해를 구해 4850을 팔아 고기를 사주는 것으로 갈음하고, 저전력-저발열 라데온 5770을 구입했고 보드 안 뜯어내고 달 수 있는 저가 사제 쿨러를 데네브에 장착해 발열을 잡으려고 했다. 그런데 프리징은 없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파워가 문제였구나 싶었다. 태왕 파워 쓸 때였는데, 파워를 들고 용산에 가서 점검을 받았다. (여담이지만 태왕 파워 만드는 회사에서 나름 중고가 파워인 안텍 제품도 유통한다는 걸 그때 알았고 메인보드 유통 업체와는 다르게 문의가 적은지 AS창구에 직원이 한명밖에 없어 신기하기도 했다) 이상이 없댄다. 가는 김에 DVD도 들고 용산 삼성 서비스센터에 갔더니 DVD도 이상이 없다고 했다. 이제 결론이 났다. 보드가 문제였다. 지금이었다면 보드부터 들고 갔을텐데, 기가바이트 오래 쓰면서 별 문제를 겪은 적이 없었고 그때는 보드 뜯기가 너무 귀찮아 너무 늦게 들고간 감도 없지 않아 있는 것 같다.

 보드 고장만 문제였을수도 있고, 지금 내가 겪는 것처럼 상위 CPU 호환 문제가 있었을수도 있겠다. 기가바이트 유통사인 제이씨현에 찾아갔더니 뚝딱 점검을 하고 보드 고장이 맞다며 리퍼 제품을 줬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한번 고장난 보드 또 안 그러라는 법도 없고 데네브는 AM3 기반이고, 저 보드는 데네브를 사용할 순 있다지만 AM2이라 성능은 다 못 뽑을테니 리퍼받은 김에 팔아버리고 AM3 보드를 사는 게 나을 것 같았다. AM3 보드를 구경하다보니 마침 AM3+보드가 나오기 시작하는 때였다. 가격을 보니 애즈락 AM3+보드와 아수스-기가바이트 AM3 보드 가격이 1,2만원 차이밖에 안났다. 나중에 불도저로 업그레이드를 할지도 모르니 AM3+를 사자 생각했다. 내가 맞춰준 동생 컴퓨터가 애즈락 보드를 쓰다가 고장난 적이 있긴 해도 그때는 뽑기운이 안 좋았을 뿐이라고 여겨 별로 꺼려지지도 않았다. (애즈락 보드들에 대해선 차후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센터만 다섯번을 갔다) 차후 업그레이드를 대비해 파워도 슈플 600W로 바꿨다. 물론 좋은 파워이긴 하지만 연속된 용산 나들이가 내 멘탈을 붕괴시켜 한 충동구매였고 이 파워 AS기간이 5년인가 그럴텐데 그때까지 600W까지 쓸 일이 있을지 모르겠다. (2020년 추가 - 2013년의 나는 몰랐지만 저 슈퍼플라워는 내 하드를 2개나 죽였다)

 그런데 내가 간과한 일이 있었다. AM3 보드부터는 DDR2램이 아니라 3를 써서 램도 바꿔야 했다. 다행히 램값 쌀때라 DDR2 중고가 DDR3 신품보다 비싸서 그건 잘 해결됐지만 램 팔러 용산 또 가야했다. 아오 그래도 보드를 바꾸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서 행복했다. 

 그리고 또 한 2년여가 지난 지금, 램을 8기가까지 늘리고, 라데온 7850을 달고, SSD를 달아 잘 쓰다 비슷한 상황이 다시 찾아왔다. 괜히 와우 프레임 좀 늘려보려고 FX-8350을 달았더니 프리징과 블루스크린(0x0000000a, 0x0000006b, 0x0000001e 등 온갖 것들)이 다시 생겼다. 발열 문제라 짐작하고 지난 글에서 케이스를 바꿔봤지만 빈도가 덜할 뿐 프리징 자체는 일어났다. 그런데 주목할만한 점으로 와우를 오랫동안 켠 상태에서 이것저것 인터넷 브라우저를 켠다거나 동영상을 본다거나 하는 다중 작업에서 주로 프리징이 일어난다. 몇가지 체크를 해봤다.

 첫째, CPU 초기불량 : CPU는 초기불량이 드물다. 마지막 순간까지 보류. 
 둘째, CPU 발열 문제 : 바다 2010을 달았고 케이스도 괜찮아 온도에 이상이 없다. 
 셋째, 보드 문제 : 다른 이상으로 리퍼를 받아서 확률이 적다. 보류. 
 넷째, 케이블 이상 :  모든 SATA 케이블을 다 교체했으나 변함없음.
 다섯째, VGA 문제 : 작업시 55도를 넘지 않아 별 이상이 없어보였으나 와우를 하면 이러니 VGA 문제일 확률이 없지는 않은 것 같다. 

 테스트에 들어갔다. 7850을 떼고 여자친구꺼 지포스 GTX 460을 달았다. 유의미한 변화가 있었다. 역시 와우는 지포스가 더 빠릿하다...........는 지금 중요한 게 아니고 컴퓨터가 블루스크린/프리징 되지는 않았으나 1시간 이상 사용시 와우와 하스스톤, 브라우저를 동시에 켰을 때 커서를 옮기기도 힘들 정도로 엄청난 버벅거림이 느껴졌다. 같은 상황에서 발열이 50도선에서 머무르는 라데온을 썼을 때는 컴퓨터가 프리징되고, 70도를 오가는 지포스는 버벅거린다는 차이는 있으나 우선 이상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이 중요하다. VGA는 용의선상에서 지워도 될 것 같다. 와우나 하스스톤이 지금 사양에서 그렇게 무거운 게임이 아니다. 버벅거림이 있을 때 CPU 점유율은 40%도 넘지 않았고 램도 50% 정도밖에 사용하고 있지 않았다. 정상적으로 fx 8350을 지원할 수 있도록 바이오스 업데이트도 했다. 그냥 보드의 한계인가?

ASROCK 870icafe r2.0 사진. 요새 나오는 보드에 비하면 전원부가 부실한 편이다.




















 우선 구글링을 통해 나랑 같은 CPU와 보드를 쓰는 사람 중 문제가 일어난 사람이 있는지 검색을 해보았다. 글이 딱 하나 보였는데 역시 비슷한 프리징 증세였고, 답변은 없었지만 자문자답으로 990fx 칩셋 메인보드로 바꿨더니 괜찮아졌다는 말이 있었다.

 커뮤니티에도 자세한 상황을 적어 질문을 올렸더니 메인보드 전원부가 발열을 감당하지 못하는 거라는 답변이 달렸다. 870번대 저가형 칩셋을 쓰는만큼 설계전력 95w 데네브를 쓰는데는 지장이 없었어도 125w 전력-발열괴수 fx 8350엔 무리가 있을 수 있다는 의견이었다. 그럼 CPU와 VGA의 온도를 체크하며 프리징을 재현해보기로 했다. 케이스 전면/상부 팬을 정지시켰다. 20분이 지나도 CPU는 60도, VGA는 70도 선에서 멈췄으나 블루스크린이 일어났고, 메모리 덤프 과정에서 아예 시스템이 다운되어 멈춰버렸고 메인보드 방열판이 손도 데기 힘들 정도로 뜨거워졌다. 원인은 메인보드의 발열이었다고 봐도 될 것 같다. '스팀 세일 안녕..' 눈물을 흘리며 970번대 칩셋을 사용하는 보드를 새로 주문했다. 여자친구가 아무말 없이 돈을 보태주어서 위안이 되었다. 엉엉 

새로 산 ASUS M5A97 EVO R2.0. 좀 더 튼실해보인다.





















 이번에도 퀵비 내기는 싫었고, 용산 가기도 싫어서 택배로 주문한터라 제품은 내일 도착할테니 프리징이 완벽히 해결될 것인지는 모르겠다. 6핀 전원 하나 들어가고 팬이 두개지만 저발열 저소음인 7850은 잘 뻗고, 6핀 전원 두 개 들어가는 팬 하나짜리 고발열 고소음 GTX 460은 견디는 이유도 잘 모르겠다. 추측컨대 7850이 팩토리 오버클럭 제품인 탓도 있겠고 라데온은 묻지마 프리징 겪은 사람이 꽤 될 정도로 까탈스럽고 지포스는 죽기 직전까지 묵묵히 일하는 놈이라 그럴 거라는 예상만 할 뿐이다. 

 인텔 i4670 + ASUS H87-PRO STCOM이 현금결제하면 퀵비 포함 40만원이면 사고 남는데 보드값이라도 건지려다 결론적으로 지출한게 CPU 20만원, 보드 12만원, 케이스 5만원, 쿨러 3만원 퀵비 빼고도 40만원 똑같이 들었으니 내가 미친 게 틀림없다. 오늘 밤도 이렇게 울다 잠이 든다. 

2013년 11월 23일 토요일

산 넘어 산 : 데네브 955 -> 비쉐라 FX 8350 업글기


 작년에 램을 8기가로 올렸고, 봄에 라데온 7850을 샀고, 저번달에 SSD를 샀다. 게다가 고장난 스피커를 새로 사서 내 통장은 궤양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러나 오랫만에 다시 잡은 와우가 문제였다. 내 데네브 955는 25인 레이드에서 20프레임 밑에서 놀았고 나는 화가 났다. AM3+보드를 쓰고 있던터라 선택지는 두가지였다. 데네브만 팔고 비쉐라 8350으로 바꾸느냐(20(구매)-7(판매)=13만원), 보드까지 다 팔고 인텔로 옮기느냐(37-10=27만원). 항상 생각하지만 와우를 하려면 인텔-지포스 조합을 써야한다. 중저사양 이상 게임에서 AMD CPU는 쿼드코어건 옥타코어건 듀얼코어 인텔 제품만도 메리트가 없다. 그러나 이번에도 비용의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비쉐라 8350를 장바구니에 넣었다. 또 생각해보니 20년된 금성 냉장고 소리나는 AMD 기본 쿨러를 다시 쓰고 싶지 않았다. 저가형 끝판왕 바다2010 쿨러도 같이 담았다. 용산 직접 가기 귀찮아서 퀵서비스로 배송을 받았다.

'안녕 데네브야' 하면서 이 사진을 찍을 때만 해도 사건이 이렇게 커질 거라고 예상할 수 없었다.

























 바다 2010 쿨러는 메인보드를 들어올려서 쿨러 지지대(사진상 쿨러 밑 빨간판) 전체를 바꾸는 구조라 귀찮아서 안 샀던건데, 간만의 의욕이 큰 화를 불렀다. 보드에 연결된 모든 케이블들을 다 제거하고, CPU를 바꾸고, 새 쿨러를 장착했다. 예전 문방구에서 2500원짜리 미니카를 조립할 수 있던 유년기를 보낸 사람이 드라이버 사용법을 잊지만 않았으면 할 수 있다.

 그러나 다시 연결을 하던 중 메인보드의 SATA 슬롯 하나가 인식이 안되는 것을 발견했다. cmos에선 인식을 못하는데 윈도우에선 인식이 됐다 안됐다 하는 기현상이다. 지금까지 asrock꺼 메인보드를 5개를 샀는데 그 중 4개가 문제가 생겨서 AS를 받았었고 (내장랜이 문제를 일으킨 경우가 두번, 부팅 직후 프리징 두번) 이제 다섯번째 AS를 받으러 갈 시간이다. 용산에 또 가기 너무 귀찮아서 슬롯 하나 버리는 셈 치고 안갈까 생각도 해봤지만 언젠가는 다른 고장을 일으킬 ass-rock 보드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새겼다. 무상보증기간은 소중하다. 그리고 메인보드는 기가바이트를 써야한다.

 월요일 일찍 출발해 리퍼 보드로 교환받았다. 대부분의 컴퓨터 부품들은 직접 방문시 수리 대신 리퍼로 AS를 진행한다. 특히 보드같이 이것저것 기능 많이 들어있는건 얼핏 생각해도 일일이 그 자리에서 점검해 문제있는 부분 수리해주는 대신 리퍼 제품을 주는 것이 속 편할 것 같다. 용산 간 김에 sata 케이블도 다시 싹 사왔고 집에 돌아와 컴퓨터를 다시 조립했다. 그런데 케이스 측면 쿨러와 파워에서 나오는 케이블을 연결하는 케이블 상태가 메롱이라 잘 들어가지도 않고, 기껏 끼워놓으니 덜덜 거리며 쿨러가 돌아간다. 측면 쿨러 하나 새로 사야겠다 생각하며 빼려니 안 빠진다.......어? 철제 자로 후벼가며 겨우 뺐더니 진이 빠진다.  

 사태가 거기서 끝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발열 때문인지 와우만 켜놓으면 블루스크린이 뜨고, 자주 시스템이 프리징된다. 혹시 몰라 포맷까지 해봤지만 프리징이 계속되는 걸로 봐서 발열이 맞는 것 같다. 소거법을 사용하면 새로 장착한 CPU 이상일 확률도 있겠지만 부품 특성상 불량이 잘 없고, 리퍼받은 보드가 문제일 확률도 없는 것 같고,  FX 8350가 발열이 심하니 아마 발열 문제가 맞을 것 같다. 쿨러를 두개 정도 사서 케이스에 달까 하다 속편하게 아예 케이스를 사기로 했다. 연식이 꽤 된 케이스라 요즘 나오는 쿨러 덕지덕지 케이스보다 발열에서 불리하긴 하다. 며칠동안 시달린 내 꼴을 본 여자친구가 보다못해 자기가 사준다고 장바구니에 넣으란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우선적으로 케이스 쿨러가 4개 이상 달려있는 케이스를 골랐고 GMC V1000 팬텀, 잘만 Z5 을 놓고 고민했는데 들려오는 소식으로 브라보텍이란데서 나오는 스텔스 EX가 괜찮댄다. 보통 미들타워보다 커서 처음엔 별로 마음에 안들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빅타워면 내부 공간이 많아서 선정리 안해도 될 것 같아서 냉큼 질렀다. 이미 성질이 날카로워질대로 날카로워져서 케이스도 퀵으로 바로 받았다. 

 다음은 재조립기. 자세한 스펙이나 상세 사진은 광고쟁이들이 잘 올린다.



 미들타워 케이스 뒤 스텔스EX가 확실히 높고 크다.


 기존 케이스 내부. 분해를 시작하자.


 파워를 분리했다. 꼬불꼬불하고 징그러운 케이블들.


 메인보드를 떼어내다 참사 발생, 스페이서가 나사에 붙어버렸다. 저러면 새 케이스에도 안들어가서 어떻게든 분리해야 한다.


 홍성흔의 좌중간 타구를 낚아채는 조동화처럼 번개같이 철물점에 달려가서 라디오 펜치 같은 거 주세요 그러니까 아줌마가 시계 드라이버 세트를 주며 라디오 고치려면 이런 게 필요하단다. 나사랑 스페이서가 붙어서 그거 잡고 떼낼 공구가 필요하다고 설명을 하다 표정 보니 백날 설명해도 못알아들을 것 같아서 '뻰찌 비슷한거' 보여달라고 해서 플라이어삼.  


잘 안쓰더라도 공구세트가 있으면 좋겠다. 분해의 역순 조립을 시작


SDD를 하드 거치대에 고정시킴

                          
하드를 끼웠다. 


 요새 나오는 케이스들은 파워를 하단에 장착하는 경우가 많다. 파워 팬은 흡기라 케이스 하단에 먼지 필터가 없으면 먼지를 다 들이마시니 팬을 위로 가게 하는 것이 낫다.


 보드를 고정시킴


 옆판 모습. 우측 상단에 보드 쿨러 지지대가 보이는데 사제 쿨러 쓸 사람들은 보드 안 떼고도 달 수 있음. 


 공간도 넓은데 선정리를 귀찮게 왜 함 


 케이스 옆판이 아크릴이라 지저분해보여서 잠깐 선정리 다시 할까 고민했지만 난 이미 모든 기력을 소진했음. 

 아무튼 이렇게 시스템은 완성되었고, 이젠 본격적으로 CPU 업그레이드 후기를 적자면 우선 퍼포먼스 부분은 기대한만큼도 못했다. 특히 와우는 그동안 내부적인 업그레이드는 있었더라도 워낙 오래된 클라이언트라 멀티코어 지원이 시원치 않고, CPU 클럭에 영향을 많이 받는 게임이라 4코어 3.2 ghz 데네브나 8코어 4 ghz 데네브나 큰 차이가 있을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옵션이 미세하게 조정된 것을 감안해도 25인 레이드에서 각종 이펙트 많은 구간 평균 18~20프레임에서 22 정도로 바뀌었을뿐 안정적인 30+ 프레임은 나오지 않았다. 가격 면에서 비교해보면 지금 메인스트림급인 인텔 i5 4670과 하이엔드급인 AMD FX 8350은 가격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인코딩이나 배틀필드4 정도에선 코어 깡패 8350이 더 앞설지 모르겠다만, 내가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도 인텔 최적화에 더 신경쓸텐데 의미가 없을 것 같다. 즉 벤치에서 보여주는 수치 외 실제 체감은 그다지 없는 업그레이드였다. 두세대 (불도저를 비쉐라 이전 세대라 치면) 전 메인스트림 CPU와 현세대 하이엔드 CPU의 차이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AM3+를 버리지 않는다면 한계가 명확할테고, AM3+를 버려도 인텔과의 격차를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다. 내년에 나올 스팀롤러에도 완전히 기대를 접었다. 

 발열은 아이들 40도 로드시 50도 정도로 이전 데네브와 비슷한 수준이다. 동일 시스템 하에 발열을 더 잡으려면 쿨러 돌아가는 소리를 감내해야 해서 그러고 싶지도 않다. AMD 기본 쿨러는 무시무시한 굉음을 내서 내가 하고 있는게 게임이 아니라 우주선 엔진이라도 만들고 있는건가 싶을 정도인데, 그에 비하면 바다2010은 조용해서 좋다. 이만큼 가성비 좋은 사제 쿨러를 찾기도 어렵다.

 짧은 요약

 1) 가성비고 뭐고 게임할거면 인텔-지포스가 답이다
 2) 중급형 이하 메인보드는 기가바이트
 3) 바다2010 좋아요 - 근데 저거 쿨러 위치 반대로 단거임 

 그 외 반전

 와우켜놓고 스팀켜니 갑자기 블루스크린이 또 보여 식겁했으나 램을 다시 꽂아준 뒤 아직까진 잠잠하다. 지친다 지쳐. 

2013년 11월 15일 금요일

크롬 즐겨찾기 복원하기

 윈도우 7에서 가능하고 이전 버전의 윈도우나 IE는 모르겠음.

 1. C:\Users\유저 이름\AppData\Local\Google\Chrome\User Data\Default 디렉토 리로 들어간다.

 2. Bookmarks.bak 파일(Bookmarks 파일의 자동 백업 파일)을 찾는다. 속성을 눌러봐서 대충 복원하길 원하는 시점에 만들어졌다면 Bookmarks를 삭제하고 Bookmarks.bak의 이름을 Bookmarks로 바꿔준다음 크롬을 다시 실행하면 끝.

 3. 원하는 복원 시점을 선택하기 위해선 Bookmarks.bak 오른쪽 마우스 클릭 -> 속성 -> 이전 버전 -> 원하는 시점의 버전을 선택 -> 복원 -> Bookmarks 삭제 -> Bookmarks.bak를 Bookmarks로 다시 이름 변경

2013년 11월 7일 목요일

최근 한 게임들 : 하스스톤, 디아블로3, 디비니티 : 드래곤 커맨더, 더 위쳐 2

 1. 하스스톤 : 워크래프트의 영웅들

 워크래프트 어드벤쳐가 엎어졌고, 스타크래프트 고스트도 날아갔고, 블리자드 올스타즈는 언제 나올지 모르겠지만 다행히 하스스톤은 배틀넷 앱과 함께 클로즈 베타를 시작했다. 클베라지만 많은 초대장이 뿌려졌고, 현금으로 인게임 아이템들을 구입할 수 있으니 정식 출시도 머지 않은 듯하다. 블리즈컨 끝나고 바로 오픈베타가 열리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상해본다.

 타 TCG 게임과 하스스톤을 비교해보면, 이 게임의 빠른 진행, 직관적인 카드, 단순한 플레이 방식을 들 수 있다. 이제 막 열린 게임이니 덱의 종류가 부족해 그렇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가장 단순한 형태의 예외도 직업별 비밀(함정) 카드 외에는 찾기 어렵다. 매직 더 개더링이나 유희왕 계열이 도타처럼 정교하고 복잡하다면 하스스톤은 단순하고 예외가 없는 편인 lol에 비교할 수 있겠다. 얻기 힘든 직업별 카드도 중요하지만 보편적으로 쓸 수 있는 공용카드를 제작을 통해 비교적 손쉽게 구할 수 있다는 것은 장점이다. 돈 없으면 아예 시작도 못하는 본격 자본주의 장르인 TCG에서 이 정도면 무과금 유저도 할만하다. 게다가 일퀘와 승리 보상을 통해 캐쉬질 없이도 진입할 수 있는 투기장 시스템으로 누구나 동등한 조건에서 게임을 할 수 있다. 이 정도 배려를 둔 게임에서 무과금으로 못해먹겠다 싶으면 그냥 취향에 안맞는 게임이라 생각하고 턴을 넘기는 것이 낫다.

 추가로 배틀넷 친구와의 대화 외엔 간단한 인삿말 매크로만 있지 채팅 시스템이 없다는 점은 극찬받아 마땅하다. 단언컨대 채팅은 부분유료화 게임에서 가장 불필요한 컨텐츠다.

 2. 디아블로3 1.08 버전

 처음 디아블로3가 출시되고 가장 큰 문제점은 일단 만렙이 되어 불지옥에 진입하면 어마어마한 장벽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근접 캐릭터는 딜을 하기도 전에 순삭되기 일쑤였고, 원거리 캐릭터도 이게 핵 앤 슬래쉬 게임인지 탄막 슈팅 게임인지 모를 정도로 난이도가 높았다. 어렵게 몇날며칠 파밍을 해서 액트1을 쉽게 클리어할 수 있는 장비를 갖춰도 액트2 가자마자 순삭되고, 그렇게 액트2에서 개고생을 해가며 3로 넘어가도 처음 등장하는 몹에게 한 대 맞고 울다지쳐 잠이 드는 신기한 게임이었다. 오기가 생겨 너프전에 깬다 그러며 기어코 클리어하긴 했지만 두 번 할 엄두도 안났고, PvP 컨텐츠도 한참 늦어져 골드들을 정리하고 쳐다보지도 않는 게임이 되었다.

 그 후 개념 패치들을 했다는 말은 들었지만, 심시티도 패치해봐야 버그밖에 안생기던데 이것도 똑같겠지 생각에 안하다가 하스스톤하려고 배틀넷 베타 앱 깐 김에 한번 실행해봤는데, 어 이거 생각보다 괜찮네? 자세한 점은 패치 로그를 보면 나와있을 테지만 대략 정리하면

 1) 정복자 레벨이 생겨 만렙 후에도 추가적으로 각종 보너스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2) 괴물 강화 시스템으로 난이도와 보상을 비례하게 조절할 수 있다.
 3) 좋은 스탯을 가지는 계정 귀속 제작템을 만들어 파밍에 도움이 되게 하였다.
 4) 디아블로2의 우버 디아블로와 비슷한 퀘스트를 통한 악세서리 제작 시스템이 생겼다.
 5) PvP 컨텐츠를 추가했지만 이건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에겐 아웃 오브 안중

 정도인데 이런 패치의 결과로 할만한 게임이 되었다. 패키지 게임의 가장 큰 장점은 쳐박아놨다가도 언제든 다시 꺼내 할 수 있다는 것이니 한번쯤은 다시 해볼 만 하다.

 3. 디비니티 : 드래곤 커맨더

 스샷만 보곤 괜찮을 것 같아서 과감히 질렀다. 두근두근하며 싱글 플레이를 시작해서 스타크래프트2의 싱글플레이를 연상시키는 내정 메뉴에 들어간 것까지도 좋았다. 그러나 첫 전투를 시작하니 스타크래프트2가 아닌 토탈 어나이얼레이션이나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2 수준의 -세부묘사는 그보다도 못한- 그래픽이 보였다. 그것만 실망스러웠다면 모르겠지만 전투 자체가 재미없다. 플레이어는 유닛 생산과 공격에서 벗어나 드래곤으로 변신해 전투에 개입할 수 있지만, 자동 락인이 지원되지 않는 드래곤 조종 인터페이스마저 후지니 별로 더 하고 싶지가 않았다. 이 게임은 하는 사람이 얼마 없는지 제대로 된 공략이나 리뷰조차 찾기 힘든데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4. 더 위쳐 2 : 왕들의 암살자

 다행히도 디비니티 : 드래곤 커맨더보다는 나은 게임이지만, 더 치명적인 단점도 있다. 스팀에서 설치하고 실행하면 스크립트 에러를 뱉고 들어가지지 않는다. 구글에서 검색을 통해 특정 파일을 붙여넣기하는 방식을 거치면 제대로 플레이할 수 있지만 저런 큰 버그를 안 고쳐놓고 있으면 좋은 말 하기가 힘들다.

 다른 면은 그냥저냥 괜찮은 게임이지만 이 게임도 전투에 대해서 좀 짚고 넘어가야겠다. 기본적으로 전투가 강화된 페이블 같은 느낌인데, 전투 비중이 큰 만큼 장르는 다르지만 데빌 메이 크라이 시리즈와 한번 비교를 해보자. 처음 보스를 만나면 위쳐2나 데메크나 둘 다 친절하게 걔는 약점이 어디에요 이야기를 해주든지 묘사를 해주든지 한다는 건 똑같다. 그러나 데메크는 확실히 약점에 대해 표시든 판정이든 부각시켜주고, 이 게임은 뭐 피격 판정이 흐리멍텅한지 나는 거기 친다고 치는데 계속 어긋난다. 플레이어가 개발자가 의도하지 않은 행동을 할 때도 뭔가 이상하다. 가령 싸우고 있던 장소 주변 오프젝트가 무너져내리며 이동을 해야할때 컷씬이 나온다면, 데메크는 누가 봐도 여기로 가라고 강조를 해주는데 이 게임은 어디로 가야할지 애매하게 그냥 뭐 건물이 무너지는 모습만 보여준다. 그 후 이동하다 이유도 모르고 끔살을 당한 후에야 아 다른데로 가라는 이야기겠구나 하며 보스전을 다시 시작하게 되는데, 타격감이 신통치도 않은데 레벨 디자인도 마음에 안드니 이래서 쌀 말고 밀가루 주식인 사람들이 만든 액션RPG 하기 전엔 큰 기대를 말아야겠다고 다시 되뇌여본다.

 전술했듯 다른 면에서는 불만을 느끼지 못했다. 레벨 디자인을 까긴 했지만 스팀 세일과 함께라면 괜찮은 게임이고 사실 PC 게임에서 비슷한 장르에서 이만큼 만든 것도 찾기도 어렵다. 한글패치 제작팀이 공식적으로 제작사 인증을 받았는데, 재미없었다면 굳이 그런 수고를 하진 않았을 거 아닌가? 

2013년 10월 8일 화요일

시즌3 롤드컵 관전평

 1. LCS 효과?

 올해부터 도입된 북미-유럽의 LCS, 즉 장기리그 체제가 팀들의 기량에 얼마만큼 영향을 끼쳤는지 계량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다만 시즌2 롤드컵에서 북미팀들은 1승 7패, 유럽팀은 8승 9패를 기록했으나 시즌3에선 북미 6승 13패, 유럽 20승 15패(다른 방식의 플레이오프를 통해 올라온 게이밍기어는 유럽팀으로 분류하지 않았음)로 나름 의미가 있는 성적을 거뒀다. 사족으로 양대륙간의 상대 전적은 시즌 2 1승 1패 동률, 시즌3 북미 3승 6패로 역시 유럽이 한발자국 앞서 있는 모습이긴 하다.

 2. 개막 전 예상과 결과

 개막 전엔 한국과 중국 팀들이 우승 후보로 꼽혔고, 거기에 대항마 격으로 가마니아 베어스가 TPA의 재림이 된다면 모른다 정도의 분위기였다. 결론만 말해 우승은 SKT1, 4강에 한국 2팀, 중국 1팀, 유럽 1팀이 올라왔으니 크게 틀린 예상은 아니었다. 8강으로 놓고 봐도 한국 2팀, 중국 2팀, 유럽 2팀, 북미 1팀, 대만 1팀인데 한국이 3팀이 아니라는 거 빼곤 크게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유럽과 북미를 같은 쩌리로 보던 게 틀렸다면 그건 맞는 이야기지만..

 3. 양이메타에 대한 위정척사메타의 우위

 롤드컵은 메타와 메타의 충돌이라는 클템의 말대로 한국에서 잘 안 쓰이던 챔프나 메타가 나왔고 재미를 보기도 했다. 아트록스 정글, 텔포 카사딘, C9의 부자 정글러 메타 등 새 문물을 두고 한국팀이 선전/고전할 때마다 고인에서부터 선진문물까지 재평가가 반복되었다. 그러나 강한 라인전 - 정글러를 동반한 빠른 타워 철거 - 시야 확보 - 스노우볼링 극대화로 이어지는 한국의 위정척사 메타 앞에서 초반에 승부를 거는 아트록스나 라인전이 약한 텔포 갓사딘은 부담스러운 카드였다.    

 4. 생각보다도 더 강했던 SKT T1

 어느 라인 하나도 약점이 없었고, 로얄과의 결승전에서 동전 던지기에서 이기고도 퍼플팀을 선택할 정도로 챔프폭도 넓었다. 모든 라인이 다 잘 풀리는데, 서포터 푸만두의 슈퍼 세이브까지 계속 나오니 한두번 무리시에이팅이 나오는 것 같아도 15승 3패라는 압도적인 결과가 나왔다. 임팩트가 버티는 탑라인이 T1에서 그나마 약한 라인이라는 얘기도 뭐 매덕스-글래빈-스몰츠 중에 그나마 스몰츠가 제일 해볼만하다는 말이랑 똑같다. 사실 결승전 용산가서 봤는데 2세트에서 로얄 카사딘이 쿼드라킬먹을 때 피자먹다 체할뻔했음 헉헉

 5. 과거의 영광에 취한 자는 죽은 자다 - 최연성 前 프로게이머

 삼성 갤럭시 오존이 조별 예선에서 광탈하고, 시즌1 퇴물쯤으로 여겨지던 프나틱이 4강 간 것 정도가 이변이라면 이변일텐데 오존이 떨어진 이유야 당연히 '못했기 때문에'지만, 사족을 붙이자면 인터뷰에서부터 보이던 자만이 화를 불렀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조별예선 동안 오존이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준 경기는 갬빗과의 2차전 정도에 불과했고, 챔프 폭이 좁은 것을 저격당한 다데는 내내 팀의 구멍이었다. 그렇다면 오존의 자랑인 봇라인이 게임을 이끌어 갔었어야 했는데, 대회 직전 큰 패치로 메타가 변한 와중에 임프가 삼위일체 기반 원딜을 하지 못한다는 것도 컸고 마타는 평소처럼 라인전에서 킬을 떠먹여주지 못했다. 게다가 미드가 연신 털리니 맵장악에도 어려움을 겪고 역으로 끊기기 일쑤였다. 요컨대 끝나고보니 뭐 믿고 그렇게 자신감 넘쳤는지 알 수가 없다. 반면 서킷 포인트 제도의 맹점으로 진출했다던 혹평을 듣던 나진 소드는 8강에서 갬빗 게이밍을 꺾고, T1에게 2패를 안긴 유일한 팀으로 남았다.

 6. 좋았던 점

 클라이언트 오류나 버그로 인한 경기 중단이 시즌2처럼 잦지 않았던 걸 가장 먼저 꼽고 싶다. 조별예선 후에는 경기를 하는 팀의 국적에 따라 어느 정도 해당국 시청자들을 감안해-특히 아시아권- 경기 시작 시간을 조정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는데, 이건 내가 사전 공지된 일정들을 잘못 확인한 것일수도 있으니.. 조별예선에선 풀리그 방식으로 경기수와 일정을 확대한 것도 볼거리가 많아지니 좋은 일이었다. 살짝 루즈한 감도 있었지만 어차피 본격적인 재미야 토너먼트 들어가서 나오는 거 아닌가.

 7. 보완할 점

 가령 가마니아 베어스 같은 팀은 팀은 8강 직행권을 받아 조별예선에 출전하지 않았으나 2경기만 치르고 집에 가야했다. 3경기하고 집으로 돌아간 C9도 마찬가지다. 각 지역별 최다 서킷 포인트 획득팀에게 주어지는 혜택이라지만 8강 직행권은 과도하게 크다. 월드컵의 '시드' 개념처럼 최다 서킷 포인트 획득팀들끼리 조별 예선에서 만나지 않는 정도로 배정하는 정도가 적당하다고 본다.

 풀리그 조별예선 -> 토너먼트 본선으로 계속 갈거라면 장기적으로는 16강 4개조 방식으로 대회를 확대하는게 더 나아보인다. 게임의 질을 위해선 더블 엘리미네이션 방식이 더 낫다고 생각하지만 후술할 블루/퍼플 진영 문제가 마음에 걸린다.

 더 큰 문제는 동일한 조건에서 블루팀이 퍼플팀보다 항상 밴픽에서 자유롭다는데 있다. 블루팀이 첫번째 픽을 하게되니, 어느 패치에서나 가장 핫한 OP챔프가 있기 마련이고 퍼플팀이 그 챔프를 밴하지 않으면 블루팀이 가져가는 건 기정사실이다. 따라서 퍼플팀은 밴카드에서 적어도 한 장 이상 손해를 보고 시작하는 셈이고 밴카드의 소모는 바로 저격밴 불가로 이어진다. 그런 중요한 변수를 만드는 블루/퍼플팀 배정을 동전 던지기로 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승패 동률 상황에서 맞이하는 마지막 세트는 서로 블루/퍼플팀을 번갈아가면서 했지만 승부를 가리지 못해서 일어나는 것이니만큼 블라인드픽으로 하는 것이 공정하다.

 TSM 팬보이들의 극성을 빼면 딱히 장건웅이나 레지날드같은 눈맵귀맵 치터놈들도 없었지만 어지간하면 외부와 차단되는 부스도 만드는 게 좋을 것 같다. 롤드컵이나 올스타전 말고는 쓸데가 없어서 그런진 몰라도 LCS에서 쓰면 되지 뭐.

 마지막으로 어지간하면 3,4위전도 했으면 좋겠다. 사실 어느 토너먼트나 결승전보다 4강이랑 3,4위전이 더 재밌는 게 다반사아닌가?

 8. 총평

 비웃음의 대상이던 TSM조차도 미드 뺀 나머지 라인은 경쟁력 있을 정도였고, 사실상 초청팀인 게이밍기어나 미네스키 정도를 빼면 전반적인 수준 향상이 돋보였던 대회다.

2013년 9월 9일 월요일

흑석동/서울대입구역쪽 밥집 정리

 안녕하세요, 날씨가 제법 선선해졌어요~ 오늘은 xx에 대해 알아볼까해요~ 로 시작되는 파워 블로거지들의 포스팅을 빙자한 광고질을 보면 짜증부터 나는게 인지상정이다. 이 블로그는 허접한 레이아웃만 봐도 짐작하겠지만, 절대 광고나 협찬 따윈 들어올리 없는 곳이니 그런 쪽에선 안심하고 봐도 된다.

이 이모티콘 나오면 리뷰 잘 읽다가도 불신감이 든다













 집에서 밥해먹는 게 한 1년에 두번이면 많은 나도, 수많은 음식점들을 모두 가본 건 아니지만 일단 가본 곳 중에서 괜찮은 곳만 추렸고 아닌 곳은 아예 목록에도 안올렸다. 점수는 업종의 특성과 가성비만 고려해 상대적인 20~80 스케일(평균 50)을 적용했다. 글쓴이의 취향이 육류에 싸구려 입맛이라 다른 메뉴엔 어느 정도 박하다는 것을 감안하고 읽어주었으면 한다. 대충 흑석동에선 10년, 서울대입구쪽에선 4년 정도 다녔고 전국단위 프렌차이즈 업체는 어차피 거기서 거기인거 되도록 배제했다. 위치 정보 같은 건 생략한다.

 1. 식대 5~6천원대 식당

 흑석동 : 저 분야의 절대강자 단비분식이 조선족 직원 쓰기 시작하며 훅가고 재개업한 이래 대강 큰별식당, 우리집, 1-2-3식당 3곳이 쓰리톱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60점. 정수한식은 10년전이나 지금이나 50점 정돈 되지만 백반 외 다른 게 다 맛없다. 양쉐프, 치폴레옹에서 파는 닭 스테이크도 나쁘진 않은데 먹고 나면 비리다.

 서울대입구역쪽 : 그나마 화롱 두루치기랑 참생선구이(2014.9월 기준 사라짐)가 50점, 옛날집생고기김치찌개해물찜이 40점 정도는 받을 수 있겠다. 두부고을(2015.4월 기준 업종변경)은 깔끔한데 저 가격대는 아니었던듯. 화롱 두루치기 자리에 생긴 화로애락이라는 곳의 점심메뉴(돼지 불백, 제육, 삼치, 고등어)가 6,7천원 선인데 좋았다. 70점. LG베스트샵 옆에 생선구이&찌개집이 2인 기준 15000원 정도였는데 살짝 비싸지만 괜찮았다. 60점. 얼큰이찌개마을도 그냥저냥 50점.

 2. 보쌈

 흑석동 : 명문본가왕족발과보쌈 이라는 긴 이름의 가게가 진리다. 80점 만점. 배달 전문이기 때문에 홀에서 먹으려면 개성보쌈((2014.9월 기준 사라짐)이나 중대 후문 가야 정도가 고려해볼만한 대상인데 각각 50,60 정도는 줄 수 있겠다. 항아리된장족발의 보쌈정식도 싼 가격을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수준. 50점.

 서울대입구역쪽 : 없다.

 3. 족발

 흑석동 : 시장 안쪽 명동족발 괜찮다. 70점. 출구쪽 영광설렁탕 왕족발은 내 입에는 잘 맞지 않았다(35점)

 서울대입구역쪽 : 최희성고려왕족발이 족발계의 명문본가왕족발과보쌈급임(80점), 오약족발((2014.9월 기준 이름 바뀜)이라는 곳이 괜찮았지만 이상하게 날마다 편차가 있었다. 따라서 점수를 줄 수가 없다.

 4.  치킨

 흑석동 : 딥테이스트 마늘치킨 원톱(80점). 단점은 홀에서 먹을 때 주인아저씨가 결벽증삘이 충만하다. 순살을 찾는다면 쭈노치킨(70점)

 서울대입구역쪽 : 내이름은짱닭이 싸고 괜찮았음. (70점)

 5. 피자

 흑석동 : 가격 대 별로 잘 갖춰져 있다. 피자보이시나(70점), 도레미피자(50점), 이마트피자(60점), 슈퍼피자(70점) 혹은 기존 프렌차이즈. 흑석시장 피자 ▶◀

 서울대입구역쪽 : 이석민 피자 (50점) 혹은 기존 프렌차이즈.

 6. 저가형(수입산) 고기집

 흑석동 : 중대 정문 앞 대청-꿀꿀이 5형제-돼지 방앗간 쓰리톱인데 먼옛날 물어본 결과 어차피 고기 다 같은 데서 받는다고 했으니 불판이 마음에 드는 대청을 추천한다. 60점. 서래갈매기 폐업해서 더더욱 경쟁자가 없어보임.

 서울대입구역쪽 : 관악구청쪽 갈매기 조나단의 갈매기살(50점). 나머지 메뉴는 비추.

 7. 일반 국내산 고기집

 흑석동 : 엉터리생고기 본점(70점). 근데 여기 이제 창원에도 지점있던데 전국단위 프렌차이즈로 분류해야하나 잘 모르겠음.

 서울대입구역쪽 : 봉천동생고기(70점). 엉터리생고기 분점이 최근에 다시 생겼는데 본점과 메뉴 구성이 살짝 달라보였다.

 8. 고기부페

 흑석동 :  에이소가 먹을만은 했는데 오래전에 폐업함. 삼겹살 무한리필집 숯부래(40점)는 그냥 그렇다.

 서울대입구역 : 착한 돼지(40점)가 싼 가격을 생각하면 양호하다. 꼭 '고기 부페'가 좋다면 차라리 노량진이나 롯데백화점쪽 하이미트를 추천. 이 글에서 유일하게 가는 걸 말리고 싶은 가게도 있는데 서울대입구역 투잇플레이스(0점).

 9. 순대

 흑석동 : 흑석시장 진미순대(70점), 순대나라(70점) 모두 훌륭하다. 순대나라 순대가 약간 더 간이 되어있는 느낌.

 서울대입구역쪽 : 순대곱창을 먹으려는 게 아니면 프렌차이즈 외 없음.

 10. 돈까스

 흑석동 : 흑석시장 7천원짜리 무한리필 돈까스집(70점). 옛날엔 김밥천국 옆에 '흑석돈까스'였나 '흑석동돈까스'였나 전문점 있었는데 거기보다 여기가 더 맛있다. 가게 앞에 생긴 다른 돈까스집 (과거 정육점)도 돈까스는 대동소이한데 떡갈비 맛은 좀 다르다(65점). 쌀국수, 돈까스 같이 하는 허수아비도 나쁘지 않다(55점). 중대 정문쪽 돈까스집은 그냥 그랬다 (40점)

 서울대입구역쪽 : 서울대입구역 사보텐을 종종 갔는데(60점) 가게가 바뀐건지 이름이 변한 것 같다. 그 후에 한번 가봤는데 그냥 그랬다(40점) 맘스충무까스도 괜찮지만(50점) 가격도 양도 애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11. 횟집

 두 동네 다 노량진이 코앞이라 논할 실익이 없다. 다만 서울대입구역엔 참치집이 신기하게 많은 편이다.

 12. 오리

 흑석동 : 시장 쪽에 하나 있는데 가본 적이 없다.

 서울대입구역쪽 : 유황오리진흙구이, 풍년옥 70점.

 13. 중국집

 흑석동 : 안동장(60점), 배달속도의 중대반점(50점), 홍혜(50점)는 가게 이전 후에 홀에서 먹을 때만 실익이 있다.

 서울대입구역쪽 : 배달 불가능한 곳은 외래향, 타이펑(70점), 배달 가능한 곳은 우성각(50점), 라이라이(근 1년간 배달을 시켜본 적이 없어서 평점에서 제외함), 동화반점 (40점)

 14. 기타

 흑석동 : 장군마차 닭도리탕(70점), 양평감자탕 감자탕(50점)

 서울대입구역쪽 : 완산정 콩나물국밥 (50점), 한동길 감자탕(50점)

2013년 8월 29일 목요일

세탁에 실패한 자들을 향한 컨트롤 비트

 며칠전 퇴근시간에 지옥철을 갈아타러 환승역으로 가는 중 생겼던 일이다. 스크린도어 밖의 정거장은 타려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문이 열리자 나가려는 사람과 들어오려는 승객-아줌마들-들의 충돌로 인해 옴짝달싹 못하는 상황이 펼쳐졌다. 여기서 지하철 기관사가 크나큰 오판을 저지른다. 문을 닫는다는 안내 방송 덕택에 정거장은 더더욱 난리가 났다. 무작정 밀고 들어오는 사람들과 서둘러 나가려는 사람들이 충돌하며 통로가 막혀 몇명 다칠 법한 위기가 찾아왔다. 빽 소리를 지르고 나서야 아줌마들은 정신을 차렸고 나도 무사히 나올 수 있었다. 김동리의 소설 '흥남 철수'의 한 대목을 빌어 설명하자면 "그들은 모두 이 배를 타지 못하면 그대로 죽는 것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그 아줌마들과 그에 부화뇌동한 정거장 중공군들은 그저 생각이 없을 뿐이지,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려는 악의가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만약 당시 누군가 다쳐 책임을 져야 한다면 안내 방송으로 상황을 악화시킨 기관사가 모든 덤태기를 쓸 확률이 높다. 이렇듯 생각없이 사는 자들은 자기는 의도하지 않았을지 몰라도 주위에 똥탕을 튀기게 마련이고, 여러 사람이 고생을 하게 된다. 고초를 한번 겪으면 생각을 좀 하면서 살게되면 좋겠지만 개가 똥을 참지 못하듯 생각 안하던 습관은 쉽게 변하지 않는 모양이다. 그렇게 변함없는 멍청이들을 모아보았다.


 1. 기성용 (축구선수, SNS전도사)

 소싯적 '답답하면 니들이 뛰던지(링크)'라는 임팩트있는 데뷔로 이 바닥의 기대주로 떠오른 기성용은 플레이 메이킹 능력 못지 않게 똥탕 메이킹 능력도 탁월한 선수이다. 그동안 SNS를 통해 꽤나 많은 이슈를 만들어낸 모양이지만 그의 The Shot은 역시 더욱 강렬했다. 1차로 '리더는 묵직해야 한다(링크)'는 트윗을 하고선 교회 목사님 말씀이었다며 어물쩍 넘어갔지만, 2차로 티팬티 매니아 칼럼니스트에게 비밀 페이스북 계정 발굴을 당한 것은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최강희 당시 국대 감독에게 신나게 컨트롤 비트를 날린 것이 조목조목 기사화(링크) 된 것이다. 매니지먼트사가 되도 않는 언플을 신나게 날리긴 했으나 자기네들이 생각해도 말이 안되는 소리였는지 비교적 일찍 저자세로 엎드렸다. 감독-선수간의 불화는 피할 수 없는 일이고 뒷담화도 할 수도 있다. 다만 술자리에서나 할 법한 이야기를 저렇게 신랄한 기록으로 남기면 참기 힘든 폭격을 맞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이 사건은 기성용에 대한 엄중경고로 일단락을 지었고, 징계의 경중에 대해선 팬들마다 생각이 갈리겠으나 대한축구협회가 잘한 일이 없지는 않았다.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SNS 금지령을 내리는 대신 SNS 특강(링크) 자리를 마련했다. 음주사고가 터지면 음주를 금지시키고, 폭력사건은 은폐하며, 성폭력 사건이 생기면 피해자를 사회와 격리하는 우리나라의 오랜 풍습에 걸맞지 않은 좋은 대처였다. 결혼이 기성용의 성품을 변화시킬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변화하는 척은 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의 세탁 가능성 : 반반

 2. 김동수 (前 프로게이머, 현재 팀 에일리언웨어 감독)

 김동수하면 생각나는 것은 역시 스타리그 2회 우승도 있지만 게임큐 시절 송병석과 아이들 사건이 먼저 떠오른다.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임요환 선수의 (전략적인) 플레이는 한 대 치고 싶은 스타일이다' '임요환은 게이머 사이에서 왕따다' 로 요약되는 주옥같은 찌질거림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선수 은퇴 후에 자신의 홈페이지에 게재하던 허세쩌는 관전평이라거나 스타2 초창기 기사도 연승전을 날로 삼키려 하던 것도 뭐 그다운 일이었다. 그러나 e스포츠의 중심이 스타에서 lol로 넘어가고나서 인터넷 방송 나이스게임TV에서 일하게 된 김동수는 동네 바보형 컨셉을 밀고가며 과거 이미지를 세탁하는 듯 했다. 이어서 델코리아의 스폰을 받고 에일리언웨어 팀의 감독을 맡게 되었을 때도 그의 말에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닭장이라고 불리는 게임팀의 숙소 생활은 너무나 혹독하다. 성적이 나오지 않더라도 인성을 중요하게 여기며 스트리밍 방송 등을 통해 인기있는 팀을 만들겠다는 의도는 의미가 있었다. 고정적인 스폰서도 있으니 팀만 매끄럽게 굴러가면 선수 개인으로서도 나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감독이 김동수라는 것을 잠깐 잊어버린 내 불찰이었다. 롤인벤에 올라온(지금은 고소드립에 삭제가 되었다) 최초 폭로문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요컨대 1) 프로게이머 아카데미 방송을 통해 게임단을 데뷔시키겠다는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2) 아카데미에 참가한 아마추어 게이머들에게 팀을 짜주겠다는 것도 지켜지지 않았으며 예선 일정이 촉박하니 팀을 짜달라는 참가자에게 돌아온 것은 '기다리기 싫으면 나가' 3) 6월 14일, 갑자기 첫면담을 6일 15일 15시로 잡아놓고 잠수 후 19시에 돌아온 다음에 '너희들의 열정을 테스트해보기 위함이었다. 그때까지 못 기다린 애들은 out 그러나 롤챔스 예선에 통과한 애들은 안왔어도 OK' 4) 물론 열정에는 통과했으나 예선은 통과못한 애들도 같이 팽
 저럴거면 그냥 예선 통과한 팀 스폰이나 할 것이지 전국민 오디션은 왜 하나 궁금한 것이 정상이겠지만 어차피 저 사람이 하는 일치고 이해되는 게 더 드무니 애써 노력할 필요도 없다.

 앞으로의 세탁 가능성 : 실론즈 5인팀이 MVP 오존 이길 확률

 3. 랜스 암스트롱 (前 싸이클 선수, 현재 약쟁이류 본좌)

 궁형을 받은 사마천은 사기를 썼으나, 고환암을 앓은 이 약쟁이는 사기를 쳤다. 뚜르 드 프랑스 7연패로 유명한 저 자는 단순 약쟁이가 아니라 몸통이자 밀본이었다. 팀 동료들에게 약물을 유통 및 복용 강요까지 했다. 그 동안의 악행이 낱낱이 밝혀지며 미국인이 싫어하는 스포츠스타 1위(링크)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3위가 불륜왕 우즈, 5위가 월드메타피스라는 것만 봐도 암스트롱의 위엄이 느껴진다. (여담이지만 이 리스트 2위에 오른 만티 테오도 참 재밌는 친구다 링크) 거기다 암스트롱은 동료에 의해 도핑 스캔들이 폭로된 뒤에도 정신을 못차리고 반도핑기구에 권리침해 소송을 걸었다가 기각 판결을 받고 기록삭제 처분을 받아들여야 했다. 어차피 이후 어떤 삶을 살아도 세탁이 불가능할 악질 약쟁이지만 뽀록나기 전엔 딱히 큰 사고는 안친 저 자를 리스트에 넣은 이유는 감히 지 주제도 모르고 ML 124승을 거둔 대투수 찬빈..아니 박사장님을 디스(링크)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2004년 암스트롱의 약물 의혹을 보도했다가 30만 파운드 상당의 배상 판결을 받은 영국의 선데이타임즈는 일종의 승리자라 할 수 있다. 암스트롱은 선데이 타임즈 측에 50만 파운드 상당을 토해내는데 합의했다. 아무쪼록 박사장님도 페북을 시작해서 '오늘 기분이 참 암스트롱같네요' 맞디스를 걸어줬으면 한다.

 앞으로의 세탁 가능성 : 0%

 4. 르브론 제임스 (농구 선수)

 '대다나다' 밖에 할 말이 없다. 이 친구가 코트 위에서 펼치는 이타적인 플레이와 코트 밖에서의 미친짓을 보면 같은 사람인가 의심이 될 정도다. 마이애미 히트로 이적할 때 디시즌 쇼로 엄청난 비난을 받고, 그 해 파이널에서 댈러스에게 패하자 리얼월드 드립을 쳐 사서 욕을 먹었다. 백투백 우승을 이루고 헤이터들을 실력으로 잠재울 절호의 기회였지만 르브론은 이제 때가 됐다는 듯 또 한번 클러치 빅샷을 날렸다. 경찰의 신호 통제를 받으며 역주행으로 달려 친구 제이지의 콘서트에 참석했던 것이다. 그것뿐이라면 묻힐 수 있었겠지만 그걸 지 트윗에 자랑이랍시고 올려놓고 팬들의 십자 포화가 이어지자 한다는 말이 “Whenever you’re happy and in a great place in anything, someone or something will try to put a virus in it to make it all unravel,”

 워크 에식과 인성은 전혀 관계없을 수도 있다는 좋은 예로 오랫동안 르브론의 이름이 오르내릴 법하다. 아마도 르브론의 이미지 세탁은 은퇴 후로 미뤄질 것 같다.

 앞으로의 세탁 가능성 : 하워드의 자유투 성공률

 5. 진갑용(야구선수)

 진갑용 외에도 알렉스 로드리게스, 데이빗 오티즈, 라이언 브론 등 숱한 약쟁이 겸 찌질이들은 많다. 굳이 저 선수를 픽한 것은 그의 지극한 후배 사랑 때문이다. 2002년 후배 김상훈을 아시안게임에 보내기 위해 소변에 약을 탔다는 미친 소리로 약장수 포텐을 선보인 진갑용에게 KBO가 내린 징계는 없었다. 근거 규정이 없었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이만수와 박경완 양대산맥이 있으니 진갑용이 올타임 플레이어에 들어갈 레벨은 아니지만 조용히 야구만 했더라면 약쟁이지만 훌륭한 포수였다 또는 훌륭한 포수였지만 약쟁이인게 아쉽다 정도로는 기억될 수 있었겠지만 더럽게 성질을 부려대니 약쟁이 주제에 ㅉㅉ 말이 안나올수가 없다. 최준석, 박지훈, 이택근, 유희관 그런 선수들이야 어리니 꼰대질 좀 해도 한국의 전통문화를 감안해 쌍욕할 걸 그냥 욕으로 바꿔주는 정도의 감경사유가 될 수 있지만, 더 웃긴 건 자기보다 선배인 박경완, 구대성에게 깝친 것은 물론 김성근 감독을 째려본 적도 있다(링크).

 앞으로의 세탁 가능성 : 애초에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을듯 

2013년 8월 14일 수요일

암흑기에 대처하는 팬들의 자세

 학교 부근에서 자취를 하는 나는 매년 봄마다 주정뱅이가 되어 거리를 몸으로 빗자루질하며 친구들에게 끌려가는 애들을 많이 목격한다. 대개 그네들의 주정 패턴이라는 게 다 똑같다. '나는 xx를 이렇게 좋아하는데 걔는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혹은 '나는 짱짱맨인데 왜' 에서 벗어나는 꼬라지를 본 적이 없다. 암흑기를 맞은 스포츠 팬들의 징징거림도 대동소이할 것이다. 따라서 내가 겪었던 암흑기 그딴 구구절절한 사연은 굳이 시시콜콜히 적지 않겠다. 암흑기가 오는데야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성경에서 종말이 도둑같이 온다고 하듯, 속으로는 곯고 있지만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다가 어느 순간 훅 가는 케이스도 적지 않다. 2008년 한화 이글스나 2013년 기아 타이거즈는 아주 좋은 예이다. 이렇게 한번 뻥 터진 팀이 한해만 훅 가는 경우는 드물고 대개 암흑기가 시작된다. 한시즌 일부러 탱킹하고 이듬해 좋은 픽 받고 외국인 선수 잘 뽑으면 6강은 가는 농구가 아닌 이상 좁은 국내 스포츠 판에 단기간 리빌딩 개념은 가능성도 없고 의미도 없다. 2001년부터 지금까지 삼성, SK 두 팀 중 최소 한 팀은 한국시리즈에 나갔는데 저 팀들이 탱킹을 통한 리빌딩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는가. 근래 4강권 예측에서 빠진 적이 없었던 두산도 같은 경우다. 반대로 말하면 잘나가는 팀은 계속 잘나가고 못나가는 팀은 계속 못나가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이야기인데, 얼핏 생각해도 팀 자체의 시스템이나 인프라 투자의 문제일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팀의 암흑기를 재단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십여년이 넘게 게시판을 눈팅한 결과 한가지 명료한 법칙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방법은 자신이 관심을 가지는 팀이 아닌 다른 하위권 팀의 팬들의 글을 눈팅할 때 정확성을 담보받을 수 있다. 방법은 다음과 같다.

 하위권 A팀팬 1 : 우리 팀에 지금 부족한 건 무엇일까요.
 " 2 : 무슨 포지션이 취약하니 FA나 트레이드로 甲이나 乙을 데려오면 좋겠습니다.
 " 3 : 甲을 데려오느니 차라리 丙,丁을 키우는 게 낫지 않을까요. 
 " 4 : 乙은 그 돈 주고 데려오기에 너무 비싼 것 같아요. 차라리 아껴서 시설을 짓죠.

 팬 사이트에서 매우 일상적인 대화지만 우리는 저런 대화를 통해 투자가 없다고 가정했을시의 그 팀 미래를 대강 짐작할 수 있다. 어차피 FA로 누굴 데려올 돈으로 다른 시설을 확충하는 경우는 없다. 게다가 만약 당신이 甲을 데려오기 위한 팬들 나름대로의 트레이드 베잇에 오른 유망주나 키워보자는 유망주 이름을 들었을 때 듣도 보도 못한 친구들 이름이 가득하다면 앞으로도 그 친구의 이름을 기억할 확률은 매우 희박하다. 프렌차이즈를 이끌고 나갈 진퉁들의 이름을 기억하는건 한순간의 임팩트면 충분하다. 애초에 그럴 가능성이 있다면 언론에서 3대 투수, 4대 유격수 이런 식으로 패키지로라도 묶어 보도를 했을테니 기억하지 못할 확률도 적다. 따라서 우리는 타 팀의 암흑기가 지속될지 여부를 비교적 높은 확률로 예측할 수 있다. 마구마구 게임을 해본 사람이면 알겠지만 노말카드 3장 돌린다고 레어카드를 주진 않으니 트레이드 확률이 없을 것임도 자명하다. 물론 응원팀의 유망주는 당신이 이름을 기억할 확률이 높기 때문에 저 방법을 사용하기 부적합하다. 

 다시 글의 제목으로 돌아가자. 만약 응원하는 팀에 암흑기가 도래한다면, 당신은 다음과 같은 루틴을 반복할 확률이 높다.

 1. 충격 & 부정과 고립의 단계





















 냉혹한 순위표와 저질스러운 팀스탯을 부정하고 일시적인 부진일 거라며 고립 상태에 빠지게 된다. 당신이 취해야 할 일은 다양한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팀의 현 상황을 냉정하게 진단하는 것이다. 어차피 같은 팀팬들끼리만 얘기해봐야 냉정한 진단을 하는 사람 이야기는 듣지도 않을텐데 병을 악화시키는 행위다.

 2. 분노의 단계













 계속되는 패배로 온갖 성질을 다 부리며 선수, 감독, 심판은 물론 타팀팬에게까지 패악질을 부리지만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는 단계이다. 어차피 밥먹으라는 엄마한테까지 짜증부리다 등짝스매싱을 당하지 않는 이상 무슨 합리적인 말을 들어도 백약이 무효하니 배설할 사이트를 찾는 것이 좋다. 물론 익명 사이트가 나을 것이다.

 3. 타협의 단계


 어차피 루징 시즌은 확정되었고 당신도 반쯤은 받아들였으나 괜히 쓰잘데기없이 내년도 픽을 예상해본다거나, 그 때 그 경기를 잡았더라면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거나 나아가 몇승 몇패를 하면 4강에 갈 수도 있을 거라는 식으로 누구와 하는건지도 모를 타협을 하는 시기이다. 사실 이 시기에 계산이랍시고 하는 짓 중 실익있는 것은 하나도 없으니 드라마를 보는 것이 가장 이롭다. 

 4. 우울의 단계 
















 이미 시즌이 끝났다는걸 인지하고 과거의 '좋은 날들' 즉 빛나던 팀의 시기를 회고하며 추억담을 나누는 시기이다. 옆에서 보고 있자면 노인네들이 왜정 때가 좋았네 하는 것 같은데 막상 자기들은 무척이나 진지하다. 이 단계를 설명하는 관용어로 '94년 신바람 야구'가 있다. 

  5. 수용의 단계


 대개 다른 팀이나 종목으로 관심사를 돌리거나 생업에 집중하게 되지만 간혹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성불하지 못하는 지박령같은 자들도 있다. 이런 자들과는 멀어지는 것이 좋다.


 한번 온 암흑기는 치과 치료처럼 언제 끝날지 알 수가 없다. 이미 팀의 모든 여력이 소진되었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기약없는 기간 동안 팀과 함께 고난을 겪든, 그 기간 동안 잠깐 덕질을 쉬든 자유지만 멘탈은 챙겨야 하지 않겠는가? 순종 2년 이후로 한번도 우승을 못한 시카고 컵스같은 팀팬들도 있는데 징징거린다고 팀이 잘하는 것도 아니고 덕질에도 예의가 있는 것 같다.

2013년 7월 21일 일요일

스팀 여름세일 득템 후기

 이제 본격적인 방학 시즌이 찾아왔다. 게임은 좋아하긴 하지만, 장마같이 징글징글한 꼬꼬마들과 소환사의 협곡에서 개똥밭을 구르기는 싫다면 패키지 게임을 하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나는 근 10년 전에 카운터 스트라이크 하려고 스팀에 씨디키만 등록해놓았을 뿐이지 저런 온라인 게임 유통 플랫폼을 선호하지 않았는데, 이사다녀야 하는 처지에 게임 패키지 건사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해외 결제 카드를 만드는 것도 일이고 결제대행 업체를 이용하면 수수료도 만만찮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MLB TV랑 아이튠즈 때문에 카드 하나 만들어놓은 후에야 본격 스팀 탐방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이번 스팀 여름 세일 기간에 노린 것은 엑스컴 : 에너미 언노운, 배트맨 : 아캄 어사일럼과 아캄 시티 3개였다. 출시일이 좀 되어서 몇 번 할인된 게임들이라 세일 확률도 높았고, 평도 괜찮은 게임들이라 벼르고 있었다. 그런데 세일 기간 동안 정신없이 클릭질을 하다보니 보관함에 추가된 게임은 확장팩을 포함하면 7개나 되어서 지갑에 궤양이 날 지경이었지만, 다 지를만한 이유가 있는 게임들이었다는 걸로 위안을 삼기로 했다. 단시간내에 모두 다 클리어할 순 없었으므로 수박 겉핥기식 리뷰를 덧붙인다.

 구매할 게임을 고르는 기준 중 중요한 것으로 공식이든 비공식이든 한글패치 유무를 따졌다. 여태까지와 마찬가지로 게임을 돌린 시스템은 데네브 955, 램 8기가, 라데온 7850 / 지포스 GTX460 두 개다.

 1. 엑스컴 : 에너미 언노운

XCOM Enemy Unknown Game Cover.jpg

 장점 : 지하에 외계인 때려잡는 비밀기지 만드는 거 누구나 다 해보고 싶지 않은가? 직관적인 인터페이스와 과도한 피칠갑을 배제한 연출도 마음에 들었다. 턴제 게임이니 자칫하면 진행하며 늘어질 수 있는데, 이 게임은 억제기 앞에서 포킹조합 상대하듯 쫓기는 것처럼 시간이 지나가니 진행하며 느끼는 루즈함도 작다.

 단점 : 게임 내외적인 부분, 그러니까 그래픽이든 사운드든 스토리든 연출이든 모든 걸 통틀어봐도 딱히 특출난 부분이 안 보인다. 턴제 게임이라 상대적으로 전투가 펼쳐지는 맵에도 눈이 많이 가는데, 맵타일이 많은 것도 아니라 심심하다. 

 총평 : 수작이라는 얘기는 못 듣겠지만 한 일주일 즐기기엔 충분하다. DLC 사고 싶은 마음은 안드는데 나중에 생각나면 또 잠깐 할만하다.

 2. 문명 5 골드에디션 + 멋진 신세계 확장팩


 장점 : 어마어마하게 방대한 컨텐츠를 자랑한다. 

 단점 : 특성상 플레이 시간이 길어도 너무 길다.

 총평 : 파고 들면 한도 끝도 없는만큼 즐길거리도 많다. 

 3. 토치라이트2


 장점 : 깔끔한 그래픽에 시원한 핵 앤 슬래쉬.  

 단점 : 볼륨도 작은데 정식 한글화를 지원하지 않는다. 비공식 한글패치는 존재함.

 총평 : 디아블로 2.5 정도의 게임이다. 이런 류 게임이 다 그렇듯 잠깐 즐기기에 괜찮을 것 같고 가격도 착하다. 

 4. 배트맨 : 아캄 어사일럼














 장점 : 뛰어난 연출, 세세한 스토리, 착 가라앉은 분위기에 육중한 타격감까지 전체적인 짜임새가 좋다.

 단점 : 액션게임이지만 마치 데메크 시리즈마냥 약간의 길찾기 요소와 퍼즐이 존재하는데 내가 그런 걸 안좋아한다. 어쌔신크리드처럼 미니게임까지 많으면 화가 났겠지만 그렇지는 않아서 다행이다.         

 총평 : 잠입 액션이라고 하지만 메탈기어 솔리드나 시프 류는 아니다. 지포스는 필수이고 엑박패드가 있으면 더 재밌다.

 5. 배트맨 : 아캄 시티

배트맨: 아캄시티 PC 버전, 내달 국내 정식출시

 아캄 어사일럼을 클리어 못해서 안해봤지만 1이 재밌으니 2도 재밌겠지 뭐

 6. 발더스 게이트 : 인핸스트 에디션












 장점 : 시스템적으로는 크게 변한 것이 없고, 그저 원작의 그래픽을 일신하고 약간의 MOD를 추가한 수준이지만 그래도 원작이 재밌다.

 단점 : 이 정도 볼륨을 가진 게임에 기본적인 한글 패치도 없으면 좋은 소리를 하긴 힘들다.그것도 발매 전에 곧 해준다고 약속하던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개발사-유통사간 분쟁이 어떻든 한글화 작업 자체도 처음부터 팬들에게 맡긴 모양인데 그냥 어처구니가 없다. 싸게 나온 게임이긴 해도 야 니들 돈 좀 써.

 총평 : 그래서 발더스 게이트3는 언제 나오냐 

2013년 6월 24일 월요일

망하거나 팔지 않고 살 수 있겠니 - 넥센 히어로즈 수난사

 써놓고 마음에 드는 글은 대부분 앉은 자리에서 한번에 써내려갈 때 나오던데 돈되는 일도 아니고 내 블로그에 내가 쓰는터라 써보고 싶은 소재도 몇 주 걸리는 게 예사다. 넥센 히어로즈에 대한 이 글도 허접하다 뿐이지 참 오랫동안 썼던 글인데 쓰는 사람 마음에도 차지 않으니 길기만 하고 영양가없지만 추린다고 최대한 추려보았다. 4월에 쓰기 시작한 글인데 롤 랭겜 돌리고 와우하느라 이제야 업로드하게 되었다.

 I. 개요

 돈으로 흥한 현대 유니콘스는 돈 때문에 망했다. 어떻게 건질 수도 없는게 일찌감치 연고지 먼저 팔아먹고 진작 보증금 다 까먹은 무단 월세 살고 있는 판이었다. KBO가 운영비를 대주고 선수협이 10억을 모금했으나 고별 시즌이라도 치룰 수 있었던 게 다행이었다. 이장석 넥센 히어로즈 구단주는 바로 이때 야구판에 등장한다. 박동희 기자의 칼럼에 따르면 이장석 구단주는 본래 구색갖추기용 버리는 카드였던 모양이다. KBO는 이장석 구단주와 협상하며 최소한의 예의도 갖추지 않았고, KT 인수가 불발되고 나서야 매달리기 시작했다. 이장석 구단주가 오퍼나 들어보자는 심정으로 KBO를 방문했을때 이미 기자들을 잔뜩 불러놓은 상황이였다하니 타들어가는 폭탄이 얼마나 급했는지 알 수 있다. 명목상 센테니얼이라는 투자자 그룹이 우리 담배라는 업체의 네이밍 스폰을 받아 우리 히어로즈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2. 히어로즈의 탄생

 연고지도 없고 돈 문제도 복잡한 팀을 계승하길 원하는 사람은 없으니 히어로즈는 유니콘스 해체 후 재창단 형식을 밟았다. KBO-히어로즈-선수단 세 측 모두 양보하거나 혹은 양보를 강요당했다. KBO는 현대 운영비를 모두 회수하진 못했겠지만 폭탄을 넘겼고, 히어로즈는 SK 와이번스와 같은 재창단 신생팀 혜택을 받진 못했지만 알토란같은 선수단(+현대의 해외파 특별지명픽까지)을 모두 인수했고, 선수단은 하한선 없는 연봉 삭감과 FA 계약 파기를 강요당했다. 2007년 현대 유니콘스의 페이롤 총합은 41억 2970만원이었으나, 2008년 우리 히어로즈의 페이롤은 26억 6900만원이었으니 그 해 겨울이 추웠던 건 대대 왕고로 혹한기 훈련을 뛰었던 나 뿐만은 아니었으리라. You will never walk alone.

 히어로즈가 재창단을 했기 때문에 현대 유니콘스 시절 계약을 무효화하려는 것은 납득이 된다. 그러나 장원삼은 현대에게 다 못 받은 입단 계약금 미지급분을 히어로즈로부터 받았으니 지명권을 인정할 수 있는 것처럼 계약이 없으면 선수 보유권도 같이 잃는 것이 옳다. 특히 2005년 현대와 FA계약을 맺으며 계약금 없는 3년 계약을 한 송지만을 주목할만하다.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한 건 현대 유니콘스이고, 송지만 본인의 귀책사유는 전혀 없다. FA 보장 금액은 인정하지 않는데 히어로즈의 보유권 승계는 인정하는 신묘한 유권해석 덕에 무려 3억 8천만원을 삭감당한 새 계약서에 도장을 찍어야 했다. 팀이 계약을 승계할 의사가 없다면 송지만을 곧바로 무적 선수로 공시하거나, 최소한 가입금 받은 KBO에서 원래 연봉과의 차액을 보장해야 했다. 그렇게 뒤숭숭한 와중에도 KBO 총재는 연봉 1억 8천에 월 1000만원 판공비 따박따박 챙겨갔으니 세상이 말하는 고통 분담이란 가장 약한 자에게 가장 큰 짐을 안겨주는 것이다. 전준호, 김수경도 비슷한 대우를 받았다. 정민태는 그냥 방출되었지만 배려라기보단 전력 외 방출이었다. 시즌이 끝나고 저 세 선수들에게 FA 자격을 부여하긴 했으나 조건없는 자유계약 선수로 공시했어야 마땅하다. 보상금, 보상선수 생각하면 저 선수들 데려갈 곳 찾기 어렵다.

 히어로즈에게 대금 결제 문제가 자주 있던 것만 봐도 실탄이 빡빡했고, 메인스폰서도 그다지 입금일을 잘 지키는 편은 아니었던 듯하다. 폭탄을 떠넘긴 KBO는 입을 씻은지 오래고, 다른 구단은 애초에 도와줄 생각이 없었다. 다섯번에 걸쳐 내야할 가입금 120억원, 창단 당시에 12억원을 먼저 계약금 조로 건네고 나머지 108억원을 4번에 걸쳐 분납하기로 했다. 그러나 두번째 납부일인 2008년 6월부터 문제가 생겼다. 5,6월 스폰서비가 연체되며 당장 실탄이 없었던 모양이다. 메인스폰서를 구해주기로 한 KBO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듯 가입비 납부 유예 요청도 거부되었고, 이장석 대표가 언론플레이로 시간을 끄는사이 어렵게 돈을 마련해 납부했다. 최근 이장석 대표와 송사를 벌이고 있는 홍성은 레이니얼 그룹 회장이 대여금(혹은 투자금) 20여억원을 전달한 것도 이 즈음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우리담배는 이장석 대표의 시간끌기를 빌미로 스폰서 계약을 해지했고(그리고 이 회사는 히어로즈보다 훨씬 빨리 망했다) 시간은 흘러 세번째 납부일인 12월이 다가왔다. 급전을 마련하기 위해 이장석 대표가 선택한 길은 이미 쌍방울의 전례가 있던 장기밀매였다.

 정리해보면, 히어로즈는 장원삼-이현승-이택근-황재균-마일영-고원준을 보내며 박성훈-김상수(유격수 아님)-금민철-강병우-박영복-김수화-김민성-마정길-58억원+@를 받았다. 일반적인 야구팬이라면 히어로즈가 보낸 선수들의 이름이 받은 선수들보다 훨씬 익숙할 것이다. 받은 선수들은 굳이 기억하지 못해도 연말 시상식 보는데 별 지장은 없다.

 3. 의외의 행보

 2008년부터 2010년까지 그 와중에도 7위-6위-7위를 거둔 히어로즈를 칭찬해야할지 만신창이 팀보다도 못한 적 있는 팀들을 비웃어야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콩팥을 한두개도 아니고 와장창 떼다 판 히어로즈의 전력은 점화맞고 부쉬로 달아나는 티모처럼 불안해보였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징후가 있었다. 분명 내일 문닫을 팀처럼 핵심 전력들을 현금화하고 있는데, 다른 운영은 길게 보고 하는 것이 보였다. 뭐하는 사람인지도 모르는 연예인 시구 대신 환경미화원, 소외계층 등을 마운드에 올려 '개념 시구'를 하는 거야 백번 양보해 일회성 이벤트라고 쳐도 '돈드는 일'을 아끼지 않았다는게 신기했다. 현대 시절 그대로 플로리다에 전지 훈련을 보내고(이듬해부터는 일본으로 바꿨지만 연습 상대팀 문제이지 재정 문제는 아니다), 재활군은 필리핀으로 보냈다. 외부 영입 없이도 페이롤 상승분도 리그 2위에 달할 정도로 상당했다. 더 칭찬받아야 할 점은 아마야구 지원에 인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면 드래프트는 2008년부터 실시되었다.
출처 : 국회의원 전병헌 블로그
  KBO 하는 일이 매번 그렇듯 연고지 드래프트 폐지라는 중요한 일을 결정하며 아마야구 공동지원에 대한 합의도 도출하지 못했으니 시작과 동시에 공유지의 비극이 연출될 거라는 건 뻔했다. 전면 드래프트를 찬성하던 삼성, 엘지, 두산, 한화는 곶감만 빼먹고 입을 씻었고, 반대하던 구단들은 발을 뺐다. 히어로즈는 달랐다. 없는 살림에도 불구하고 꽤나 큰 지원을 했다. 임수혁 데이같은 행사도 감동적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2010년부터 넥센 타이어를 메인 스폰서로 잡으며 일단 자금난 우려도 해소할 수 있었다. 되도않게 창단 초기에 삼청태를 은근슬쩍 구단 역사로 잡으려는 역사 조작질을 하려고 한 것은 그냥 해프닝으로 넘어가자.

 4. 영웅의 역습

 2011 시즌이 시작됐다. 헌혈만 해도 반나절은 어지러운데 장기를 저렇게 떼어다 팔았으니 팀 전력이 나올리가 없다. 어떻게 비집고 성장한 선수도 있었지만 그렇잖아도 여럿 나간 자리에 이제 떠날 준비를 하는 사람들까지 겹치니 잘봐줘도 본전치기다. 그때 KBO의 산타클로스 엘지가 손을 내밀었다. 8년 연속 4강 탈락의 사슬을 이어나가지 않으려고 노력하던 엘지는 불펜 보강이 절실했다. 히어로즈에 전화를 걸었고, 히어로즈는 송신영과 김성현을 보내는 조건으로 박병호와 심수창을 내줬다. 믿을만한 베테랑 불펜과 덜 긁은 영건을 급한 팀에게 주고 긁은 복권 두 장을 받아왔으니 현금이 끼지 않았다는 해명은 TV동물농장 이웅종 소장이나 되야 알아먹을법한 개소리다. 김성현은 아깝지만 송신영은 시즌이 끝나고 FA 자격을 취득하는데다 연봉 3천만원 받는 심수창이야 예비 전력으로라도 부담없고 히어로즈도 이숭용 자리에 누군가 채워넣긴 해야했기에 2군에서 ops 1.1찍던 박병호면 지금까지 받아온 카드에 비교하면 특급이니 가마솥 떼주고 엿한가락 얻는 셈 치고 넘어가려는데..

 트레이드 당시 포텐이 어떻든간 1군에서 600타수를 넘게치는 동안 타율 .190에 BB:K 비율이 0.3에 불과하던 선풍기가 2012년 MVP로 클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물론 엘지로 간 송신영도 나름의 활약을 했지만 4강 진출은 실패했고 시즌 후 한화로 이적하며 엘지를 떠났다. 김성현은 야구꿈나무 대신 이웃집 토토로의 길을 걸었다. 여기서 영웅의 진격은 멈추지 않았다. 현대의 해외파 특별지명을 승계받아 김병현을 영입한데 이어 FA 자격을 얻은 이택근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며 자팀 FA 후려쳐보려던 엘지의 품에서 다시 데려온다.


 영리하게도 유망주들을 협상 전에 대거 입대시켰기에 엘지는 보상선수를 고르기도 어려웠고, 경찰청에 입대 예정인 윤지웅을 픽하며 2년을 그냥 보내게 되었다. 게다가 주전 포수였던 조인성의 SK 이적 공백을 메우지 못했기에 서동욱을 주고 최경철을 받은 것도 한쪽으로 쏠리는 트레이드다. 이장석 대표는 2013년엔 NC와의 트레이드로 송신영도 다시 복귀시켰으니 히어로즈와 엘지의 선수 이동을 최종적으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히어로즈 IN - 이택근, 송신영, 박병호, 심수창, 서동욱, 30억+@

 LG IN - 최경철, 윤지웅, 나성용(송신영 FA 보상선수), 김성현, 8억 4천만원(FA 보상금)

  또한 히어로즈는 두산에 백업 1루수 오재일을 보내고, 외야수비가 가능한 DH슬롯 이성열을 영입하는 스틸 트레이드를 성사시키기도 한다. 나는 두산 김진욱 감독의 타격론에 의문을 가지고 있는데, 오재일 영입이 대실패로 돌아가고 김진욱 감독 역시 자신의 타격론에 의문을 가졌던지 홍성흔을 영입해 1루/DH슬롯 뎁스만 김동주, 홍성흔, 오재일, 오재원, 윤석민, 김재환 요일별 뎁스를 구축하는 희안한 행보를 보였다. 김시진 감독과 결별하고 엘지에선 무슨 흑막 취급을 받던 염경엽 코치를 감독으로 선임한 것도 현재까지는 성공으로 보이지만 아직 전반기도 안 지난 시점이니 아직 평가는 보류하고 싶다.

 5. 성공 비결은?

 아무튼 히어로즈는 '공짜로도 안 데려갈' -엄연히 KBO 관계자 입에서 나온 소리다- 천덕꾸러기에서 벗어나 서울 한켠에 자리를 잡았다. 작년 700만 관중 돌파에서 1/8 쯤의 공헌은 한 셈이다. 결코 이장석 대표 혼자한 일은 아니지만 숟가락 얹을 자격은 넘친다. 히어로즈가 다른 구단과 달리 트레이드나 외부 영입에 적극적일 수 있었던 것은 구단 수뇌부가 보고나 받고 돈 타다쓰는 바지 사장이 아니라 최종 결재권자였기 때문이라고 본다. 무엇보다도 이장석 대표 본인부터 프로 뿐만 아닌 아마 야구까지 스카우터 수준으로 꿰는 전문가 수준이라는 평가다. 무슨 세이버 스탯을 가지고 판단한다 그렇게 보이지도 않는 게 선수 시장 가치에 대한 분석이 놀라운 수준이다. 드래프트나 트레이드 때마다 오랫동안 지켜본 선수 가치에 대한 정보와 평가가 확고하게 있으니 마치 주식장에서 개미 가지고 노는 기관을 보는 듯하다. 가령 히어로즈에서 지방팀으로 (팔려)간 투수는, 재능이야 훌륭하다만 분명 워크 에식에 문제가 있었다. 어차피 운영비로 누군가 팔아야하는거 고점에서 비싸게 판 셈이다. 반대로 박병호는 말할 필요도 없이 저점에서 산 케이스다.

 비록 경질되었지만 꼴찌 전력을 가지고 고군분투한 김시진 감독 이하 코칭스탭의 공도 크다. 운영에선 분명 미흡한 면이 있었지만 굳건하게 팀을 지켰고, 온갖 악재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연봉 삭감에도 불구하고 팀을 지킨 송지만, 전준호, 김수경도 분명 팀의 버팀목이 되었으리라.

 게다가 히어로즈는 다른 야구단만 호구를 잡은 것도 아니고, 언론 노출을 필요로 하던 지자체나 단체들에도 호구를 잡았다. 경제성 제로라 지어질리 만무하던 안산돔 이전 협약을 맺는 대가로 20여억원을 받았다. 물론 돌려줄 필요가 없는 꽁돈이었다. 선문대에 2군 구장을 산학 협력 명목으로 지은 것도 자기 돈 한 푼 안 들이고 연습구장을 마련한 좋은 약장사였다.

 6. 불안요소는 없을까.

 베이징 올림픽 이후 지금까지 프로야구는 선순환을 거듭해왔다. 2000년 50억원 대이던 중계권료는 2012년 250억원 수준으로 올랐고, 관중은 동기간 270만 명에서 7백만까지 올랐다. 객단가 역시 4,480원에서 8,853원까지 올랐으니(링크 참조) 대단한 성장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봤을 때, 프로스포츠에 오가는 돈의 규모는 그렇게 크다고 보기 어렵다. 국내 프로스포츠에서 프로야구는 어느 종목과도 비교할 수 없는 절대강자다. KBO는 2012년 역대 최다 매출을 거뒀다며 350억원을 벌었다고 공시했는데, 이 때 모바일 게임 개발사인 게임빌, 컴투스는 각각 650억원 이상을 매출로 공시했다. 700만 관중이 대단하긴한데 영화도 1년에 한번꼴로는 천만관객 나오는 판이고 블록버스터래봐야 야구단 1년 운영비 예산보다 훨씬 적게 든다. 이유야 심플하다. 모바일 게임과 영화가 잡고 있는 큰 손 중장년층을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처럼 농구장은 표 싸니까 자주 간다지만 야구장 갈 때는 예매 사이트 가격 공고보고 손떠는 사람들이 돈을 써봐야 뭐 얼마나 쓴단 말인가. 더구나 인터넷에서 쉽게 프로야구를 볼 수 있는 것도 한번 더 생각해봐야하는데, 네이버 같은 경우엔 게임데이만 안나올 뿐이지 MLB TV 뺨치는 서비스를 자랑하지만 무료 컨텐츠니 저게 구단 수입에 직접적으로 큰 도움이 될지, 혹은 수익이 더 나올 수 있게 유료 전환했을 시엔 얼마나 볼지 생각하면 암담하다. 그만큼 광고에만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선순환이 끊긴다면 다른 돈줄이 적은 히어로즈는 키코 크리 맞은 중소기업처럼 휘청일 수 있다.

 20년 동안 우승을 하지 못한 팀은 존재 가치가 없다는 무가치한 팀의 무가치한 사장의 말대로 성적도 성공의 중요한 판단기준이다. 상위권 성적을 내는 게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을때, 히어로즈가 파이어세일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런진 모르지만 반대로 상위권 성적을 낼 수 있어도 과연 우승을 목표로 거액의 지출을 할 수 있을 것인가도 생각해볼 문제다. 리빌딩의 마지막 퍼즐은 십중팔구 고비용 고효율의 외부 영입 선수이기 쉬운데, 포스트시즌 배당금과 따라붙을 광고들은 불확실한 수입이고 인건비는 고정비니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히어로즈의 대권도전 적기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 이택근-박병호가 건재한 가운데 강정호가 FA로 풀리기전이니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올해부터 1,2년 정도가 가장 중요하다. 다른 FA선수들을 잡지 않는 이상 외국인 선수만한 전력이 없는데 물론 지금 나이트-헤켄이 잘해주고 있지만, 이들을 놓치거나 교체해야할 때 아무래도 해외 스카우팅 시스템이 타팀보다 양적으로는 덜 구축되어 있을 히어로즈가 저들만한 선수를 쉽게 구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민사소송이 이장석 대표의 경영권이 흔들리는 쪽으로 흘러갔을 때 팀이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는지 여부도 큰 변수이다. 가능성은 무척 매우 아주 희박하지만 다른 구단들이 그룹 승진인사에서 상대적으로 밀린 사람이 아닌 전문 스포츠 경영인을 앉힌다면 히어로즈의 상대적 무기 우위도 퇴색될 수 있다. NC가 롯데에서 이상구 단장을 영입했듯 다른 팀도 그러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지는 않다.

 7. 총평

 전후사정이 어땠든 히어로즈가 지속적으로 팀의 주축 선수들을 대거 파이어세일한 것은 사실이니 팬들의 분노를 물론 이해한다. 트레이드 대박이 어쩌고 해도 결국 트레이드는 트레이드 당시의 가치로 평가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그건 현대 유니콘스가 다른 가난한 팀에게 했었던 짓과 크게 다르지도 않고, 자기가 만든 버블에 허우적대다 돈줄 끊기고 독자생존 안되던 그 팀이 그 정도 가치를 가지고 있던 것도 사실이다. 선수들이 뿔뿔히 흩어져 7개 구단으로 리그를 파행 운영하는 것보다 이장석 대표가 오늘날 만들어놓은 8번째 구단의 가치가 비교하지 못할 정도로 훨씬 높다고 본다. 주축선수를 보내고 현금을 받아온 걸 비판하는 사람들 말대로 베테랑을 보내고 유망주를 받아왔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막말로 송지만 받고 가입비 대납에 유망주도 얹어줄 팀이 세상에 있는 것도 아니고, 모금운동 해줄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다. 선수 안팔고 개인 빚으로 가입비 냈으면 2009시즌에 시즌권 17장 팔린 저 구단 대표는 지금쯤 노역장에서 빚갚고 있던가 국민행복기금 절차밟고 있을텐데 전자는 내 알 바 아니라고 해도 후자는 내 세금인데 그렇게 하라곤 못하겠다.

 아무튼 히어로즈는 템파베이처럼 금융인 출신이 전면에 서면서 나름 재미를 보고 있고, 최고의 재능을 드래프트하진 못했지만 템파베이가 싹수보이는 애들 장기 노예계약 하는 것과 비슷하게 KBO 제도가 보장하는 무려 8,9년의 FA 자격 취득 시스템의 꿀을 제대로 빨며 현재까진 나름 괜찮은 성과를 내고 있다. 템파베이가 주차장을 무료로 개방한다거나 음식 반입을 허가하는 것처럼 히어로즈도 팬서비스를 확대하면 좋겠지만 템파야 구장 입지가 헬이고 히어로즈는 서울팀인데 그럴 필요를 못느낄 것이니 지역 밀착 마케팅을 지속하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 될 것 같다. 

2013년 5월 29일 수요일

일베는 폐쇄되어야 하는가

 민주당이 일간베스트(이하 일베) 웹사이트에 대해서 운영금지 가처분을 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무리한 주장이다. 표현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는 원칙에서도 그렇고, 비단 5.18 민주화 운동이 아니더라도 민주화 운동에 부채감을 느끼는 사람은 상대적 소수라는 현실에 비추어봐도 그렇다. 바그다드에서 사담 후세인 동상을 끌어내린 사람들이 폭압에 분노하다 해방군을 맞은 시민이 아닌 CIA가 동원한 엑스트라였다던 이야기에 의심보다 수긍이 먼저였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총칼 앞에 광장에 나가고 싶어하는 사람보다 집에 있고 싶은 사람이 항상 더 많은데 반란수괴는 목을 치고 잔당들은 목에 팻말걸고 조리돌림한 것도 아니고 뭔가 보이는 임팩트가 있어야 부채감도 드는 거 아닌가. 괜히 바이블에서 보지 않고 믿는 자가 진복자라 하는 게 아니다. 삼대가 망한다는 독립투사들보다 민주화 운동을 주도한 세력이 받은 보상이 '상대적으로' 낫기도 했다. 물론 보상을 못 받은 사람이 양자 모두 더 많겠지만.

 일베와 비슷한 컨텐츠를 가진, 정확히 말해 디씨인사이드의 각 갤러리 일간베스트 글을 모아놓은 사이트에 처음 간 것은 대략 2009~2010년 경이다. 친구가 야갤 짤방 링크해줄 때마다 들어갔으니 꽤나 자주 간 셈인데 사이트 이름이 특이했다. 4camel이었나 사이트에 낙타 그림이 있었는데 이름이 별로 한국 냄새 나지 않아 언젠가 유래를 찾아본 것이 기억에 남는다. 평소부터 아프리카 여자 BJ들을 별창녀라 조롱하며 방송을 방해하던 흔한 디씨 미치광이들이 조작인지 진짜인지도 모를 당해 BJ가 낙태를 몇번을 했느니하는 짤방을 보고 흥분해 평소하던 짓거리하다가 고소당하고난 뒤 지들끼리 낙태를 낙타라 표현한 것이 사이트 이름의 정체였던 것이다. 디씨는 고딩 때부터 디카 사고팔러 다녔고 야갤도 2004년 한국시리즈 때부터 짤방보러 다녔지만 저 4camel이 있을 때는 이미 각종 비하 문화에 질려 떠난 시점이었고, 가뜩이나 글들도 마냥 웃을 수 있는 것보다 아닌 게 더 많았는데 사이트명 유래까지 알고나니 더 가기 싫어졌다. 디씨 특유의 해학적인 상호자학이 싫었다기보단, 언제부터인가 큰 갤러리에서 병신 카스트 제도를 만들어 자기보다 다른 사람을 더 비하하고 조롱하는 것이 마음에 안들었다.

 그렇게 디씨와의 인연이 끝났으면 좋았을텐데, 격리소에서 만족하지 못한 미치광이들이 온갖 사이트에 브나로드 운동하듯 혹은 매저키스트적 욕망을 가지고 등장해 분란의 씨앗이 되며 연이 이어지게 되었다. 역시 한미 FTA 하의 소고기 수입 협상에 대한 태도가 가장 들기 쉬운 케이스인데, 광우병 발병에 대해 확률이나 위험성을 지나치게 과장한 자들을 비웃는 것은 디씨 스타일이다. 그러나 똑같은 이유에 따라 협상 과정에서 여러가지 월급 아까운 짓을 하고 협정문 하나 제대로 번역을 못하는 행정력을 보여준 정부를 비웃었느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성역없던 비판과 해학적 조롱에 애국보수로 끼리끼리 정의내린 우리편 니편의 잣대가 생겼다. 학교 커뮤니티에도 그렇게 의도를 가지고 편집된 자료를 들고 오는 사람이 생겼다. 처음엔 하나하나 살펴보고 반박을 했지만 토론에서 당연히 있어야 할 피드백이 하나도 없이 그냥 퍼오는 걸로 땡이었다. 공부를 더 잘했으면 킹왕짱 대학에 가서 생각없이 퍼나르기만 하는 좀비 대신 저런 광우뻥식 자료 만드는 놈과 직접 게시판에서 제대로 된 토론을 할 수 있으려나 그건 모르겠지만, 뭐 저렇게 만든 놈이야 지 자료가 취사 선택의 결정판인걸 알테니 토론을 하려고 하지 않는 건 퍼나르기 좀비와 똑같을 것 같다.

 현 여당계열 지지자들이 성향을 드러내며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고, 그 고충을 이해한다. 원래 빠는 것보다 까는 걸 더 쉽고 재밌는데 그렇다고 독재까지 빨 순 없으니 고작 할 수 있는게 이놈이나 저놈이나 똑같다고 양비론을 펴거나 경제성장론을 두둔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니들이 어려서 그런다 하다가 털리고 선을 넘어 멀리 간 사람도 많이 봤다. 뭐 여당 알바야 VT 때부터 있었지만 돈 받는 것도 아닌 지지자가 여당 헤이터 혹은 야당 지지자들에게 알바로 몰리거나 거친 말을 듣는 것도 부지기수였을테니 때로는 동정도 간다. 차라리 저렇게 힘들게 살(?) 바에야 다른 커뮤니티에서 노는 게 좋을텐데 생각도 해봤지만 이 사이트는 이게 싫고, 저 사이트는 저래서 싫은 법이다. 세상의 인터넷 사이트의 수만큼 싫은 부분도 있으니 오래 이용할만한 사이트를 찾기란 사람을 사귀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여당 지지자라고 사람이 다 똑같은 게 아닌데 엠코, 개폐위 그런데랑 모든 코드가 맞을 수는 없다. 지금도 일베 코드가 싫어 헤매이는 여당 지지자가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일베는 어떤 사이트기에 이렇게 거대하게 성장할 수 있었나. 첫째는 디씨가 상당부분 잃어버린 익명성에 기반되었고, 둘째는 지역비하/여성비하를 필두로 한 따돌림과 조롱이 일상화되어있고, 세번째는 유저 스스로가 직접적 혹은 묵시적으로 그런 코드에 대해 수인하고 있다. 수인의 이유는 간단하다. 어차피 철저하게 익명을 추구하고 친목을 배제하는 곳이니 특정한 종류의 비하와 조롱만 못본 척 넘어가거나 관대한 척 무시하면 그 외의 모든 것들을 똑같이 물어뜯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기들의 코드에 항의를 받으면 진지병 환자라거나 씹선비라 비하하는게 자존감을 유지하는 길이다. 가령 강제징용 위안부에 대해 원조 원정녀라고 패악질 부리던 놈이 있던 걸 돌이켜보면 당시엔 그런 정신나간 친구들이 미쳐 날뛰고 있었는데 이젠 그런 발언을 유저들 스스로 규탄하고 있다니 신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따지고보면 별로 이상한 일도 아니다. 그 정도 거대 사이트에서 원정녀 소리를 보고 불쾌감을 느끼는 애가 설마 하나도 없었을까. 그때는 그것만 안 짚고 넘어가면 다른 패악질을 할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었고, 이제는 그냥 넘어가면 내가 패악질 부릴 멍석이 홀라당 없어질지도 모른단 불안감이 들기 때문에 그렇다. 똑같은 이치로 일베 유저 중에 호남 거주자나 여성이 있는 것도 의외의 일이 아니다. 호남 거주자는 지역 비하만, 여성 거주자면 여성 비하만 감내하면 다른 대상에 대한 모든 조롱과 비하를 다 할 수 있다. 물론 그런 비하 코드들이 쌓인 것에 대해 동의하지 않거나 수인할 수 없으면 아예 일베에 들어가질 않을테고 그게 일베가 대한민국 최대 사이트가 아닌 이유다. 간혹 일베는 '좌빨'들의 증오의 반작용이 모여 생긴 사이트다 그런 소리하는 사람도 있는데 솔직히 탄압받은건 그쪽이 아니지.

 여담으로 저런 이지메 사이트가 망하는 방법은 온라인이건 오프라인이건 친목질 시작되서 서로 버릇 못고치고 색깔 싸움하다가 사분오열되는 게 제일 빠른데, 기사를 통해 유저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점은 확실히 규제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 친목질, 당파질도 인간의 본성이라 생각하는데 비하의 대상에는 내가 물어뜯을 자유를 들먹이다가 내부 단속엔 저런 탄압(?)을 벌이는 모순된 집단이 일베 하나도 아니고 그냥 익명 격리소에서 자기들끼리 놀고 바깥에만 안나와주길 바라는 게 일베 비이용자에겐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 아닐까 싶다. 더구나 폐쇄 의견에 동의할 수 없는게 일베는 자살 사이트나 뽕쟁이 사이트처럼 범죄 모의를 위한 곳이 아니다. 각종 범죄자들이 활동하긴 했으나 일베 유저라 범죄자가 된 것도 아니다. 독일의 반나치법의 예를 들지만 입법을 통한 해결을 하기도 어렵다. 서두에 이야기했듯 애초에 민주화 운동에 대한 부채 의식을 느끼는 사람도 얼마 없는 판에 무슨 수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낼 것인가? 일베의 본질은 배설이라고 생각하지만 미성년자가 아닌 이상 유해사이트의 판단은 본인이 할 일이고 국가가 개입하는 것이 아니다.일베의 문제라고 하는 역사왜곡에도 이전 정부의 책임이 크다. 초병이 경계에 실패하기만 해도 처형할 수 있는 것이 엄정한 군법이고 사형폐지론자들도 군법의 사형은 반대할 명분이 없다. 그런데 전통을 계승하는 의미에서 반란수괴 칭구칭구들을 능지처사하진 못할 망정 정치적 고려를 한다고 살려놓고 복권까지 해놓으니 이 사단이 안 날 수가 없다.

2013년 5월 12일 일요일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 판다리아의 안개 리뷰

 어느새 와우는 9년째를 향해 달려가고 어느덧 내가 하는 시골섭 공개 채팅창은 추억팔이로 살아가는 사이버 탑골공원이 된지 오래다. 수능끝나고 와우가 정식 오픈했을 때 계정비가 비싸다고 오픈 불매운동하는 사람들을 보고 '그럼 만원 더 내고 리니지하든가' 생각하며 사전결제를 했었고, 군대 전역하자마자 와우용 컴퓨터를 샀지만 내가 시작했을 때가 제일 재밌었다는 올드비 추억담들엔 동감할 순 없다. 강동엔 강동의 이쁜이가 있고 강서엔 강서의 귀요미가 있듯 확장팩마다 나름의 재미가 다 있었고, 그만큼 발전해왔는데 이제와서 옛날 시스템으로 돌아가면 불편하기만하지 재미있을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정액제 MMORPG는 꾸준한 구매력이 부족한 저연령층, 고액 결제 비중은 높지만 캐쥬얼한 게임을 훨씬 더 선호하는 중장년층 모두에게 외면당하기 쉽건만 와우도 참 징그럽게 오래 버텼다.

 1. 개요

 데네브 955, 램 8기가, 라데온 7850 / 지포스 GTX460 두 시스템에서 30프레임 중상옵 이상으로 그럭저럭 돌아간다. 40인 이상 필드 레이드 공격대나 대규모 전장에서 프레임 드랍이 있다. 두 VGA의 세대가 다르니만큼 권장 옵션의 세부 내역이 꽤 다르긴 하나 지포스 쪽이 한결 부드러운 모습. 언제나 그랬듯 블리자드 게임은 인텔-지포스 조합이 진리고 특히 CPU 쪽에서 인텔 쪽의 퍼포먼스가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본편 워크래프트에서 출발한 스토리는 리치왕의 분노에서 큰 줄기가 대강 완결되었고, 기존 비중은 드래곤볼 레드리본군 박사 정도지만 위상이라 짱짱맨인 데스윙까지 잡았으니 이제 아즈샤라 여왕쯤이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했다만, 예상과 다르게 넵튤론 떡밥도 회수 안하고 판다리아의 안개로 넘어오게 되었다. 불성보다도 외전 느낌이 심하게 나는게 임진록하면서 풍신수길 죽었다고 좋아하는데 갑자기 다음 스테이지 브리핑에 누르하치가 나오더니 우리 도와주러 러시아로 와봐라 하는 수준의 스토리 전개다. 스토리 라인 자체가 얼기설기한게 한두개는 아니다. 고대신을 섬기는 사악한 사마귀 부족을 도와줘야 하질 않나 밑도 끝도 없이 잔달라 부족이 새로 등장한 적 세력인 모구의 리즈시절 동맹이라 하질 않나 어이가 없지만 MMORPG를 스토리만 보고 하는 건 아니니 우선 넘어가보자.

 워크래프트3에 나온 NPC 첸 스톰스타우트의 종족 판다렌이 얼라이언스와 호드 양 진영 모두 선택할 수 있게 등장했고, 수도사라는 새 직업이 추가되었다. 탱,밀리딜,힐 모두 가능한 하이브리드형 클래스인데, 어차피 밀리는 어디서나 취직이 어렵고 탱커로서의 성능도 이제 막 재평가되는 중이라 힐 위주로 쓰이고 있다. 여담으로 PvP에서 제일 핫한 힐러가 바로 운무 특성 수도사이다.

  PvP는 새 전장 코트모구의 사원과 은빛수정 광산이 추가됐고 5.3 패치에 하나 더 추가될 계획인데, 전체적으로 의미없는 길싸움을 배격하고 테러와 주자원 확보 양자의 유기적인 조화가 강조된 디자인이다. 클래스별 유불리를 대격변 때와 간략히 비교해보면 진격의 파흑, 야드의 몰락, 주술사 전 특성 취업대란 정도가 눈에 띈다. 큰틀이 변했다는 느낌은 없고, 5.3 패치에서 탄력 - 위력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바뀐다는 소식인데 지금처럼 지속적으로 PvE ,PvP 유저 분리가 고착되는 것은 개발사가 바라는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PvP 유저층은 전체 유저 중 항상 소수이며 대다수의 유저들은 일퀘하다 필드 뒷치기에 짜증을 내고 말지 굳이 보석 마부 다시 해가며 제작템 맞춰 전장갔다가 투기장도 가고 하며 PvP 아이템을 맞추지는 않는다. 7년 반이 다 되가는 게임에 이제 와서 새로 전장 입문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2. 장점

 판다리아의 안개가 아무리 확망팩이라 해도, 와우는 언제나 기본은 하는 게임이다. 오래된 게임이라 한계는 있지만, 이번 확장팩에서도 일신된 그래픽을 볼 수 있고(슬슬 오리지널 여덟 종족들 기본 모델링도 다시 만들어주면 좋겠지만), BGM은 내 취향이 아니라 그렇지 배경과 이질감 없이 잘 어우러진다. 여담이지만 이번 클라이언트는 오프라인에서 DVD를 팔지 않아 동봉되어 있던 OST를 구하고 싶으면 디지털 스토어에서 구매해야 할 것 같다.

 와우는 만렙부터란 격언이 있을만큼 우선 만렙을 찍어야 뭘 할 수 있으니 그때까지의 과정이 지루한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최대한 퀘스트 동선을 단순화하고 저렙 특성을 강화해 자연스레 레벨업 속도가 높아졌고 지루함을 줄였다. 위상 변화를 활용해 새롭게 추가한 '농장 경영' 시스템도 잔재미를 주는 것과 동시에, 전문기술 숙련도를 올리는 것에 큰 도움을 주게 되었다. 앞마당에서 점프하는 걸로 하루를 보내던 PvP 하드 유저들은 채집 기술 부캐를 키우지 않는 이상 전문기술 올리려면 현질로 골드사서 경매장 이용하는 것 말고 딱히 방법이 없었는데, 이젠 농장에서 나오는 재료만으로도 쉽게 습득이 가능해졌다.

 컨텐츠의 핵심인 던전 디자인은 현재 최상위 던전인 천둥의 왕좌의 경우 시골섭 + 딜러 + 후발주자 삼위일체 크리를 맞아 가기가 힘들어 공격대 찾기로만 해봤고, 일반 공격대는 너프된 하위 레이드만 다녀왔을 뿐이지만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다년간 경험이 축적된 블리자드의 레이드 던전 디자인이 매너리즘에 빠질지는 몰라도 크게 실망스러울 것 같지도 않다. 레이드 자체가 바닥 피하는 매스게임이라는 비판이 있지만 울티마 온라인부터 아키에이지까지 다 살펴봐도, 에버퀘스트를 벤치마킹해 계승 발전한 와우보다 레이드가 낫긴 커녕 비슷한 수준에 도달한 게임도 없었다. 과거 인기 있던 인던인 붉은 십자군 수도원, 스칼로맨스의 리메이크도 반갑다.

 메즈, 점감, 클래스 조합으로 대표되는 다대다 PvP 시스템 역시 와우의 전통적인 장점이지만 판다리아의 안개만의 장점은 아니니 길게 쓰진 않는다. 대격변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된 직업별 버프 평준화에도 불구하고 저 세 요소의 조화 덕에 PvP쪽은 재미를 잃지 않았다.

 게임 자체적 재미는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이용자가 감소해 도시섭-시골섭 양극화가 극단으로 치닫자 서버 통합을 추진하고 있는 것도 좋은 일이다. 특정 서버같은 경우 한 진영이 그야말로 멸종하다시피 했는데 산소 호흡기를 씌웠다 정도 의미는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얼라는 듀로탄, 호드는 아즈샤라, 중립은 하이잘 가야 게임하기 편한 것은 변함없다.

 3. 단점

 역대 최악이라 불릴만한 후진 시네마틱(링크)을 가볍게 까면서 시작해보자. 귀요미 짱짱맨 첸 스톰스타우트가 싫다는 게 아니라, 안두인과 가로쉬의 갈등을 다루는 게 주제에 더 부합했다.

 라이트유저와 하드유저간의 간극을 좁힌다고 내놓은 일일 퀘스트의 압박이 너무도 크다. 기존에 존재하던 하루 일일퀘스트 제한 25개도 없앤만큼, 일퀘의 양 자체가 어마어마한데, 문제는 핵심 평판 진영의 일퀘로 얻는 평판을 확 줄여 확고를 찍기가 어렵다. 유저들의 항의에 뒤늦게 평판 보너스를 주는 아이템을 추가하고 평판템 구입 가능 기준도 하향했지만 갓만렙 달면 하루 종일 일퀘만 하다가 나간다는 말이 허언이 아니라(2,3시간이 넘게 걸릴수도 있다) 타겟으로 잡았던 라이트 유저들마저 일퀘에 질려 떠나게 되었다. 공찾 시스템에서의 아이템 드랍은 결국 운의 문제이고, 예전처럼 하루에 인던 하나씩만 돌아도 점수를 모아 에픽템을 바꿀 수 없고 평판까지 올려야 한다는 건 분명 부담이다.

 기존 확장팩과 달리 이번 시리즈에선 본편 스토리와의 연관 요소가 희박한만큼 플레이어와 세계관의 일치에 많은 신경을 기울여야 했는데, 안두인 린 구하려고 갔다가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면 진시황릉 같은데 들어가 싸우고 있으니 그런 면모를 찾아보기 어렵다. 레벨업 구간 동안 이용할 수 있는 인스턴스 던전은 4개에 불과하고(따라서 아이템 테이블도 극히 한정되어 있다), 만렙이 되어서야 영웅급 던전으로 9개가 열리는데 엄연히 아제로스에 있는 수도원, 스칼로맨스를 왜 판다리아에 있다가 별 퀘스트도 없이 뜬금없이 가야하는지 모르겠다. 최종 보스로 정해진 가로쉬도 샤가 꼬시든 고대신이 꼬시든 아무튼 때되면 미칠 이북 삼부자 같은 놈인데 굳이 판다리아까지 갔다와서 때려잡을 친구는 아닌 것 같다. 새 종족인 판다렌의 시작 스토리에도 왜 얼라이언스나 호드를 선택해야 하는지 필연성이 부족해보인다. 세계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와중에 티리온, 실바나스, 메단 같이 뭔가 좀 해야할 친구들이 놀고 있는 것도 이상하고.

 지엽적인 문제지만 현지화에도 아쉬운 부분이 있다. 고유명사는 음역하고, 일반명사는 훈역하는 게 와우의 오랜 현지화 원칙이었는데, 판다리아의 안개 배경은 상해혁명 훨씬 이전 고대-중세 중국에 가까워 표기에 애매한 부분이 생긴다. 물론 판타지 세계니 어떻게 현지화하는지야 제작사 마음이고 고심해서 옮겼겠지만 White Tiger Temple은 백호사로 번역하면서 탕랑 평원은 사마귀 평원이나 당랑 평원 대신 중국어 발음에 가깝게 표기하는등 일원화되지 않는 모습이다. 대부분의 한국 플레이어들은 공자라고 하면 알아들어도 콩즈라고 하면 모르는만큼 더 어색한 건 이름 쪽이다. 한자를 그대로 읽는 게 더 익숙하니 예컨대 천둥왕 레이 션(雷神)은 '뇌신'으로, 샤(煞)들은 살풀이 굿 할 때의 그 '살'이니 그대로 표기했으면 훨씬 이질감이 덜했을 것이다. 물론 인명은 원어 표기를 따르는 것이 옳겠지만 중국인들이 인명 말하는 건 성조때문에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던데 걔들은 내가 레-이-션 그렇게 읽으면 알아듣냐?

 오래 지적되어온 단점이지만 근접 전투에서 별로 타격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다른 건 다 어떻게 할 수 있어도 이 문제는 클라이언트를 완전히 새로 만들지 않는 한 영원히 해결 못할 것 같다.

 4. 총평

 여러군데서 혹평을 듣고 있는 판다리아의 안개지만 기본적으로 와우가 지금까지 쌓아온 컨텐츠는 방대하다. 생활이 없는 유저건 라이트 유저건 할 것은 항상 널려있고 계정비만큼의 재미는 한다. 비자발적 라이트 유저가 되니 점점 비싸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롤하면서 일베애들이랑 놀아야 하는 것보다 와우하면서 와갤러들이랑 노는 게 차라리 낫다.

 하지만 와우가 너무도 오래된 게임이라는 데 한계가 있다. 익숙해진 유저들이야 다 하던 감이 있다지만 와우는 빨리 익숙해지지 않는 게임이다. 각 서버에 서포터 길드를 만들어 유저들이 자체적으로 뉴비들에게 여러가지 지원을 해주기도 하나 당장 나부터 서버 옮기고 1부터 키우라고 그러면, 레벨업은 둘째치고 전문기술 때문에 엄두가 안 난다. 하물며 애드온의 A부터 배워야 할 뉴비들에게 장벽은 더욱 크게 느껴질 것이다. 사실 그건 판다리아의 안개가 지금보다 훨씬 잘 만든 확장팩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와우를 하기 전에도, 한 후에도 많은 MMORPG를 해봤지만 와우만큼 잘 만들고, 관리된 게임은 없었다. 상대적으로 찐따 비율이 높은 부분 유료 게임은 내가 잘 안 건드려서 못 찾은 것일수도 있겠지만 다른 장르의 게임을 한다면 모를까, 굳이 다른 MMORPG를 할 매력은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결국 이 장르의 가장 큰 컨텐츠는 얼마나 많은 유저가 게임을 하는지 여부라고 봤을 때, 꾸준히 유저가 줄고 있는 와우의 미래는 불투명하고 그동안 던졌던 떡밥 회수하며 얼마나 잘 연착륙하는지의 여부만 남았을 뿐이다. 북미와 중국에 빨대가 꽂혀있으니 아무리 망해도 몇년은 거뜬하겠지만, 내 지갑도 덩달아 거뜬한 건 아니다. 

2013년 3월 31일 일요일

춘계진지공사 시즌 특집 심시티5 리뷰

 어릴 때 읽던 학습만화에는 16비트 시대를 지나 32비트 컴퓨터가 보급되면 무슨 '퍼지'니 '뉴로퍼지'니 하는 최첨단 시스템이 구축되며 터미네이터 스카이넷이라도 등장할 것처럼 설레발을 떨었는데, 도스 때 쓰던 맥스나 MSN에서 쓰던 심심이나 말하다보면 복장터지는 건 똑같았으니 다행히 근시일내에 스카이넷이 우리 동네로 미사일을 쏠 것 같지는 않고 초비츠가 동네에 쓰러져 있을 일도 없는 것 같다. 난 뭐 공대를 나온 것도 아니라 퍼지 시스템이라고하면 금성 세탁기에 붙어있던 스티커밖에 생각 안 나더라. 심시티 2000은 그런 시절 게임이었고, 그렇게 재미 붙이며 한 게임도 아니라 근 10년만에 신작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얼핏 듣고도 별로 감흥이 없었다. 그런데 발매 이틀뒤 뒤늦게 본 트레일러가 내 마음에 불을 질렀다. 패키지는 다음과 같다.

영화 블루레이를 틀었는데 대영팬더 로고는 왜 안 나오냐고 의아해하지 않듯 이제 큰 케이스와 두툼한 매뉴얼로 상징되는 패키지 게임은 이제 컬렉터스 에디션 같은 형식이 아니면 찾기 어려울 듯 하다. 
 뒤에 있는 것은 특전으로 온 큰 사이즈의 마우스 패드이고 DVD케이스 크기의 패키지를 열면 설치 디스크도 없이 오리진에 등록할 수 있는 코드가 적힌 카드가 전부다. 디스크가 동봉된 버전이 따로 있는지는 모르겠다. 보다시피 단촐한 사이즈인데, 처음 설치 파일만 오리진에서 받고 실제 게임 설치는 심시티 전용 서버를 통해 이뤄진다고 한다. 하드를 고객센터로 들고가 게임 까는 게 더 빨라보이는 오리진 저질 서버를 생각하면 다행인 대목이다. 현재는 오리진에서 리미티드 에디션 대신 스탠다드 에디션을 팔고 있으니 기존 리미티드 에디션 패키지 재고를 사길 추천한다. 포함된 영웅과 악당들 DLC는 별 쓸모가 없긴 하지만 오히려 가격 면에서 오리진 스탠다드 에디션보다 더 싸다.

 1. 개요

 고지된 최소/권장사양은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게임을 돌린 데네브 955, 램 8기가, 라데온 7850 / 지포스 GTX460 두 시스템에서 30프레임 고/중옵 이상으로 무리없이 돌아간다. 심시티 돌리기엔 뭔가 부족한 것 같아서 오랫동안 함께한 라데온 5770을 처분하고 7850으로 갈아탔는데 그럴 필요까진 없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도시에 대악마나 외계생명체가 나타난 게임은 아니니 배경 설명은 필요없고, 런쳐에서 서버를 선택하고 간단한 튜토리얼 미션을 마친뒤 직접 게임을 만들어 시작하게 된다. 전작에 있던 시나리오 모드는 없고, 같은 서버에 있는 모든 도시의 수요-공급이 (개발 계획상으로는) 연동되어있어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내 도시에 들어갈 수 없다. 처음엔 아시아 서버가 없어 추가해달라는 요청에 EA코리아 직원이 별 말같잖은 소리를 하다 까이는 일도 있었는데, 차차 서버를 늘려 아시아 1, 2 서버가 차례로 들어섰다. 실제로 각 지역에 서버가 있는 건 아니고 서버 이름으로만 구분을 하는 것 같지만, 스타1하다 반응속도 느린 북미 서부서버에 치를 떤 경험이 있어서 이름도 보기 싫은 북미 대신 아시아 서버를 택했다.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일본 사람 옆 도시에 원전 멜트다운을 시키고 싶다거나, 중국 사람들에게 황사의 복수로 범죄자를 한도 끝도없이 잠입시키고 싶다거나 대만 사람들과 반도체 치킨게임을 하고 싶다면 아시아 서버에 가는 것이 편하다.

맵마다 광역, 도시의 수는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3,4개 도시가 모여 한 광역을 이루고 큰 맵의 경우는
 광역이 3,4개 정도 있다. 







 2. 장점

다양한 교통수단으로 목적지로 향하는 심들 

















 게임 특성상 자기가 꾸며놓은 도시가 쌩쌩 돌아가는 걸 보며 하악거리는게 낙이니 깔끔하고 유려한 그래픽과 단계별로 성장하는 디자인이 필요한데 디테일까지 신경써서 괜찮게 잘 만들어놓았다. 가령 도시의 소득, 교육수준에 따라 도시 곳곳이 실시간 재개발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앞으로도 건물 DLC 같은 거 엄청나게 팔아먹을테니 더 예쁜 건물들도 나올 듯 하다. 게임을 하며 듣게 되는 BGM도 괜찮다. EA가 숱한 명작들의 후속작을 말아먹는 와중에도 유일하게 까이지 않던 부분이 사운드였고 이번에도 만족스럽다. 심 시리즈가 대부분 그렇듯 이번 작도 직관적인 인터페이스와 명료한 아이콘 사용으로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지만 익숙해지는 것엔 많은 경험이 필요해 접근성과 몰입성도 뛰어나다. 교통-수도-전기의 운반 시스템을 따로 두지 않고 도로로 일체화해 손 가는 부분을 줄였고, 도시의 주민들은 요구사항은 물론 개선방향도 적극적으로 제시한다. 멀티플레이 요소가 들어가니만큼 도시간의 교류도 활발해졌다. 각종 특성화 시설을 통해 내가 원하는 도시의 방향도 잡을 수 있다. 예컨대 카지노 도시를 만드려면 범죄 예방에 중점을 둬야하고, 관광 도시를 만드려면 관광객들의 편의를 위해 교통에 많은 신경을 써야하는 식이다. 고레벨 공장들은 일반 화재 대신 위험물 화재가 발생해 소방 시스템을 정비해두어야 편하다. 이러한 과정은 나 도지산데 거기 이름이 뭐요 그런다고 제공하는 서비스들은 아니고, 시설 업그레이드 또는 연구 개발이 필요해 목표를 세우고 실행해가는 잔재미를 더해준다. 실시간으로 움직이는 거주민들의 시뮬레이션도 깨알같은 재미다. 심들은 출퇴근을 위해 자동차를 이용하지만, 대중교통 시스템이 갖춰져있으면 인근의 주차 겸용 정류장에 차를 놓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움직인다거나 하는 식이다.
 영어로 되어있다고 못할 게임은 아니지만 모든 텍스트를 한국어로 번역해준 것도 좋았던 요소다. 다만 각종 공지사항까지 즉각 한국어 페이지에 올려주진 않는다.

 3. 단점

 무엇보다 큰 문제는 서버 문제로 원래 계획된 게임을 구현할 수 없는 데에 있다.
버그로 도시 내 건물들이 증축단계에서 멈춰 있다.
기존 도시가 교통 버그로 인해 망한 자리에 다시 지었건만
또 이러니 지층을 파보면 슐리만의 트로이 발굴처럼 될듯
심시티 같은 인기 시리즈가 안팔릴 것 같아서 서버를 적게 마련하진 않았을테고 꿈만 큰 시스템 덕에 정확히 어떤 요소가 구현되고, 구현되지 않고 있는지도 모호하다. 가령 본래 설명으론 무역은 글로벌 시장이란 명목 아래  각종 자원의 시세가 실시간으로 변동,조정된다는데(1차 자원은 금방 고갈되는데 그 문제는 어찌할지는 차지하고서라도) 지금 서버로 가당키나 한 일인가 모르겠다. 결국 자원 시세를 고정시키고 무한수요, 무한공급의 배후 글로벌시장을 만들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버 문제는 여러군데서 현재진행형이다. 광역이 공유하는 시설인 대역사의 삽을 뜨려면 이틀내내 서버 승인이 안나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었고, 도시간 자원이나 인구 이동도 한참이나 걸리는데다 도시간 통근,통학 시스템은 이뤄지는지도 잘 모르겠다. 자잘한 AI 버그도 있는데 옆도시에 재활용 수거 차량을 보내면 높은 확률로 재활용센터의 가동이 중단된다거나, 스크린샷처럼 건물의 밀도가 늘어날 때 건설이 0%에서 멈춰 결국 도시가 용산 재개발지구처럼 된다거나(기존에 있던 도시를 모두 철거하고 새롭게 건설했을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길찾기 AI가 마비되어 도로 상태가 멈추면 각종 공공 차량이 움직이지 못해 선 자리에서 도시가 망하기도 한다. 맵 사이즈가  '도시'가 아닌 '구' 수준으로 작은 것도 아쉬운 요소다. 최종테크 건물들은 죄다 덩치도 커서 가뜩이나 좁은 부지가 미어터지는데  전작처럼 지형을 편집할 수도 없어서 언덕지형 도시는 개발이 어렵다.

 4. 총평

 문명 5 이후 오랫만에 국내에서도 바람을 불어일으킨 패키지 게임답게 여러 군데에 신경을 쓴 티도 나고 재미도 있다. 다만 그놈의 상시 온라인 모드가 플레이어, 회사 모두에게 큰 타격을 줬다. 보상 게임 준 것도 잘 받아먹었으니 크게 뭐라고 하고 싶지는 않은데,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이용자가 좀 빠진다고 하더라도 제작 의도대로 시스템이 잘 돌아갈지도 알 수 없다. 따라서 재밌지만 미완성된 게임을 하는 기분이고 EA야 장기적인 패치보단 DLC 발매에 더 관심있는 회사라 한켠에 찜찜함이 남는다. 기왕 DLC 팔거면 심콥터나 스트리트 오브 심시티같은 연동 게임도 나와주면 좋겠지만 계획이나 있을런지 모르겠다.

2013년 3월 21일 목요일

때늦은 WBC 리뷰 - 소잃고 외양간 까기 특집

 각론을 이야기하기 전에 총론을 짚고 넘어가자. 나는 모든 국가대표 운동선수들에게 경외심을 가지고 있고 그건 그들의 능력 때문은 아니다. 학창 시절엔 수련회 갈 때마다 왜 돈내고 개뻘짓하는지 이해를 못하고 커서는 예비군 가는 것도 짜증나는 나로서는, 꼭 돈되는 일이 아니더라도 국대라고 집떠나 강제정모를 벗삼는 그런 삶을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WBC 대표팀의 애국심이나 승리를 향한 열정엔 한 점 의심이 없다. 교복입은 배우가 나오는 야동을 본다고 전자발찌 찰 사람이 된다는 근거가 없듯, 억지로 국대 유니폼을 입는다고 애국심이 갑자기 생길리는 없고 애초에 사명의식이 있으니 참가했을 것이다. 결과가 조별예선 탈락이라고 의도를 폄하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들에 대한 존경과는 별도로 이번 WBC대표팀의 행보는 복기해봐야겠다. 코칭스태프 선정, 선수단 구성, 훈련 및 연습과정, 경기 운영 순서대로 짚어보자.

 1) 코칭스태프 선정

 거두절미하고 도대체 국대 전임 감독을 두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KBO는 경질된 감독들을 데려다 경기감독관으로 쓰는데, 단기전 감독 하나 못 맡길바에 뭐하러 월급 주며 쓰는지 모르겠다. 류중일 감독은 물론 한국시리즈 2연패, 아시아시리즈 우승을 일군 좋은 감독이고 대표팀에도 최선을 다했겠지만 수신제가 치국평천이라고 월급주는 삼성팀 돌보는게 우선이지 대표팀 감독을 맡길 당위성이 없다. 당장 재야에 김성근, 김인식, 조범현 감독처럼 여러모로 성과를 보여준 사람들이 있다. 하긴 백날 팬들이 말해도 바뀔 일은 없겠고 또 다음 호구를 기다리겠지. 코치들은 현역을 쓰더라도 감독은 소소한 대회들도 계속 있겠다 국대 전임 감독을 선임하는 게 합리적이다. 부수적이지만 중요한 전력분석팀은 우리나라에서 누가 제일 잘하는지 모두가 다 아니 지금 그대로 가면 될 것 같다.

2) 선수 선발

 투수진 : 류현진은 다저스 5선발 경쟁이 급하고 봉중근, 김광현은 아프다니 벌써 로스터가 허전하다. 설상가상 선발 한 축을 맡아줄 윤성환과 필승조 안지만도 나오지 못하게 되며 투수진에 비상 사태가 걸렸다. 역대 WBC 대표팀은 절대적으로 투수진에 의존해왔다. 총 19경기 동안 88득점, 49실점을 기록한 것만 보면 투타 모두 정상급으로 보이지만 한번 자세히 뜯어보자. 19전 중 3점 이상 실점한 경기의 승률은 1승 5패, 5점 이상 실점한 경기는 0승 5패. 3점 이상 실점한 6경기의 득실마진이 무려 -25점이다. 꽁꽁 틀어막을 땐 확실하게 막았으나 맞을 땐 따라가지 못했다. 1,2회 토너먼트 이전 라운드에서 더블 엘레미네이션 방식을 취한 것도 영향이 있겠지만 결과가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저기 구멍나니 투수진을 꾸리는 것도 어려웠다. 4강도 못간 기아에서 선발 3인방을 몽땅 뽑아가려고 했던 것도 한 팀의 입장에서 보면 기둥뿌리 뽑는 짓일지 몰라도 얼마나 다급했으면 저랬을까 이해가 된다. 악조건 속에서 최대한 있는 자원을 추려가는 것이 맞는데, 대표팀은 악수를 두었다. 물론 국대 감독이 될성부를 미필 떡잎 하나 알박기 하는 것은 인건비로 쳐주는 것이 상도례겠지만 김상수로 족했지 차우찬 선발은 너무 나갔다. 국대 유니폼은 옛날 오락실에서 10원짜리 동전에 감아 100원짜리로 만들던 절연테이프가 아니다. 무슨 수로 노말카드를 레어카드로 만드나? 선발 자체가 워낙 상식밖이라 감독이 직접 뽑았을 거라고 믿을 수가 없을 지경이다.

 야수진 : 역대 대표팀 최강 타선이라는 말도 공허하다. 2011년 일본에서 이승엽은 OPS 0.622, 김태균은 0.663의 처참한 성적을 거뒀다. 한국에 돌아와서 각각 0.886, 1.01로 아예 다른 사람이 된 건 저들이 성장해서 돌아왔기 때문이 아니다. 성공적으로 일본 첫해를 보낸 이대호는 다른 이야기지만 셋 다 1루/DH 슬롯인 이상 저 셋 중 두 명에 추신수가 가세하는 것보다 효율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다른 측면에서 보자. 뛰어난 젊은 선수들인 강정호, 최정이 김태균에 견줄만한 성적을 거뒀다쳐도, 상위 라운드에 진출하면 어디선가 만날 일본 대표팀과 비교한다면 나은 타선은 아니다. KBO 라이언 가코가 딱 2011년 NPB 이승엽, 김태균 수준 스탯을 찍었을 것이다. 그럼 가상의 상대팀을 떠올려보자. 베스트 9 중 가코보다 나아보이는 타자가 한 명(이대호 정도 레벨이라고 치자), 가코 정도 타자가 서너명, 나머지는 가코보다 못치는 팀이다. 이 팀과 우리나라 국대가 만났다면 최강의 타선을 만났다고 지레 겁먹기보단 야구보면서 무슨 치킨을 먹을까 고민할 가능성이 높다.

 3) 훈련 및 연습과정

 2월 11일부터 소집해 훈련을 했고, 각종 기사를 보면 강도가 부족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할만큼 했다고 생각한다. 컨디션이 늦게 올라온 것을 아쉬워할 순 있겠지만 그냥 해도 안된거다. 훈련이 부족해 잦은 수비 실책이 나왔다는 분석도 있고 그만큼 주루 플레이도 아쉬웠지만 최선을 다했으면 됐다. 병역혜택이 없었기 때문에 설렁설렁 했을 것 같지는 않다. 대표팀의 정신적 리더였을 이승엽만 봐도 이악물고 했는데. 김상수가 뻘소리했다가 어그로를 잔뜩 끌긴 했지만 솔직히 한달만에 집에 가면 아쉬움을 떠나 기분은 좋을 법도 하다.

 4) 경기 운영

 복기할 순간은 단 하나, 네덜란드전 그 급박한 상황에서 왜 차우찬을 냈는지 모르겠다. 대회 규정을 몰랐는지 몰라도 3:0으로 지고있는 무사 1,2루. 규정상 다음 리운드 진출과 실점이 직결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패전처리를 낸다? 류중일 감독은 규정을 몰라서 그랬던 건 아니라고 부인했고, 당시 낼 수 있는 LOOGY 카드 중 장원삼, 박희수는 아프고 장원준은 선발카드라 그랬다는 분석도 있지만,박희수가 나머지 두경기에 다 나온 마당에 옳은 해석이 될 수가 없다. 결과적으로 2승 1패를 하고도 귀국행 비행기를 탄 것은 저 한번의 투수교체가 너무 뼈아팠다. 애초에 좋은 투수들을 더 뽑지 못한 게 아쉽지만, 그나마 있는 자원을 효율적으로 쓰지도 못한 셈이다.

 5) 총평

 단기전은 모른다는게 여실히 증명된 대회였다. 올림픽과 다른 대회규정의 특성상 나올지 안나올지도 모르는 5선발급 투수가 얹혀가는 것보다 3인 로테이션을 돌리더라도 확실한 불펜 투수가 가는 게 중요했는데 선발 과정에서나, 운영에서나 그렇지 못했던 게 아쉽다. 야수진에서도 1루/DH 자원에 3명이 들어가고 유격수만 세명을 뽑아놓으니 말로는 내야유틸로 쓸 수 있다 해놓고 정작 써먹기가 힘든 모습이었는데 어지간하면 2,3루 백업요원도 고려해서 뽑았으면 한다. 포지션별로 제일 잘하는 선수 한 명에 베테랑 혹은 스페셜리스트 한 명 꼴로 뽑아도 충분하거늘 꼭 그렇게 했어야 하는지가 아쉽다. 국대에서 못쓸 자원은 미필/아마추어 시드 고려해야하는 대회 아니면 안봤으면 한다. 그나마 대만전에서 유종의 미를 거둔 걸로 정신승리라도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2013년 2월 23일 토요일

신이라 불릴뻔한 사나이

 PED(경기력 향상 약물) 스캔들에 피해자가 있다면 로저 클레멘스, 앤디 페팃, 알렉스 로드리게스를 모두 좋아했던 양키스 팬인 나 역시 피해자일 것이다. 영화 옹박 홍보문구 '이소룡은 죽었다. 성룡은 늙었다. 이연걸은 약하다'를 처음 봤을 때처럼 충격적이었다. 저 트리오는 은퇴하고, 늙었고, 약한 것도 아니라 사이좋게 약을 했고, 덕분에 멘붕도 3배로 왔다. 뭐 내가 약을 빨라고 시킨 것도 아니고 로켓,페팃은 어차피 말년이니 은퇴하고 나서 밝혀지지 않아 차라리 다행이라 정신승리하긴 했지만 2007년 시즌 후 10년 최대 300M 연장 계약을 맺은 에이로드는 도대체 어찌해야 되는가 눈앞이 캄캄했다. 양키스가 계약 당시 32세의 3루수에게 저렇게 큰 계약을 선물한 이유를 생각해보자. 그가 42세까지 최고의 기량을 뽐낼 거라고 확신했다기보단, 배리 본즈의 얼룩진 최다 홈런 기록을 핀스트라이프 유니폼을 입고 깰 백기사를 위한 선물이라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행크 스타인브레너 양키스 부사장이 '우리는 양키스를 정상의 자리에 올려놓고 우주의 질서를 되찾을 것이다' 선언했을 때 내 머릿속엔 '포스의 균형을 되찾아줄 젊은 스카이워커'가 떠올랐다. 당연히 양키스 유니폼을 입고 2번의 MVP를 딴 에이로드가 그 주인공이었다. 친구 민케노비치의 글러브를 손으로 친 기행은 그저 경기장 안에서의 승부욕이 과도하게 표출됐을 뿐이고, 가을의 빈타야 곧 스탯 회귀의 법칙에 따라 맹타로 바뀔 거라고 생각했다. PED 스캔들 이후에도 내 상상의 반은 맞았다고 생각한다.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젊은 스카이워커인 것은 맞았다. 루크 스카이워커가 아닌 아나킨 스카이워커였기에 문제다.



  이제 부질없어진 마일스톤을 치우고 아나킨을 항상 미심쩍어했던 요다의 시선으로 돌이켜보면, 에이로드에겐 뭔가 어두운 구석이 있었다. 머니볼에서 스캇 해티버그가 비디오 분석을 하다 타석에 들어선 에이로드가 포수의 위치를 힐끔 곁눈질하는 걸 발견하는 장면이라거나, 에스콰이어 인터뷰에서 괜히 지터를 디스한다거나, 스포츠맨쉽보다는 게임맨쉽에 가까운 많은 면들이 그랬다. 사족이지만 500홈런, 600홈런을 칠 때 겪었던 극심한 아홉수를 보고 난 미국에도 당연히 아홉수란 말이 있을 줄 알았는데 없다기에 놀랐던 적도 있다. 이렇게 기록을 의식하고 항상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원하는 성격이 그 자신을 끊임없이 담금질해 최고의 선수로 만들어줬을지는 모르나 (더 합리적으로는 약을 빨아 그렇게 됐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반대급부로 여린 멘탈도 가져다 주었다. 프레셔를 즐기는 능력을 슈퍼스타의 자질이라고 본다면 에이로드는 분명 그러한 요소가 결여되어 있었다. 아마도 프로이트를 좋아하는 친구들은 에이로드를 분석하며 '어릴 때 부모의 관심을 못받았을 것이다' 예상할 것 같은데, 나는 정신분석학과는 거리가 멀고 그렇다고 성적표 행동발달란을 볼 방도도 없으니 저 가설을 증명할 수야 없다.

 에이로드는 2009년 첫번째 PED 스캔들 때, 텍사스 레인저스 시절 고액연봉자로서 부담을 느꼈고 그때만 잠깐 스테로이드를 복용했다 주장했고, 2008년 미첼 리포트에 이름이 올라있지 않은 것은 맞지만 약쟁이의 말을 사람들은 쉽게 믿지 않았다. 당장 저 스캔들을 처음 폭로한 SI 셀레나 로버츠는 책에서 그가 고등학교 때부터 스테로이드를 복용했다는 내용을 싣었다. 그 기자가 대형 오보를 내고도 별다른 사과를 하지 않은 전력이 없었더라면 누구나 에이로드가 받았던 전미 최우수 고교 야구선수상도 잘못된 수상이였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안이 엄청났던만큼, 에이로드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양키스가 보인 반응은 차가웠다. "앞으로 로드리게스는 경기만 뛰면 된다. 노동자(Worker)일 뿐이다. 일 하고 난 후에 급료를 받고 끝나면 사라지는 존재다." 실제로 이후 양키스는 에이로드가 위기에 닥칠 때 그를 보호하지는 않았다. 

 파문이 어떻든간, 양키스는 에이로드와의 재계약을 주도한 행크 부사장을 일선에서 물러나게 할 순 있었지만 여전히 2016년까지의 계약은 유효했다. 약빨도 떨어지고 자연스레 노화도 오니 금강불괴같던 에이로드도 슬슬 한군데씩 아프기 시작했다. 양키스 이적후 홀수해에 잘하고 짝수해에 '비교적' 못하던 징크스도 깨졌다. 2009년엔 12년 연속 30홈런 100타점 기록(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차치하고서라도)도 깨지기 일보 직전 마지막 경기에서 극적으로 2홈런 7타점을 기록하며 간신히 이어나갈 수 있었다. ALDS, ALCS에서 시리즈 MVP급 활약을 펼치며 양키스의 27번째 WS 우승에 기여했지만 ALCS MVP는 동료 사바시아의 차지였다. 물론 사바시아도 3일 로테이션을 강행하며 엄청난 활약을 펼쳤지만 PED 스캔들이 아니었더라면, 오랜 가을삽질을 중단한 에이로드가 MVP를 받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듬해에도 어떻게 13년 연속 30홈런 100타점 기록은 이어나갔지만 그 후는 없었다. NBA 피닉스 선즈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 부활하겠다며 설레발을 쳤으나 두 시즌 동안 100경기 넘게 결장했다.

                                                 홈런왕에서 페북왕으로      

 그렇다면 떠넘길 팀은 있을까. 인센티브는 빼도 잔여 연봉만 1억불이 넘게 남았다. 쇠퇴한 경기력을 생각하면 연봉보조 퍼줘가며 넘기지 않는 한 받을 팀도 없거니와 무엇보다 저 친구한테 트레이드 거부권이 있으니 처분도 어렵다. 그러나 양키스의 대응은 내 생각 밖이었다. 에이로드를 핵심전력으로라도 봤으면 보호하는 움직임을 취했을텐데, 캐시맨 단장이 트레이드 논의를 한 적도 없다고 부인하긴 했으나 이미 뉴욕발 언론들이 덤핑처리 방법이나 은퇴시킬 방법을 연일 보도하고 있는 판에 소스 없이는 나가기 힘든 보도가 아닌가 싶다. 팀 페이롤을 20M 정도 줄일 구상을 가지고 있는 양키스로서도 에이로드가 부상으로 선수생활 못하게 되어서 은퇴한다는 뻥카를 치면, 페이롤은 페이롤대로 줄이고 보험금은 보험금대로 받아 지불할 수 있긴 하다. 양키스 팬 입장에서 은퇴를 마다할 이유는 없겠지만 그런 식의 꼼수는 양자간 합의가 됐을 때나 써먹는거니 은퇴 종용에 정떼기 수순에 가깝다.

 2013년 시즌을 앞두고 에이로드는 또 수술을 받았다. 전반기 복귀는 불가능한 것은 물론 시즌아웃 확률도 높아보인다. 양키스도 발빠르게 3루 대체 자원으로 유킬리스를 데려왔다. 단년계약이지만 12M이 추가지출 되었으니 가뜩이나 먹튀소리 듣기 딱 좋은 판에, 두번째 PED 스캔들이 터졌다. 다른 선수들의 이름도 거론되고 있지만 마이애미 약팔이 앤소니 보시에게 에이로드가 직접 성장 호르몬을 주사받았다는 주장이 핵심인데, 에이로드 측이 즉각 부인하긴 했지만 약팔이가 직접 작성한 기록이 남아있고, 같이 훈련을 하던 멜키도 명단에 있다니 의심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 성장 호르몬이라니 부상 회복을 위해 썼을 개연성도 충분하다. 아직 조사가 끝난 것은 아니지만 사실로 드러난다면 첫번째 스캔들 당시 했던 말도 믿기가 어렵다. 구단이나 지터가 그를 두둔하지 않는 것도 자업자득이긴 하다.

 이제 에이로드가 설령 763홈런을 친다 해도 그는 건강한 미키 맨틀이 아닌 제2의 배리 본즈라 불리는 것이 마땅하다. PED는 아무리 좋게 포장해도 '한때의 실수'가 아닌 '부정한 행위'다. 이미 명예의 전당에 그러한 치터가 이미 들어가있다고 믿고 있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덜미 잡힌 치터는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에이로드가 남은 거액을 포기하고 은퇴하리라 보기는 어렵다. 다만 그가 양키스를 위해 할 수 가장 좋은 일은 연신 삼진을 당하고 덕아웃에 들어와 박수를 치는 게 아니라 지터의 3500안타를 축하하는 페이스북 글에 좋아요를 눌러주는 일같다. 그래도 작년까지는 절치부심해서 30홈런은 쳐주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그걸 바라기도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