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 26일 금요일

보일러 온수 얼어서 안 나온 경험담

 T.S.엘리엇은 세상이 끝나는 방식은 쾅하는 포성이 아니라 훌쩍임과 같이 온다고 했다. 이보다 더 한겨울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온수가 안 나오는 것을 잘 묘사할 수 있는 표현이 세상에 다시 있을까 의문이다. 그것도 간밤에 온수 쪽으로 수도를 똑 똑 틀어놓았는데도 그렇다면 말이다. 쫄쫄 틀어놔야 하는 집도 있는 것을 명심하자.

 만약 당신의 수도꼭지에서 냉수도 나오지 않거나 심지어 수도계량기까지 깨졌다면 이미 매티스의 시간이고, 할 수 있는 건 수도사업소와 업체에 전화하는 것 밖에 없겠지만 난방과 냉수 배출은 잘 되는 가운데 온수만 나오지 않는다면 아직 틸러슨의 시간이다. 사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렇게 추울 때는 보일러나 수도 동파되는 집이 많을 것이기 때문에 업체를 불러도 온다는 보장이 없다. 침착하게 행동하자.

 요즘 보일러는 기본적으로 동파 방지 기능이 있어서 추우면 자동으로 동작해서 자체 동파를 막는다지만, 온수배출관에 고여있다가 어는 물을 어떻게 할 수는 없기 때문에 기온이 너무 내려가면 수도를 온수 쪽으로 확 제끼고 물이 쫄쫄 흐르게 해놓아 동파를 예방하는 것이 우선이다. 앞서도 이야기했듯 똑 똑 틀어놔도 얼었기 때문에 수도와 가스 요금이 더 나오더라도 물줄기가 끊이지 않을 정도로 틀어야 하는 집도 있다.

 그렇게 하지 못해 온수배출관이 얼어 붙어 온수가 나오지 않는다면 먼저 보일러 매뉴얼을 찾아서 온수배출관을 찾아봐야 한다.


 우리 집 보일러의 배관도를 찾아보니 다음과 같았다. 우선 보일러 전원 코드를 빼고, 온수 쪽으로 수도꼭지를 크게 틀어놓은 후 세번째 있는 온수출탕, 즉 온수배출관을 드라이기로 지지기 시작했다. 원래는 단열재를 벗기고 배관에 뜨거운 바람을 골고루 쏴줘야 한다는데 솔직히 그렇게까지 했다가는 단열재 다시 씌울 뒷일이 너무 귀찮을 것 같아서 일단 단열재가 덮혀 있지 않은 보일러 - 배관 연결부 / 단열재 없이 바깥에 노출된 부분 / 꺾인 부분 위주로 20분 정도 쏴주니 쏴아아 하는 소리와 함께 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업소용 드라이기를 사놓은 선견지명에 감사하며 온수를 만끽했다.

 만약 이렇게 해도 안되면 어쩔 수 없이 열선 사와서 단열재 벗기고 관을 녹인 후 다시 새 단열재 덮든가, 녹을 때까지 전열기를 틀어놓는 방법밖에 없는 듯 하다. 혹자는 심하게 추운 날엔 열선을 감아놓으면 괜찮지 않겠냐는데, 일단 관리도 어려울 뿐더러 2016년 한 해에 수도관에 열선 감아놓았다가 난 화재만 298건이라니 밤낮으로 보일러 배관 살필 것도 아니라 솔직히 하기가 꺼려진다. 싸구려 열선 쇼트나는 게 예고를 하고 그러는 것도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