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1일 일요일

예당 러시아 클래식 100선 앨범 커버 모음 / Yedang Best Russia Classic Gold 100 Audio CD covers

 박스를 사서 어떻게 리핑, 태그작업은 다 했는데 커버들이 일부를 제외하곤 인터넷에 올라와 있지 않아서 직접 스캔했다. 나중에 쿠팡 상품소개 페이지에 앞/뒷면 다 스캔이 되어서 올라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그걸 편집해서 쓸걸 하고 후회했다. 1번부터 10번까지는 한 네이버 블로그(링크)에 올라와 있었고, 11번부터 100번까지는 실물 CD 표지를 직접 스캔하였다. 복합기 한 대를 가지고 가내수공업으로 작업을 진행해 초점이 흐려진 것도 있고, 먼지가 같이 스캔된 것도 있는데 개인 보관 목적이라 재작업할 생각은 없다.

 박스셋을 기획한 회사가 지금은 인터넷 홈페이지도 열리지 않아 정보를 구하기 힘든 상황이라 올려두지만, 권리자에게서 요청이 들어오면 즉각 삭제 예정.

 Download(클릭)

2017년 7월 7일 금요일

애플 ID 해킹 당하고 결제까지 된 이야기

 재작년 연말부터 작년 초까지 가지고 있던 아이폰, 패드를 다 팔고서 헬지의 망작 G4와 대륙의 수작 샤오미 미 맥스를 계속 쓰다보니 애플 ID 쓸 일이 없었다. 그런데 1년 3개월쯤 지난 올해 5월 15일에 메일이 4개 연달아 도착했다. 


 중국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5월 14일 오후 11시경 아이폰6로 내 미국 애플 계정에 접속하였으며, 자기 계정과 아이튠즈 가족 공유를 신청했고 라그나로크 모바일 중국판을 다운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왜 즉시가 아니라 12시간이 훌쩍 지난 후에 로그인 알림 메일을 발송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나도 16일에나 메일을 확인했고 결제가 된 건 없이 다운로드 알림만 있었기 때문에 계정 보안만 재설정하고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리고 올해 7월 2일, 신도림 아이폰 재고떨이를 맞아 하나 주워와서 개통된 3일에 애플 ID 넣고 앱스토어 들어가니 결제 정보를 갱신하라는 알림창이 떴다. 얼마 전에 카드를 갱신했기 때문에 그런가보다 하고 새 카드 입력을 하니 문자가 띵 왔다. 결제 확인용 1달러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19.99달러였다. 이거 실화냐?

 놀라서 자세한 구매 목록에 들어가보니 다음과 같은 게 있었다. 


 5월 14일 오후 11시 반에 라그나로크 모바일 게임머니를 산 것 같다. 놀랍게도 중국인은 게임 다운받은 거 구매 목록 삭제까지 마친 것 같다. 앱스토어 리뷰란에 허구헌날 구매 목록 삭제해주세요 그러는 사람들보다 훨씬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기존 카드가 만료되어 구매가 홀딩되어 있다가 내가 새 카드 정보를 입력한 순간 돈이 빠져 나간 것 같다. 

 메일함으로 가보니 7월 3일 날짜로 구매가 완료되었다는 영수증 메일이 왔다. 우선 저기 있는 Report a Problem을 눌러 링크를 따라가 내가 산 게 아님 사유를 선택했더니 메일로 할 것인지, 전화로 할 것인지를 선택하는 창이 떴다. 미국 계정이라 영어로 전화를 해야되나 싶었지만 걸려온 전화는 한국 직원이었다. 사정을 설명했더니 당장 처리할 수 없는 문제라며 다음날 다시 연락하겠다고 예약을 잡았다. 카드사에도 결제 취소가 가능한지 문의하였더니 만약 앱스토어 측에서 처리가 되지 않으면 차후에 이의제기를 거쳐야 한다고 한다.

 다음날 약속한 시간에 애플 측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제와는 다른 담당자였는데 다시 소명을 하라고 해서 짧지 않은 얘기 다시 하기는 조금 짜증이 났다. 2주 내 환불이 된다고 했고, 대신 이번에 결제에 쓰인 카드는 밴이 된다고 했다. 두 달을 홀딩되어 있다가 카드 정보 갱신하자마자 결제가 된 건데 그렇게 해야되냐고 말해봤지만 소용은 없었고 3일 후인 7일 오늘 환불이 완료되었고 다른 카드를 입력하고 결제정보를 갱신하라는 메시지가 떴다.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그동안 카드랑 연결된 사이트마다 계정 패스워드를 다르게 했고, 애플 아이디와 이메일 계정도 당연히 각기 다른 패스워드를 썼는데 뚫렸다는 것이다. 지금은 아이폰을 쓰고 있기 때문에 이중 인증을 활성화시켜 두었다. 사드보다 확실히 중국을 견제할 수단이면 좋겠다.

 3줄 요약

 1. 생각보다 빠르게 결제 취소 절차가 완료되었다
 2. 카드는 밴이 되었다
 3. 애플 계정은 타 사이트와 패스워드를 달리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해킹 경로는 의문이다

2017년 5월 13일 토요일

19대 대통령을 맞이하며

 지난 1년여 동안 나는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보던 신문도 바꾸고, 현 여권에 우호적인 커뮤니티는 물론이고 조갑제닷컴이나 아크로 같은 사이트도 종종 눈팅을 하곤 했다. 내 입장에서는 아주 황당무계한 논리를 펼치는 사람들도 많이 보았다. 근왕파 잔존세력과 버릴 건 버리고 보수를 살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수정주의자들의 내전은 예측할 수 있는 범위 내였다. 헌데 DJ는 종북이 아니었으나 문재인은 종북이 맞다고 생각하는 교조적 지역주의자는 처음 발견했기 때문에 신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도 공동체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었고, 동의하기 어렵다 뿐이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 있었다.

 그 사이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다. 대통령이 6개월이나 유고상황이었고 그 이전에도 비선실세들이 국정 전반을 주물럭거렸지만 나라가 망하지는 않는 것을 지켜보았다. 1인에게 권력이 집중된 제왕적 대통령제라고는 하나 이제는 우리도 어느 정도 시스템을 갖게 되었구나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새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급한 현안들을 처리하는 것을 보니 확실히 대통령의 권한은 매우 크다는 것을 다시 느꼈다. 최측근을 비서실이 아니라 내각에 두는 것을 고려한 듯한 인사는 여태까지는 마음에 들고 있다.

 전임 박근혜 정부에는 여러가지 문제가 있었기에 헌정 사상 최초로 대통령이 탄핵에 이르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문제 두 개는 과도하게 이념갈등을 조장하고 국회를 무시하는 것이었다.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논란은 그 대표적인 예인데, 시작은 저 노래에 어거지로 종북 논란을 갖다 붙여서 대신 '얼씨구 절씨구 자진 방아로 돌려라' 로 시작하는 자진방아타령을 연주하려는 한심한 행동은 이명박 정부에서 한 것이지만 박근혜 정부에서의 대처는 그야말로 기가 막혔다. 

 우선 저 노래에 종북 논란이 붙는 거 자체부터가 문제인데, 작사가가 나중에 방북을 한 것을 소급시켜 문제를 삼는다면 작가 이문열 씨도 허구헌날 홍위병 타령을 하면서도 본인은 태극기 집회에 참석하였으니 <황제를 위하여>에서 정 처사의 아들 황제를 따르는 덜떨어진 일당들을 충직한 인물들로 묘사한 것은 훗날 박 대통령의 딸 박 대통령2를 추종하는 세력을 미화하기 위한 찬양 및 고무 목적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고, 그 찬양의 대상이 헌법 수호 의지가 없기 때문에 탄핵된 인물이므로 이 소설도 반국가적 작품이라는 말인가? 아마 그렇게 허무맹랑한 생각을 하는 이는 매우 드물 것이다. 톡 까놓고 5.18 기념식이 아니라 부마항쟁 기념곡이었다면 저런 얼치기 매카시즘 자체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또 박 전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인 2013년에는 국회의원 재적 200명 중 158명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5.18 기념곡으로 지정할 것을 요구하는 결의안에 찬성해 통과시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승춘 보훈처장이 온갖 핑계를 갖다 붙이며 방해하니 163명의 야당 의원이 보훈처장 해임촉구 결의안을 발의했으나 박 전 대통령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새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보훈처장의 사표를 받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5.18 기념곡으로 지정한 것은 사필귀정이다.

 전임 박근혜 정부는 매번 저런 식으로 국회를 무시했다. 국정 역사 교과서야 아버지를 위한 트리뷰트라고 쳐도 국회법 여야 합의안을 거부하며 여당 원내대표를 찍어내고, 장관 해임건의안도 거부하는 폭정을 펼쳤으니 임기가 하루라도 더 빨리 줄어들지 않은 것이 국가의 불행이다. 이제 와서 자한당은 국정 교과서를 야당과의 협의 없이 폐지했다고 항의해보지만 그럼 뭐 저 수준 미달의 교과서를 만들 때는 민주당과 국민의당의 협의를 통과해서 만들었다는 것인가. 어차피 결의안 내봐야 통과도 못 시킬 거 가져가고 싶으면 직접 와서 수령해가면 몇 권 정도는 얻어갈 수 있을 것이다.

 국회 무시, 이념 대결 이 두 개의 뿌리는 대통령 본인의 시대착오적인 역사관에 있었다. 한 가지 걱정이 되는 것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한 줌 주사파는 남아있듯이 탄핵당한 전 대통령의 추종세력도 잔존해 있을 거라는 이야기인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 선출직에 당선되면 탄핵심판, 위헌정당해산심판으로 철퇴를 맞은 무리의 상징을 취임식장에 비치하고 후미에 시키는 것까지도 찬성한다. 지도자가 저렇게 편협한 역사관을 가지는 한 미래는 어두워진다. 선거기간 중 당시 문재인 후보가 좋아하는 책으로 전환시대의 논리를 꼽았을 때 내가 약간의 불만족을 느꼈던 것도 비슷한 이치였다. 이제는 효용을 다 해가는 책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새 대통령은 전임자와는 넘사벽의 소통, 공감 능력을 지녔기 때문에 의식이 그 시대에 멈춰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들은 새 정부가 뭘 해도 좌우에서 치이는 언론 지형의 한계로 제 평가를 받지 못할 거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여러 현안들을 슬기롭게 처리할 수 있다면 일정 이상의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지난 4년을 반면교사 삼아서 국회와 긴밀한 협조를 구해야 함은 물론이다. 현재 5당 체제로 개편된 정계 지형이 당, 정에 불리한 것도 아니다. 앞서 언급한 정치적 극단주의자들마저 만족시키는 정치를 펼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해 할 수 있는 일에만 매진한다면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을 것이다. 

2017년 5월 2일 화요일

현 시점 대선후보들에 대한 좀 더 긴 평가

 1. 문재인

 동의하지 않는 이도 있겠지만 나는 문재인 후보의 과거 삶에 합격점 이상의 점수를 주고 있다. 거기다 소속 정당은 DJ 이후 최초로 단결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원내 최다석 정당이다. 또 후보의 정책을 만들어내는 싱크탱크의 규모와 질 모두 문재인 후보 측이 가장 낫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현재의 발언을 통해 리더의 살아온 길 뿐만이 아니라 앞으로 어떤 길을 갈 것인지도 가늠해 볼 수 있다. 공안몰이, 블랙리스트 때문에 인권 의식이 2002년 대선에 비해 두 발자국 후퇴하고, 수치를 모르는 극단주의자들이 다수 출몰한 지금, 문재인 후보의 동성애 발언은 여러 가지 사정을 모두 감안하더라도 실망스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최소한 홍준표 후보의 원색적인 '후미에'를 에둘러 비켜갈 수 있는 방법은 있었기 때문이다.

 2. 홍준표

 미세먼지 대책과 2,000cc 미만 유류세 50% 감면이 공존할 수 있는 정책은 아니다. 만사를 저렇게 아무 생각없이 질러대도 25% 가까이 득표할 것이다.

 3. 안철수

 아름다운 일주일을 보내고 멸망했다. 악당에 투표하는 사람은 있어도 찐따에 투표하는 사람은 드물다. 안철수 후보는 그동안 자기가 문재인 후보보다 나은 대안임을 꾸준히 어필해왔다. 안희정으로 문재인을 막을 수 없다는 게 기정사실화 되고나서 反문표들이 곧바로 안철수 후보에게 결집한 것은 그동안 써왔던 전략이 유효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문제는 그 반문표들은 문재인이 싫어서 안철수에게 모여있던 것이지, 안철수가 좋아서 모여있던 것은 아니었다. 일단 문재인과 맞서 승산이 있으면 저 정도 지지율은 나온다는 것은 반기문 - 황교안 - 안희정이 증명해 준 바 있다. 그런만큼 표들의 스펙트럼이 매우 다양해 후보가 보수-진보 사이에서 삐끗하기라도 하면 비 온 후의 벚꽃처럼 우수수 떨어져 나갈 것임은 자명했다. 그렇기 때문에 안철수 후보는 'A도 겪어봤고 B도 겪어봤지만 다 실패하지 않았냐'는 특유의 스탠드를 구사하는 게 옳았다. 하지만 그걸 구체적인 정책에도 가져다 쓰면 안 됐다. 시범사업만 8조가 드는 사업인데 왜 꼭 저렇게 해야하는지 설명이 제대로 안 되는 순간 5년을 베타테스트로 날리겠네 생각이 안 들 수가 없었다. 4차 산업혁명 말만 하지 말고 이 중에서 코딩 한 줄 해 본 사람이 저밖에 더 있습니까 식으로 어필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네거티브 공방전과 병설형 단설 유치원 파문은 안 후보의 참신함을 모두 다 날려버렸고, 국회의원직 사퇴나 공동정부론은 전혀 파급력이 없었다. 자기가 사퇴하는 게 아니라 박지원 대표의 정계 은퇴를 걸었으면 조금은 효과가 있었을 것이지만 당 장악력이 없으니 불가능하긴 했을 것이다. 지지율이 급락하니 급기야 총선을 앞두고 서로를 향해 날선 공방을 벌이던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을 영입한 것은 실착 정도를 넘어 한심할 지경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그의 역사 인식이다. 이념에 연연하지 않는 것도 자기가 확고한 이념을 가지고 있어야 균형을 잡을 수 있는 것이다. 의대생 시절에 V3까지 만드느라 고생하고, CEO 하느라 바쁘고, 교수 하느라 공부 열심히 한 건 알겠는데 리더가 되려면 역사 공부 준비도 더 해야했다. 기본이 안 되어있으니까 임시정부 법통 논란이 계속 튀어나오는 것이다. 이 사람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바로잡을 기회는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생각해봤는데, 애초에 호남 중진 사채를 끌어다 쓴 순간 어떻게 해도 힘들었을 것 같다.

 4. 유승민

 유승민 후보의 토론 스킬은 많은 칭찬을 받았지만, 어디 한군데 꽂히면 헤어나오지 못하는 모습은 리더의 모습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전술핵 재배치, 사드 배치, 벤처 창업과 중소기업 지원 모두 비슷한 태도로 일관했다. 군소후보가 다른 후보의 헛점을 지적하는데 성공했다면 물고 늘어지는 것보다는 알겠습니다 하면서 자기 장점을 어필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또한 원조친박이었지만 경제정책에는 끝까지 반대했다는 하나마나한 이야기보단, 그 자리를 더 일찍 박차고 나오지 못한 그 시절을 반성했어야 했다. 생각해보면 유승민 후보의 정치 인생은 매번 저랬다. 원내대표 시절 남이 쫓아내기까지 자기 자리를 던지지 못했고, 자기 라인이 다 짤려나갈 동안 탈당도 백의종군 선언도 하지 못했다. 간신히 김무성 전 대표의 무공천에 힘입어 대통령 '존영' 걸고 선거했고, 탄핵정국 속에서도 정치적 후원자인 김무성 전 대표의 재탈당 권유도 처음엔 거절했다. 대구 유세에서 한 시민에게 (전 대통령과) 한 배를 탔으면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라는 일갈을 들을 만하다 생각한다. 하지만 본인은 정말로 선을 그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5. 심상정

 나름의 색깔을 확실하게 들고 나왔고 성과도 있었다. 바른정당의 유승민 후보를 지지율에서 미세하게나마 제치고 있는 것. 당선 확률은 희박하겠지만 소수자들의 의견을 반영할 창구가 꼭 필요하므로 소신 투표하는 이들의 표를 받는 것이 의미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오세훈, 한명숙 둘 다 싫다고 노회찬 찍었다고 세상이 바뀌지는 않았다.

2017년 3월 21일 화요일

꼭대기가 있으면 골짜기도 있다 : 김인식 감독의 마지막 국가대표팀을 보내며

 2013년 WBC에서 류중일호가 조별예선 통과에 실패하며 링크(클릭)과 같은 관전평을 쓰기도 했었는데, 어느새 4년이 지나 다음 WBC가 열렸다. 그 사이 김인식 감독이 국가대표팀을 다시 맡아 프리미어12 우승이라는 깜짝 성과를 냈고, 이번 WBC에선 1라운드 경기를 고척돔에서 치르게 되며 더욱더 기대감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개막하자마자 우리 대표팀은 이스라엘과 네덜란드에 연달아 패배하며 경우의 수 놀음을 하다가 무기력하게 탈락했다.

 그나마 마지막 경기였던 대만전에서 답답하던 타선의 물꼬가 터지며 무려 11득점을 뽑아냈지만 꼴찌 결정전에 불과했고 예선 라운드 강등을 당하지 않아서 시즌 진행 중에 2군 상비군들 뽑아서 몽골 파키스탄 이런 나라들과 경기는 안 해도 된다는 것에 애써 의미를 둬야 하는 결과였다. 흥행 측면에서도 서울 라운드는 도쿄, 마이애미는 물론 할리스코 라운드에도 크게 뒤졌다. KBO, 선수단, 팬, 방송사 모두에게 큰 상처를 남긴 셈이다. WBC가 역대 최고의 흥행을 기록하며 연일 꿀잼 경기 속에 마지막으로 치닫는 와중에 우리 대표팀이 저기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을 저절로 하게 된다.

 이번 대회의 졸전에도 불구하고 김 감독을 비판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김인식 감독은 이미 현대 야구에 적응하는 것에 실패했기 때문에 프로팀 지휘봉을 놓았던 사람이다. 베테랑 위주, 쓰는 선수만 쓰는 혹사 문제는 드래프트에서 선수 제일 적게 뽑던 소속팀 한화 이글스의 근시안적인 정책과 맞물려 현재까지 진행 중인 암흑기의 초석이 되고 말았다. 그럼 뭐 국가대표에서는 달랐나? 팔에 담 걸려서 등판 어렵다던 구대성 155구 완투시킨 시드니 올림픽은 이제 너무 오래된 일이니 그렇다쳐도 WBC 이전에 일본팀 상대로 김광현이 3경기 다 잘 던지니까 WBC 일본전에도 그대로 표적 등판시켰고, 미리 대비해 칼을 갈고 있던 일본한테 그야말로 떡실신 당하고서 봉중근을 올리고, 잘하니까 같은 대회에서 2번이나 더 일본전에 표적 선발 시킨 운용이 보여주듯 국가대표팀에서도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그러나 그가 마지막 대회에서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고 비판하기 어려운 이유는 업적과 투혼 때문이다. 코치로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 감독으로 2002년 부산 AG 금메달, 2006년 WBC 4강, 2009년 WBC 준우승, 2015년 프리미어 12 우승이라는 성적을 보여줬다. 또 분명 선수를 혹사시키는 감독이긴 하지만, 김성근 감독이 무슨 KBO가 자기한테 성의를 다하지 않았다고 국가대표팀 걷어차니까 뇌졸중으로 쓰러져 고생했던 김인식 감독이 소속팀 임기 마지막 해를 앞두고서 나라가 있어야 야구도 있다면서 국가대표팀 감독을 떠맡지 않았던가. 모기업의 '위대한 도전'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연일 기사화시키며 WBC 준우승이라는 성적을 거두고도 본인 소속팀 성적이 나오지 않아 재계약 못했으니 한화팬들이면 몰라도 다른 팀 팬들은 인간적으로 뭐라고 얘기하기가 어렵다.

 거기다 2013 WBC에서 류중일호가 망하고 대표팀 감독 아무도 안하려고 하니까 야인으로 있다가 프리미어12 떠맡고, 이번 WBC까지가 사실상 저 양반의 마지막 대회니까 나같은 경우엔 선수 선발 과정에서부터 잡음 나오는 거 어차피 이번엔 성적 나오기 힘들 것 같지만 영감 마음대로 하게 두고 뭐라고 얘기 안 해야겠다 그런 생각까지 했다. 설령 이번 대회에서 다른 감독 희망자가 있었더라도 지금 김인식호에 선동열, 김시진, 이순철 코치 등 전직 감독 출신들이 즐비했기 때문에 선수 차출에서도 득을 봤음은 자명하고, 그동안 노감독이 해온 것만으로 마지막 기회를 줄 이유와 명분은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이미 보여줄 것을 다 보여주고 한계에 부딪힌 김인식 감독 체제로 계속 가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모든 문제를 인선의 문제로 치환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제 김인식 감독을 보내주는 것을 시작으로 새 판을 짜야 할 때다. 그 첫번째는 전임감독제 도입이 될 것이다. 물론 일부 팬들이 생각하는 '젊고 능력있는 감독을 데려와 세대교체 체질개선' 이런 건 망상에 가깝다. 애초에 그럴 능력이 있는 젊은 지도자가 있는지도 미지수이지만, 그럴 사람이 뭐하러 프로팀에 안 가고 경기도 듬성듬성 있는 대표팀에 와서 박봉에 감독을 지내겠는가? 종목은 다르지만 농구 대표팀 전임감독이었던 김남기 감독이 박봉을 이유로 프로팀으로 떠난 것을 상기해 볼 필요도 있을 것이다.

 또 어째서 이번 대표팀이 실패했는가에 대해선 이미 여러 의견이 나와 있다. 메이저리거들이 참가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세대교체를 했었어야 했다, 선발 라인업이 아쉽다, 경기 중 작전이 심하게 소극적이었다부터 선수들이 배가 불러서 정신상태가 나약하다까지 다양하다. 증명할 수도 없고 동의하기도 어려운 마지막 항목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다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그냥 실력이 거기까지였던 것 같다. 투수들 구속이 안 나왔긴 하지만 홈에서 열리는 대회에서 무슨 컨디션 조절을 실패했다 이런 변명 하기도 민망한 노릇이다. 무엇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젊은 선수들이 성장하지 못했던 탓이다. 2006 WBC 에이스는 현역 메이저리거였던 박찬호 서재응이었다. 또 베이징 올림픽, 2009 WBC에는 류김윤이라는 영건이 있었는데 이젠 그만한 선수들은 커녕 동시대에 그들보다 한 수 아래이던 장원준 우규민 양현종이 선발로 나와야 한다.

 옆나라 일본과 비교해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일본은 투수조에서 90년대 출생자가 반 이상이지만, 이번 우리 대표팀에서 90년대 출생 투수는 심창민 한 명이다. 그렇다면 잘하는 어린 투수를 안 데려간 것일까? 스탯티즈 기록을 참조하면 올해 투수 WAR TOP 20에서 심창민은 20위를 기록했는데, 유일한 90년대 출생자였다. 2006년 세계 청소년 대회 멤버들이 프로에서 꽃을 피우고 난 후 유망주가 끊겼다는 증거다. 2006년에 투수 WAR 상위 10명 중 국내 선수는 류현진 오승환 손민한 배영수 장원삼 박준수 여섯, 2009년엔 류현진 봉중근 양현종 전병두 김광현 조정훈 윤성환 이렇게 일곱 명에 달하던 것이 2016년엔 양현종 장원준 신재영 유희관 넷에 불과하다. 그 원인이야 2002년 월드컵과 저출산이 가장 클 것이고, 1차 연고제 폐지로 구단의 연고 학교 지원이 줄어든 것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반대로 축구를 보면  슈틸리케호 이번 중국전 소집명단 23명 중 90년대 출생자가 12명에 달하고 제일 나이 많은 필드 플레이어가 86년생 이용일 정도로 자연스럽게 세대 교체가 되고 있다. 최연장자 골키퍼 권순태조차 이대호-정근우-김태균보다 어리다.

 다행히 베이징 올림픽 이후 늘어난 야구 붐 덕에 지금 고등학교 1,2학년 투수팜은 일본과 비교해서도 풍족한 편이다. kbreport.com의 기사(링크) 에 따르면 강속구 투수의 질로나 양으로나 일본을 앞서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저들이 프로에 와서 바로 성공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1라운드 지명감이라고 해도 스카우터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구속만을 쥐어짜는 경우도 많고, 아마야구에 제대로 된 투수 코치도 없어 잘못된 폼을 가지고 있기 일쑤다. 그 결과가 연례 행사가 된 입단 후 수술이고 그 후 2,3년 적응 과정에 군복무를 거친다고 해도 교정된다는 보장도 없다. 현실적으로 모든 중고교팀에 좋은 코치를 데려다 줄 수도 없으니 결론은 연령별 상비군에서 유망주들을 케어할 필요가 있다.

 물론 지금처럼 연령별 대표팀에서 장채근, 이정훈 이런 감독들 보면 관리는 커녕 이것이 리-얼 혹사다 보여주는 것이 프로 오기 전에 은퇴하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다. 일본은 자국에서 올림픽이 열리고 야구를 종목으로 넣으니까 2016년부터 프로와 아마추어가 모두 참여하는 일본 야구 협의회를 만들어서 국가대표팀/사회인 야구 대표팀/연령별 대표팀/여성대표팀 등을 관장케 하고 있는 것이 힌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동안의 자산을 가지고 버티던 잃어버린 10년이 더 이어지지 않으려면 이젠 계획을 세워야 한다.

2017년 3월 13일 월요일

승복하고 반성하라

 과반이 넘는 지지를 받고 선출된 국가수반이 임기 내내 정체 모를 사인의 지령을 따라 그의 이익을 도모하다 급기야 파면까지 당했다. 수사에 적극적으로 임하기는 커녕 은폐하기 바쁜 것도 탄핵에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있는데, 내 생각에 수사에 적극적으로 임했으면 더 빨리 파면을 당했을 것이다. 이러한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에 개탄스러운 일이 어디 한 두가지였겠냐만은, 특히 심판절차 중 두문불출하던 전 대통령이 외부에 의사를 드러내는 방식은 너무도 졸렬해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다음 세가지 망동이 특히 경악스러웠다. 첫번째로 사법기관 출석은 물론 언론과의 질의응답도 하지 않다가 자기 입맛에 맞는 인터넷 방송에 출연한 것, 두번째로 자기 팬클럽에 국가수반 명의로 감사의 편지를 전달한 것, 마지막으로 파면 당하고 이 핑계 저 핑계로 퇴거를 미루다가 주말을 다 보내고서야 자택으로 돌아가고 지지자들이 도열해 있으니 개선장군마냥 한바탕 쇼를 한 것들인데 모두 지도자로서 최소한의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면 저런 행동까지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반면 국민들이 기대했던 최소한의 사과와 승복의 메시지는 보이지 않았다. 본인은 2004년 탄핵 사태, 수도이전 사태부터 통진당 위헌정당해산까지 번번이 헌재의 결정에 승복할 것을 강조해왔음에도 정작 자기가 심판의 대상이 되자 조사에 협조는 커녕 나라는 내팽개치고 선고 지연에만 연연했다. 결정이 난 지금도 전혀 반성은 하고 있지 않아보인다. 파면된 다음날 새벽에 소복에 보따리 하나 들고 나와서 기도원이라도 들어가면 향후는 도모할 수 있었을텐데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는 차라리 저렇게 혜경궁 홍씨가 아니라 경빈 박씨의 길을 가서 그나마 있던 동정표를 활활 불태우는 것이 다행이다 싶다. 

 물론 전 대통령 스스로는 뭔가 억울할 수도 있다. 변호를 맡긴 대리인단이 법정에서 국기를 펼치는 퍼포먼스나 하면서 막말이나 하고 있다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건 저 따위 변호인단을 구성한 본인의 사정이다. 앨 고어는 플로리다주에서 석연찮은 개표 사건을 겪고도 법원의 결정에 승복하였고, 국정원이 대선에 개입한 게 발각되어 국정원장이 감옥에 간 지난 대선에서도 문재인 전 후보는 대선 결과에 승복하였다. 또 전 대통령 본인부터 지난 2007년 당내 경선에서 패배를 승복하고 화합을 주문해 큰 반향을 얻기도 하였다. 그때는 승복하고 지금은 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제 도모할 미래가 없기 때문에 책임을 방기하는 것으로밖에 볼 수 밖에 없다.

 큰 갈등이 있은 후 패배의 책임을 져야할 사람이 결과에 승복하지 아니한 결과가 바로 지난 토요일 탄핵반대집회의 사망자들이다. 헌법재판소는 헌법의 수호자여야 할 대통령이 그에 반할 때 저지할 수 있는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이다. 탄핵 찬반 여론은 늘 8:2 정도였고, 결과에 승복해야 한다는 여론은 9할을 넘어섰다. 국론이 양분되었던 것은 사실이나, 그 양 극단의 크기는 엄청나게 차이가 났다는 이야기고 탄핵 결정 후에는 역대급으로 국론이 통일되었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간혹 미국의 탄핵 제도를 운운하는 이들도 있는데, 이번 사안에서는 그나마 헌법적 검토를 하는 헌법재판소를 거치는 것이 미국처럼 국회에서 바로 탄핵을 결정하는 것보다 피소추인에게 유리하면 유리했지 불리하지는 않다. 형사절차를 준용하는 것과 형사재판의 차이도 구분 못하는 이야기는 언급할 가치도 없는 일이다. 

 물론 개개인의 양심은 상이하니만큼 도저히 탄핵 결정을 인정하지 못하는 극소수 일부가 존재할 수는 있다. 그래서 전 대통령이 용단을 내려 즉각 승복하고 광신도들을 달래는 자세가 중요했다. 지금 상황에서 만약 충돌 사태가 일어나 전 대통령 대리인단이 주장하던 대로 '서울 아스팔트길 전부 피와 눈물로 덮일 것'이라면, 그 피가 누구의 피인지가 너무나 자명하기 때문이다. 이미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폭동의 결과로 3명의 피가 안국역 앞에 흘렀던 것이 그를 증명한다.  

 그것도 모자라 여당 서울시당의 부대변인인 현직 구의원이 단톡방에서 경찰에 화염병을 던지고 사상자를 발생케하여 계엄령을 선포했어야 했다는 선동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민주주의는 견제와 균형을 전제로 돌아가나 저런 RO를 연상케하는 내란선동까지 품을 수는 없다. 국민은 커녕 기르던 개도 나 몰라라 방기하고 떠난 자에게 너무 큰 것을 바라는 것일지는 몰라도 이제는 승복 선언을 하고 저들을 달랠 때도 된 것 같다. 어차피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아서 더 늦으면 그때는 나라를 위해 뭔가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2017년 2월 14일 화요일

근거없는 정치문화 '부심'을 경계한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민주주의가 일본보다 성숙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대략적으로 드는 이유는 1) 시민의 자발적인 정치 참여가 일본보다 많음 2) 일본의 지역구 세습 문화 3) 일본 정계의 폐쇄적인 파벌 문화 4) 아베 정권 극우 드라이브 5) 적극적으로 운영되는 한국 헌법재판소 등을 이야기 하는 것 같다. 일부 수긍하는 이야기도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한일 양국의 과거사를 고려하지 않은 단편적인 주장이며 정신승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확고한 중앙집권 국가인 조선과 봉건주의 국가인 에도 막부가 같은 선상에서 현대 민주주의 국가로 출발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일제강점기 36년, 넓게는 개항부터 군부독재 시절까지 좋건 나쁘건 일본의 영향을 안 받은 분야가 없는 나라에서 유독 민주주의만 더 성숙할 여건이 마련되었다고 볼 근거들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가끔은 저런 것도 일종의 컴플렉스가 아닌지 의심이 된다.

 1) 일단 태극기 집회라는 이름의 신정일치 운동이 그 반례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한국이 70년대 노동운동, 80년대 민주화운동, 90년대 환경/여성/소비자 운동 등으로 대표되는 시민 운동을 거쳐왔다면, 제국주의의 대가로 원자폭탄을 쳐맞고 맥아더 막부(GHQ) 아래서 전범국으로 관리 받았으나 훨씬 일찍 부를 쌓은 일본에서도 당연히 더 일찍 시민 운동이 발달해왔다. 노동조합은 이미 40년대 후반부터 결성되었고 50년대 경찰관직무집행법 개정 반대운동 / 평화운동을 거쳐 60년대에는 공해병으로 인한 환경운동이 시작되었고 70년대에는 반전운동이 펼쳐졌다. 뭐 저 시기에 한국에서 일본 시민단체처럼 베트남 전쟁 반대하고 그랬으면 무슨 일을 당했을지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해도 되겠다. 더구나 일본의 시민운동은 (역시 봉건제가 오래 지속된 역사상의 이유가 크겠지만) 풀뿌리 운동으로 일찍 발전해왔다는 점에서 오늘날 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은 90년대 지방자치가 시작되고 나서야 지역 네트워크에 눈을 떴기 때문이다.

 2) 기본적으로 국토의 대부분이 한국전쟁에서 초토화되어 신분제를 완전히 리셋한 한국에 비해 근대화를 봉건 영주 연합이 이끈 일본에서 세습 직업 정치인이 요직을 차지하는 비율이 아직도 높은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건 과거사에서 비롯된 것이지, 한국 정치가 세습에서 자유롭냐면 그건 아니다. 오히려 세습정치는 여기서 더 심해지고 있지 않은가? 현 대통령이 당선될 때 선진국인 미국도 못 가져본 여성 국가수반이라고 치켜세우는 것을 보고 참 기가 찼다. 생각보다 많은 정치 후진국에서 여성 국가수반을 배출한다. 유력 정치인의 아내/딸들이 남편/아버지이 죽은 뒤 그 지위를 (선거의 형식으로) 세습하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 스리랑카, 파키스탄, 필리핀, 인도, 파나마 이런 국가들이 뭐 대단히 민주주의가 성숙했기 때문에 여성 지도자를 국가수반으로 앉혔다고 생각하는건지는 모르겠다. 불과 2년여 전만 해도 국가 수반, 여당 당대표, 여당 원내대표가 모두 2세 정치인이었던 적도 있는데 남의 나라 세습정치 비웃기에는 뒷통수가 따갑다.

 3) 일본 자민당, 일본 민주당이 일종의 계파간 연립 정당인 것은 맞으나 구 새누리당, 구 열린우리당 등 3당 합당 이후 당대의 한국 여당을 보면 여긴 계파가 없다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합리적 보수랍시고 갈라져나간 바른정당 지지율이 정의당보다 안 나오고 이런 시국에도 특정지역에선 새누리당 지지율이 1위로 복귀했다는 것은 그 동안 구 새누리당의 지지기반이 어떤 계파였는지 그대로 이야기해주는 거 아닌가.

 4) 열도에서 채택률 1%도 안되는 역사왜곡 검정 교과서를 만들면 '자학사관' 개념 그대로 수입해다가 이것이 반도의 대답이라며 국정 역사교과서로 화답하고, 또 비밀보호법을 테러방지법으로 받는 것이 한국의 상황이었다. 애초에 자기 지지율 떨어지니까 반등카드로 일왕 사과요구, 독도 방문해서 우애 외교 표방하던 일본 민주당 정권에 치명타를 입히고 자민당 세운 것에 기여한 것이 전임 MB정부의 동북아 정책이었다. 그걸 또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도호쿠 대지진이라는 대형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서 정권을 잃은 거라고 애써 외면하던 것이 한국의 언론이었다. 그럼 자민당이 정권을 잡고 있었다면 발전소가 안 폭발하고 지진이 안 일어났으며 복구를 더 잘했을 거란 말인가?

 5) 이건 입헌군주국의 한계가 맞다고 본다. 1인의 절대주권을 상정한 군주라는 개념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라는데 동의하고 그러한 상황에서 군주 아래 있는 헌법기관엔 권한의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최순실 게이트 이전 현 정부의 지지율은 내내 40%를 웃돌았고 그 지지 이유 1,2위는 항상 안보, 외교를 잘한다 그런 거였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는 지지 사유다. 차라리 일본에서 아베 정권 지지율 조사할 때 주요 지지 이유로 집계되는 딱히 이유는 없다, 자민당 정권이라서 이런 건 차라리 솔직하기라도 하다. 옆나라 까는거야 세계인의 스포츠지만 내 눈에는 잘해봐야 거기서 거기고 딱히 우월감의 근거가 보이지 않는다. 근자감은 우리 모두에게 독이면 독이었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포켓몬스터 썬/문 코리안리그2016-17 WINTER 후기

 어릴 때부터 겜돌이였지만 주변에 애니메이션 오타쿠들도 많아서 2000년대 초반까지는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행사 꽤 많이 가봤었다. 그때야 킨텍스 생기기 전이라 코엑스, 여의도, 올림픽공원 간혹 대학교 대강당 이 정도에서 행사를 했었고 갈만한 거리였기 때문에 자주 갔던 것인데 지금 기억을 돌이켜보면 아니메 오타쿠들 행사는 대부분 전시나 부스 판매 위주니까 별 문제가 없었다만, 게임 행사는 아무래도 시연에 참여하거나 대회를 여는 게 많았고 질서 유지 안되서 짜증났던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2014년에도 롤드컵 결승(-당시 관전기(클릭)-) 보러 갔다가 4만명을 게이트 하나로 입장시키는 정신나간 운영을 당하고 오프 보이콧 하고 있었는데, 최근 3DS 끝물에 사서 포켓몬스터 하다보니까 한 번 구경해봐야지 하면서 코리안리그2016-17 WINTER 에 가봤다. 이 대회에서 입상하면 월드 챔피언십 2017 한국 대표 선발전에 참가할 수 있는 시드를 준다고 한다. 처음 가보는 곳이니 사전에 공지사항과 규정집을 읽고 영등포로 출발했다.

 갔다와서 느낀 것을 먼저 이야기하면 이 나라에서 겜돌이들 행사는 20년 동안 나아진 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 행사를 영등포 롯백 문화홀에서 했는데, 장소야 뭐 요즘 포켓몬스터랑 꼴데가 자주 엮이고 있고 다른 곳 대관이 힘들어서 좁은 곳에 해도 그럴 수 있다고 본다.

 다만 다른 운영은 심각한 것이 무슨 사전 안내를 저렇게밖에 안하는지 모르겠다. 하나씩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면

 1) 우선 참가 부문이 주니어/시니어/마스터로 나눠져있는데 저 기준이 뭔지 공지사항에도 규정집에도 안적혀있으니 아 주니어/시니어는 딱 봐도 연령이겠고 마스터는 시드자 같은건가? 싶었다. 그런데 50분 정도 줄을 서서 기다려서 접수 창구 앞에 가니까 엥 시니어가 연령 제한이 있네 그럼 전 참가 못하는건가요 물어보니 마스터로 참가하시라고 한다. 그런데 마스터 접수 창구 앞엔 또 벤자민 버튼은 아닌 것 같은 레알 어린이들이 아우성을 치고 있고 소수 접수처 인력으론 통제가 안되었다. 사전에 배틀팀을 짜래서 미리 짜왔는데 나는 무슨 문제인지 미리 팀 짜놓은 애들이 배틀팀, 박스에 다 없고 정리하려면 대회 참가를 취소해야해서 그냥 참가에 의의를 두고 즉석에서 다시 팀을 만들었다.

 2) 입장해서 왼쪽 줄을 서면 대회 참가, 오른쪽 줄을 서면 팝업 스토어인 건 안내가 없어도 알겠는데 앞서 이야기했듯 대회 참가 부문이 3개에 좁은 장소에 사람이 많다보니까 줄이 무슨 지렁이 게임처럼 되어있어서 어떻게 게임을 하라는건지 알 수가 없다. 진행요원에게 물어 물어 줄을 서 있으니까 비어있는 테이블에 가라고 안내를 받았다. 그런데 한 판 끝나니까 시합 카드에 사인하고 그냥 일어나던데, 눈치를 보아하니 다시 왼쪽 줄로 가서 진행요원이 자기 마음대로 랜덤 매칭 해주는대로 앉아서 게임하고 이렇게 8판을 해야하는 모양이다. 음.. 도박묵시록 카이지 가위바위보편 이래 이렇게 공정한 매칭이 있으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3) 사전 규정집을 보면 충전기를 지참하라고 되어있는데, 옆 테이블 사람이 시합 중간에 배터리 로우 빨간불이 들어와서 진행요원에게 충전기는 어디서 꽂냐고 문의를 하니 콘센트가 없다고 한다. 물론 이런 대회에선 보조 배터리 같은 걸 지참하는 것이 더 현명하긴 했겠지만 지들이 가져오라고 해놓고 막상 콘센트 없다는 건 또 뭐야? 얘기 들어보니까 부산 예선 때는 콘센트가 있었다고 한다.

 4) 워낙 붐비다보니 바닥에 각종 분실물, 주저앉아 있는 어린이들이 꽤 있었는데 어린이야 내가 어떻게 할 수 없고 분실물들은 진행요원들에게 맡겼는데 방송을 해주는 것도 아니고 뭐 한명이라도 찾아갔는지도 모르겠다.

 5) 진행요원이라고 해도 다 알바들이라 뭐 물어보면 정확한 답변을 듣기가 어려웠는데 이거야 뭐 이 행사만의 특징은 아니라서

 나만 이런 생각을 하나 궁금해서 다른 사람들 후기를 읽어봤다. 그런데 다들 여러 번 참가한 사람들이라 그런지 저런 운영에도 익숙한 모양. 예나 지금이나 겜돌이 행사는 거르는 게 정답이고 혹시라도 다음에 배포 이벤트 갈 일 있으면 사람 다 빠진 오후에 가서 배포만 받아와야 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었던 하루였다.

2017년 2월 9일 목요일

비루한 문화생활 : <기묘한 이야기>,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 <너의 이름은.>, <쓸쓸하고 찬란하神 - 도깨비>

 점수는 20-80 스케일을 사용하였다.

 1. <기묘한 이야기>



 <ET>와 <꼬마 흡혈귀 시리즈>를 섞어놓은 듯한 드라마이다. 소싯적에 외화 시리즈 재미있게 봤던 사람들이라면 이 80년대 미국 시골을 배경으로 한 이 드라마를 몰입해서 볼 수 있을 것이다. 의로운 소년들, 다른 차원의 생명체, 음모론, 보안관, 찐풍당당 하이틴 등등 어렸을 때 봤다면 사족을 못썼을 요소가 가득하다. 물론 그 시절 봤다면 다소 무서웠을 것도 같은데, 지금은 내가 다 큰 지도 한참이 되었기 때문에 별로 무섭지 않았다. 주제부터 디테일까지 모든 면에서 마음에 드는 드라마였다. 올해 시즌2 방영 예정이다. 70점.

 2. <로그 원 : 스타워즈 스토리>


 디즈니가 스타워즈 시리즈를 인수하게 되며 제다이 옷 입은 미키 마우스만 팔지는 않을 것이고 계속 스타워즈 신작이 나오게 될 거라는 것은 예상할 수 있는 바였다. 다만 챙겨보기 귀찮은 TV 시리즈는 좀 나오지마라 밤마다 기도했으나 그건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었다. 아무튼 2015년 연말에 개봉한 에피소드 7도 결코 나쁜 영화는 아니었으나 전체적인 스토리가 '어 나 이거 알아 4공화국 망했는데 곧바로 5공화국 들어선 내용이잖아 야 그래도 저기 장군님은 살아는 있다' 뭐 이런 기억폭력 영화였기 때문에 로그 원도 그 길을 따라갈 줄 알았다. 초반 난잡한 스토리 때까지만 해도 아 이게 스카이림 초반 전개랑 뭐가 다르냐 이랬는데 중반 이후 이 영화는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그 이유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들에 돈을 아끼지 않았고 이 영화를 왜 관객들이 보러 왔는지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주정거장에선 우주전이 펼쳐지고, 그 아래 행성 제국군 기지에선 소규모 교전이 벌어지는 가운데 긴장이 극에 달하는 종반부부터 스태프 롤 올라갈 때까지 모든 씬이 다 흥미진진했다. 물론 나야 기본적으로 스타워즈를 좋아하니까 이 외전격 영화에도 재미를 느낀 것이고 이 세계관을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까지 추천할 만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런 사람들이 이 영화 결말을 보면 도대체 이게 무슨 짓거리인가 생각할 것 같다. 하지만 난 재미있었으니 60점.

 3. <너의 이름은.>

 '몸바꾸기' '타임워프'가 신선한 소재는 아니지만 훌륭한 작화와 감성터지는 연출로 잘 버무려냈다. 다른 작품과 유사하다는 지적들에도 일리가 있지만 거대한 재난을 겪은 인간이 픽션으로 위로 받으려고 한다면 이 작품과 크게 벗어나기도 힘들 것이다. 허술한 전개도 뭐 로그원 초반만큼 심한 것도 아니니 종합적으로 보면 분명 좋은 애니메이션인 것 같다. 다만 일부의 평만큼 갓띵작인지는 모르겠고 매체의 특성상 오글거리는 부분이 좀 있다. 더빙판이면 좀 나을지 어떨지는 모르겠다. 60점.

 4. <쓸쓸하고 찬란하神 - 도깨비>

 김은숙 작가의 연타석 만루홈런. <커피 프린스> 이후 딱히 드라마 뭐 한 것도 없을 뿐더러, <빅>으로 바닥을 뚫었던 공유를 순식간에 원래부터 로코 황제였던 것마냥 세탁해준 작품이기도 하다. 드라마 볼 때 작가 이름부터 보기 때문에 홍자매가 각본 쓴 <빅>도 기대하고 봤었는데 너무 재미없어서 2화 보고 포기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무튼 도깨비는 김은숙다운 꿀잼 드라마였다. 특히 서브 커플은 <시크릿 가든>을 능가할만큼 쩔었다. 많이들 단점으로 꼽는 PPL은 금한령까지 내려진 상황에서 제작비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고 본다. 물론 금한령 없었다고 PPL 줄였을 것 같지는 않지만. 80점 줘야 마땅한 드라마인데 여주인공이 도무지 졸업을 안해서 유사 원조교제 느낌이 너무 났던 것은 구렸기에 70점.

2017년 2월 6일 월요일

현 시점 대선 주자들 짤막한 평

 문재인 : 필패론을 넘어 대세에까지 올라섰다. 2017년의 시대정신이 정의인 이상 가장 대권에 가까이 있는 인물. 파도에 얹혀서 여기까지 온 느낌이 있으나 일찍 대권 의지를 밝히고 털어도 털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 버스도 탈 수 있었다. 비토세력이 강하고 참여정부의 과오와 엮일 수 있다는 것은 부정적인 요소.

 안희정 : 박찬종-이인제-고건-문국현-안철수-유승민에 이어 가장 핫하게 떠오른 역선택계 정치인. 정당정치를 강조하고 대화와 타협을 주장하는 것은 제3후보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미덕이다. 다만 심각하게 시대착오적인 경제관은 대연정 발언 이상의 지뢰라 앞으로 나아질 수 있을지부터가 근본적인 의문.

 황교안 : 한국판 지정생존자. 지지율 3위를 마크하고 있는 것은 60대 이상 고령층이 나머지 세대와 크게 유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국가에는 불행이나 본인에겐 자산이다.

 안철수 : 5년 전엔 그 당시의 시대정신을 가지고 있던 인물. 그동안 많은 준비를 해왔고 3당 체제라는 성과도 있었다. 현재도 날카로운 문제 의식을 가지고 있고 진단도 정확하게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탈당 후 급전을 끌어쓰다보니 어느새 전주들에게 둘러쌓여 있고 그게 본인의 최대 단점인 포용능력 부재와 역시너지를 이루고 있다.

 이재명 : 괜찮아보이는 정책들을 만들어 발표하고 있고 대중을 상대로 한 호소력도 뛰어나다. 그러나 '하자는 있으나 능력있는 인물' 이미지는 누가 진작에 써먹고 망한지 오래. 움직이는 조직도 다 티가 나고 노티가 심해서 도움은 커녕 부정적 이미지 재생산에 일조하고 있다. 내려갈 지지율은 내려간다.

 유승민 : 따뜻한 보수라는 포지셔닝은 훌륭하고 구체적인 정책도 좋아보인다. 쿨타임 돌아올 때마다 색깔론을 펼치는 것도 타겟층에게 어필할 수 있는 장점. 그러나 전직 당대표 두 명에게 공천 특혜, 무공천 배려만 받아왔지 별다른 자기 반성이나 희생을 한 적이 없다. 한 쪽에선 배신자, 다른 쪽에선 부역자로 보이는 한계를 극복하고 비박의 보스가 될 수 있을까.

 심상정 : 원내 교섭단체만 4개인 상황이 되니 양비론 틈새 영업이 어렵다. 당과 함께 존재감을 잃었다. 이상한 샤이 심상정 같은 이야기는 접고 진보정당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오프라인에서는 아무도 관심이 없고 온라인에서는 여혐러 남혐러 양쪽에서 다 치이는 10억 먹튀당 이미지밖에 안 남아서 결선투표제 외엔 별 동력이 없다.

 손학규 : 저녁이 있는 삶도 소중하나 먼저 저 X이 없는 삶이 급박했기 때문에 이 추운 겨울에 사람들이 광장으로 나간 것을 간과했다. 크리스마스 유령이 김부겸을 찾아와 최악의 미래를 보여주면 거기 비치는 배경은 만덕산이 아닐까 싶다.

 남경필 : 부모의 잘못은 가담하지 않은 자식에 미치지 않지만, 자식의 잘못은 부모와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더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인제 : 이름만 들어도 식상하다. 이런 인물이 보여줄 수 있는 미래는 평일 오후 1호선 안 노약자석 같은 풍경일 것이다.

 김부겸 : 야권의 무덤에서 대승을 거두고 할 말은 하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그런데 PK에서도 소속 정당이 선전하고 같이 엮이던 대통령, 이정현 전 대표가 몰락하며 누굴 상대로 화합의 아이콘을 할지가 애매해졌다. 생각해보면 현 대통령이랑 친한 척 하던 야권 인사가 잘 된 경우가 없기도 하다. 좀 더 길게 봤으면 어땠을까.

 잠재적 후보군

 반기문 :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한국인들 앞길 다 막아가며 권력 욕심 낸 것 치고는 너무도 준비해 온 것이 없었다. 보름 동안 겪어보니 유엔노 미나상 고멘나사이.

 박원순 : 서울시장 3선에 도전할 것을 선언해놓고 대선국면에서 욕심이 생겨 무리수를 무리수로 만회하려다 시원하게 망했다. 정치적 빚이 많은 사람이 비호감만 잔뜩 쌓았으니 대권은 커녕 다음 지선도 어둡다.

 김무성 : 가진 것이 너무나 많았으나 철학이 빈곤해 중요한 순간마다 일보 후퇴만을 거듭했다. 탄핵국면에서 질서있는 퇴진을 받아들이고는 혼자 역풍을 다 맞은 것이 백미. 같은 당 대선주자들이 고전하고 있어서 불출마 선언을 번복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도 들겠지만 어차피 돈셔틀도 좋은 경험이다 생각하고 해야지 방법이 없다.

 김종인 : 몽니에도 시기가 있는데 시도 때도 없이 부리다보니 정작 중요한 시국에 효용성이 다 했다. 자꾸 지인이라고 언론에 나오는 익명의 인물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실은 지인이 아니라 원수같은 거 아닐까.

 오세훈 : 세빛둥둥섬에 떠내려간 오리알 신세, 패배했다는 존재감마저 잊혀졌다. 가끔 복지 포퓰리즘에 항거한 원칙있는 정치인으로 포장해주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런 이들도 경선에서 다른 사람에게 표 줄 것으로 보인다.

 김문수 : 얼마전까지는 비박과 다니더니 최근엔 이인제와 같이 태극기 집회에서 목격되었다고 하는데 거 당신 직책이 뭐요? 일찍이 택시 자격증을 따놔서 다행이다.

 김진태 : 영화 <스피드> 현실판. 멈출 수도 늦출 수도 없이 달린다. 어차피 이제 와서 달리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본선에 올라오면 재미는 있겠다.

 원희룡 : 유배가고 나서 뭐하는지 모르겠다.

 나경원 : 철새형 불사조 이인제에 대비되는 텃새형 불사조. 아무튼 탈당은 하지 않았다. 어느새 서울에서만 3선을 한 4선 의원이다. 정치계의 네이트판 같은 인물로 비상한 대세 판독력과 사진 촬영 위치선정 능력을 가지고 있으나 영향력이 없다.

2017년 1월 11일 수요일

샤오미 미맥스 64기가 단점 위주 사용기 겸 미맥스 KT 와이파이 + 3G HD Voice 등록기

 G4 쓰다가 도저히 못 쓰겠어서 11월 즈음 알뜰폰으로 넘어가는 김에 팔아버리고 미맥스로 넘어왔다. 그때는 아직 환율인상 폭풍 맞기 전이라 쿠폰 + 문화상품권 그런 걸로 옥션발 미맥스 64기가를 대충 23만원 정도 줬던 것 같다. 셀러롬이 깔려왔는데, 대단히 수상스러워서 네이버 샤오미 이용자 카페 들어가서 공부 좀 한 다음 EU롬을 깔다 중간에 막히고 글로벌롬을 깔았다. 찾다보면 굉장히 간략하게 글로벌롬 설치 방식을 설명한 게시물이 있는데, 한참 EU롬 깔면서 고생하다보니 가뭄의 단비같고 너무나 고마웠다.

 장점을 빠르게 살펴보면 1) 가격이 깡패 2) 화면이 쨍쨍하고 큼 3) 크기 대비 가벼움 4) 스냅 652 탑재로 폰이 빠릿함 5) 배터리가 기이할만큼 오래감 6) 있을 센서도 다 달려있음 7) 지문인식도 생각보다 훨씬 빠름 8) 듀얼유심 스탠바이가 가능하고 외장SD슬롯도 있다. 이건 사실 내가 듀얼유심을 쓸 일이 없다...까지 쳤다가 전화가 40분인 것이 너무 부족해서 에넥스 제로 요금제 하나 신규로 뚫고 듀얼 유심으로 쓰고 있다. 일반적으로 듀얼유심을 쓰면 외장SD카드를 못 꽂게 되지만 이것도 해결해주는 제품이 있다. 네이버에 유심확장기라고 치면 오픈마켓에서도 팔고 있다.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남에게 중국폰을 권유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고질적인 백도어 문제를 믿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중국 업체들이 개인정보 유출에 둔감하다기보단 중국 정부의 방침 때문인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개선될 길이 보이지 않는다. 거기다 샤오미 폰들은 기본적으로 MI 클라우드를 사용하게끔 되어 있다. 사진, 연락처 뿐만 아니라 통화내역, 메시지, 웹서핑 내역까지 백업하는 저 강력한 클라우드의 서버가, 우리로 치면 남영동 즈음에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이야 폰으로 이런 것도 봐?
 백도어 위험에 대한 우려는 이 정도로 하고, 이제 본격적으로 기기를 실사용할 때 느낄 수 있는 단점에 대해 써보겠다.

 1) 지나치게 세세한 설정 - 중국에 이상한 앱이 많아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앱에 관련된 보안 설정이 처음 보면 짜증날 정도로 세세하다. 플레이스토어에서 받은 앱도 마찬가지다. 귀찮아서 다 풀고 쓰긴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려면 카톡만 봐도 백그라운드 실행을 허용할 것인지, 푸쉬 알림은 어떻게 할 것인지, 각종 권한은 어떻게 할 것인지를 일일이 다 지정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다 막혀있기 때문에 하다못해 카톡도 못쓰게 된다.

 2) MIUI - 나는 아이폰을 오래 써서 오히려 이게 더 편하긴 했는데, 순정 안드로이드나 주요 제조사들 런쳐 UI랑은 좀 다르다보니 싫을 수도 있을 것이다.

 3) 재질 - 크고 얇고 무겁기 때문에 떨어뜨렸을시 대참사가 일어날 수 있다. 만져보면 알겠지만 내구성이 좋을 수가 없는 재질이다. LED나 버튼 등도 싼 티가 난다.

 4) 카메라 - QR코드 리더기 이상의 기능을 바랄 수가 없다. 정~말 심각하게 구리다.

 5) 앱 호환 - 국내 정식 출시된 폰이 아니기 때문에 국내 앱들은 지원하지 않는 기기입니다 그런 메시지가 꽤 뜨고, 지원된다고 해도 제대로 안되는 경우가 좀 있다.

 6) 외부 스피커 - 2000년대 초반에 스카이 뮤직폰을 썼었는데 그 핸드폰 스피커보다 구린 소리가 난다. 이걸로 길바닥에서 영화보고 있으면 지나가던 사람이 불쌍하게 여겨서 자기 이어폰 주면서 같이 들을까 그럴 것 같다.

 7) 외국폰의 귀찮음 - 실제로 사용하려면 셀러롬 밀고 글로벌롬 깔아야 하는데 롬 올릴 때 아무리 설명 보고 따라해도 깔끔하게 안되고, 중간에 막히는 부분이 꽤 있다. 물론 앞서 이야기했듯 매우 간단하게 글로벌롬을 까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SKT 사용자들은 밴드 언락을 해야해서 여기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또 LGT는 APN 설정을 해줘야 되는데다(이건 그나마 쉬움) 어느 통신사를 쓰든지 외산폰이라 VOLTE를 사용할 수 없어서 하위 호환 기술인 3G HD Voice를 신청해야 하는데 이게 나름 또 귀찮다. 고객센터에 전화해서 메일로 신분증이랑 IMEI 보내주고 OMD를 PTA-VOLTE로 변경해주시구요 3g HD Voice 신청해주세요 뭐 그랬던 것 같다. 올레 와이파이도 KT용 폰으로 나온 게 아니니 한번에 못잡고, SIM인증으로 사용하든가 IMEI 불러주고 사용해야 한다.

 8) AS - 현실적으로 사설 혹은 자가수리밖에 답이 없다.

 두어달 쓰면서 생각나는 장단점들은 이 정도이다.

 요약하자면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아서 남에게 추천하기는 어려운 제품이나, 전자제품 좋아하는 사람들의 장난감으로는 차고 넘치는 핸드폰이다.

2017년 1월 4일 수요일

단통법은 정말 최악의 악법일까

  이동통신사업자가 꼴랑 3개 있는 나라에서 독과점 테크 타는 것은 피할래야 피할 수가 없다. 영세업체들이 아니라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에 의해 5:3:2로 고착된 시장에서 더 치열한 경쟁을 시키지는 못 할 망정 업체들이 소비자에게 직접 지급하는 보조금을 제한하고, 통신사 옮긴다고 더 혜택을 받지 못하게 하는 단통법은 그 자체로 문제가 있는 법안이다. 남이사 핸드폰 사려고 새벽까지 줄을 서든 일주일 동안 텐트를 치든 그걸 대통령이 직접 언급할 깜냥의 문제도 아니다. 거기에다 이 법은 통신사가 일선 대리점에게 지급하는 판매장려금은 전혀 제약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법안의 외양만 놓고 보면 통신사는 보조금 줄여 좋고 소비자만 엿먹는 구조로 귀결된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단통법이 모든 소비자에게 손해가 되었나 살펴보면 꼭 그렇지는 않다.

 단통법은 실제로 불법 보조금을 근절하지 못하였고 입법 목적이었던 가입자의 가입유형 간 차별을 해소하지도 못하였다. 이건 주말 오후 신도림 테크노마트 9층에서 탑돌이하는 사람들만 따라다녀봐도 증명이 된다. 하지만 이통사가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지원금을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공시하고, 어딜 가서도 그만큼은 받을 수 있게 하는 시스템을 정착하는 것에는 성공했다. 또 언락폰이나 중고 단말기로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는 통신사에서 제공하는 단말기 보조금을 받지 못하는만큼 약정기간 내 요금 할인을 제공하는 선택약정할인 제도를 도입했다. 물론 이는 단통법에서 가장 큰 비판을 받는 조각인 보조금 상한제가 없어도 가능한 제도이다. 하지만 그 결과로 더이상 갤럭시 사러 갔다가 대리점 말빨에 속아서 LG폰, 팬택폰을 출고가에 36개월 약정까지 끼얹어 눈탱이 맞고 고객님 왼뺨을 쳐맞으셨으니 오른뺨도 대시라면서 부가서비스까지 넣는 일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저런 법안에도 순기능이 있다는 것은 그 전까지 이동통신시장이 얼마나 개막장이었는지를 방증하는 결과인 것이다.

 정보에 어두우면 어느 정도 손해 보는 건 어쩔 수 없다는 것엔 수긍한다. 하지만 그것도 한도가 있다. 무슨 밀거래 암시장 같은 곳이 아닌 엄연한 대기업 이통 대리점에서 같은 유형 / 요금제로 가입하며 누구는 갤럭시S3를 17만원 주고 사고, 다른 누구는 베가 아이언2를 출고가 78만원 그대로에 부가서비스까지 떠안고 사는 지옥도 앞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선 어쩔 수 없죠 ㅎㅎ 이러느니 잘 모르는 사람은 공시지원금이라도 받고, 정보가 있는 사람들은 음성적으로라도 싸게 사는 것이 내 눈에는 더 공평해보인다. 단통법 시행 2년 전부터 휘청거리던 팬택이 딱히 단통법 때문에 망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건 서든어택2가 오버워치 때문에 망했다고 하는 것과 똑같이 허황된 이야기다. 벤쳐기업이면서 직접 생산 공장을 두고 제품 제조까지 직접 하는 팬택을 높게 평가'했'지만, 여러모로 한계가 있는 게 아니었나 싶다.

 단통법 시행 결과로 일선 대리점에서 재고로 쌓여있던 보급형 폰을 팔면서 소비자의 무지를 이용해 가격은 최신 플래그쉽 폰이랑 똑같이 받아먹는 일이 사라지게 되었고, 그 결과로 폰 가격의 가이드라인이 명확해지며 이통사에서 괜찮은 스펙의 보급형 폰을 취급하기 시작한 것, 과거에는 고객님 SK입니다 그러면서 발신번호조작 스팸전화 걸어대던 SK텔링크 외엔 존재감 자체가 없던 MVNO를 정책적으로 밀면서 가성비로 유명한 알뜰폰 요금제들이 꽤 나오기 시작한 것, 약정 반환금이 필요없는 순액 요금제가 대세가 된 것 등도 부가적인 순기능으로 볼 수 있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단통법 하의 긍정적인 변화인 지원금 공시제도, 선택할인약정 제도는 독소조항인 보조금 상한제에 의하여 성부가 갈리지는 않기 때문에 기업과 소비자의 자유를 모두 침해하는 보조금 상한제는 철폐되어야 한다. 법안 자체도 한시적인 일몰법안이니만큼 연장 없이 그대로 종료되었으면 한다. 궁극적으로는 이통사 대리점에서는 전산작업과 유심판매만 하고, 핸드폰은 전자제품 매장에서 파는 것이 불필요한 압력을 막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만 이건 뭐 업계 종사자들의 밥줄이 걸려있는 거니까 각자 생각이 다를 수 있다고 본다. 아무튼 실제로 위에서 서술한 긍정적인 효과들이 존재하는 이상, 단통법이 단점만 있는 최악의 악법으로 묘사되는 데는 동의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