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 13일 토요일

19대 대통령을 맞이하며

 지난 1년여 동안 나는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보던 신문도 바꾸고, 현 여권에 우호적인 커뮤니티는 물론이고 조갑제닷컴이나 아크로 같은 사이트도 종종 눈팅을 하곤 했다. 내 입장에서는 아주 황당무계한 논리를 펼치는 사람들도 많이 보았다. 근왕파 잔존세력과 버릴 건 버리고 보수를 살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수정주의자들의 내전은 예측할 수 있는 범위 내였다. 헌데 DJ는 종북이 아니었으나 문재인은 종북이 맞다고 생각하는 교조적 지역주의자는 처음 발견했기 때문에 신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도 공동체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었고, 동의하기 어렵다 뿐이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 있었다.

 그 사이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다. 대통령이 6개월이나 유고상황이었고 그 이전에도 비선실세들이 국정 전반을 주물럭거렸지만 나라가 망하지는 않는 것을 지켜보았다. 1인에게 권력이 집중된 제왕적 대통령제라고는 하나 이제는 우리도 어느 정도 시스템을 갖게 되었구나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새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급한 현안들을 처리하는 것을 보니 확실히 대통령의 권한은 매우 크다는 것을 다시 느꼈다. 최측근을 비서실이 아니라 내각에 두는 것을 고려한 듯한 인사는 여태까지는 마음에 들고 있다.

 전임 박근혜 정부에는 여러가지 문제가 있었기에 헌정 사상 최초로 대통령이 탄핵에 이르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문제 두 개는 과도하게 이념갈등을 조장하고 국회를 무시하는 것이었다.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논란은 그 대표적인 예인데, 시작은 저 노래에 어거지로 종북 논란을 갖다 붙여서 대신 '얼씨구 절씨구 자진 방아로 돌려라' 로 시작하는 자진방아타령을 연주하려는 한심한 행동은 이명박 정부에서 한 것이지만 박근혜 정부에서의 대처는 그야말로 기가 막혔다. 

 우선 저 노래에 종북 논란이 붙는 거 자체부터가 문제인데, 작사가가 나중에 방북을 한 것을 소급시켜 문제를 삼는다면 작가 이문열 씨도 허구헌날 홍위병 타령을 하면서도 본인은 태극기 집회에 참석하였으니 <황제를 위하여>에서 정 처사의 아들 황제를 따르는 덜떨어진 일당들을 충직한 인물들로 묘사한 것은 훗날 박 대통령의 딸 박 대통령2를 추종하는 세력을 미화하기 위한 찬양 및 고무 목적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고, 그 찬양의 대상이 헌법 수호 의지가 없기 때문에 탄핵된 인물이므로 이 소설도 반국가적 작품이라는 말인가? 아마 그렇게 허무맹랑한 생각을 하는 이는 매우 드물 것이다. 톡 까놓고 5.18 기념식이 아니라 부마항쟁 기념곡이었다면 저런 얼치기 매카시즘 자체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또 박 전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인 2013년에는 국회의원 재적 200명 중 158명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5.18 기념곡으로 지정할 것을 요구하는 결의안에 찬성해 통과시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승춘 보훈처장이 온갖 핑계를 갖다 붙이며 방해하니 163명의 야당 의원이 보훈처장 해임촉구 결의안을 발의했으나 박 전 대통령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새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보훈처장의 사표를 받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5.18 기념곡으로 지정한 것은 사필귀정이다.

 전임 박근혜 정부는 매번 저런 식으로 국회를 무시했다. 국정 역사 교과서야 아버지를 위한 트리뷰트라고 쳐도 국회법 여야 합의안을 거부하며 여당 원내대표를 찍어내고, 장관 해임건의안도 거부하는 폭정을 펼쳤으니 임기가 하루라도 더 빨리 줄어들지 않은 것이 국가의 불행이다. 이제 와서 자한당은 국정 교과서를 야당과의 협의 없이 폐지했다고 항의해보지만 그럼 뭐 저 수준 미달의 교과서를 만들 때는 민주당과 국민의당의 협의를 통과해서 만들었다는 것인가. 어차피 결의안 내봐야 통과도 못 시킬 거 가져가고 싶으면 직접 와서 수령해가면 몇 권 정도는 얻어갈 수 있을 것이다.

 국회 무시, 이념 대결 이 두 개의 뿌리는 대통령 본인의 시대착오적인 역사관에 있었다. 한 가지 걱정이 되는 것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한 줌 주사파는 남아있듯이 탄핵당한 전 대통령의 추종세력도 잔존해 있을 거라는 이야기인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 선출직에 당선되면 탄핵심판, 위헌정당해산심판으로 철퇴를 맞은 무리의 상징을 취임식장에 비치하고 후미에 시키는 것까지도 찬성한다. 지도자가 저렇게 편협한 역사관을 가지는 한 미래는 어두워진다. 선거기간 중 당시 문재인 후보가 좋아하는 책으로 전환시대의 논리를 꼽았을 때 내가 약간의 불만족을 느꼈던 것도 비슷한 이치였다. 이제는 효용을 다 해가는 책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새 대통령은 전임자와는 넘사벽의 소통, 공감 능력을 지녔기 때문에 의식이 그 시대에 멈춰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들은 새 정부가 뭘 해도 좌우에서 치이는 언론 지형의 한계로 제 평가를 받지 못할 거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여러 현안들을 슬기롭게 처리할 수 있다면 일정 이상의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지난 4년을 반면교사 삼아서 국회와 긴밀한 협조를 구해야 함은 물론이다. 현재 5당 체제로 개편된 정계 지형이 당, 정에 불리한 것도 아니다. 앞서 언급한 정치적 극단주의자들마저 만족시키는 정치를 펼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해 할 수 있는 일에만 매진한다면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을 것이다. 

2017년 5월 2일 화요일

현 시점 대선후보들에 대한 좀 더 긴 평가

 1. 문재인

 동의하지 않는 이도 있겠지만 나는 문재인 후보의 과거 삶에 합격점 이상의 점수를 주고 있다. 거기다 소속 정당은 DJ 이후 최초로 단결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원내 최다석 정당이다. 또 후보의 정책을 만들어내는 싱크탱크의 규모와 질 모두 문재인 후보 측이 가장 낫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현재의 발언을 통해 리더의 살아온 길 뿐만이 아니라 앞으로 어떤 길을 갈 것인지도 가늠해 볼 수 있다. 공안몰이, 블랙리스트 때문에 인권 의식이 2002년 대선에 비해 두 발자국 후퇴하고, 수치를 모르는 극단주의자들이 다수 출몰한 지금, 문재인 후보의 동성애 발언은 여러 가지 사정을 모두 감안하더라도 실망스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최소한 홍준표 후보의 원색적인 '후미에'를 에둘러 비켜갈 수 있는 방법은 있었기 때문이다.

 2. 홍준표

 미세먼지 대책과 2,000cc 미만 유류세 50% 감면이 공존할 수 있는 정책은 아니다. 만사를 저렇게 아무 생각없이 질러대도 25% 가까이 득표할 것이다.

 3. 안철수

 아름다운 일주일을 보내고 멸망했다. 악당에 투표하는 사람은 있어도 찐따에 투표하는 사람은 드물다. 안철수 후보는 그동안 자기가 문재인 후보보다 나은 대안임을 꾸준히 어필해왔다. 안희정으로 문재인을 막을 수 없다는 게 기정사실화 되고나서 反문표들이 곧바로 안철수 후보에게 결집한 것은 그동안 써왔던 전략이 유효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문제는 그 반문표들은 문재인이 싫어서 안철수에게 모여있던 것이지, 안철수가 좋아서 모여있던 것은 아니었다. 일단 문재인과 맞서 승산이 있으면 저 정도 지지율은 나온다는 것은 반기문 - 황교안 - 안희정이 증명해 준 바 있다. 그런만큼 표들의 스펙트럼이 매우 다양해 후보가 보수-진보 사이에서 삐끗하기라도 하면 비 온 후의 벚꽃처럼 우수수 떨어져 나갈 것임은 자명했다. 그렇기 때문에 안철수 후보는 'A도 겪어봤고 B도 겪어봤지만 다 실패하지 않았냐'는 특유의 스탠드를 구사하는 게 옳았다. 하지만 그걸 구체적인 정책에도 가져다 쓰면 안 됐다. 시범사업만 8조가 드는 사업인데 왜 꼭 저렇게 해야하는지 설명이 제대로 안 되는 순간 5년을 베타테스트로 날리겠네 생각이 안 들 수가 없었다. 4차 산업혁명 말만 하지 말고 이 중에서 코딩 한 줄 해 본 사람이 저밖에 더 있습니까 식으로 어필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네거티브 공방전과 병설형 단설 유치원 파문은 안 후보의 참신함을 모두 다 날려버렸고, 국회의원직 사퇴나 공동정부론은 전혀 파급력이 없었다. 자기가 사퇴하는 게 아니라 박지원 대표의 정계 은퇴를 걸었으면 조금은 효과가 있었을 것이지만 당 장악력이 없으니 불가능하긴 했을 것이다. 지지율이 급락하니 급기야 총선을 앞두고 서로를 향해 날선 공방을 벌이던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을 영입한 것은 실착 정도를 넘어 한심할 지경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그의 역사 인식이다. 이념에 연연하지 않는 것도 자기가 확고한 이념을 가지고 있어야 균형을 잡을 수 있는 것이다. 의대생 시절에 V3까지 만드느라 고생하고, CEO 하느라 바쁘고, 교수 하느라 공부 열심히 한 건 알겠는데 리더가 되려면 역사 공부 준비도 더 해야했다. 기본이 안 되어있으니까 임시정부 법통 논란이 계속 튀어나오는 것이다. 이 사람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바로잡을 기회는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생각해봤는데, 애초에 호남 중진 사채를 끌어다 쓴 순간 어떻게 해도 힘들었을 것 같다.

 4. 유승민

 유승민 후보의 토론 스킬은 많은 칭찬을 받았지만, 어디 한군데 꽂히면 헤어나오지 못하는 모습은 리더의 모습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전술핵 재배치, 사드 배치, 벤처 창업과 중소기업 지원 모두 비슷한 태도로 일관했다. 군소후보가 다른 후보의 헛점을 지적하는데 성공했다면 물고 늘어지는 것보다는 알겠습니다 하면서 자기 장점을 어필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또한 원조친박이었지만 경제정책에는 끝까지 반대했다는 하나마나한 이야기보단, 그 자리를 더 일찍 박차고 나오지 못한 그 시절을 반성했어야 했다. 생각해보면 유승민 후보의 정치 인생은 매번 저랬다. 원내대표 시절 남이 쫓아내기까지 자기 자리를 던지지 못했고, 자기 라인이 다 짤려나갈 동안 탈당도 백의종군 선언도 하지 못했다. 간신히 김무성 전 대표의 무공천에 힘입어 대통령 '존영' 걸고 선거했고, 탄핵정국 속에서도 정치적 후원자인 김무성 전 대표의 재탈당 권유도 처음엔 거절했다. 대구 유세에서 한 시민에게 (전 대통령과) 한 배를 탔으면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라는 일갈을 들을 만하다 생각한다. 하지만 본인은 정말로 선을 그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5. 심상정

 나름의 색깔을 확실하게 들고 나왔고 성과도 있었다. 바른정당의 유승민 후보를 지지율에서 미세하게나마 제치고 있는 것. 당선 확률은 희박하겠지만 소수자들의 의견을 반영할 창구가 꼭 필요하므로 소신 투표하는 이들의 표를 받는 것이 의미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오세훈, 한명숙 둘 다 싫다고 노회찬 찍었다고 세상이 바뀌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