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 14일 월요일

젊은이를 보내며

 김젊은이는 2022년 11월 8일 새벽 4시를 좀 넘긴 시간에 고양이 복막염 입원 중에 떠났다. 갑작스럽게 호흡 이상이 왔다는 전화를 받고 아비와 어미가 급하게 준비하던 중 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와 그의 숨이 멎었음을 알렸다. 만약 CPR 동의서에 아비가 서명을 했으면 아이는 다시 살아날 수 있었을까, 최소한 우리가 도착할 때까지는 숨이 붙어 있었을까 아니면 무의미하게 고통만 더하는 일이 되었을까 수없이 많은 생각을 하지만 가보지 않은 길을 내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젊은이는 길고양이 출신으로 미상의 사유로 고양이 보호소에 있다가 2010년 10월경 이전 주인에게 입양되었다. 입양 사유는 다소 황당한 게 이전 주인은 노르웨이숲 품종묘가 보호소에 맡겨져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가서 젊은이를 데려왔는데, 아무리 봐도 아이가 노르웨이숲 고양이는 아닌 것 같아 나중에 다시 물어보니 그 친구는 진작 나갔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아이의 안락사를 피하기 위해 보호소 직원이 대뜸 전 주인에게 넘겨준 게 아닌가 싶기도 한데 덕택에 아비와 어미가 이 아이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에 생각할 때마다 웃음이 나오면서도 늘 감사해하곤 했다.




 젊은이는 사람을 좋아하고 같은 고양이들과 친하게 지내지는 않았다. 그리하여 젊은이의 사진을 보면 어렸을 때나 나이가 들어서나 렌즈를 빤히 바라보고 있거나 다른 사람을 보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예쁜 녹색 눈을 바라보는 것을 난 좋아하였다. 어렸을 때는 제법 힘이 셌는지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으나 나이가 들어서는 다른 고양이들에게 높은 자리를 뺏기고 밥그릇을 뺏겨 나는 항상 그걸 안쓰러워 했다. 영리한 고양이었기 때문에 내가 자기를 좋아했다는 건 알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걸 젊은이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내가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자기를 돌보다가 돌아가면 옆으로 누워 배를 보여준다거나 기지개를 쭉쭉 펴는 행동을 했는데 그때의 나는 얘 또 문 열어달라고 그런다했지만 지금의 나였으면 자기를 만지라는 표현임을 알고 있으니 그때도 나름의 친근감 표시였으리라 생각하고 더 만지다 나가지 못해 미안하다.


 집으로 데려온 후 젊은이는 밤새 내 곁과 안방을 왔다갔다하며 내가 아침에 일어나면 따라나와 내 발에 자기 몸을 부볐다. 그럴 때는 엉덩이를 자기가 만족할 때까지 두드려주고 그러다가 내 발등 위로 몸을 픽 눕히면 한 손으로는 배를, 다른 손으로는 머리를 만져주면 자기가 만족할 때쯤 물을 마시러 가버렸는데 출근 준비를 하는 아비의 입장에서는 시간이 촉박해 그렇게 하기는 힘들었다. 아비가 샤워를 하는 동안에 젊은이는 문 앞에 서서 물소리에 신경을 기울였고, 헤어드라이기와 그에 이은 청소기 소리는 처음엔 아주 꺼려했으나 나중에는 크게 싫어하지는 않았다. 만일 아비가 자신을 해치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기에 그랬다면 다행이다.

 화장실은 혼자 안방, 마루 이렇게 두 개를 썼고 나중에는 작은 방에 하나를 더 놔주었는데 화장실에 아주 예민했다. 대변을 볼 때는 화장실 안 쪽을 보고 누고, 소변을 볼 때는 화장실 바깥 쪽을 보고 눴는데, 자기 몸이 화장실 벽에 스치는 걸 싫어하고 낮은 화장실을 선호했다. 볼 일을 보고 나면 여러차례 모래를 덮는 시늉을 했으나 잘 덮지는 못하였고 어서 치우라고 방으로 들어와 애웅하며 아비와 어미를 불렀다. 무른변을 봤기 때문에 대변을 누는 것을 볼 때마다 늘 걱정하였는데 고양이 복막염은 스트레스로 인하여 발병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비는 그동안 먹인 설사약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건 아닌지 눈물이 나와서 가슴을 치며 울었다. 퇴원을 하면 모래를 원래 쓰던 두부모래 대신 벤토나이트로 바꿔보고 싶었으나 싸늘하게 돌아왔기 때문에 어떤 모래를 좋아했을는지는 이제 알 길이 없다.

 젊은이는 아비가 집 안을 돌아다닐 때마다 시선을 아비 쪽으로 돌렸고 다가갈 때부터 골골거렸다. 사람이 먹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호기심이 많아 새로운 음식을 보면 한 번 먹어보려고는 했다. 한 번은 아비가 사온 호두과자를 물고 가려다 떨어뜨리길 몇 번을 하고 먹지는 않았는데 나중에 어미가 잘게 쪼개서 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딱 한 가지 멸치가 들어간 국수 국물은 눈에 불을 켜고 먹었는데 지금 와서는 그걸 못 먹게 한 것도 마음에 걸린다. 

 사료는 나이가 들어서도 쭉 로얄캐닌 키튼을 좋아해 그걸 먹였으나 무른변을 잡기 위해 여러가지 처방사료를 줬을 때도 잘 먹었다. 늘 신선한 사료를 좋아해 새로 퍼주는 것을 좋아했고 사료 포대를 열어주면 고개를 들이박고 몇 번 먹었으나 한번에 많이 먹지는 않았다. 물은 많이 자주 마셨고 소변도 자주 봤다. 그리하여 올 떄는 2.9kg였던 몸무게가 식이거부가 오기 직전에는 3.9kg까지 늘었는데 그때 이미 아이의 몸에 복수가 차고 있었는지 나는 모른다. 


 아이의 털에서는 고소한 냄새가 났고 등에 고개를 파묻고 만지고 있노라면 골골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기분이 좋아 가끔 울 때는 애옹이 아닌 케흑하는 소리가 났다. 하악질을 못하는 것인지 안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하지 않았고 발톱을 세우지도 않았으며 전발치 전이든 후이든간에 입질을 하지도 않았다.  아비의 의자에 앉는 것을 좋아하여 아비가 의자에 앉아 있으면 책상 위로 올라와 아비의 무릎으로 내려오기도 하였다. 날씨가 쌀쌀해진 후에는 침대에 올라가 있었기 때문에 항상 전기요를 저온으로 켜두었고 그래서 활력이 없어진 걸 늦게 안 게 아닌가 후회가 된다.

 10월 30일 경부터 갑자기 밥을 적게 먹기 시작했고 좋아하던 간식도 잘 먹지 않았다. 사람을 그렇게 좋아하던 아이가 아비 어미가 아닌 다른 사람을 피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여 뭔가 잘못됐다 싶어서 11월 2일에 병원을 찾았고 택시를 타고 가다 케이지 안에서 불안했는지 애웅애웅 울어 달랬다. 그렇게 찾아간 병원에서 고양이의 배에 복수가 차있고 흉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몸무게가 3.26kg까지 빠진 젊은이는 백내장 초기와 심한 전해질불균형 그리고 더 심한 빈혈이 있다고 했다. 고양이 복막염이 강력하게 의심되고 CPR 검사를 해봐야겠으나 음성으로 나와도 복막염 약을 먹여야 하고 그래도 개선이 없을 경우 종양을 의심해야 하고 복막염 약은 정상적인 루트로 구할 수 없고 주사제와 경구투여제가 있으며 주사제는 효과가 드라마틱하나 8주 간 매일 주사를 맞혀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의사의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췌장염은 없고 엑스레이 흉부가 괜찮지만 장기선해도가 소실되었다.. 전해질불균형이 심해 수액을 맞아야 하지만 수액을 맞으면 빈혈은 악화되고 수혈을 대비해야 할 수도 있다..하는 이야기들을 정신없이 받아적었으나 나로서는 우선 젊은이를 입원시키는 것, CPR은 원치 않는다는 동의서에 사인을 하는 것, 아이가 예민해 경구제를 구해보겠다는 말을 주절거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젊은이가 입원한 첫째 날에 나는 고양이 복막염 치료를 위한 카페에 가입하였으며 늦은 밤에 서울을 한 바퀴 돌아 젊은이가 당장 먹을 수 있는 약을 구해 병원으로 가져갔다. 또 2주간 먹일 수 있는 약을 구했다. 

 둘째 날 아침 출근길에 병원에서는 젊은이의 짧은 동영상을 보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힘이 없어보였다. 오후에는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산소발생기를 달아야하고 수혈이 필요하나 비용이 부담된다면 하루는 더 기다려볼 수 있다고 했다. 바로 혈액을 수배해줄 것을 부탁했고 약이 듣길 기원했다.

 셋째 날 젊은이를 찾아가니 수혈을 받고 있었다. 활력이 많이 돌아왔음을 느꼈는데 아이의 눈이 좀 이상해 의사에게 물어봤다. 복막염 중에 흔히 있는 상부호흡기 증후군이라는데 사람으로 치면 감기 같은 거구나 생각했다. 눈은 다시 정밀 검사를 받아보기로 했다.

 넷째 날 젊은이는 남은 혈액으로 마저 수혈을 받았다. 눈은 포도막염(복막염 중에 흔히 있는 증상이라고 함)과 각막궤양(복막염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으나 면역력이 떨어져 고양이 허피스가 올라와서 생기는 증상이라고 했다)이 있었다. 4시간마다 안약을 넣고 항생제를 투여하는데 이 비용이 좀 비싸다고 했다. 나는 정말 기둥뿌리를 뽑아서라도 애를 살릴 생각이었으므로 치료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계속 강제급여 중이었으나 이 날은 내가 주는 츄르를 거의 다 받아먹었다. 활력이 있었기 때문에 나도 희망을 가졌다. 아이의 몸무게는 3.4kg라고 했고 나는 기뻤다. 

 다섯째 날 젊은이를 담당한 선생님이 이틀 간 휴무에 들어갔다. 젊은이는 눈 상태가 여전히 심각하다고 했고 활력이 심하게 없어보였다. 수액에 진정제 성분이 있기 때문이라는데 그게 전부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 젊은이는 츄르를 받아먹지 않았고 혀를 자꾸 낼름거렸다. 이 날 길하지 못한 일이 두어개 있었고 계속 신경이 쓰였다.

 여섯째 날 휴일 오전에 찾아갔더니 젊은이는 더욱 활력이 없었으며 이틀 동안 대변을 보지 못했다고 했다. 오후에는 전 주인이 젊은이를 찾았다. 그 후 아내가 방문했을 때 다행히 무른변을 보긴 했지만 곧바로 화장실에 주저앉아버렸다고 했다. 저녁에 다시 찾아갔을 때도 젊은이는 여전히 활력이 없었고 나를 보고 자꾸 혀를 낼름거렸다. 담당 선생님이 내일 다시 출근해 젊은이를 봐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의 만류로 츄르를 주거나 케이지를 열고 만지지 못하였는데 너무도 가슴에 사무치게 후회가 된다. 

 일곱째 날 새벽 4시에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젊은이가 호흡 이상증세를 보인다고 지금 올 수 있냐고 했다. 준비를 하는 사이 다시 전화가 와 젊은이의 숨이 멎었다고 했다. 아이를 찾아올 때는 뭐를 타고 왔었는지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는다. 일주일 만에 집으로 돌아온 내 아들에게서는 고소한 냄새 대신 병원 냄새가 났다.  

  내가 처음 젊은이가 있는 방의 문을 열었을 때 그 고양이는 문밖의 세상으로 뛰어나가려고 했고, 저 조그만 것을 모질게 발로 막아세워야 하나 잠깐 고민하는 사이 이미 재빠르게 빠져나가 자기가 가고 싶은 먼지 가득한 의자 아래로 몸을 숨겨버렸다. 

 어느 순간 쟤는 내가 데려가야겠다 마음을 먹었고 처음 만난 그 날을 반추할 때마다 언젠가 저 작은 생명체의 생과 사의 문을 내가 지킬 수도 있겠다, 똑같이 젊은이가 그 틈을 빠져나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하곤 했다. 하지만 '내가' 문을 지킬 거라는 생각조차 오만한 것이라는 건 그때의 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

 내가 아들을 좀 더 빨리 병원에 데려갔으면, 다른 병원에 데려갔으면, 경구약 대신 주사제를 썼으면, 스트레스가 병의 원인일수도 있었다니 설사약을 먹이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나는 평생을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내가 세상의 모든 고양이 중에서 자기만을 좋아했다는 것을 아들은 알았고 그래서 나를 따랐다는 것도 같이 기억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