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24일 수요일

정말 데이빗 오티즈는 쿨한 약쟁이였는가?

 1936년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이 생기고 그때까지의 모든 은퇴 선수와 10년차 이상의 현역 선수들을 피후보로 한 투표 끝에 오직 다섯 명 -타이 콥, 호너스 와그너, 베이브 루스, 크리스티 매튜슨, 윌터존슨- 만이 최초 헌액의 영광을 얻을 수 있었다. 80년 후인 지금 약물의 전당에 최초로 헌액될 5인의 약쟁이를 뽑는다면 나는 배리 본즈, 알렉스 로드리게스, 로저 클레멘스, 라파엘 팔메이로, 마이크 피아자를 꼽겠지만 저기에 매니 라미레즈나 데이빗 오티즈를 넣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올해 알렉스 로드리게스와 데이빗 오티즈가 은퇴를 선언하며 저 쟁쟁한 약쟁이들은 올해를 끝으로 모두 은퇴하게 되고, 이제 메이저리그는 스테로이드 시대와의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거기 선동과 날조로 승부하는 최근의 트렌드와 걸맞게 희한한 바람이 불고 있다. 데탕트의 시대가 도래했는지 데이빗 오티즈의 이전 행적이 재조명되고 있는 것이다. 알렉스 로드리게스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찌질하고 어설펐고, 오티즈는 리더십이 있고 타팀과의 관계가 원만해 은퇴 시즌의 행보가 저렇게 큰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에이로드가 저랬던 것은 맞지만, 오티즈 얘기는 그저 웃음만 나온다. 저 약쟁이가 레드삭스에서 어깨 좀 편 후 어떻게 입을 털고 다녔나 정리해보겠다. 나는 양키스팬이고 레드삭스나 오티즈엔 별다른 관심이 없기 때문에 양키스와 엮였던 에피소드만 기억하고 있는 편이다.

 1) 2006년 지터와의 MVP 경쟁에 대해

출처 : 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110&g_serial=223593

 떠벌이 케빈 밀라가 떠난 후 오티즈가 마이크를 잡았던 시기. 2005년엔 에이로드가 MVP를 타고, 2006년엔 지터에게 밀릴 것 같으니까 (실제 수상은 모노) 기자에게 저렇게 입을 털었다가 역풍을 거하게 맞았다. 

 2) 2007년 스테로이드 적발 밑밥

출처 : http://sports.news.naver.com/mlb/news/read.nhn?oid=003&aid=0000414148

 2003년 메이저리그 도핑테스트는 익명을 전제로 시행되었으나, 실제로는 선수 개개인을 식별할 수 있었고 약속된 샘플 폐기도 이뤄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MLB 도핑테스트는 통과했으나 그 샘플을 폐기하지 않고 있다가 2009년 미 정부가 재조사해서 스테로이드를 검출해낸 배리 본즈의 케이스에서 2003, 2004년 샘플 중 어느 것을 사용했는지가 증거능력 유무와 관련해 쟁점이 되기도 했다. 오티즈는 이미 2004년 선수노조 회장과 면담을 가져 자기가 도핑테스트에 걸렸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저렇게 훗날을 위해 미리 밑밥을 깔아두는 치밀함을 보였다.

 3) 2007년 에이로드 옵트아웃, 양키스 당시 조 토레 감독 계약만료에 대해

http://nypost.com/2007/09/16/papi-to-a-rod-make-yanks-pay/

출처 : http://www.nytimes.com/2007/10/12/sports/baseball/12torre.html

 에이로드는 뉴욕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고, 양키스가 조 토레 감독과 재계약하지 않으면 후회할 거란 내용. 다른 팀 계약에 대해 저 정도로 감놔라 배놔라 하는 오지라퍼는 이때 처음 봤는데, 다행스럽게도 그런 정신병자는 오티즈 이후엔 또 등장하지 않고 있다. 

 4) 2009년 2월 "금지약물 사용 선수 1년 못뛰게 해야"

출처 : 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110&g_serial=223593

  2009년 2월, 에이로드가 PED 복용을 시인하자마자 저렇게 입을 열었는데, 자기도 같은 테스트에 걸려놓고 왜 저런 말을 했는지 의문이다. 심지어 오티즈는 자기가 2003년 도핑 테스트에서 양성반응이 나온 것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위에 적었듯 노조 회장과의 대화로 이미 결과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5) 2009년 4월 양키스 투수 챔벌레인에 대한 경고

출처 :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11&aid=0000143279

 약밍아웃 당하기 직전이라 기가 끝까지 살아서 날뛸 때이다. 에이로드가 커리어 동안 보스턴한테 쳐맞은 사구는 21개로 오티즈와 유킬리스가 양키스에게 맞은 사구의 합계보다 많다. 당시 라이벌리가 아직 뜨거웠던 것은 사실이나,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해꼬지는 아니었다. 

 6) 2009년 7월 과거 도핑테스트 양성반응 폭로, 그리고 이후의 대처

출처 : http://boston.redsox.mlb.com/news/press_releases/press_release.jsp?ymd=20090730&content_id=6154540&vkey=pr_bos&fext=.jsp&c_id=bos
출처 :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51&aid=0000002223

 그 찌질하다던 에이로드는 적어도 자기가 약을 빤 것을 인정하고 팬들에게 사과를 했다. 오티즈의 첫 반응은 노 코멘트였고, 두번째는 성명문을 발표해 무슨 약물에서 양성반응이 나왔는지 파악하고 언론과 팀에 알리겠다는 것이었고, 세번째는 기자회견에서 영양제 드립을 치는 것이었다. 물론 오티즈가 부주의로 잘못된 성분이 들어있는 영양제를 샀을 수도 있다. 기자회견 내용에서도 봤듯 자기가 드러그 스토어 (자기 말론 GNC 스토어)에서 적법한 영양제를 샀다고 하지 않는가? 그 말을 고스란히 믿는 것도 웃기지만 일단 믿는다면 무슨 성분이 나왔었는지는 발표했어야 했다. 그게 밝혀진 것은 6년이 지난 2015년이었다. 본인이 플레이어스 트리뷴에 기고한 감성팔이 글에서인데, 거기서는 또 영양제에 스테로이드 성분이 있었음을 인정하고 있다. 그 글과 반박문은 링크로 첨부한다. 감성팔이 기고문(클릭), 기고문에 언급된 기자의 반박문(클릭)  한편 오티즈의 도핑 적발에 대해 매니 라미레즈는 “we’re like two mountains. We’re going to keep doing good no matter what.” 라며 약대산맥들의 우애와 클래스를 널리 과시했다.

 쓰다보니까 귀찮아서 이 정도로 정리는 그만하겠는데, 이 정도만 해도 중증의 인성 아닌가? 저런 식으로 사안을 넘나들며 입을 터는 선수는 정말 듣도 보도 못했다. 특히 PED에 관련해서 자기를 NEBIDO달라는 오티즈의 태도는 나중에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 2013년에도 여전히 왜 약물이 자기 몸에서 나왔는지 모른다는 발언으로 빈축을 샀고, 2014년에도 자기 약물 전력이 쇼월터 감독의 발언과 맞물려 MLB 네트워크에 방송되니까 무려 Upset까지 하셨다. 2015년엔 전술한 기고문을 올렸다가 비웃음(그리고 레드삭스-네이션들의 동정)을 샀다. 도핑 테스트에 한 번 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말도 웃긴 것이, 그런 식으로 치면 알렉스 로드리게스도 2003년 이후엔 도핑 테스트에 걸린 적이 없다. B급 이상 약쟁이만 되도 도핑 코디네이터의 도움을 받기 때문에, 공급책을 털지 않는 이상 잡히지를 않기 때문이다. 

 변한 것은 오티즈의 태도가 아닌 성적이었다. 32세, 33세 시즌에 완만한 내리막을 걷던 기량이 그 이후 갑자기 급반등하기 시작한 것이다. '빅데이터 베이스볼'에 따르면 35세 이후에도 절정의 기량을 발휘한 타자는 오로지 2000년 이후의 배리 본즈밖에 없었고 그래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가 짐 토미를 잡지 않았다는 대목이 나온다. 본즈와 비슷하게 오티즈도 35세 시즌이었던 2011년부터 시간을 거꾸로 돌린다. 2008년부터 2013년까지의 wRC+ 변동은 다음과 같다. 124-100-134-154-170-151. 2013년 보스턴 테러사건 때 오티즈가 연설을 한 것에 사람들이 감동받아서 사랑을 받는다고 하는데, 2012년 90경기만 뛰면서 23홈런을 때려낸 몬스터 시즌이 없었으면 애초에 연설은 커녕 재계약을 할 기회나 있었을까? 심지어 은퇴시즌인 올해는 40세의 나이가 무색하게 wRC+가 170에 달한다. 테드 윌리엄스와 배리 본즈도 40세 시즌엔 안식년을 가졌다. 푸홀스와 미기가 같은 나이에 오티즈와 비슷한 활약이라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결코 그렇진 못할거라 단언할 수 있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클럽하우스 문화를 설명하는 커트 실링의 증언으로 내가 생각하는 이유를 갈음하겠다.

출처 : http://sports.hankooki.com/lpage/baseball/201302/sp2013020908130857390.htm

 생각보다 길게 써진 글인데, 마무리해보자. 데이빗 오티즈는 PED 문제에 관해서 반성한 적이 없는 약쟁이며, 더 나쁘기도 힘든 매너를 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성적을 내서 팀에 기여했기 때문에 팬들이 그를 좋아하고 은퇴를 아쉬워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걸 넘어서 지금처럼 쓸데없는 포장을 하는 것은 기가 찰 뿐이다. 무슨 리더십과 인성을 겸비하고.. 그런 말은 켄 그리피 주니어, 데릭 지터나 나중에 그 팀 페드로이아 은퇴 때나 하는거지 저런 행동을 한 약쟁이를 그렇게 포장하는 걸 보자면 비웃음이 절로 나온다. 

 한줄 요약 : 오티즈 재평가는 NEBIDO

2016년 8월 13일 토요일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은퇴를 바라보며

 소설 반지의 제왕에서 위대한 마법사 간달프는 프로도에게 절대반지를 파괴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다 최강의 흑룡 앙칼라곤의 불꽃이라면 반지에 손상을 줄 수 있을지 모른다는 말을 덧붙인다. 우리의 영원한 친구 나무위키는 이 부분이 오역이며, 실제로는 앙칼라곤이라도 반지에 해를 끼칠 수 없을거라 설명하나 어차피 앙칼라곤은 성북동의 비둘기처럼 세상을 뜬지 오래인터라 그럴 수 있는지 없는지 검증도 할 수 없거니와, 살아있었더라도 사악한 흑룡이라 사악한 절대반지를 파괴하는 걸 도와주지도 않았을 것이기에 오역 여부가 별로 중요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제 프로도가 사악한 사우론이 중간계 만인의 자유의지를 통제하려고 만든 절대반지를 파괴해야 하는 운명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덥고 습하고 비까지 내려 괴로운 장마철에 옆집 울타리에 걸린 호박넝쿨을 보면, 생물이 이렇게 빨리 자랄 수 있다는데 놀라게 된다. 나는 동네를 뛰어다니는 새까만 꼬마들을 보면서 요즘 정말 다문화 가정이 많아졌구나 한참 생각한 후에야 그냥 아이들이 새까맣게 탄 거구나 깨닫게 될 만큼 주변에 대한 관찰력이 없는 사람이나 사람이 호박넝쿨처럼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고, 배리 본즈의 놀라운 홈런 행진에 의심을 품을 수 밖에 없었다. 나뿐 아니라 그의 스윙을 바라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발코 스캔들이 터지고 배리 본즈가 약물에 얼룩진 사우론임이 밝혀졌을 때도 별로 놀라진 않았고, 오히려 본즈가 쌓아올린 통산 762홈런이라는 금자탑, 아니 바랏두르를 무너뜨릴 백기사 중 가장 유력한 후보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야구 선수라는 걸 되새기며 기쁜 마음도 있었다.

 스스로를 "a guy who's been to hell and back and made every mistake in the book."라 칭한 에이로드는 선수 생활 동안 많은 실수를 했다.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떠난 후에는 전 동료들을 24명의 Kid라 깎아내렸고, 2004년 ALCS에서는 절친한 친구였던 덕 민케비치가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아로요의 글러브에 든 공을 내리쳤다. 토론토에 가서는 수비방해 논란에 휩싸였고, 오클랜드에서는 댈러스 브레이든과 신경전을 벌였다. 현명한 아내가 있었지만 불륜 의혹을 받으며 이혼을 선택했고, 월드시리즈 기간 중에 옵트아웃을 선언하는 비신사적인 영업을 한 적도 있었다. 그 외 자잘한 구설수도 참 많았다. 그의 잘못도 있고, 언론의 호들갑도 있었지만 분명 한때 그의 팀메이트인 그리피처럼 모두에게 사랑하는 슈퍼스타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 모든 잘못 중에서 가장 치명적인 것은 역시 두 번의 PED 적발이었을 것이며, 그런 종류의 잘못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다.

 나는 뉴욕 양키스의 팬이지만, 동시에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팬이었다. 하이텔 스포츠란에서 이름을 들은 이래, 어떤 선수일까 항상 상상했고 실제로 그는 내 상상 속 그대로의 유격수였다. 나는 그가 치고 달리고 던지는 것에서부터 홈으로 들어와서도 후속 주자에게 사인을 보내는 것을 잊지 않는 것까지 사랑했다. 지미 폭스와의 홈런 페이스를 비교했고, 올스타전에 표를 던졌으며, 그가 2007년 4월에 몇 개의 홈런을 쳤는지 그리고 통산 몇 개의 만루홈런을 쳤는지 좋았던 시즌과 나빴던 시즌이 어떻게 달랐는지 기억하고 있다. 매니 라미레즈의 팬들과 설전을 벌이기도 했고, 미국엔 아홉수라는 말도 없는데 왜 에이로드는 아홉수를 겪는가 혹시 도미니카엔 있나 찾아보기도 했다. 

 만약 선수노조가 트레이드 승인을 반대하지 않아 그가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보스턴 레드삭스로 갔어도, 혹은 옵트아웃을 해서 LA 에인절스로 갔어도 항상 응원했을 것이다. 양키스 승리, 그러나 에이로드의 솔로 홈런. 이 정도면 만족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또 나는 약물을 복용한 선수가 모두에게 얼마나 큰 해악을 가져오는지 안다. 모든 팬들은 기록만큼이나 오랫동안 비난도 기억한다. 앙칼라곤이 사우론의 반지를 파괴할 수 있건 없건 같은 부류인 이상 부질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mlb.com이 제공하는 스탯 카테고리에 PED 적발자를 위한 * 필터가 없더라도 약쟁이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같은 약쟁이 배리 본즈의 마일스톤에 도전하는 것이 부질없는 일이라는 것도 모두가 알고 있다.

 이제 잠시 후,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은퇴 경기가 펼쳐진다. 떠밀려서 하는 듯한 은퇴지만, 그것이 팀을 위한 최선이니만큼 최소한의 예우는 갖추는 모양새다. 10년전의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초라한 은퇴식이나 이 정도면 감지덕지다. 애증이 뒤섞인 마음으로 마지막 걱정이 있다면 -여태까지 보여준 모습을 돌이켜봤을 때 그럴 법 하기도 한- 그가 700홈런까지 4개 남은 기록을 채우려는 미련을 이기지 못하고 I'm back을 외치며 복귀를 타진하는 것이다.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영화 Mr.3000의 스탠 로스가 결국 기록 대신 팀의 승리를 택했듯, 오늘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은퇴도 팀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끝나버린 노래를 다시 부를 순 없다.  

2016년 8월 9일 화요일

비루한 문화생활 - NBA 2K16, 오버워치 경쟁전 1시즌

 1. NBA 2K16

 2K14, 15의 마이커리어 모드를 재미있게 했었기 때문에 스파이크 리 감독이 시나리오를 감수했다는 이번 작의 마이커리어도 해보고 싶었다. 안 좋은 평을 좀 듣긴 했는데, 저 정도일까 그래도 기본은 하겠지 하고 샀지만 이번 작 마이커리어 모드는 정말 심각하다.

 처음 마이커리어 모드를 시작하면, 주인공은 지역을 씹어먹는 특급 고교 유망주라 경기를 뛰다보면 대학에서 스카우터들을 파견해 리크루팅을 온다. UCLA, 캔자스, 조지타운, 미시건, 루이즈빌 등 NCAA에서 잘나가는 학교들이 우리 학교 출신에 누구누구 있음 이러면서 영업하는 걸 보면서 흐뭇함을 감출 길이 없었다. 2K15 마커에서 드래프트에 못 뽑히고 10일 계약을 두 번 거쳐서야 겨우 잔여시즌 계약을 맺던 슬픈 과거와 명문대를 골라가는 현실이 너무도 대비되었다. 대학 1학년을 보내는 동안 내 MOCK 드래프트 랭킹은 점점 올라가고, 프로에 가라고 에이전트가 찾아올 때까지만 해도 재밌었다. 그리고 재미는 거기까지였다.

 대학 진학을 선택할 수 있었으니 프로 진출도 (더쇼 시리즈처럼) 원 앤 던으로 낮은 능력치로 빠른 프로 데뷔를 노릴지, 졸업할 때까지 뛰어서 커리어에 손해를 보면서 추가 능력치 포인트를 얻을지 선택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런 게 아니고 그냥 정해진 시나리오대로 가야했다. 캐릭터를 백인으로 만들든 동양인으로 만들든 게임상에서는 흑인 부모의 친자식에 가족관계, 친분관계도 미리 다 짜여져 있어서 관계에 변화를 줄 수 있는 것도 없었고 딱히 영향을 미치는 선택도 없다. 로터리픽으로 뽑혀도 오버롤 59라는 어처구니없는 능력치에 혀를 차며 1년차를 시작했다. 시나리오 분량이 긴 것도 아니라 몇 경기 뛸 수도 없는데,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인게임 영상만 주구줄창 보다가 첫 시즌 끝나면 스탭 롤 올라가며 자유 플레이로 바뀐다.

 마이커리어 SNS 기능도 같이 퇴보해서, 다른 선수들과 더 이상 쌍방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없고 함께 뛰고 싶은 선수를 꼬시는 것도 사라진 것 같다. 능력치를 올리는 방법도 일정 등급 이상부터는 오프데이 훈련을 5번 해야 한 칸 올릴 수 있게 -물론 골드는 그대로 소모한다-바뀌었고 더 피곤해졌다. 그렇게 이번 마이커리어는 완전히 망했고, 따라서 마이커리어 하려고 산 내겐 최악의 작품이었다. 거기에 2K 시리즈의 전통인 윈도우 큰 패치 있으면 네트워크 연결 안되는 부분도 여전해서 지금 며칠째 못하고 있다. 30점.

 2. 오버워치 경쟁전 1시즌

 오버워치 리뷰는 클릭(링크)

 오버워치는 재미있는 게임이지만 경쟁전 시스템이 빠른 대전에 비해 훨씬 재밌거나 이렇다 할 동기를 부여해주진 못한다. 물론 점수가 달려있으니 서로 픽에 더 간섭하고, 지면 마이크로 욕하고 그런 게임플레이 외적인 갈등요소는 더 있지만 시스템이 너무 허술하다. 첫째, 티어제가 아니라 점수제라 별로 간지가 안나며 둘째, 유저 간 점수 차이가 50점 이내라면 몇 명이든 같이 다인큐를 돌릴 수 있고 셋째, 세트스코어 동률시 승부결정전에서 공격과 수비를 동전 던지기로 정한다는 망룰 등을 그 이유로 떠올릴 수 있다. 공통적으로 이겼을 때의 쾌감보단 졌을 때의 억울함이 더 오래남는 룰들이다.

 경쟁전 시즌2에서는 승부결정전이 폐지된다고 하니 그건 그나마 다행인 것 같지만, 다인큐는 조금 생각해봐야 한다고 본다. 점수차가 거의 20점이 나는 지인이 있는데, 같이 큐를 돌리면 내가 압도적으로 팀에서 점수가 제일 낮으니 탱힐 뽑고 열심히 한다고 하지만 팀원들이 어디 내가 미덥겠는가? 반대로 3,4인큐 들어와서 나보고 힐러 좀 해달라고 하길래 알았다고 하고 루시우를 하는데, 분명히 나는 인생게임을 하고 있었고 보통 경쟁전에서 그런 기분을 느끼면 이기기 마련이건만 아무리 내가 힐러라도 한 라운드에서 한번이라도 죽으면 게임이 그대로 터지는 것이다. 그래서 속초로 달려가자 하다가 보니까 30점 정크랫이 게임 내내 같은 자리에서 맞지도 않는 퉁퉁만 하고 앉아있는데, 눈물의 루시우 3금 1은을 받아들고 3:0으로 지던 경험을 돌이켜보면 정말 재미도 의욕도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건 최근 나온 블리자드 게임들, 그러니까 스타크래프트2와 디아블로3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단점인데 클랜 시스템 패치가 너무 늦다. MMORPG에 레이드의 비중이 높듯 FPS는 클랜전의 비중이 높은 장르라 더 아쉬운 부분이다. 올림픽 한정 전리품 박스 장사는, 빼박 랜덤박스에 과금유도가 맞기에 비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도 동의하나 게임 밸런스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기에 구매 여력이 되는 사람이면 사는 거 정도로 생각한다.

2016년 8월 8일 월요일

어느 극단주의자들에 대한 소고

 1. 폭력엔 거대한 역효과가 따라오지만 폭력으로만 달성할 수 있는 것들도 얼마든지 있다. 그래서 나는 '절대로 폭력을 이용해서는 안됩니다' 그런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대신 국가가 폭력을 독점적으로 행사하는 것에 동의하고, 그 폭력이 정당성이라는 포장을 거칠 수 있게 항상 시민들이 감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사적인 폭력은 불가피한 경우에만 사용해야 한다고 보며, 어느 정도가 불가피한 폭력인지는 사안에 따라 접근할 것이지만 자기를 방어하기 위해서 할 것, 공권력의 도움을 먼저 구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할 것, 수단에 맞는 최소한도로 할 것, 약자에게 사용하는 것을 피할 것, 선빵치기 전엔 꼭 다시 생각해볼 것 등의 기준은 대부분의 사람이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개개인이 사적 폭력 케이스들을 그런 기준에 따라 이른바 '차칸 사적 폭력'과 그렇지 않은 '나쁜 사적 폭력'으로 분류하는 것도 가능한 일이다.

 2. 우리 사회에서 여성은 사회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약자이기 쉽고, 차별받아왔다. 90년생까지 신생아 성비가 여아 100명당 남아 성비가 116.1에 달하고, 셋째아 이상의 남아 성비는 2005년까지도 128이나 되었다. 몇십년 동안 병아리도 아닌 사람이 한 해 몇만명씩 성별 감별을 당해 세상 빛을 보기 전에 살해당했는데, 태어나고서는 차별이 없다거나 오히려 역차별의 수혜자일 거라면 그건 그렇게 생각하는 자의 판단력에 문제가 있을 확률이 높다. 남아선호사상, 가부장적 사회가 남성들에게도 부당한 짐을 지우는 것이 사실이지만, 같이 없애면 되는 것이다. 역차별 이야기도 매한가지다. 따라서 나는 양성평등 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그 방법 중 부득이 폭력적인 부분이 있을지라도 위의 조건을 어느 정도 충족한다면 무조건 나쁜 사적 폭력으로 매도하는 것에 찬동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고, 필요한 운동이라고 하여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되는 것도 아니다.

 3. 봉사활동을 하러 갔던 곳이 전국 각지에서 온 강남역 살인사건 추모 포스트잇들을 보존한 건물이라 천천히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많은 생각이 들었다. 트위터 극단주의자들이 자주 쓰는 메시지가 꽤 있던 것은 사실이나 주최한 곳이 그 극단주의자들 모임인데다 어느 집단에나 모자란 사람은 있으니 어쩔 수 없는거고 대부분은 고인의 죽음을 슬퍼하고, 여성혐오에 대항해 연대할 것을 다짐하는 선에 그쳤다. 한남충이 어쩌고 저쩌고 하거나 여성들이 남성보다 우월하기 때문에 그걸 두려워한 남성이 여성을 때리는 것이다 그런 수준 이하의 포스트잇도 그대로 있던 거 보면, 최대한 있는 그대로 보존했다고 본다. 강남역 살인사건에서 가해자가 정신병자였기 때문에 범행을 저질렀다는 건 실행의 영역이고 계기는 그의 머릿속에 여성혐오가 있었기 때문에 그랬던 거라고 본다. 그에게 왜 그런 여성혐오가 있었나 전문가가 아니니까 알 수는 없지만, 사회적 요인이 전무했을거라 여기긴 어렵다. 그 4만여장의 포스트잇을 두 달 동안 전수분석했고 이를 여성정책에 반영한다고 하는데, 본질은 조문록인 것을 데이터 마이닝하여 정책에 반영한다는 것은 별로 실효성은 없겠지만 굳이 기를 쓰고 반대할 이유도 없는 사업이다.

 4. 마찬가지로 추모식에는 추모만 해야한다는 선긋기도 화자가 억울하게 죽은 사람을 위한 추모식에 별로 가본 적이 없다는 걸 증명하는 것 외엔 의미가 없다. 어떤 사람의 죽음을 계기로 유사한 처지의 이들의 불만이 같이 폭발하게 되는 건 잦은 일이었고, 그것도 각자의 판단에 따라 착한 추모식, 나쁜 추모식으로 볼 수는 있을 것이나 이번 사건에서도 유가족, 피해자 남자친구(혹은 그렇게 주장하는)를 두고 양 극단에서 자기 편에 불리한 일이 터질 때마다 '유가족(혹은 피해자 남자친구)이 벼슬이냐' 하는 이야기를 하듯 보통 내 입맛에 안맞는 추모식은 나쁜 추모식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같은 맥락에서 피해자의 오빠가 아니라 여성인 가족이 자제를 요청했다 해도 먹히진 않았으리라 확신한다. 그러나 일반적인 기준을 이야기해보자. 유가족의 의사와 반대로 강행되는 추모식이라면 목적에 맞는 다른 집회를 하는 것이 옳다. 착한/나쁜 추모식을 떠나서 기본적인 예의이다.

 5. 살해당한 사람의 추모식에 '치안 1위'를 운운하는 피켓을 들고 간 것이 제 정신을 가진 사람이 할 짓은 아니다. 그러나 경찰이나 관계자를 불러 1인시위 자리를 옮겨달라는 중재를 요청할 수도 있었고 개인적으로 맞피켓을 든다거나 말로 대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얼굴 보이라면서 탈을 벗기려고 흥분한 다중이 달려들어 폭력을 가했으면 그건 집단 폭력 범죄지 그걸 두고 '린치는 사적인 사형 집행에 쓰이는 말이라 린치가 아닙니다' 그런 멍청한 이야기는 뭐하러 열심히 하나 싶다. 사적인 폭력은 주로 약자에게 내려온다. 이번엔 혼자 있던 관심병자가 소수자였고 약자였기 때문에 그 폭력의 타겟이었을 뿐이다. 각자의 입장에 따라 우연히 살아남았다 / 운좋게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표현할 수도 있겠다.

 그 희한한 코스튬 입고 피켓 든 친구가 권력이나 책임을 가진 사람이 아닌데다 집단 폭행 당하면 억하는 사이에 죽을 수도 있는 것엔 성차별이 없었기 때문에 사실 그 타겟이 맞아 죽었다고 하더라도 양성평등, 여성혐오 해결과는 별 연관이 없다. 똑같이 피해자측 가슴에 못질하고, 얼굴 가린채 이상한 옷 입고, 피켓 든 페페페한테도 딱히 이상한 집단이 얼굴 보이라고 물리적 위협을 가하지 않았던 걸로 알고 있다. 그게 사회의 상식이기 때문이다. 저 집단린치 현장에 분기탱천해서 싸우자고 우르르 간 그 사이트 사람들은 너무 답이 없어서 길게 언급하지 않겠으나 탈개체화된 두 집단이 서로가 서로를 김치녀 한남충이라 외치는 모습은 돈 주고도 보기 힘든 진귀한 광경이었으리라.

 6. 난 그들이 주장하는 미러링이란 것이 전혀 의미없는 일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 성추행 피해자 남성에 대해 미러링이랍시고 좌표찍고 우르르 몰려와서 2차 가해를 가한 사건을 보고 회의감을 느꼈고, 이어 강남역 추모식장과 넥슨 시위장소에서 벌어진 몇건의 폭력이 철저하게 다중의 위력을 이용한 방식인 것을 보곤 저들의 자정작용을 믿을 수 없게 되었다. 혐오에 혐오로 대응하여 경각심을 일으키는게 효과가 아예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총기난사 사고가 일어났으니 다같이 무장을 하자는 것 혹은 롤하다가 내가 정신적 충격을 유발하는 폭언을 들은 경험이 많으니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나도 욕을 하겠다 수준과 크게 다른 이야기로 들리지 않고 역효과가 더 큼을 똑똑히 목격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혐오발언을 보면 화자를 혐오발언자로 규정하고 대항하거나 더 이상의 소통을 포기하지, 노노 이기야 붙이고 재기해 그러는 사람의 말을 경청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저 따위 말투가 여혐에 대한 대항과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각종 범죄 모의와 후기에 대해서도, 그것이 실제 범죄로 연결될 개연성이 높지 않기 때문에 주의를 환기하는 차원에 그친다는 말도 어처구니가 없는 이야기다. 발언이 주작인지 여부와 비판은 별개의 문제이다. 개그맨 장모씨가 자기 스타일리스트의 창자를 꺼내서 부모에게 택배로 보내버리고 싶다고 발언한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역겨운 혐오발언이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며, 범죄의 착수에 이를 가능성이 높아서 질타를 받은 것은 아니다. 그런 '미러링'이 일시적일 거라고? 한 번 발생해 자리잡은 혐오는 핑계를 먹고 계속 자라나며 -내 비하엔 이유가 있었어- 여태까지 인터넷 하면서 저 지경까지 전락한 커뮤니티 구성원들이 정신을 차리는 건 단 한번도 본 적 없다.

 7. 넥슨이 근래 녹음한 캐릭터의 음성을 성우의 행동을 이유로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은 과도한 조치였다. 그러나 그 사건이 “Girls Do Not Need a Prince” 티셔츠를 입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저 문구가 조야하다고 생각하긴하나 세상 어딘가엔 보그 걸 보다가 보그로 안 넘어가고 평생을 사는 사람도 있을테니 그건 그렇다치고 저 말 자체를 반대하는 정신나간 이가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문제가 되는 것은 티셔츠의 문구가 아니라, 제작목적과 제작주체이다.

 메르스 갤러리에서 독립하여 만들어진 사이트가 메갈리안이고, 거기서 남성 동성애자 비하와 아웃팅 찬성하는 자들이 빠져나와 세운 것이 워마드며, 저런 자들 나가니까 쫄딱 망한 메갈리안 대신 페이스북으로 가서 규정 위반으로 차단을 반복당하다 자리 잡은 것이 메갈리아4인데 저 세 세력을 불가분의 관계로 보는 것은 비약이 아니다. 또한 저 티셔츠의 디자이너가 워마드에 인증을 한 시점에서 적어도 해당 사건에 대해선 관계가 있음이 확실하다. 그것도 모자라 티셔츠 수익금의 일부는 X린이 사건 당사자, 악플러 등의 법률지원에 쓰이고 있음을 밝혔다면 저 사건을 페미니즘 탄압으로 본다는 것은, 뭐는 지능의 문제라는데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닌가 한다. 강남역 살인사건과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피해자나 유가족의 의사에 반해서 일이 벌어졌고, 이것도 문제가 있는 일이다.

 8. 저 극단주의 무리가 하는 짓이 구리다고 해서 거기에 대응하는 일부의 태도도 반동적이고 졸렬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서든어택2가 노잼과 그보다 더한 막장 운영으로 망했듯, 만화도 마찬가지다. 그런 의미에서 팬들 대하는 태도가 그른 작가들-개중엔 정말 중증의 정신이상자가 존재하긴 한다고 보나 질병에 화를 내고 싶지는 않다-에 대한 보이콧이야 개개인의 선택이지만, 예스컷 운동이나 동인행사에 해코지 하는 건 너 엿되봐라 이상의 의미가 없다. 과거 경험으로 동인행사 하는 사람들 중에 질 낮은 사람들 많이 봤고, 특히 BL 좋아하는 애들은 유달리 극성스럽고 그냥 음란물 좋아하는 거에 자꾸 희한한 가치 부여를 하려고 드는 부류도 많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단속이 잘 미치지 않는 곳에서 성인이 지들 좋아하는 성상품화 망가 사 보는게 엄청난 범죄현장인 것처럼 호도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하는 짓을 가지고 까도 시간이 모자란 것을 뭐 그리 외모비하와 품평을 해대는지 참 한심스러운 일이다. 오히려 골수까지 여혐이 치민 자들이 신나서 날뛰는 것도 쉽게 볼 수 있어 개탄스럽다.

 9. 헛소리를 들으면 병이 드는 오랜 지병을 앓고 있는데, 최근 헛소리들은 메갈리아를 옹호하거나 비판하는 당사자들 사이에서 골고루 나오고 있고 이상한 진영논리까지 세워지고 있어 보는 눈이 썩을 것 같다. 메갈리아-페이스북 메갈리아4 페이지-워마드가 아무 관계도 없다고 주장하는 것, 메갈리아 이전에는 무슨 꼴페미-페미나치 라벨링이 없었던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 미러링으로 인한 혐오발언과 범죄모의는 현실 범죄로 이어진 것이 없기에 괜찮다는 것, 차라리 여혐이 되겠다고 하는 것 등등 한심한 이야기들은 양쪽에서 끝이 없고 마치 1984의 '2분간 증오'를 연상케한다. 머저리들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는데 그런 멍청이 하나 하나 다 조리돌림하는 건 재미로 하는 것이고 별 실익이 없다. 그러나 굳이 저 중에서 제일 단체로 멍청한 소리 하는 걸 하나만 꼽자면, 단연코 호주제 폐지와 메갈리안의 활동을 비교하여 그때도 과격했으니 지금도 과격해도 된다는게 원탑이 아닌가 한다.

출처 : 호주제 폐지를 둘러싼 젠더 거버넌스 황인자(성균관대 대학원)/김영미(상명대)
 호주제 폐지는 여성계의 오랜 숙원이었던 것을 떠나 당시 대통령의 공약이었으며 법무부 장관이 변호사 시절에 호주제 폐지에 대한 논문을 저술했으며 생물학자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이렇게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공감대가 이루어진 상태에서 이론적으로 완성된 운동이었고, 갓 쓴 노인들로 대표되는 호주제 존치론자에 대응하는 방식도 호주제는 한국 전통이 아니라 일본 구민법 계수에 불과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생물학 교수에게도 자문을 구하며 정당성에서도 우위에 섰다. 계속 존치론자들을 토론회에 초대했으나 오지 않는데서 양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느 쪽의 의견이 더 합리적이고 갈등 조정 노력을 기울이는지 알 수 있었다. 거기에 행정력을 동원해 갈등 조정 노력을 기울이며 성공한 운동이 되었다. 첨부한 호주제폐지특별기획단의 구성만 봐도 어떤 식으로 활동을 했는지 보이는 걸 무슨 과격 집회 몇 번 했더니 세상이 바뀐 것처럼 묘사하는 건,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는 피켓이나 들고 앉아있던 호주제 존치론자들이나 할 법한 생각이다. 호주제 폐지 찬성론자들과 온라인을 벗어난 메갈리안들이 어떻게 다른지는 아래 두 짤로 설명을 갈음한다.



 0. 저 극단주의자들은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바로보고 회색영역을 인정치 않으며, 증오와 혐오를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하는 것 말고는 별로 준비한 것이 없기 때문에 함께 무언가를 하기 힘든 무리라는 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다. 앞으로도 여혐에 대항하는 사람들에겐 끝없이 너 메갈이지 소리가 밀려올 것이고, 저 치들이 친 사고는 광장에서 활동하는 다른 이들에게 덧씌워지고 옭아맬 것이다. 또 광장에서 활동하는 이들 중에서도 내심 공적인 자리에서 할 수 없는 비하적인 언행을 극단주의자들이 대신 해주기에 내심 대리만족을 느낄 수도 있으며, 자기 세력에 끌어들이려는 노력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경우가 있다고 하여도 옳은 일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모든 불합리한 차별은 없어져야 한다. 일베와 싸운다면서 일베 말투를 따라하고 있는 한심한 방식에 동의할 수 없을 뿐이다. 앞서 언급한 한 단체는 사고치고 망하니까 빨리 셔터라도 내렸는데, 이제와서 보니까 참 탁월한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