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29일 수요일

일베는 폐쇄되어야 하는가

 민주당이 일간베스트(이하 일베) 웹사이트에 대해서 운영금지 가처분을 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무리한 주장이다. 표현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는 원칙에서도 그렇고, 비단 5.18 민주화 운동이 아니더라도 민주화 운동에 부채감을 느끼는 사람은 상대적 소수라는 현실에 비추어봐도 그렇다. 바그다드에서 사담 후세인 동상을 끌어내린 사람들이 폭압에 분노하다 해방군을 맞은 시민이 아닌 CIA가 동원한 엑스트라였다던 이야기에 의심보다 수긍이 먼저였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총칼 앞에 광장에 나가고 싶어하는 사람보다 집에 있고 싶은 사람이 항상 더 많은데 반란수괴는 목을 치고 잔당들은 목에 팻말걸고 조리돌림한 것도 아니고 뭔가 보이는 임팩트가 있어야 부채감도 드는 거 아닌가. 괜히 바이블에서 보지 않고 믿는 자가 진복자라 하는 게 아니다. 삼대가 망한다는 독립투사들보다 민주화 운동을 주도한 세력이 받은 보상이 '상대적으로' 낫기도 했다. 물론 보상을 못 받은 사람이 양자 모두 더 많겠지만.

 일베와 비슷한 컨텐츠를 가진, 정확히 말해 디씨인사이드의 각 갤러리 일간베스트 글을 모아놓은 사이트에 처음 간 것은 대략 2009~2010년 경이다. 친구가 야갤 짤방 링크해줄 때마다 들어갔으니 꽤나 자주 간 셈인데 사이트 이름이 특이했다. 4camel이었나 사이트에 낙타 그림이 있었는데 이름이 별로 한국 냄새 나지 않아 언젠가 유래를 찾아본 것이 기억에 남는다. 평소부터 아프리카 여자 BJ들을 별창녀라 조롱하며 방송을 방해하던 흔한 디씨 미치광이들이 조작인지 진짜인지도 모를 당해 BJ가 낙태를 몇번을 했느니하는 짤방을 보고 흥분해 평소하던 짓거리하다가 고소당하고난 뒤 지들끼리 낙태를 낙타라 표현한 것이 사이트 이름의 정체였던 것이다. 디씨는 고딩 때부터 디카 사고팔러 다녔고 야갤도 2004년 한국시리즈 때부터 짤방보러 다녔지만 저 4camel이 있을 때는 이미 각종 비하 문화에 질려 떠난 시점이었고, 가뜩이나 글들도 마냥 웃을 수 있는 것보다 아닌 게 더 많았는데 사이트명 유래까지 알고나니 더 가기 싫어졌다. 디씨 특유의 해학적인 상호자학이 싫었다기보단, 언제부터인가 큰 갤러리에서 병신 카스트 제도를 만들어 자기보다 다른 사람을 더 비하하고 조롱하는 것이 마음에 안들었다.

 그렇게 디씨와의 인연이 끝났으면 좋았을텐데, 격리소에서 만족하지 못한 미치광이들이 온갖 사이트에 브나로드 운동하듯 혹은 매저키스트적 욕망을 가지고 등장해 분란의 씨앗이 되며 연이 이어지게 되었다. 역시 한미 FTA 하의 소고기 수입 협상에 대한 태도가 가장 들기 쉬운 케이스인데, 광우병 발병에 대해 확률이나 위험성을 지나치게 과장한 자들을 비웃는 것은 디씨 스타일이다. 그러나 똑같은 이유에 따라 협상 과정에서 여러가지 월급 아까운 짓을 하고 협정문 하나 제대로 번역을 못하는 행정력을 보여준 정부를 비웃었느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성역없던 비판과 해학적 조롱에 애국보수로 끼리끼리 정의내린 우리편 니편의 잣대가 생겼다. 학교 커뮤니티에도 그렇게 의도를 가지고 편집된 자료를 들고 오는 사람이 생겼다. 처음엔 하나하나 살펴보고 반박을 했지만 토론에서 당연히 있어야 할 피드백이 하나도 없이 그냥 퍼오는 걸로 땡이었다. 공부를 더 잘했으면 킹왕짱 대학에 가서 생각없이 퍼나르기만 하는 좀비 대신 저런 광우뻥식 자료 만드는 놈과 직접 게시판에서 제대로 된 토론을 할 수 있으려나 그건 모르겠지만, 뭐 저렇게 만든 놈이야 지 자료가 취사 선택의 결정판인걸 알테니 토론을 하려고 하지 않는 건 퍼나르기 좀비와 똑같을 것 같다.

 현 여당계열 지지자들이 성향을 드러내며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고, 그 고충을 이해한다. 원래 빠는 것보다 까는 걸 더 쉽고 재밌는데 그렇다고 독재까지 빨 순 없으니 고작 할 수 있는게 이놈이나 저놈이나 똑같다고 양비론을 펴거나 경제성장론을 두둔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니들이 어려서 그런다 하다가 털리고 선을 넘어 멀리 간 사람도 많이 봤다. 뭐 여당 알바야 VT 때부터 있었지만 돈 받는 것도 아닌 지지자가 여당 헤이터 혹은 야당 지지자들에게 알바로 몰리거나 거친 말을 듣는 것도 부지기수였을테니 때로는 동정도 간다. 차라리 저렇게 힘들게 살(?) 바에야 다른 커뮤니티에서 노는 게 좋을텐데 생각도 해봤지만 이 사이트는 이게 싫고, 저 사이트는 저래서 싫은 법이다. 세상의 인터넷 사이트의 수만큼 싫은 부분도 있으니 오래 이용할만한 사이트를 찾기란 사람을 사귀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여당 지지자라고 사람이 다 똑같은 게 아닌데 엠코, 개폐위 그런데랑 모든 코드가 맞을 수는 없다. 지금도 일베 코드가 싫어 헤매이는 여당 지지자가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일베는 어떤 사이트기에 이렇게 거대하게 성장할 수 있었나. 첫째는 디씨가 상당부분 잃어버린 익명성에 기반되었고, 둘째는 지역비하/여성비하를 필두로 한 따돌림과 조롱이 일상화되어있고, 세번째는 유저 스스로가 직접적 혹은 묵시적으로 그런 코드에 대해 수인하고 있다. 수인의 이유는 간단하다. 어차피 철저하게 익명을 추구하고 친목을 배제하는 곳이니 특정한 종류의 비하와 조롱만 못본 척 넘어가거나 관대한 척 무시하면 그 외의 모든 것들을 똑같이 물어뜯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기들의 코드에 항의를 받으면 진지병 환자라거나 씹선비라 비하하는게 자존감을 유지하는 길이다. 가령 강제징용 위안부에 대해 원조 원정녀라고 패악질 부리던 놈이 있던 걸 돌이켜보면 당시엔 그런 정신나간 친구들이 미쳐 날뛰고 있었는데 이젠 그런 발언을 유저들 스스로 규탄하고 있다니 신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따지고보면 별로 이상한 일도 아니다. 그 정도 거대 사이트에서 원정녀 소리를 보고 불쾌감을 느끼는 애가 설마 하나도 없었을까. 그때는 그것만 안 짚고 넘어가면 다른 패악질을 할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었고, 이제는 그냥 넘어가면 내가 패악질 부릴 멍석이 홀라당 없어질지도 모른단 불안감이 들기 때문에 그렇다. 똑같은 이치로 일베 유저 중에 호남 거주자나 여성이 있는 것도 의외의 일이 아니다. 호남 거주자는 지역 비하만, 여성 거주자면 여성 비하만 감내하면 다른 대상에 대한 모든 조롱과 비하를 다 할 수 있다. 물론 그런 비하 코드들이 쌓인 것에 대해 동의하지 않거나 수인할 수 없으면 아예 일베에 들어가질 않을테고 그게 일베가 대한민국 최대 사이트가 아닌 이유다. 간혹 일베는 '좌빨'들의 증오의 반작용이 모여 생긴 사이트다 그런 소리하는 사람도 있는데 솔직히 탄압받은건 그쪽이 아니지.

 여담으로 저런 이지메 사이트가 망하는 방법은 온라인이건 오프라인이건 친목질 시작되서 서로 버릇 못고치고 색깔 싸움하다가 사분오열되는 게 제일 빠른데, 기사를 통해 유저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점은 확실히 규제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 친목질, 당파질도 인간의 본성이라 생각하는데 비하의 대상에는 내가 물어뜯을 자유를 들먹이다가 내부 단속엔 저런 탄압(?)을 벌이는 모순된 집단이 일베 하나도 아니고 그냥 익명 격리소에서 자기들끼리 놀고 바깥에만 안나와주길 바라는 게 일베 비이용자에겐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 아닐까 싶다. 더구나 폐쇄 의견에 동의할 수 없는게 일베는 자살 사이트나 뽕쟁이 사이트처럼 범죄 모의를 위한 곳이 아니다. 각종 범죄자들이 활동하긴 했으나 일베 유저라 범죄자가 된 것도 아니다. 독일의 반나치법의 예를 들지만 입법을 통한 해결을 하기도 어렵다. 서두에 이야기했듯 애초에 민주화 운동에 대한 부채 의식을 느끼는 사람도 얼마 없는 판에 무슨 수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낼 것인가? 일베의 본질은 배설이라고 생각하지만 미성년자가 아닌 이상 유해사이트의 판단은 본인이 할 일이고 국가가 개입하는 것이 아니다.일베의 문제라고 하는 역사왜곡에도 이전 정부의 책임이 크다. 초병이 경계에 실패하기만 해도 처형할 수 있는 것이 엄정한 군법이고 사형폐지론자들도 군법의 사형은 반대할 명분이 없다. 그런데 전통을 계승하는 의미에서 반란수괴 칭구칭구들을 능지처사하진 못할 망정 정치적 고려를 한다고 살려놓고 복권까지 해놓으니 이 사단이 안 날 수가 없다.

2013년 5월 12일 일요일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 판다리아의 안개 리뷰

 어느새 와우는 9년째를 향해 달려가고 어느덧 내가 하는 시골섭 공개 채팅창은 추억팔이로 살아가는 사이버 탑골공원이 된지 오래다. 수능끝나고 와우가 정식 오픈했을 때 계정비가 비싸다고 오픈 불매운동하는 사람들을 보고 '그럼 만원 더 내고 리니지하든가' 생각하며 사전결제를 했었고, 군대 전역하자마자 와우용 컴퓨터를 샀지만 내가 시작했을 때가 제일 재밌었다는 올드비 추억담들엔 동감할 순 없다. 강동엔 강동의 이쁜이가 있고 강서엔 강서의 귀요미가 있듯 확장팩마다 나름의 재미가 다 있었고, 그만큼 발전해왔는데 이제와서 옛날 시스템으로 돌아가면 불편하기만하지 재미있을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정액제 MMORPG는 꾸준한 구매력이 부족한 저연령층, 고액 결제 비중은 높지만 캐쥬얼한 게임을 훨씬 더 선호하는 중장년층 모두에게 외면당하기 쉽건만 와우도 참 징그럽게 오래 버텼다.

 1. 개요

 데네브 955, 램 8기가, 라데온 7850 / 지포스 GTX460 두 시스템에서 30프레임 중상옵 이상으로 그럭저럭 돌아간다. 40인 이상 필드 레이드 공격대나 대규모 전장에서 프레임 드랍이 있다. 두 VGA의 세대가 다르니만큼 권장 옵션의 세부 내역이 꽤 다르긴 하나 지포스 쪽이 한결 부드러운 모습. 언제나 그랬듯 블리자드 게임은 인텔-지포스 조합이 진리고 특히 CPU 쪽에서 인텔 쪽의 퍼포먼스가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본편 워크래프트에서 출발한 스토리는 리치왕의 분노에서 큰 줄기가 대강 완결되었고, 기존 비중은 드래곤볼 레드리본군 박사 정도지만 위상이라 짱짱맨인 데스윙까지 잡았으니 이제 아즈샤라 여왕쯤이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했다만, 예상과 다르게 넵튤론 떡밥도 회수 안하고 판다리아의 안개로 넘어오게 되었다. 불성보다도 외전 느낌이 심하게 나는게 임진록하면서 풍신수길 죽었다고 좋아하는데 갑자기 다음 스테이지 브리핑에 누르하치가 나오더니 우리 도와주러 러시아로 와봐라 하는 수준의 스토리 전개다. 스토리 라인 자체가 얼기설기한게 한두개는 아니다. 고대신을 섬기는 사악한 사마귀 부족을 도와줘야 하질 않나 밑도 끝도 없이 잔달라 부족이 새로 등장한 적 세력인 모구의 리즈시절 동맹이라 하질 않나 어이가 없지만 MMORPG를 스토리만 보고 하는 건 아니니 우선 넘어가보자.

 워크래프트3에 나온 NPC 첸 스톰스타우트의 종족 판다렌이 얼라이언스와 호드 양 진영 모두 선택할 수 있게 등장했고, 수도사라는 새 직업이 추가되었다. 탱,밀리딜,힐 모두 가능한 하이브리드형 클래스인데, 어차피 밀리는 어디서나 취직이 어렵고 탱커로서의 성능도 이제 막 재평가되는 중이라 힐 위주로 쓰이고 있다. 여담으로 PvP에서 제일 핫한 힐러가 바로 운무 특성 수도사이다.

  PvP는 새 전장 코트모구의 사원과 은빛수정 광산이 추가됐고 5.3 패치에 하나 더 추가될 계획인데, 전체적으로 의미없는 길싸움을 배격하고 테러와 주자원 확보 양자의 유기적인 조화가 강조된 디자인이다. 클래스별 유불리를 대격변 때와 간략히 비교해보면 진격의 파흑, 야드의 몰락, 주술사 전 특성 취업대란 정도가 눈에 띈다. 큰틀이 변했다는 느낌은 없고, 5.3 패치에서 탄력 - 위력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바뀐다는 소식인데 지금처럼 지속적으로 PvE ,PvP 유저 분리가 고착되는 것은 개발사가 바라는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PvP 유저층은 전체 유저 중 항상 소수이며 대다수의 유저들은 일퀘하다 필드 뒷치기에 짜증을 내고 말지 굳이 보석 마부 다시 해가며 제작템 맞춰 전장갔다가 투기장도 가고 하며 PvP 아이템을 맞추지는 않는다. 7년 반이 다 되가는 게임에 이제 와서 새로 전장 입문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2. 장점

 판다리아의 안개가 아무리 확망팩이라 해도, 와우는 언제나 기본은 하는 게임이다. 오래된 게임이라 한계는 있지만, 이번 확장팩에서도 일신된 그래픽을 볼 수 있고(슬슬 오리지널 여덟 종족들 기본 모델링도 다시 만들어주면 좋겠지만), BGM은 내 취향이 아니라 그렇지 배경과 이질감 없이 잘 어우러진다. 여담이지만 이번 클라이언트는 오프라인에서 DVD를 팔지 않아 동봉되어 있던 OST를 구하고 싶으면 디지털 스토어에서 구매해야 할 것 같다.

 와우는 만렙부터란 격언이 있을만큼 우선 만렙을 찍어야 뭘 할 수 있으니 그때까지의 과정이 지루한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최대한 퀘스트 동선을 단순화하고 저렙 특성을 강화해 자연스레 레벨업 속도가 높아졌고 지루함을 줄였다. 위상 변화를 활용해 새롭게 추가한 '농장 경영' 시스템도 잔재미를 주는 것과 동시에, 전문기술 숙련도를 올리는 것에 큰 도움을 주게 되었다. 앞마당에서 점프하는 걸로 하루를 보내던 PvP 하드 유저들은 채집 기술 부캐를 키우지 않는 이상 전문기술 올리려면 현질로 골드사서 경매장 이용하는 것 말고 딱히 방법이 없었는데, 이젠 농장에서 나오는 재료만으로도 쉽게 습득이 가능해졌다.

 컨텐츠의 핵심인 던전 디자인은 현재 최상위 던전인 천둥의 왕좌의 경우 시골섭 + 딜러 + 후발주자 삼위일체 크리를 맞아 가기가 힘들어 공격대 찾기로만 해봤고, 일반 공격대는 너프된 하위 레이드만 다녀왔을 뿐이지만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다년간 경험이 축적된 블리자드의 레이드 던전 디자인이 매너리즘에 빠질지는 몰라도 크게 실망스러울 것 같지도 않다. 레이드 자체가 바닥 피하는 매스게임이라는 비판이 있지만 울티마 온라인부터 아키에이지까지 다 살펴봐도, 에버퀘스트를 벤치마킹해 계승 발전한 와우보다 레이드가 낫긴 커녕 비슷한 수준에 도달한 게임도 없었다. 과거 인기 있던 인던인 붉은 십자군 수도원, 스칼로맨스의 리메이크도 반갑다.

 메즈, 점감, 클래스 조합으로 대표되는 다대다 PvP 시스템 역시 와우의 전통적인 장점이지만 판다리아의 안개만의 장점은 아니니 길게 쓰진 않는다. 대격변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된 직업별 버프 평준화에도 불구하고 저 세 요소의 조화 덕에 PvP쪽은 재미를 잃지 않았다.

 게임 자체적 재미는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이용자가 감소해 도시섭-시골섭 양극화가 극단으로 치닫자 서버 통합을 추진하고 있는 것도 좋은 일이다. 특정 서버같은 경우 한 진영이 그야말로 멸종하다시피 했는데 산소 호흡기를 씌웠다 정도 의미는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얼라는 듀로탄, 호드는 아즈샤라, 중립은 하이잘 가야 게임하기 편한 것은 변함없다.

 3. 단점

 역대 최악이라 불릴만한 후진 시네마틱(링크)을 가볍게 까면서 시작해보자. 귀요미 짱짱맨 첸 스톰스타우트가 싫다는 게 아니라, 안두인과 가로쉬의 갈등을 다루는 게 주제에 더 부합했다.

 라이트유저와 하드유저간의 간극을 좁힌다고 내놓은 일일 퀘스트의 압박이 너무도 크다. 기존에 존재하던 하루 일일퀘스트 제한 25개도 없앤만큼, 일퀘의 양 자체가 어마어마한데, 문제는 핵심 평판 진영의 일퀘로 얻는 평판을 확 줄여 확고를 찍기가 어렵다. 유저들의 항의에 뒤늦게 평판 보너스를 주는 아이템을 추가하고 평판템 구입 가능 기준도 하향했지만 갓만렙 달면 하루 종일 일퀘만 하다가 나간다는 말이 허언이 아니라(2,3시간이 넘게 걸릴수도 있다) 타겟으로 잡았던 라이트 유저들마저 일퀘에 질려 떠나게 되었다. 공찾 시스템에서의 아이템 드랍은 결국 운의 문제이고, 예전처럼 하루에 인던 하나씩만 돌아도 점수를 모아 에픽템을 바꿀 수 없고 평판까지 올려야 한다는 건 분명 부담이다.

 기존 확장팩과 달리 이번 시리즈에선 본편 스토리와의 연관 요소가 희박한만큼 플레이어와 세계관의 일치에 많은 신경을 기울여야 했는데, 안두인 린 구하려고 갔다가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면 진시황릉 같은데 들어가 싸우고 있으니 그런 면모를 찾아보기 어렵다. 레벨업 구간 동안 이용할 수 있는 인스턴스 던전은 4개에 불과하고(따라서 아이템 테이블도 극히 한정되어 있다), 만렙이 되어서야 영웅급 던전으로 9개가 열리는데 엄연히 아제로스에 있는 수도원, 스칼로맨스를 왜 판다리아에 있다가 별 퀘스트도 없이 뜬금없이 가야하는지 모르겠다. 최종 보스로 정해진 가로쉬도 샤가 꼬시든 고대신이 꼬시든 아무튼 때되면 미칠 이북 삼부자 같은 놈인데 굳이 판다리아까지 갔다와서 때려잡을 친구는 아닌 것 같다. 새 종족인 판다렌의 시작 스토리에도 왜 얼라이언스나 호드를 선택해야 하는지 필연성이 부족해보인다. 세계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와중에 티리온, 실바나스, 메단 같이 뭔가 좀 해야할 친구들이 놀고 있는 것도 이상하고.

 지엽적인 문제지만 현지화에도 아쉬운 부분이 있다. 고유명사는 음역하고, 일반명사는 훈역하는 게 와우의 오랜 현지화 원칙이었는데, 판다리아의 안개 배경은 상해혁명 훨씬 이전 고대-중세 중국에 가까워 표기에 애매한 부분이 생긴다. 물론 판타지 세계니 어떻게 현지화하는지야 제작사 마음이고 고심해서 옮겼겠지만 White Tiger Temple은 백호사로 번역하면서 탕랑 평원은 사마귀 평원이나 당랑 평원 대신 중국어 발음에 가깝게 표기하는등 일원화되지 않는 모습이다. 대부분의 한국 플레이어들은 공자라고 하면 알아들어도 콩즈라고 하면 모르는만큼 더 어색한 건 이름 쪽이다. 한자를 그대로 읽는 게 더 익숙하니 예컨대 천둥왕 레이 션(雷神)은 '뇌신'으로, 샤(煞)들은 살풀이 굿 할 때의 그 '살'이니 그대로 표기했으면 훨씬 이질감이 덜했을 것이다. 물론 인명은 원어 표기를 따르는 것이 옳겠지만 중국인들이 인명 말하는 건 성조때문에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던데 걔들은 내가 레-이-션 그렇게 읽으면 알아듣냐?

 오래 지적되어온 단점이지만 근접 전투에서 별로 타격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다른 건 다 어떻게 할 수 있어도 이 문제는 클라이언트를 완전히 새로 만들지 않는 한 영원히 해결 못할 것 같다.

 4. 총평

 여러군데서 혹평을 듣고 있는 판다리아의 안개지만 기본적으로 와우가 지금까지 쌓아온 컨텐츠는 방대하다. 생활이 없는 유저건 라이트 유저건 할 것은 항상 널려있고 계정비만큼의 재미는 한다. 비자발적 라이트 유저가 되니 점점 비싸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롤하면서 일베애들이랑 놀아야 하는 것보다 와우하면서 와갤러들이랑 노는 게 차라리 낫다.

 하지만 와우가 너무도 오래된 게임이라는 데 한계가 있다. 익숙해진 유저들이야 다 하던 감이 있다지만 와우는 빨리 익숙해지지 않는 게임이다. 각 서버에 서포터 길드를 만들어 유저들이 자체적으로 뉴비들에게 여러가지 지원을 해주기도 하나 당장 나부터 서버 옮기고 1부터 키우라고 그러면, 레벨업은 둘째치고 전문기술 때문에 엄두가 안 난다. 하물며 애드온의 A부터 배워야 할 뉴비들에게 장벽은 더욱 크게 느껴질 것이다. 사실 그건 판다리아의 안개가 지금보다 훨씬 잘 만든 확장팩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와우를 하기 전에도, 한 후에도 많은 MMORPG를 해봤지만 와우만큼 잘 만들고, 관리된 게임은 없었다. 상대적으로 찐따 비율이 높은 부분 유료 게임은 내가 잘 안 건드려서 못 찾은 것일수도 있겠지만 다른 장르의 게임을 한다면 모를까, 굳이 다른 MMORPG를 할 매력은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결국 이 장르의 가장 큰 컨텐츠는 얼마나 많은 유저가 게임을 하는지 여부라고 봤을 때, 꾸준히 유저가 줄고 있는 와우의 미래는 불투명하고 그동안 던졌던 떡밥 회수하며 얼마나 잘 연착륙하는지의 여부만 남았을 뿐이다. 북미와 중국에 빨대가 꽂혀있으니 아무리 망해도 몇년은 거뜬하겠지만, 내 지갑도 덩달아 거뜬한 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