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29일 수요일

일베는 폐쇄되어야 하는가

 민주당이 일간베스트(이하 일베) 웹사이트에 대해서 운영금지 가처분을 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무리한 주장이다. 표현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는 원칙에서도 그렇고, 비단 5.18 민주화 운동이 아니더라도 민주화 운동에 부채감을 느끼는 사람은 상대적 소수라는 현실에 비추어봐도 그렇다. 바그다드에서 사담 후세인 동상을 끌어내린 사람들이 폭압에 분노하다 해방군을 맞은 시민이 아닌 CIA가 동원한 엑스트라였다던 이야기에 의심보다 수긍이 먼저였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총칼 앞에 광장에 나가고 싶어하는 사람보다 집에 있고 싶은 사람이 항상 더 많은데 반란수괴는 목을 치고 잔당들은 목에 팻말걸고 조리돌림한 것도 아니고 뭔가 보이는 임팩트가 있어야 부채감도 드는 거 아닌가. 괜히 바이블에서 보지 않고 믿는 자가 진복자라 하는 게 아니다. 삼대가 망한다는 독립투사들보다 민주화 운동을 주도한 세력이 받은 보상이 '상대적으로' 낫기도 했다. 물론 보상을 못 받은 사람이 양자 모두 더 많겠지만.

 일베와 비슷한 컨텐츠를 가진, 정확히 말해 디씨인사이드의 각 갤러리 일간베스트 글을 모아놓은 사이트에 처음 간 것은 대략 2009~2010년 경이다. 친구가 야갤 짤방 링크해줄 때마다 들어갔으니 꽤나 자주 간 셈인데 사이트 이름이 특이했다. 4camel이었나 사이트에 낙타 그림이 있었는데 이름이 별로 한국 냄새 나지 않아 언젠가 유래를 찾아본 것이 기억에 남는다. 평소부터 아프리카 여자 BJ들을 별창녀라 조롱하며 방송을 방해하던 흔한 디씨 미치광이들이 조작인지 진짜인지도 모를 당해 BJ가 낙태를 몇번을 했느니하는 짤방을 보고 흥분해 평소하던 짓거리하다가 고소당하고난 뒤 지들끼리 낙태를 낙타라 표현한 것이 사이트 이름의 정체였던 것이다. 디씨는 고딩 때부터 디카 사고팔러 다녔고 야갤도 2004년 한국시리즈 때부터 짤방보러 다녔지만 저 4camel이 있을 때는 이미 각종 비하 문화에 질려 떠난 시점이었고, 가뜩이나 글들도 마냥 웃을 수 있는 것보다 아닌 게 더 많았는데 사이트명 유래까지 알고나니 더 가기 싫어졌다. 디씨 특유의 해학적인 상호자학이 싫었다기보단, 언제부터인가 큰 갤러리에서 병신 카스트 제도를 만들어 자기보다 다른 사람을 더 비하하고 조롱하는 것이 마음에 안들었다.

 그렇게 디씨와의 인연이 끝났으면 좋았을텐데, 격리소에서 만족하지 못한 미치광이들이 온갖 사이트에 브나로드 운동하듯 혹은 매저키스트적 욕망을 가지고 등장해 분란의 씨앗이 되며 연이 이어지게 되었다. 역시 한미 FTA 하의 소고기 수입 협상에 대한 태도가 가장 들기 쉬운 케이스인데, 광우병 발병에 대해 확률이나 위험성을 지나치게 과장한 자들을 비웃는 것은 디씨 스타일이다. 그러나 똑같은 이유에 따라 협상 과정에서 여러가지 월급 아까운 짓을 하고 협정문 하나 제대로 번역을 못하는 행정력을 보여준 정부를 비웃었느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성역없던 비판과 해학적 조롱에 애국보수로 끼리끼리 정의내린 우리편 니편의 잣대가 생겼다. 학교 커뮤니티에도 그렇게 의도를 가지고 편집된 자료를 들고 오는 사람이 생겼다. 처음엔 하나하나 살펴보고 반박을 했지만 토론에서 당연히 있어야 할 피드백이 하나도 없이 그냥 퍼오는 걸로 땡이었다. 공부를 더 잘했으면 킹왕짱 대학에 가서 생각없이 퍼나르기만 하는 좀비 대신 저런 광우뻥식 자료 만드는 놈과 직접 게시판에서 제대로 된 토론을 할 수 있으려나 그건 모르겠지만, 뭐 저렇게 만든 놈이야 지 자료가 취사 선택의 결정판인걸 알테니 토론을 하려고 하지 않는 건 퍼나르기 좀비와 똑같을 것 같다.

 현 여당계열 지지자들이 성향을 드러내며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고, 그 고충을 이해한다. 원래 빠는 것보다 까는 걸 더 쉽고 재밌는데 그렇다고 독재까지 빨 순 없으니 고작 할 수 있는게 이놈이나 저놈이나 똑같다고 양비론을 펴거나 경제성장론을 두둔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니들이 어려서 그런다 하다가 털리고 선을 넘어 멀리 간 사람도 많이 봤다. 뭐 여당 알바야 VT 때부터 있었지만 돈 받는 것도 아닌 지지자가 여당 헤이터 혹은 야당 지지자들에게 알바로 몰리거나 거친 말을 듣는 것도 부지기수였을테니 때로는 동정도 간다. 차라리 저렇게 힘들게 살(?) 바에야 다른 커뮤니티에서 노는 게 좋을텐데 생각도 해봤지만 이 사이트는 이게 싫고, 저 사이트는 저래서 싫은 법이다. 세상의 인터넷 사이트의 수만큼 싫은 부분도 있으니 오래 이용할만한 사이트를 찾기란 사람을 사귀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여당 지지자라고 사람이 다 똑같은 게 아닌데 엠코, 개폐위 그런데랑 모든 코드가 맞을 수는 없다. 지금도 일베 코드가 싫어 헤매이는 여당 지지자가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일베는 어떤 사이트기에 이렇게 거대하게 성장할 수 있었나. 첫째는 디씨가 상당부분 잃어버린 익명성에 기반되었고, 둘째는 지역비하/여성비하를 필두로 한 따돌림과 조롱이 일상화되어있고, 세번째는 유저 스스로가 직접적 혹은 묵시적으로 그런 코드에 대해 수인하고 있다. 수인의 이유는 간단하다. 어차피 철저하게 익명을 추구하고 친목을 배제하는 곳이니 특정한 종류의 비하와 조롱만 못본 척 넘어가거나 관대한 척 무시하면 그 외의 모든 것들을 똑같이 물어뜯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기들의 코드에 항의를 받으면 진지병 환자라거나 씹선비라 비하하는게 자존감을 유지하는 길이다. 가령 강제징용 위안부에 대해 원조 원정녀라고 패악질 부리던 놈이 있던 걸 돌이켜보면 당시엔 그런 정신나간 친구들이 미쳐 날뛰고 있었는데 이젠 그런 발언을 유저들 스스로 규탄하고 있다니 신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따지고보면 별로 이상한 일도 아니다. 그 정도 거대 사이트에서 원정녀 소리를 보고 불쾌감을 느끼는 애가 설마 하나도 없었을까. 그때는 그것만 안 짚고 넘어가면 다른 패악질을 할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었고, 이제는 그냥 넘어가면 내가 패악질 부릴 멍석이 홀라당 없어질지도 모른단 불안감이 들기 때문에 그렇다. 똑같은 이치로 일베 유저 중에 호남 거주자나 여성이 있는 것도 의외의 일이 아니다. 호남 거주자는 지역 비하만, 여성 거주자면 여성 비하만 감내하면 다른 대상에 대한 모든 조롱과 비하를 다 할 수 있다. 물론 그런 비하 코드들이 쌓인 것에 대해 동의하지 않거나 수인할 수 없으면 아예 일베에 들어가질 않을테고 그게 일베가 대한민국 최대 사이트가 아닌 이유다. 간혹 일베는 '좌빨'들의 증오의 반작용이 모여 생긴 사이트다 그런 소리하는 사람도 있는데 솔직히 탄압받은건 그쪽이 아니지.

 여담으로 저런 이지메 사이트가 망하는 방법은 온라인이건 오프라인이건 친목질 시작되서 서로 버릇 못고치고 색깔 싸움하다가 사분오열되는 게 제일 빠른데, 기사를 통해 유저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점은 확실히 규제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 친목질, 당파질도 인간의 본성이라 생각하는데 비하의 대상에는 내가 물어뜯을 자유를 들먹이다가 내부 단속엔 저런 탄압(?)을 벌이는 모순된 집단이 일베 하나도 아니고 그냥 익명 격리소에서 자기들끼리 놀고 바깥에만 안나와주길 바라는 게 일베 비이용자에겐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 아닐까 싶다. 더구나 폐쇄 의견에 동의할 수 없는게 일베는 자살 사이트나 뽕쟁이 사이트처럼 범죄 모의를 위한 곳이 아니다. 각종 범죄자들이 활동하긴 했으나 일베 유저라 범죄자가 된 것도 아니다. 독일의 반나치법의 예를 들지만 입법을 통한 해결을 하기도 어렵다. 서두에 이야기했듯 애초에 민주화 운동에 대한 부채 의식을 느끼는 사람도 얼마 없는 판에 무슨 수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낼 것인가? 일베의 본질은 배설이라고 생각하지만 미성년자가 아닌 이상 유해사이트의 판단은 본인이 할 일이고 국가가 개입하는 것이 아니다.일베의 문제라고 하는 역사왜곡에도 이전 정부의 책임이 크다. 초병이 경계에 실패하기만 해도 처형할 수 있는 것이 엄정한 군법이고 사형폐지론자들도 군법의 사형은 반대할 명분이 없다. 그런데 전통을 계승하는 의미에서 반란수괴 칭구칭구들을 능지처사하진 못할 망정 정치적 고려를 한다고 살려놓고 복권까지 해놓으니 이 사단이 안 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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