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21일 목요일

때늦은 WBC 리뷰 - 소잃고 외양간 까기 특집

 각론을 이야기하기 전에 총론을 짚고 넘어가자. 나는 모든 국가대표 운동선수들에게 경외심을 가지고 있고 그건 그들의 능력 때문은 아니다. 학창 시절엔 수련회 갈 때마다 왜 돈내고 개뻘짓하는지 이해를 못하고 커서는 예비군 가는 것도 짜증나는 나로서는, 꼭 돈되는 일이 아니더라도 국대라고 집떠나 강제정모를 벗삼는 그런 삶을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WBC 대표팀의 애국심이나 승리를 향한 열정엔 한 점 의심이 없다. 교복입은 배우가 나오는 야동을 본다고 전자발찌 찰 사람이 된다는 근거가 없듯, 억지로 국대 유니폼을 입는다고 애국심이 갑자기 생길리는 없고 애초에 사명의식이 있으니 참가했을 것이다. 결과가 조별예선 탈락이라고 의도를 폄하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들에 대한 존경과는 별도로 이번 WBC대표팀의 행보는 복기해봐야겠다. 코칭스태프 선정, 선수단 구성, 훈련 및 연습과정, 경기 운영 순서대로 짚어보자.

 1) 코칭스태프 선정

 거두절미하고 도대체 국대 전임 감독을 두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KBO는 경질된 감독들을 데려다 경기감독관으로 쓰는데, 단기전 감독 하나 못 맡길바에 뭐하러 월급 주며 쓰는지 모르겠다. 류중일 감독은 물론 한국시리즈 2연패, 아시아시리즈 우승을 일군 좋은 감독이고 대표팀에도 최선을 다했겠지만 수신제가 치국평천이라고 월급주는 삼성팀 돌보는게 우선이지 대표팀 감독을 맡길 당위성이 없다. 당장 재야에 김성근, 김인식, 조범현 감독처럼 여러모로 성과를 보여준 사람들이 있다. 하긴 백날 팬들이 말해도 바뀔 일은 없겠고 또 다음 호구를 기다리겠지. 코치들은 현역을 쓰더라도 감독은 소소한 대회들도 계속 있겠다 국대 전임 감독을 선임하는 게 합리적이다. 부수적이지만 중요한 전력분석팀은 우리나라에서 누가 제일 잘하는지 모두가 다 아니 지금 그대로 가면 될 것 같다.

2) 선수 선발

 투수진 : 류현진은 다저스 5선발 경쟁이 급하고 봉중근, 김광현은 아프다니 벌써 로스터가 허전하다. 설상가상 선발 한 축을 맡아줄 윤성환과 필승조 안지만도 나오지 못하게 되며 투수진에 비상 사태가 걸렸다. 역대 WBC 대표팀은 절대적으로 투수진에 의존해왔다. 총 19경기 동안 88득점, 49실점을 기록한 것만 보면 투타 모두 정상급으로 보이지만 한번 자세히 뜯어보자. 19전 중 3점 이상 실점한 경기의 승률은 1승 5패, 5점 이상 실점한 경기는 0승 5패. 3점 이상 실점한 6경기의 득실마진이 무려 -25점이다. 꽁꽁 틀어막을 땐 확실하게 막았으나 맞을 땐 따라가지 못했다. 1,2회 토너먼트 이전 라운드에서 더블 엘레미네이션 방식을 취한 것도 영향이 있겠지만 결과가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저기 구멍나니 투수진을 꾸리는 것도 어려웠다. 4강도 못간 기아에서 선발 3인방을 몽땅 뽑아가려고 했던 것도 한 팀의 입장에서 보면 기둥뿌리 뽑는 짓일지 몰라도 얼마나 다급했으면 저랬을까 이해가 된다. 악조건 속에서 최대한 있는 자원을 추려가는 것이 맞는데, 대표팀은 악수를 두었다. 물론 국대 감독이 될성부를 미필 떡잎 하나 알박기 하는 것은 인건비로 쳐주는 것이 상도례겠지만 김상수로 족했지 차우찬 선발은 너무 나갔다. 국대 유니폼은 옛날 오락실에서 10원짜리 동전에 감아 100원짜리로 만들던 절연테이프가 아니다. 무슨 수로 노말카드를 레어카드로 만드나? 선발 자체가 워낙 상식밖이라 감독이 직접 뽑았을 거라고 믿을 수가 없을 지경이다.

 야수진 : 역대 대표팀 최강 타선이라는 말도 공허하다. 2011년 일본에서 이승엽은 OPS 0.622, 김태균은 0.663의 처참한 성적을 거뒀다. 한국에 돌아와서 각각 0.886, 1.01로 아예 다른 사람이 된 건 저들이 성장해서 돌아왔기 때문이 아니다. 성공적으로 일본 첫해를 보낸 이대호는 다른 이야기지만 셋 다 1루/DH 슬롯인 이상 저 셋 중 두 명에 추신수가 가세하는 것보다 효율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다른 측면에서 보자. 뛰어난 젊은 선수들인 강정호, 최정이 김태균에 견줄만한 성적을 거뒀다쳐도, 상위 라운드에 진출하면 어디선가 만날 일본 대표팀과 비교한다면 나은 타선은 아니다. KBO 라이언 가코가 딱 2011년 NPB 이승엽, 김태균 수준 스탯을 찍었을 것이다. 그럼 가상의 상대팀을 떠올려보자. 베스트 9 중 가코보다 나아보이는 타자가 한 명(이대호 정도 레벨이라고 치자), 가코 정도 타자가 서너명, 나머지는 가코보다 못치는 팀이다. 이 팀과 우리나라 국대가 만났다면 최강의 타선을 만났다고 지레 겁먹기보단 야구보면서 무슨 치킨을 먹을까 고민할 가능성이 높다.

 3) 훈련 및 연습과정

 2월 11일부터 소집해 훈련을 했고, 각종 기사를 보면 강도가 부족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할만큼 했다고 생각한다. 컨디션이 늦게 올라온 것을 아쉬워할 순 있겠지만 그냥 해도 안된거다. 훈련이 부족해 잦은 수비 실책이 나왔다는 분석도 있고 그만큼 주루 플레이도 아쉬웠지만 최선을 다했으면 됐다. 병역혜택이 없었기 때문에 설렁설렁 했을 것 같지는 않다. 대표팀의 정신적 리더였을 이승엽만 봐도 이악물고 했는데. 김상수가 뻘소리했다가 어그로를 잔뜩 끌긴 했지만 솔직히 한달만에 집에 가면 아쉬움을 떠나 기분은 좋을 법도 하다.

 4) 경기 운영

 복기할 순간은 단 하나, 네덜란드전 그 급박한 상황에서 왜 차우찬을 냈는지 모르겠다. 대회 규정을 몰랐는지 몰라도 3:0으로 지고있는 무사 1,2루. 규정상 다음 리운드 진출과 실점이 직결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패전처리를 낸다? 류중일 감독은 규정을 몰라서 그랬던 건 아니라고 부인했고, 당시 낼 수 있는 LOOGY 카드 중 장원삼, 박희수는 아프고 장원준은 선발카드라 그랬다는 분석도 있지만,박희수가 나머지 두경기에 다 나온 마당에 옳은 해석이 될 수가 없다. 결과적으로 2승 1패를 하고도 귀국행 비행기를 탄 것은 저 한번의 투수교체가 너무 뼈아팠다. 애초에 좋은 투수들을 더 뽑지 못한 게 아쉽지만, 그나마 있는 자원을 효율적으로 쓰지도 못한 셈이다.

 5) 총평

 단기전은 모른다는게 여실히 증명된 대회였다. 올림픽과 다른 대회규정의 특성상 나올지 안나올지도 모르는 5선발급 투수가 얹혀가는 것보다 3인 로테이션을 돌리더라도 확실한 불펜 투수가 가는 게 중요했는데 선발 과정에서나, 운영에서나 그렇지 못했던 게 아쉽다. 야수진에서도 1루/DH 자원에 3명이 들어가고 유격수만 세명을 뽑아놓으니 말로는 내야유틸로 쓸 수 있다 해놓고 정작 써먹기가 힘든 모습이었는데 어지간하면 2,3루 백업요원도 고려해서 뽑았으면 한다. 포지션별로 제일 잘하는 선수 한 명에 베테랑 혹은 스페셜리스트 한 명 꼴로 뽑아도 충분하거늘 꼭 그렇게 했어야 하는지가 아쉽다. 국대에서 못쓸 자원은 미필/아마추어 시드 고려해야하는 대회 아니면 안봤으면 한다. 그나마 대만전에서 유종의 미를 거둔 걸로 정신승리라도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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