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4일 수요일

단통법은 정말 최악의 악법일까

  이동통신사업자가 꼴랑 3개 있는 나라에서 독과점 테크 타는 것은 피할래야 피할 수가 없다. 영세업체들이 아니라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에 의해 5:3:2로 고착된 시장에서 더 치열한 경쟁을 시키지는 못 할 망정 업체들이 소비자에게 직접 지급하는 보조금을 제한하고, 통신사 옮긴다고 더 혜택을 받지 못하게 하는 단통법은 그 자체로 문제가 있는 법안이다. 남이사 핸드폰 사려고 새벽까지 줄을 서든 일주일 동안 텐트를 치든 그걸 대통령이 직접 언급할 깜냥의 문제도 아니다. 거기에다 이 법은 통신사가 일선 대리점에게 지급하는 판매장려금은 전혀 제약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법안의 외양만 놓고 보면 통신사는 보조금 줄여 좋고 소비자만 엿먹는 구조로 귀결된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단통법이 모든 소비자에게 손해가 되었나 살펴보면 꼭 그렇지는 않다.

 단통법은 실제로 불법 보조금을 근절하지 못하였고 입법 목적이었던 가입자의 가입유형 간 차별을 해소하지도 못하였다. 이건 주말 오후 신도림 테크노마트 9층에서 탑돌이하는 사람들만 따라다녀봐도 증명이 된다. 하지만 이통사가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지원금을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공시하고, 어딜 가서도 그만큼은 받을 수 있게 하는 시스템을 정착하는 것에는 성공했다. 또 언락폰이나 중고 단말기로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는 통신사에서 제공하는 단말기 보조금을 받지 못하는만큼 약정기간 내 요금 할인을 제공하는 선택약정할인 제도를 도입했다. 물론 이는 단통법에서 가장 큰 비판을 받는 조각인 보조금 상한제가 없어도 가능한 제도이다. 하지만 그 결과로 더이상 갤럭시 사러 갔다가 대리점 말빨에 속아서 LG폰, 팬택폰을 출고가에 36개월 약정까지 끼얹어 눈탱이 맞고 고객님 왼뺨을 쳐맞으셨으니 오른뺨도 대시라면서 부가서비스까지 넣는 일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저런 법안에도 순기능이 있다는 것은 그 전까지 이동통신시장이 얼마나 개막장이었는지를 방증하는 결과인 것이다.

 정보에 어두우면 어느 정도 손해 보는 건 어쩔 수 없다는 것엔 수긍한다. 하지만 그것도 한도가 있다. 무슨 밀거래 암시장 같은 곳이 아닌 엄연한 대기업 이통 대리점에서 같은 유형 / 요금제로 가입하며 누구는 갤럭시S3를 17만원 주고 사고, 다른 누구는 베가 아이언2를 출고가 78만원 그대로에 부가서비스까지 떠안고 사는 지옥도 앞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선 어쩔 수 없죠 ㅎㅎ 이러느니 잘 모르는 사람은 공시지원금이라도 받고, 정보가 있는 사람들은 음성적으로라도 싸게 사는 것이 내 눈에는 더 공평해보인다. 단통법 시행 2년 전부터 휘청거리던 팬택이 딱히 단통법 때문에 망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건 서든어택2가 오버워치 때문에 망했다고 하는 것과 똑같이 허황된 이야기다. 벤쳐기업이면서 직접 생산 공장을 두고 제품 제조까지 직접 하는 팬택을 높게 평가'했'지만, 여러모로 한계가 있는 게 아니었나 싶다.

 단통법 시행 결과로 일선 대리점에서 재고로 쌓여있던 보급형 폰을 팔면서 소비자의 무지를 이용해 가격은 최신 플래그쉽 폰이랑 똑같이 받아먹는 일이 사라지게 되었고, 그 결과로 폰 가격의 가이드라인이 명확해지며 이통사에서 괜찮은 스펙의 보급형 폰을 취급하기 시작한 것, 과거에는 고객님 SK입니다 그러면서 발신번호조작 스팸전화 걸어대던 SK텔링크 외엔 존재감 자체가 없던 MVNO를 정책적으로 밀면서 가성비로 유명한 알뜰폰 요금제들이 꽤 나오기 시작한 것, 약정 반환금이 필요없는 순액 요금제가 대세가 된 것 등도 부가적인 순기능으로 볼 수 있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단통법 하의 긍정적인 변화인 지원금 공시제도, 선택할인약정 제도는 독소조항인 보조금 상한제에 의하여 성부가 갈리지는 않기 때문에 기업과 소비자의 자유를 모두 침해하는 보조금 상한제는 철폐되어야 한다. 법안 자체도 한시적인 일몰법안이니만큼 연장 없이 그대로 종료되었으면 한다. 궁극적으로는 이통사 대리점에서는 전산작업과 유심판매만 하고, 핸드폰은 전자제품 매장에서 파는 것이 불필요한 압력을 막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만 이건 뭐 업계 종사자들의 밥줄이 걸려있는 거니까 각자 생각이 다를 수 있다고 본다. 아무튼 실제로 위에서 서술한 긍정적인 효과들이 존재하는 이상, 단통법이 단점만 있는 최악의 악법으로 묘사되는 데는 동의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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