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6일 토요일

2대국대지지의 허망한 종결, 또 실패한 허재 감독의 국가대표팀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올해 7월 초 대표팀의 홍콩 원정 경기까지는 유재학 감독이 위원장을 맡은 경기력향상위원회에서도 허훈 선발을 거세게 반대하진 않았던 것 같고(허웅, 허훈을 둘 다 데려가는 것엔 난색이었던 듯), 지금 허재 감독의 일부 팬들에게 유재학측 스피커라고 날마다 까이는 기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이유는 허훈이 잘했기 때문이 아니라 단일팀 이슈도 있었고 대표팀에게 중요한 대회는 군 면제와 연금이 걸린 아시안게임이지, 어차피 아시아 8등 안에만 들면 본선행 티켓을 얻는 농구월드컵 아시아 예선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던 것도 있다.

 거기에 6월 말 중국 원정에서도 대표팀이 승리하며 허훈이 출전시간도 적고 별 활약도 없었던 것은 다 묻혔다. 중국은 농월 개최국이라 출전권이 있고 빡겜할 이유도 없어서 저우치, 딩안유항이 빠져 풀전력은 아니었다지만 그렇게 치면 우리도 오세근, 이종현, 김종규에 김선형, 양희종도 빠졌는데 원정에서 이긴 거라 아무튼 잘한 거 아닌가? 거기다 허훈은 이전 평가전이었던 한일전(!)에서 괜찮게 활약해서 까방권 1일권 정도는 가지고 있었다.

 문제는 그 다음 홍콩 원정에서 박찬희, 이대성이 부상으로 각각 결장, 조기퇴장하며 허훈이 30분을 넘게 뛰며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는 데 있다. 15득점 3어시스트 기록이 보여주듯 공격은 좋았고 리딩 가드롤이었으니 턴오버 3개도 흠이 되진 않지만, 직업선수도 아닌 홍콩 가드 상대로 뻥뻥 뚫리고 외곽에선 3점 샤워 쳐맞고 단신가드답지 않게 스피드에서도 이점이 별로 없었다. 무엇보다 경기가 국대 역사상 홍콩 상대로 이런 졸전을 펼친 적이 또 있긴 한가 싶을 정도로 졸전이었다. 라틀리프가 없었으면 정말 볼 만 했을 것이다.

 설상가상 허재 감독이 경기 전날 술을 먹고 경기 당일 점심 때나 되어서 로비로 나온 것, 농구협회의 행정력이 처참했던 것(이건 항상 있는 일이니 이 포스팅에선 더 언급하지 않음)까지 팟캐스트를 통해 알려지며 여론은 더 싸늘해졌다. 그리고 다음 스케쥴이 통일농구 - 윌리엄 존스컵 - 아시안게임이었고 우리는 다른 나라와 달리 존스컵에 대학올스타나 국대 B팀을 보내지 않고 아시안게임까지 같은 엔트리로 나갈 것을 예고했기 때문에 최종 엔트리를 결정해야만 했다.

 여기서 유재학 위원장은 허훈을 최종명단에서 제외하자고 하고 허재 감독이 거부하면서 북한에 가서까지 다툼까지 있었던 게 기자를 통해 알려졌다. 결국 MVP 두경민을 거르면서까지 허훈 선발을 관철한 허 감독이 반드시 결과를 내야하는 외통수에 몰려버린 셈이다. 그럼 그렇게까지 특정 선수를 데려갈 이유가 무엇인지 축구 U23 김학범 감독이 조목조목 설명하였듯 허 감독이 설명하였는가? 기자들의 질문을 받지도 않으며 설명을 대회 뒤로 미뤄버렸다.

 그러면 윌리엄 존스컵 3위는 뒤로 하고 메인 무대인 아시안게임에서 (두경민을 거르고 뽑은)허훈이 감독의 선택이 옳았음을 플레이로 보여줬어야 했는데 그러긴커녕 8강부터 토너먼트가 끝날 때까지 1초도 출전하지 못했다. 3번째 가드니 중요한 경기에서 쓰지 않을 수 있다고 유야무야 넘기기엔 그동안 허훈은 국대 고정픽이었다는 것이 문제다. 사이즈가 작아 피지컬 좋은 상대를 수비할 수 없고, 그렇다고 국대의 핵인 라틀리프에게 기가 막힌 엔트리 패스를 꽂아넣는다기도 애매하고, 대회에서 스피드로 짧게나마 게임 체인저 역할을 보여주지도 못했고, 외곽슛도 국대 수준에선 좋게 말해 그냥 그런 3번째 가드-정확히 말하면 최준용에 이어 4번째 가드-를 감독이 우격다짐해서 뽑아갔으면 그 활용법을 보여줬어야 했는데 완전히 실패했다.

 이제 허 감독에게 남은 최후의 카드는 귀국 인터뷰에서 허훈이 필요해서 뽑았으나 내가 전술을 잘못 짰다 설명하고 거기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며 사퇴하는 것이었다. 이미 유재학 위원장과는 루비콘 강을 건넜고 기자들에게는 해놓은 말이 있으니 그거 외에 답이 있을 수 없었다. 그랬으면 허 감독 팬들이 어떻게든 눈물의 쉴드를 치면서 2017 아시안컵을 돌이켜보라 허재 붐은 다시 온다 그럴 수 있었을텐데, 그 중요한 자리에서 내년 2월까지 최선을 다할거다(=감독 임기 채울거다)하니 하기도 싫었을 경기력향상위원장 탈출 명분이 생긴 유재학 감독이 위원들이랑 같이 전원 총사퇴를 해버렸다. 겸사겸사 허웅, 허훈도 국대 명단에서 제외해버리고 허일영도 부상이라고 뺀 것마저 허씨는 나가라면서 멕이려는 건가 싶게 보이는 부분.



 물론 그 과정에서 유 위원장 측과 허 감독 측의 교감은 전혀 없었다. 그래서 계유정난 때 철퇴맞은 김종서마냥 난데없이 크게 맞은 허재 감독도 부랴부랴 사퇴 의사를 밝혔지만, 이미 사태는 글렀다. 아직도 일부 팬들은 격렬하게 사약을 거부해보지만 이미 관뚜껑은 덮혔고 묻힌 곳도 흉지라 관짝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 사건의 다른 한 축인 유재학 감독이 몰락해도 허재 감독이 재평가 되긴 쉽지 않을 것이다. 허재 감독이 실패했다고 김동광 감독을 재평가하지 않듯 대중의 판단이 이미 마무리되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금 야구대표팀 선동열 감독이 국정감사에 불려가느니 마느니 하는 걸 보면 그냥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것일수도.

 허재호가 AG 우승에 실패한 게 비단 허훈을 뽑아서는 아니다. 그 자리에 두경민이 있었고 오세근 김종규가 건재했었어도 오랜 세대교체가 끝난 중국, 하다디 바라미의 황혼기인 이란을 잡았을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그게 MVP 대신 신인왕 2등을 데려갈 이유는 못되니 선발이라도 순리대로 했어야 팬들도 아쉬운 판정에 당했느니 졌잘싸였느니 정신승리하며 대표팀을 지지했을텐데 애초에 허웅, 허훈 둘을 동시에 데려가려고 포지션까지 바꿔 표기하는 무리수를 두고 있으니 한 줌 감독 팬을 제외하곤 한 마음 한 뜻으로 감독 까느라 바빴다.

 그동안 우리는 다른 나라들처럼 대회의 중요도에 따라 대표팀을 A팀 B팀으로 나눠 보내지도 않았고, 허씨 형제의 경쟁자들은 발탁하지 않아 국제대회 경험을 쌓지 못한 것도 내년 농구 월드컵을 생각하면 큰 문제이다. 성적도 실패하고 미래도 준비 못한 허재호 2기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요소는 그다지 없어 보인다. 텐진참사 때는 레바논, 대만한테 졌어도 떠밀린 감독이고... 부상 선수도 많고... 감독이 선수선발 전권을 가지지도 못했고.. 그런 쉴드나 쳐줬지 이번엔 과정부터 혼탁한 자업자득이라 더 이야기 하기도 싫다. 명분도 잃었고, 실리도 거두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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