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23일 목요일

코미디 바스켓볼 리그-KBL-의 평화로운 에어컨리그


 농구인 총재가 물러나고 그 자리를 회원사 출신 총재가 채웠지만 프로농구는 떡락장에서 쉽게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 설상가상 중계 주관사인 MBC스포츠플러스가 중계권을 포기하려는 액션을 보이면서 바닥 밑에 지하가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고 현 KBL집행부나 엠스플이 큰 실책을 저지른 것은 아니고 다들 자기 위치에서 노력은 했었다는 점에서 현 떡락장은 더더욱 위험하다. 

 그러다보니 구단들도 그다지 농구단 운영에 미련이 없는지 제재할테면 해보라는 식으로 나날이 미쳐가고 있는데 에어컨리그가 마무리되어가는 지금 시점에서 가장 미쳐가는 구단은 전주 KCC 이지스와 창원 LG 세이커스 두 개가 아닌가 싶다. 

 먼저 KCC는 저번 시즌에 아직 재판이 끝나지 않은 전창진 전 감독을 상왕 자리에 앉히려다 예상치 못한 KBL의 일격을 맞았는데(링크), 사실상 결정에 불복하여 기술고문이라는 명목 아래 전 고문 위주로 팀을 개편하고 있다. 그러면서 팀의 프렌차이즈 스타 하승진과 전태풍을 내쳤는데 이 과정이 매우 시원치 않다. 

 일단 리그가 인기가 없으니 구단이 지 마음대로 등록이 불허된 사람을 상왕노릇 시켜도 되는지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누가 전 고문의 농구스타일에 하승진과 전태풍이 맞지 않다는 걸 모르겠는가. 올해 FA 규정이 바뀌어서 원소속팀과의 협상이 불발되면 우선협상기간이라도 일찍 결렬공시를 낼 수 있게 되었으니 두 번의 우승 주축이었던 베테랑 선수가 더이상 필요하지 않으면 예우를 갖춰서 사정을 설명하고 갈 길을 열어줘도 됐을텐데 KCC구단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1살 차이로 무보상 FA가 되지 못한 하승진이 보상선수까지 주고 자기를 데려올 팀은 없을거란 이유로 은퇴를 선언한 것까지는 KCC구단이 '얘기했으면 그냥 풀어줄 의향도 있었다'고 언플을 하는 것으로 대응할 수 있었으나, KCC구단이 자기와 코치계약 이야기는 전혀 하지도 않았으면서 뒤로는 통상적인 코치연봉 두 배를 불러서 계약을 못하는 거라는 이상한 소문을 퍼뜨리고 있다는 전태풍의 폭로에는 오해다 외 별 대응을 하지 못했다. 



 아무튼 KCC구단 입장에서야 이미 이상민을 고려장판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두 베테랑을 고려장판함으로써 샐러리캡을 꽤 아낄 수 있었고, 이에 FA최대어 김종규를 영입할 캡스페이스를 어떻게든 마련하려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전망이 나왔지만 그런 KCC에게 이 구역의 미친 구단은 나라고 도전장을 내민 구단이 바로 LG 세이커스이다.

 사실 내 생각으로도 그렇고, 주워들은 이야기도 그렇고 김종규가 LG에 잔류할 것 같지는 않았다. 우선 LG는 별로 미래가 없는 팀이다. 조성민 트레이드 실패로 성적도 유망주도 얻지 못했고 강병현이 주전 3번 봐야하는 라인업은 4강까지 간 게 다행인 정도. 거기에 같이 FA로 풀린 김시래와 김종규를 동시에 잡지 못하면 현상 유지도 어렵다. 그렇다고 조성민 강병현이 7억 받고 있는 캡스페이스도 넉넉치 않다. 거기에 김종규가 현주엽 감독이 부임했을 때 등번호를 현 감독의 것인 32번으로 바꿨다가 한 시즌만에 원상복구한 것, 지난 시즌 직전 연봉조정싸움까지 갈 뻔했던 건 보너스.

 우선협상기간 초반에는 LG가 13억으로 김종규, 김시래를 동시 잔류시키려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었는데.. 뭐 두 선수가 각각 8억 5억 받는 게 선수 가치에는 부합할지 몰라도 KBL FA는 대어급 선수야 다 알아서들 뒤로 총액보장받는 계약을 하겠지만 명목상으로는 매년 연봉재협상이라 1년차 금액만 가지고 베팅싸움을 하기 때문에 사실상 1년차 금액은 계약금 성격도 띄게 되니 둘을 잡는 게 가능한 것 같진 않았다. 

 그렇다면 LG입장에서는 차라리 어차피 외인놀음 가드놀음인 KBL에서 게임을 조립할 수 있는 가드인 김시래를 우선적으로 잡고 나갈 김종규는 사인 앤 트레이드로 보내서 최대한 많이 챙기는 것이 나은 선택일 수 있었다. 물론 김종규를 잡고 김시래를 포기하는 것도 그럴 수 있는 선택이다. LG는 김종규 잔류에 더 큰 공을 들였는지 기자에게 못잡으면 해체드립까지 치고 현 감독이 두 FA선수를 데리고 여행까지 다녀오며 Hoxy..하긴 했으나 협상이 쉽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사건이 터진다. 원소속팀 우선협상기간이 만료된 5월 15일, LG측이 김종규가 다른 3개 팀과 사전접촉을 한 것으로 의심된다며 현주엽 감독과 김종규의 통화녹취록을 첨부해 KBL에 제출한 것이다. 이제는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진 낙태죄와 템퍼링의 공통점이 있다면, 둘 다 사실상 꺼내기 전까지 사문화된 규정이었으며 금지대상인 행위는 아주 널리 또 오랫동안 행해져왔으며 고소 고발은 대부분 협박 용도로 사용됐던 것이 아닐까 싶다.  

 15일이나 되는 자유계약선수의 원소속팀 우선협상기간은 원소속팀이 아닌 다른 9개팀이 선수와 접촉할 권리를 제약해 원소속팀의 권리를 보호하는 제도이다. 지키려는 놈은 한 명이고 지키지 않으려는 놈이 9명(그리고 선수 본인까지 포함하면 10명)인 규정은 지켜지기 어렵다. 더구나 협회는 수사기관이 아니라 선수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할 수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프로야구와 배구에서는 우선협상기간 제도를 없앴다. 어차피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다면 규정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 된다.

 물론 규정은 규정이라는 말로 LG의 행동을 옹호할 수는 있다. 하지만 공허하다. 숫자로도 한 팀 vs 3개 팀이다보니 금방 LG 역시 다른 선수와 사전접촉했지 않느냐는 기사(링크)가 나왔고, LG 역시 수사기관이 아닌 이상 김종규와 타팀간의 통화내역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니 재정위원회는 증거불충분을 선언했다. 오히려 문제가 되는 것은 LG구단측이 제출한 녹취록이 불법도청에 해당할 수 있다는 부분이다. 

 LG측의 해명에 따르면 김종규와 LG의 협상이 최종결렬된 14일 저녁, 해외에서 외국인선수를 알아보고 있던 현주엽이 김종규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스피커폰으로 통화를 했고 옆에 있던 구단 직원이 중요한 내용이라 판단해 녹음을 했다고 한다. 통신비밀보호법위반 대법원판결(2006도4981)에서는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하지 못한다”라고 정한 것은, 대화에 원래부터 참여하지 않는 제3자가 그 대화를 하는 타인들 간의 발언을 녹음해서는 아니 된다는 취지라고 명확히 판시하고 있다. 구단직원이 김종규와 현 감독의 대화를 고지하지 않은 채 녹음한 것은 당연히 위법한 것이다.

 곧바로 자유계약선수로 공시된 김종규가 KCC로 갔으면 결말이 더 재밌었을 것 같은데, 다행히 KCC의 오퍼를 거절하고 -미리 거절해서 영입의향서도 안냈다고- DB행을 선택하며 에어컨리그도 마무리 되어간다. 감독 믿고 통화했다가 녹음돼서 꼬투리 잡힐 뻔한 김종규 입장에서 기분은 더럽겠지만, 그렇다고 LG직원을 고소까지 하지는 않을 것 같고 KBL도 사건을 더 크게 만들고 싶진 않을테니 현주엽 감독만 믿지 못할 사람 된 채로 이 일은 마무리 될 것이다. 마무리까지 코미디 바스켓볼 리그다운 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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