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30일 목요일

물지 못할거면 짖지도 마라 -만인이 만인을 불신하는 KBL 자유계약제도

 KBL은 KBO와 달리 리그 운영에 대한 규정을 팬들에게 공개하고 있지 않다. KBL 못지않은 협회인 WKBL도 홈페이지에 규약을 올려놓고 있기 때문에 더욱 후진성이 돋보이는 처사인데, 다시 생각해보면 공개하면 욕 먹을 게 뻔해서 해도 욕먹고 안해도 욕먹으니 꽁꽁 숨겨두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규약의 일부는 어떻게든 새어나오기 때문에 우리가 알 수 있고 그 새는 바가지 에서도 가장 멍청이같은 규정이 모여있는 부분은 역시 자유계약선수 제도(이하 FA제도)이다. 어떤 점이 멍청이같은지 한 번 살펴보기나 하자.

 1. 계약은 다년, 연봉협상은 매년 - FA대상 선수는 최대 5년까지 계약할 수 있지만 2년을 계약하건 5년을 계약하건 협상에서는 1년차 연봉만 정하고 이듬해부터는 매년 연봉협상을 다시 한다. 연봉협상이 되지 않으면 재정위원회에서 연봉조정절차에 들어간다. -물론 32건의 연봉조정절차 중 선수제시안이 받아들여진 경우는 1998년 김현국 단 한 번이다-

 2. 우선협상기간 - FA시장이 열리고 보름동안 FA대상 선수는 원소속 구단하고만 협상하여야 한다. 단 이번부터는 협상이 일찍 결렬될 시에는 더 일찍 시장에 나갈 수 있다.

 3. 결렬확인서와 영입의향서 - 원소속 구단과 선수의 협상이 결렬되면 결렬확인서라는 명목 아래 원소속 구단이 얼마까지 불렀는지 KBL에 금액을 적어 제출한뒤 타 구단의 영입의향서를 받는다. 이때 선수를 영입하고 싶은 타 구단은 원소속 구단이 제시한 것보다 더 많은 금액을 적어내야 한다.

 4. 여러 구단의 경합 - 2개 이상의 타 구단이 경합할 경우 선수는 가장 높은 금액을 부른 팀이 제시한 연봉의 90% 이내에서 구단을 선택할 수 있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한 팀이 크게 쏘면 무조건 그 팀으로 가야한다.

 5. 타 구단의 영입의향서를 받지 못한 선수는 다시 5일 동안 원소속 구단과 협상할 수 있다. 계약을 하지 못하면 은퇴다.

 대충 봐도 구단 위주, 특히 원소속 구단의 이익을 위한 규정들이다. 빈말로라도 어떤 신문들이 요즘 아침 저녁으로 입이 닳도록 하는 음.. 역시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어... 선수를 배려하다보니 저렇게 되었나봐.. 라고 하긴 어렵다. 그러나 저 이상한 규정들도 만들어진 이유는 있고 멍청이같은 규정이라고 꼭 멍청이들이 만들었으리라는 보장이 있는 건 아니다.

 규정이 저 따위인 이유는 구단들끼리도 서로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탐나는 선수가 있으면 우선협상기간이고 뭐고 사전접촉해서 데려갔고, 정해진 샐러리캡 무시하고 뒷돈을 주는 이면계약이 많았다. 웃돈 주고 데려갔으니 본전 생각도 많이 날 법도 하다. 서로 서로 한 짓을 뻔히 알고 공통된 이익은 절대 놓지 않으려고 뭉치니 저렇게 트럼프의 멕시코 장벽 뺨치는 철벽을 두른 노예팅 제도를 자유계약 제도라고 이름 붙이게 되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규정이 잘 지켜지기라도 하면 좋은데, 어차피 KBL의 행정력에는 한계가 있다. 구단과 선수간의 입출금 자료를 요구할 수도 없고, 선수에게 혹시 다른 팀과 사전접촉하지 않았나 통화내역을 요구할 수도 없다. 게다가 규정을 어긴 팀에게 페널티를 줄 생각도(그리고 능력도) 없다는 걸 아니 자기들끼리도 잘 지키지 않는다. 숙소제 폐지 후 선수에게 구단이 집을 제공하는 것은 규약 위반이라는데, 이번에 KCC구단이 소속선수에게 전세집을 제공해온 것이 선수의 증언을 통해 알려졌음에도 KBL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고 있지 않다. 아무리 숙소제 폐지의 본질이 선수 자율 보장이 아닌 구단 비용절감 목적이었을지라도 너무 심하지 않은가?

 어차피 지키지 않을 규정이라면 과감히 푸는 것도 필요하다. 인기 없어서 중계방송사도 빠지고 언제 망할지 모르는 리그라지만 최소 샐러리캡 충족 규정은 잘만 없애고서 선수들을 묶는 규정은 왜 없앨 생각을 하지 않는가? 원소속 구단 우선협상기간 같은 건 없애버리고, 다년계약은 총액을 미리 정해서 하는 것이 옳다. 왜 선수는 기한의 이득을 보지 못하는데 구단만 누리려고 하는가? 또 이번 김종규 영입처럼 한 선수에게 샐러리캡 50% 이상을 주는 건 다른 선수들에겐 재앙과도 같다. 그런 FA영입을 하면 잘하고도 삭감당하는 선수가 나올 수 밖에 없다. 하드캡을 적용하는 리그이니만큼 한 선수에게 줄 수 있는 연봉 총액은 조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건 라건아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긴 하겠네.

 앞에서는 실컷 깠지만 KBL의 규정이라고 다 노답인 것도 아니다. 35세 이상 선수, 보수총액 30위권 밖 선수를 FA로 영입하면 보상선수를 주지 않아도 되는 규정은 KBO에서 노장 FA들 보상선수 규정때문에 고생하는 거 보면 정말 잘 만들었다 칭찬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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