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1일 금요일

하마평과 결과의 괴리

 위나라의 군주 문후가 재상을 맡길 적임자 후보 둘 중 누가 더 나을지 신하 이극에게 물었다. 이극은 특정한 인물을 추천하는 대신 다음 다섯가지 기준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며 한 발 물러섰다. 1) 불우했을 때 어떤 사람과 친하게 지냈는가 2) 부유했을 때 누구에게 나누어 주었는가 3) 높은 지위에 있을 때 어떤 사람을 등용했는가 4) 궁지에 몰렸을 때 그른 행동을 하였는가 5) 가난했을 때 욕심껏 재물을 탐하지 않았는가

 얼핏 보면 허울좋은 도덕성과 여론만 강조한 것 같고 흔한 용인술의 기준인 능력위주 선발, 적재적소 배치 그런 이야기가 없으니 심심하게 보인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면 재상 후보들에 대한 의견을 물은 것이고 공채 시험을 봐서 부처를 정해준다는게 아니니 적재적소 배치란 건 의미가 없고, 그런 후보 최후의 2인에 오를 정도면 능력도 내외적으로 검증이 끝났을 법하다. 그렇다면 당연히 여론이 중요하다.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은 없을지 몰라도 잘못의 경중은 다르니 기왕이면 덜까이는 사람을 뽑으면 되지 굳이 더 까이는 사람을 쓸 이유가 없다. 최고 인사권자가 미리 여론을 짐작할 수 있게 간을 보는 방법 중 하나로 후보자 명단을 살짝 흘린 뒤 하마평을 들어보는 것이 있다.

 근래 프로야구에서도 '마지막 한 자리'를 두고 하마평이 뜨거웠던 적이 몇 번 있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는 임태훈과 윤석민의 경쟁(?)이 여러 사람들의 키보드를 뜨겁게 달궜고 2009년 WBC에서는 김성근 감독이 감독직을 고사하며 감독을 누가 맡을지를 놓고 치열한 눈치 싸움이 있었다. 전자는 김경문 감독이 욕심을 부렸으나 후에 용단을 잘 내렸고, 후자는 KBO가 참 생각없이 일을 했다 라고 평가내릴 수 있다. (이 틈에 국가대표 전임감독제 얘기를 잠깐 짚고 넘어가자. 어차피 전직 감독들 사실상 전관예우 성격으로 경기운영위원으로 쓰면서 그 중에 길어야 1년에 두달쯤 하는 국대 감독감 하나 없으면 뭐하러 돈주면서 쓰나 모르겠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위 두 사건과는 다르게 야구팬들 심심해있을때 떡밥 하나 제대로 떨어지면 어떻게 불타오르나 보여준 사건이 있었다. 2011년 시즌 후 LG트윈스 감독 하마평이었다.

 2002년 김성근 감독이 팀을 한국시리즈 준우승까지 올려놓고서 해임된데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지금은 어디 구청장을 하고 있는 모 사장은 '김 감독 야구스타일이 LG 신바람야구와 달라 정규시즌 기간에 해임을 고려하기도 했'으나 잘 참고 한국시리즈는 보고 김 감독을 해임했다. 요새는 그때 모든 LG팬들이 궐기했다 그런 식으로 여겨지는데 사실 내 기억에 꼭 모두가 해임을 반대하진 않았다. 아무튼 그 해 월드컵 8강전에서 승부차기 성공시키고 머리 찰랑이며 뒤로 달려가던 홍명보가 올림픽 대표팀 감독이 되어 메달을 따오는 동안, LG는 연속시즌 가을야구 불참 기록을 매년 경신하고 있었다. 이러던 와중에 박종훈 감독의 경질은 확실했고 후임 감독 하마평에 오른 사람은 대략 김성근, 선동열 투탑에 대항마로 양상문, 내부 인사로 김기태 수석코치 정도였다. 뭐 다 각자의 장단점이 있겠지만 절대다수의 LG팬들은 김성근 감독을 원했고 그 염원의 힘에 온갖 카더라가 난무하는 대팬픽시대가 도래했다. 시즌 최종전을 앞두고 박종훈 감독이 사퇴하던 그날 밤은 바야흐로 Y2K 버그를 앞에 둔 1999년 12월 31일 이후 가장 설레발 가득한 날이었다. 그러나 다음날 LG 트윈스 감독직에 오른 사람은 김기태 코치였다.

 지금와서 돌이켜보면 김성근 감독의 LG 복귀는 프론트 입장에선 엄청난 결단을 내려야 가능한 일이었고, 선동열은 라이벌(?) 구단인 삼성에서 경질된 사람이니 무리였다. 롯데에서 해임되며 한번 들이받은 양상문도 부담스럽고, 애초에 박종훈 전임 감독의 내부 대항마로 영입한 김기태 수석코치가 가장 현실성있는 예상이었다. 물론 현실성과 기대치는 전혀 비례하지 않았고 팬들이 폭발하는 건 어쩔 수 없었고 LG트윈스 홈페이지 자유게시판 담당자는 강제 휴가를 가야했다. 결국 김기태 감독은 김ㄱ1태가 아닌 김7ㅣ태 감독으로 머물렀지만 전 감독, 전전 감독, 전전전 감독, 전전전전 감독보다 특별히 못하지는 않았으니 유별난 일도 아니다. 차라리 팬으로 먹고 사는 프로야구단이 왜 팬의 기대와 유리된 행동을 하는지 분석해보는게 더 의미있겠다.

 첫번째, 김기태 감독의 능력을 김성근 감독보다 높이 평가했을까? 이건 말할 필요도 없다.
 두번째, 김성근 사단의 운영비가 부담스러웠을까? 김재박 감독 시절 이미 정진호-김용달-양상문 코치가 각각 전임 감독 이순철과 비슷한 수준의 연봉을 받았는데 오래전부터 야구단에 투자 많이 해온 LG가 딱히 코칭스태프진 운영비를 어려워할 것 같진 않다.
 세번째, 김성근 감독의 지휘 스타일(전권 요구)을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가장 합당해보인다. 과거 김성근 감독을 경질한 그 사장도 김 감독이 코칭스태프 인사권에 개입하는 것을 이유로 들었기 때문이다. 그럼 자연스럽게 의문이 생긴다. 감독은 자기가 부리는 직원들인 코칭스태프 인사권에 개입하면 안되는가?

 물론 감독의 임무는 선수 기용이지 인사가 아니다. 감독, 코치진, 선수진을 아우르는 인사는 어디까지나 단장의 몫이다. 그런데 그건 단장이 전문성이 있을 때의 얘기다. 단장이든 사장이든 마찬가지다. 가령 나는 양키스 단장 브라이언 캐쉬맨이 감독을 필두로 코치진을 자른다면 '그럴수도 있지' 하고 말겠지만, 스타인브레너 구단주가 자른다면 '오너는 경영만' 생각할 것이다. 캐쉬맨은 양키스에서 인턴부터 시작해서 프론트 수업을 받은 사람이고, 현 구단주는 M&A하다 자리 물려받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전문성의 문제다. 그럼 LG구단의 구조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겠다. 사장은 기업인이고 단장도 기업인이다. 실질적인 운영업무를 하는 6개의 팀 중 운영팀장, 육성팀장은 스카우터 출신이다. 마케팅팀장은 2대에 걸쳐 LG트윈스 프론트를 지냈고, 최근 대기 발령을 받았다는 홍보팀장-경영지원팀장 자리에는 그룹 인사가 앉았다고 한다. 대개 다른 구단도 마찬가지다. 김응룡 전 사장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코칭스태프 인선도 사장-단장보다는 프론트 내부 팀장급 인사나 감독들이 훨씬 더 잘 아는 분야이다. 문제는 MLB처럼 스카우터부터 시작한 팀장급 인사들이 단장급으로 승진하는 경우도 극히 드물거니와(일단 그 자리는 그룹 내부 인사 것이다) 승진엔 실력과 실적 외에 다른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데 있다. 구단 고위층과 줄창 싸우던 김성근 감독의 행동을 월권이라고만 보기 어려운 이유다.

 이런 사정이 있으니 팬들의 기대와 프로야구단의 행동은 유리될 수 밖에 없다. 프로스포츠단이 정말 수익을 창출할 길이 없는진 모르겠지만 운영 자체가 모기업에 종속되어 있으니 마켓의 크기와 팀의 전력을 고려해 운영을 하기 보단 상전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 팬이 생각하는 최선과 조직의 최선은 다르기 때문이다. 하기사 여론의 눈치를 봐야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도 상전 눈치에 벙어리 시늉하고 있는데 야구판이야 그냥 공놀이 비지니스니 팬들 눈치 안보는거야 별 문제도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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