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12일 토요일

4공화국의 망령이 이제야 저물다

 박근혜 대통령과 김성근 감독의 거품이 비슷한 시기에 꺼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소임을 다하고 관짝에 들어간지 오래인 지난 시대정신을 억지로 되살려놓는 순간에 이미 역사의 퇴보였던 것이고 거기에 불통까지 더해지니 이미 실패는 예견되었던 것이다. 이제는 제 아무리 한 손에 가시 쥐고 또 한 손에 막대 들고 망조를 막아보려해도 썩는 냄새를 막을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쩌다 저런 망령들을 불러오게 되었는지야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불쌍해서 대통령을 뽑았다는 부류나, 몸이 재산인 프로 선수들이 한 해 몸을 만드는 스프링캠프에서 밥도 못 먹고 구르고 있는데 아무런 문제를 못 느끼며 좋아하던 부류의 지분도 일정 부분은 있다. 저 두 부류의 본질은 똑같고 서로가 서로의 과거이며 미래인 셈이다.

 그래도 감독이 대통령보다 그나마 나은 점은 있으니 비선을 이용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비록 자기 사람들을 요직에 앉히기는 했으나, 일단 직함이 있다는 점에서 나중에 책임을 추궁할 근거는 마련했다. 사실 능력 면에서 보면 뭐 내 기준에서는 비교 불가능인 것 같은데 이거야 뭐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는 있겠다. 아무튼 반면 대통령의 인사는 참담하다. 호가호위하면서 국정을 쥐락펴락하고 사욕을 채운 비선실세가 샤먼인지 아닌지 여부는 기실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국가 시스템이 비선실세를 걸러내긴 커녕 이를 지적한 이들을 숙청해왔다는데 있다. 후한시대 당고의 금이 2010년대에 일어났다는 것은 국가의 최고 권력자를 둘러싼 시스템이 완전히 붕괴했으며 권력의 사유화가 상당부분 완료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정말 그것이 예측 불가능한 이야기였나? 그렇지는 않다.

 국가 권력이 무고한 이를 사법 절차를 밟아 죽이고, 그 가족들을 수십년 동안 비사법적인 절차로 핍박하다 뒤늦게 재심으로 최소한의 명예를 회복한 것이 인혁당 사건이었다. 저딴 흑역사를 두고 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판결이 두 개라는 궤변을 늘어놓기 바빴다. 자식으로서 부모의 죄를 언급하기 곤란할 수 있으나, 거기에도 한계가 있다. 물론 현 대통령이 지금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적게 잡아도 팔할이 부모 덕이지만 대통령 하겠다고 나온 사람이 저런 상식 이하의 발언을 하는데도 지지를 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오늘날 국가의 위기를 방조한 것과 다름 없다. 그런 자가 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하자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채택률 2% 남짓한 후쇼사 우익 교과서와 동북공정을 두고는 그렇게 분노하면서, 집필진 공개조차 못하고 역사학계 반대가 90%에 이르는 국정 역사 교과서에 대한 여론은 찬반이 비등한 것이 우리의 역사인식 수준이었다. 

 그 결과 전국 각지에서 박정희 기념사업 붐이 일어나며 수천억원의 예산을 펑펑 써대는 것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를 존경하든 그렇지 않든 그것은 사적인 영역이겠으나, 광화문 한 복판이 무슨 북한도 아니고 굳이 저런 돈을 써가면서 동상을 세울 필요까지는 없다. 지난 대선은 박정희의 계승자와 노무현의 계승자의 대결이었음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는 더 나아가 당시의 문재인은 준비가 덜 된 사람이었고, 과거의 망령과 싸울 시대정신은 안철수에게 있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당시 그에겐 현재의 반기문처럼 정치 혐오에 기댄 허상의 지지가 섞여 있었고, 지금 지방 호족 연합체의 대표자 쯤으로 전락한 현재한 지금까지 시대정신이 이어져 왔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튼 그럼 그 노무현의 계승자 문재인이 2012년 대선에서 승리했다면 광화문 한복판에 노무현 동상을 세우자는 짓까지 했겠는가? 현 대통령의 지지세력들은 그 정도로 한심한 주접을 떨었고 그 결과 임기 중반 총선에서 공천권을 가지고 장난을 치다가 멸망하고 나서도 비서나 할 사람을 당대표에 앉혀 놓았던 자들이다.

 이북 핵왕조가 러시아랑 손 잡고 놀 동안 엉뚱하게 친중 노선을 타서 기존 한미 공조를 흔들고, 그 친중도 제대로 안되서 미국에게 쿠사리 먹고 북핵은 북핵대로 말아먹고나서 뭐 제대로 한 게 없으니 MOU 꽃놀이로 시선을 돌리려고 했으나 실제로 한 건 아무것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현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 이유를 보면 항상 외교, 안보와 '열심히 한다거나 노력한다'는 걸 국정 수행 지지 이유 1,2위로 들었던 게 우리의 상황이었다. 저 항목 둘을 구분하는 것은 사실 의미가 없는 수준의 맹목적인 지지다. 이는 정치개혁을 시대정신으로 들고 나타났으나 도덕성에 흠결이 나자마자 지지율이 곤두박질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태도와 매우 다르다. 현 대통령이 지지율 5% 찍고 있는 지금도 긍정평가 이유 1위는 '열심히 한다거나 노력한다'이다. 정치인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무슨 아이돌 쯤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이들이 왜 비선이 문제인지 알고 있을 리가 만무하다.

 향후 정국이 어떻게 해결될 지 내 능력으로 예상하긴 어렵다. 스스로 하야할 염치도 없고 공과 사를 구분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기 때문에, 끌어내리는 것이 옳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것도 맞다. 그러나 대통령 스스로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놓아버린 이상, 이럴 때일수록 사이다 대신 헌법에 보장된 절차를 밟아야 한다. 일단 헌법재판소나 법사위원장은 비선이 아니기 때문에 자기가 내린 결론과 그 이유를 발표할 책임이 있다. 국민을 납득시키지 못하면 최소한 정치적 책임은 지게 되는 것이다. 이런 심각한 사태에서 역풍이 두려워 정해진 절차를 밟지 못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 만약 정말 역풍이 불어 비선과 그 추종세력들을 타도하려는 세력이 역으로 타격을 입는다면 그것도 우리의 공동 운명이고 대의민주주의의 한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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