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21일 화요일

꼭대기가 있으면 골짜기도 있다 : 김인식 감독의 마지막 국가대표팀을 보내며

 2013년 WBC에서 류중일호가 조별예선 통과에 실패하며 링크(클릭)과 같은 관전평을 쓰기도 했었는데, 어느새 4년이 지나 다음 WBC가 열렸다. 그 사이 김인식 감독이 국가대표팀을 다시 맡아 프리미어12 우승이라는 깜짝 성과를 냈고, 이번 WBC에선 1라운드 경기를 고척돔에서 치르게 되며 더욱더 기대감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개막하자마자 우리 대표팀은 이스라엘과 네덜란드에 연달아 패배하며 경우의 수 놀음을 하다가 무기력하게 탈락했다.

 그나마 마지막 경기였던 대만전에서 답답하던 타선의 물꼬가 터지며 무려 11득점을 뽑아냈지만 꼴찌 결정전에 불과했고 예선 라운드 강등을 당하지 않아서 시즌 진행 중에 2군 상비군들 뽑아서 몽골 파키스탄 이런 나라들과 경기는 안 해도 된다는 것에 애써 의미를 둬야 하는 결과였다. 흥행 측면에서도 서울 라운드는 도쿄, 마이애미는 물론 할리스코 라운드에도 크게 뒤졌다. KBO, 선수단, 팬, 방송사 모두에게 큰 상처를 남긴 셈이다. WBC가 역대 최고의 흥행을 기록하며 연일 꿀잼 경기 속에 마지막으로 치닫는 와중에 우리 대표팀이 저기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을 저절로 하게 된다.

 이번 대회의 졸전에도 불구하고 김 감독을 비판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김인식 감독은 이미 현대 야구에 적응하는 것에 실패했기 때문에 프로팀 지휘봉을 놓았던 사람이다. 베테랑 위주, 쓰는 선수만 쓰는 혹사 문제는 드래프트에서 선수 제일 적게 뽑던 소속팀 한화 이글스의 근시안적인 정책과 맞물려 현재까지 진행 중인 암흑기의 초석이 되고 말았다. 그럼 뭐 국가대표에서는 달랐나? 팔에 담 걸려서 등판 어렵다던 구대성 155구 완투시킨 시드니 올림픽은 이제 너무 오래된 일이니 그렇다쳐도 WBC 이전에 일본팀 상대로 김광현이 3경기 다 잘 던지니까 WBC 일본전에도 그대로 표적 등판시켰고, 미리 대비해 칼을 갈고 있던 일본한테 그야말로 떡실신 당하고서 봉중근을 올리고, 잘하니까 같은 대회에서 2번이나 더 일본전에 표적 선발 시킨 운용이 보여주듯 국가대표팀에서도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그러나 그가 마지막 대회에서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고 비판하기 어려운 이유는 업적과 투혼 때문이다. 코치로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 감독으로 2002년 부산 AG 금메달, 2006년 WBC 4강, 2009년 WBC 준우승, 2015년 프리미어 12 우승이라는 성적을 보여줬다. 또 분명 선수를 혹사시키는 감독이긴 하지만, 김성근 감독이 무슨 KBO가 자기한테 성의를 다하지 않았다고 국가대표팀 걷어차니까 뇌졸중으로 쓰러져 고생했던 김인식 감독이 소속팀 임기 마지막 해를 앞두고서 나라가 있어야 야구도 있다면서 국가대표팀 감독을 떠맡지 않았던가. 모기업의 '위대한 도전'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연일 기사화시키며 WBC 준우승이라는 성적을 거두고도 본인 소속팀 성적이 나오지 않아 재계약 못했으니 한화팬들이면 몰라도 다른 팀 팬들은 인간적으로 뭐라고 얘기하기가 어렵다.

 거기다 2013 WBC에서 류중일호가 망하고 대표팀 감독 아무도 안하려고 하니까 야인으로 있다가 프리미어12 떠맡고, 이번 WBC까지가 사실상 저 양반의 마지막 대회니까 나같은 경우엔 선수 선발 과정에서부터 잡음 나오는 거 어차피 이번엔 성적 나오기 힘들 것 같지만 영감 마음대로 하게 두고 뭐라고 얘기 안 해야겠다 그런 생각까지 했다. 설령 이번 대회에서 다른 감독 희망자가 있었더라도 지금 김인식호에 선동열, 김시진, 이순철 코치 등 전직 감독 출신들이 즐비했기 때문에 선수 차출에서도 득을 봤음은 자명하고, 그동안 노감독이 해온 것만으로 마지막 기회를 줄 이유와 명분은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이미 보여줄 것을 다 보여주고 한계에 부딪힌 김인식 감독 체제로 계속 가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모든 문제를 인선의 문제로 치환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제 김인식 감독을 보내주는 것을 시작으로 새 판을 짜야 할 때다. 그 첫번째는 전임감독제 도입이 될 것이다. 물론 일부 팬들이 생각하는 '젊고 능력있는 감독을 데려와 세대교체 체질개선' 이런 건 망상에 가깝다. 애초에 그럴 능력이 있는 젊은 지도자가 있는지도 미지수이지만, 그럴 사람이 뭐하러 프로팀에 안 가고 경기도 듬성듬성 있는 대표팀에 와서 박봉에 감독을 지내겠는가? 종목은 다르지만 농구 대표팀 전임감독이었던 김남기 감독이 박봉을 이유로 프로팀으로 떠난 것을 상기해 볼 필요도 있을 것이다.

 또 어째서 이번 대표팀이 실패했는가에 대해선 이미 여러 의견이 나와 있다. 메이저리거들이 참가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세대교체를 했었어야 했다, 선발 라인업이 아쉽다, 경기 중 작전이 심하게 소극적이었다부터 선수들이 배가 불러서 정신상태가 나약하다까지 다양하다. 증명할 수도 없고 동의하기도 어려운 마지막 항목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다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그냥 실력이 거기까지였던 것 같다. 투수들 구속이 안 나왔긴 하지만 홈에서 열리는 대회에서 무슨 컨디션 조절을 실패했다 이런 변명 하기도 민망한 노릇이다. 무엇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젊은 선수들이 성장하지 못했던 탓이다. 2006 WBC 에이스는 현역 메이저리거였던 박찬호 서재응이었다. 또 베이징 올림픽, 2009 WBC에는 류김윤이라는 영건이 있었는데 이젠 그만한 선수들은 커녕 동시대에 그들보다 한 수 아래이던 장원준 우규민 양현종이 선발로 나와야 한다.

 옆나라 일본과 비교해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일본은 투수조에서 90년대 출생자가 반 이상이지만, 이번 우리 대표팀에서 90년대 출생 투수는 심창민 한 명이다. 그렇다면 잘하는 어린 투수를 안 데려간 것일까? 스탯티즈 기록을 참조하면 올해 투수 WAR TOP 20에서 심창민은 20위를 기록했는데, 유일한 90년대 출생자였다. 2006년 세계 청소년 대회 멤버들이 프로에서 꽃을 피우고 난 후 유망주가 끊겼다는 증거다. 2006년에 투수 WAR 상위 10명 중 국내 선수는 류현진 오승환 손민한 배영수 장원삼 박준수 여섯, 2009년엔 류현진 봉중근 양현종 전병두 김광현 조정훈 윤성환 이렇게 일곱 명에 달하던 것이 2016년엔 양현종 장원준 신재영 유희관 넷에 불과하다. 그 원인이야 2002년 월드컵과 저출산이 가장 클 것이고, 1차 연고제 폐지로 구단의 연고 학교 지원이 줄어든 것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반대로 축구를 보면  슈틸리케호 이번 중국전 소집명단 23명 중 90년대 출생자가 12명에 달하고 제일 나이 많은 필드 플레이어가 86년생 이용일 정도로 자연스럽게 세대 교체가 되고 있다. 최연장자 골키퍼 권순태조차 이대호-정근우-김태균보다 어리다.

 다행히 베이징 올림픽 이후 늘어난 야구 붐 덕에 지금 고등학교 1,2학년 투수팜은 일본과 비교해서도 풍족한 편이다. kbreport.com의 기사(링크) 에 따르면 강속구 투수의 질로나 양으로나 일본을 앞서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저들이 프로에 와서 바로 성공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1라운드 지명감이라고 해도 스카우터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구속만을 쥐어짜는 경우도 많고, 아마야구에 제대로 된 투수 코치도 없어 잘못된 폼을 가지고 있기 일쑤다. 그 결과가 연례 행사가 된 입단 후 수술이고 그 후 2,3년 적응 과정에 군복무를 거친다고 해도 교정된다는 보장도 없다. 현실적으로 모든 중고교팀에 좋은 코치를 데려다 줄 수도 없으니 결론은 연령별 상비군에서 유망주들을 케어할 필요가 있다.

 물론 지금처럼 연령별 대표팀에서 장채근, 이정훈 이런 감독들 보면 관리는 커녕 이것이 리-얼 혹사다 보여주는 것이 프로 오기 전에 은퇴하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다. 일본은 자국에서 올림픽이 열리고 야구를 종목으로 넣으니까 2016년부터 프로와 아마추어가 모두 참여하는 일본 야구 협의회를 만들어서 국가대표팀/사회인 야구 대표팀/연령별 대표팀/여성대표팀 등을 관장케 하고 있는 것이 힌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동안의 자산을 가지고 버티던 잃어버린 10년이 더 이어지지 않으려면 이젠 계획을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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