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 27일 일요일

국산 패키지 게임에 황금기는 있었나

 다양한 게임을 플레이한 게이머들은 다원적 게임관을 가지고 있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대개 게이머들은 자기가 하지 않은 수많은 플랫폼/장르/시리즈들을 망겜이라고 생각하고, '야구란 무엇인가'에 나오는 것처럼 '빛나는 과거의 황금시대'를 누구나 가슴에 3천원 하나씩은 있듯 품고 살고 있다.


 많은 게이머들은 국산 패키지 게임의 황금기가 있었고, 이후 몰락했다고 생각한다. 몰락의 원인이 게임잡지 번들 경쟁이건 초고속 인터넷의 보급에 기인한 불법 복제건 혹은 리니지1 이후의 온라인 게임이건 한 때 어느 정도의 시장이 존재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 시장은 과연 지속, 유지할 수 있을만한 규모를 갖췄을까. 

 90년대 중반까지 상업적으로 성공했던 국산 패키지 게임을 꼽으면 어스토니시아 스토리(94년, 10만장 이상 추정), 창세기전2(96년, 7만장 이상 추정) 정도를 꼽을 수 있다. 이 게임 둘은 모두 RPG 요소를 갖춘 것을 제외하고도 기초적인 불법복제 방지책을 갖추고 있었는데, 매뉴얼에 암호표 / 마법 룬 조합표가 동봉되어 있었다.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던 이 게임들의 후속작은 자연스레 높은 기대를 받게 되었고, 그것이 각각 97년 말과 98년 초에 발매된 포가튼 사가 - 창세기전 외전 : 서풍의 광시곡이었다. 97년을 전후해 속속 다른 국산 게임들도 발매되었는데 임진록1, 카르마, 코룸, 아트리아 대륙전기, 쥬라기 원시전, 야화 등 국산 패키지 시장 맹아론의 시작은 이때를 기점으로 잡아도 무리가 아니다. 

 국산 패키지 게임은 같은 시기의 외산게임에 비해 여러모로 부족했고(단적으로 어스토니시아 스토리1과 파이널 판타지6는 같은 해에 출시된 게임이다), 장르도 워크래프트2나 레드얼럿의 영향을 받은 RTS나 전통적으로 개발되어온 일본식 RPG(혹은 SRPG)에 편중되어 있었다. 90년대말 게임잡지의 게임 순위를 싣은 링크를 통해 당시 추세를 간략히 살펴볼 수 있다. 그렇지만 외산 게임에 밀렸다는 것이지, 판매량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포가튼 사가는 수많은 악평에도 불구하고 출시 3개월 만에 6만장을 팔았고, 서풍의 광시곡도 유통사 부도로 돈을 떼먹혀서 그렇지 10만장을 팔았으니 요즘 같아선 상상할 수 없는 수치다. 게임 시장이 저렇게 커질 수 있었던 데는 윈도우95 이후 PC 시장 증가, 게임 잡지 등장, 대기업들의 유통 시장 진출 등 여러 이유가 있었겠고, IMF를 피할 수 있어서 대규모 유통사들이 쓰러지지 않았다면 선순환이 계속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스타크래프트1의 출시가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한국게임산업개발원(현 한국 콘텐츠진흥원과 통합)에서 2000년도에 발표한 '1999년도 국내 게임산업 동향 조사'에서 당시 상황을 엿볼 수 있다.  당시 게임산업 규모는 다음과 같다.


 PC방의 영향으로 100만장 이상 판매되었던 스타크래프트의 위상은 그야말로 절대적이라, 아래의 분석까지 이끌어내게 된다. 


 거기다 2위 게임이 12만장이 팔린 레인보우 식스라는 것을 감안하면 국산게임의 자리가 얼마나 있었을까. 98년 말에 출시된 창세기전 외전 2 : 템페스트는 전작의 여세로 판매량은 상당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이 작품은 플레이하기에 심각한 결함이 있었고, 소프트맥스의 이미지를 깎아먹으면 깎아먹었지 그리 득이 된 작품이라고 할 순 없을 것 같다. 다만 시대를 앞서 간 여러가지 요소들로 캐릭터 게임의 서막을 연 그 정도 의미는 있겠다.

 특기할만한 점은 표[10]에서 보이듯 99년부터 온라인 게임의 성장세가 두드러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바람의 나라'의 넥센과 '리니지'의 NC가 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했지만 분명히 새 시장의 문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2000년 10억을 들여 개발한 악튜러스, 2001년 35억원을 투자한 쥬라기 원시전2가 5만장 정도를 파는데 그치며 사실상 국산 패키지 게임 시장은 끝났다. 소프트맥스의 창세기전 3 파트1과 파트2가 성공했으나 역시 거액을 들여 제작한 마그나카르타는 흥행과 작품 모두 멸망했고 이후 국산 대작 타이틀을 볼 수 없었다. 

많은 유저들에게 빅엿을 선사한 '만들다 말았다'


 그렇다고 외산 패키지 게임들이 크게 흥행했다고도 볼 수 없다.


 이 표를 보면 알 수 있듯 블리자드 게임들을 유통하는 한빛소프트의 매출에 따라 시장이 요동칠 뿐이었고, 그나마도 플스2와 엑스박스가 정발되고 PC는 온라인 게임으로 완전히 대세가 넘어간 2002년으로 가면 삼성전자부터 패키지 유통에서 발을 빼는 등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국산 패키지 게임들의 한계는 명확했다. 90년대말 해외 게임 시장은 이미 EA, 액티비전, 인터플레이 등 거대 퍼블리셔들이 대두하고 있었고, 아직 최근처럼 본격적으로 규모의 경제가 통용되고 있지는 않았을지 몰라도 한국 개발사들의 해외 시장 진출이 족족 실패하고, 위의 표에서 보듯 가정용 시장이 없는거나 다름없기에 PC 내수로만 먹고 살아야하는 상황에서 더이상 (나름) 큰 자본을 들여 패키지 게임을 만드는 것은 무모했다. 갈라파고스화 되어서 PC게임 망했다고 까이는 일본 시장도 적어도 콘솔시장에선 나름 합병을 통해 덩치를 불리고, 개발 스튜디오 시스템을 추진했는데 한국에선 덩치 키우기를 바라기도 어려울 정도로 그전에 픽픽 쓰러져 나갔다. 우리와 다르게 내수가 뒷받침되다보니 10만원 넘는 PC게임도 팔리는게 우리랑 다른 점이다.

 초기 온라인 게임들은 제작비도 그리 크지 않았다는 점도 온라인으로의 이탈을 가속화했다. 리니지1이 3억원, 악튜러스에서 사용된 엔진을 개량했다지만 라그나로크 온라인도 그 정도 선이었다고 하니 누구나 달려들기 좋은 시장으로 보였을 법도 하다. 물론 불과 몇년 후 RF온라인과 리니지2같은 블록버스터 MMORPG의 제작비는 수십억대로 치솟지만 거긴 수출이라는 길이 어느 정도 열려 있었다. 

 이 후 패키지 게임 시장은 계속 쪼그라들어 매출액이 2003년 937억원, 2004년 534억원 시간이 흘러 2011년엔 고작 96억원에 그치나 2012년엔 놀랍게도 680억원까지 치솟는데, 그 이유는 바로 디아블로3가 출시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체 게임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디아블로3 출시를 등에 업고도 고작 0.7%로 콘솔의 절반 수준에 그친다. 온라인 게임을 필두로 한 전체 게임시장은 크게 성장했지만, 패키지 게임에 파이가 돌아가진 못했다. 

 정리해보면, 국산 패키지 게임은 리즈 시절에도 외산 게임의 벽을 넘은 적이 없었다. 서풍의 광시곡 정도가 게임잡지 순위 탑을 차지한 적은 있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또 외산 게임을 포함한 패키지 게임 시장도 블리자드-EA의 지분이 대다수였고, 저 회사들의 주력 제품이 주로 PC방에 납품되었을 것을 생각하면 한국 패키지 시장에 황금기가 있었다고 생각하기도 민망하다. 그때는 그래도 정식 경로로 유통되는 게임들이 있긴 했다고 생각하면 또 모르겠다. 흔히 코어 게이머들에게 개무시당하는 리니지1의 연매출이 2000억원을 넘는데, 국산 패키지 게임의 전체의 연매출은 그 1/10을 넘어본 적도 없었다. 물론 불법복제와 번들CD가 시장에 끼친 영향도 없지 않았다. 창세기전 시리즈의 총 판매량이 100만장에 육박하는 것은 분명 대단하지만, 삼성전자에서 유통하던 짱구는 못말려 시리즈도 총 100만장을 넘게 팔았다. 저연령층을 타겟으로 한 게임이었기에 그만큼 불법복제에서 자유로워서 이득을 본 요소가 클 것이다. 그렇지만 복돌이들은 언제 어디에나 있는거지 딱히 한국만 복돌이때문에 망한 거라고 볼 근거는 딱히 없다. 불법복제를 철저하게 단속했더라도 쟤들이 굳이 다른 게임 놔두고 국산 패키지 게임을 돈주고 샀을까 생각하면 극히 회의적이다. 

 마찬가지로 한국 패키지 게임이 한국적이지 않아서 실패했던 것도, 반대로 심하게 한국적이라 수출에 실패했던 것도 아니다. 춘향이 심청이 장화 홍련 옹녀 그런 애들 나오는 연애 시뮬레이션 그런 거 내놓든 구운몽 그래픽 노블을 내놓든 박문수의 역전 암행어사가 나오든 어차피 이 좁디 좁은 내수시장에서 패키지팔아서 수익을 기대하기란 힘들다. 어차피 그때 나온 국산 게임들도 양놈들이 양놈무기 들고 다니는 게임이 절대 대다수였는데 정서만 안맞아서 수출 못했다는 것도 낯 부끄럽고 결국 인건비=개발비인 산업 특성상 영세업체들이 최선을 다했지만 한계를 맞이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 이후의 온라인게임 시대가 나름 10여년을 거치며 대형화되서 현재의 형태로 자리잡은 일련의 과정이 대단하다면 모를까, 실상 국산 패키지 게임에 황금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깜깜한 밤하늘에 별 몇 개가 보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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