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13일 토요일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은퇴를 바라보며

 소설 반지의 제왕에서 위대한 마법사 간달프는 프로도에게 절대반지를 파괴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다 최강의 흑룡 앙칼라곤의 불꽃이라면 반지에 손상을 줄 수 있을지 모른다는 말을 덧붙인다. 우리의 영원한 친구 나무위키는 이 부분이 오역이며, 실제로는 앙칼라곤이라도 반지에 해를 끼칠 수 없을거라 설명하나 어차피 앙칼라곤은 성북동의 비둘기처럼 세상을 뜬지 오래인터라 그럴 수 있는지 없는지 검증도 할 수 없거니와, 살아있었더라도 사악한 흑룡이라 사악한 절대반지를 파괴하는 걸 도와주지도 않았을 것이기에 오역 여부가 별로 중요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제 프로도가 사악한 사우론이 중간계 만인의 자유의지를 통제하려고 만든 절대반지를 파괴해야 하는 운명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덥고 습하고 비까지 내려 괴로운 장마철에 옆집 울타리에 걸린 호박넝쿨을 보면, 생물이 이렇게 빨리 자랄 수 있다는데 놀라게 된다. 나는 동네를 뛰어다니는 새까만 꼬마들을 보면서 요즘 정말 다문화 가정이 많아졌구나 한참 생각한 후에야 그냥 아이들이 새까맣게 탄 거구나 깨닫게 될 만큼 주변에 대한 관찰력이 없는 사람이나 사람이 호박넝쿨처럼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고, 배리 본즈의 놀라운 홈런 행진에 의심을 품을 수 밖에 없었다. 나뿐 아니라 그의 스윙을 바라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발코 스캔들이 터지고 배리 본즈가 약물에 얼룩진 사우론임이 밝혀졌을 때도 별로 놀라진 않았고, 오히려 본즈가 쌓아올린 통산 762홈런이라는 금자탑, 아니 바랏두르를 무너뜨릴 백기사 중 가장 유력한 후보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야구 선수라는 걸 되새기며 기쁜 마음도 있었다.

 스스로를 "a guy who's been to hell and back and made every mistake in the book."라 칭한 에이로드는 선수 생활 동안 많은 실수를 했다.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떠난 후에는 전 동료들을 24명의 Kid라 깎아내렸고, 2004년 ALCS에서는 절친한 친구였던 덕 민케비치가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아로요의 글러브에 든 공을 내리쳤다. 토론토에 가서는 수비방해 논란에 휩싸였고, 오클랜드에서는 댈러스 브레이든과 신경전을 벌였다. 현명한 아내가 있었지만 불륜 의혹을 받으며 이혼을 선택했고, 월드시리즈 기간 중에 옵트아웃을 선언하는 비신사적인 영업을 한 적도 있었다. 그 외 자잘한 구설수도 참 많았다. 그의 잘못도 있고, 언론의 호들갑도 있었지만 분명 한때 그의 팀메이트인 그리피처럼 모두에게 사랑하는 슈퍼스타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 모든 잘못 중에서 가장 치명적인 것은 역시 두 번의 PED 적발이었을 것이며, 그런 종류의 잘못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다.

 나는 뉴욕 양키스의 팬이지만, 동시에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팬이었다. 하이텔 스포츠란에서 이름을 들은 이래, 어떤 선수일까 항상 상상했고 실제로 그는 내 상상 속 그대로의 유격수였다. 나는 그가 치고 달리고 던지는 것에서부터 홈으로 들어와서도 후속 주자에게 사인을 보내는 것을 잊지 않는 것까지 사랑했다. 지미 폭스와의 홈런 페이스를 비교했고, 올스타전에 표를 던졌으며, 그가 2007년 4월에 몇 개의 홈런을 쳤는지 그리고 통산 몇 개의 만루홈런을 쳤는지 좋았던 시즌과 나빴던 시즌이 어떻게 달랐는지 기억하고 있다. 매니 라미레즈의 팬들과 설전을 벌이기도 했고, 미국엔 아홉수라는 말도 없는데 왜 에이로드는 아홉수를 겪는가 혹시 도미니카엔 있나 찾아보기도 했다. 

 만약 선수노조가 트레이드 승인을 반대하지 않아 그가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보스턴 레드삭스로 갔어도, 혹은 옵트아웃을 해서 LA 에인절스로 갔어도 항상 응원했을 것이다. 양키스 승리, 그러나 에이로드의 솔로 홈런. 이 정도면 만족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또 나는 약물을 복용한 선수가 모두에게 얼마나 큰 해악을 가져오는지 안다. 모든 팬들은 기록만큼이나 오랫동안 비난도 기억한다. 앙칼라곤이 사우론의 반지를 파괴할 수 있건 없건 같은 부류인 이상 부질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mlb.com이 제공하는 스탯 카테고리에 PED 적발자를 위한 * 필터가 없더라도 약쟁이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같은 약쟁이 배리 본즈의 마일스톤에 도전하는 것이 부질없는 일이라는 것도 모두가 알고 있다.

 이제 잠시 후,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은퇴 경기가 펼쳐진다. 떠밀려서 하는 듯한 은퇴지만, 그것이 팀을 위한 최선이니만큼 최소한의 예우는 갖추는 모양새다. 10년전의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초라한 은퇴식이나 이 정도면 감지덕지다. 애증이 뒤섞인 마음으로 마지막 걱정이 있다면 -여태까지 보여준 모습을 돌이켜봤을 때 그럴 법 하기도 한- 그가 700홈런까지 4개 남은 기록을 채우려는 미련을 이기지 못하고 I'm back을 외치며 복귀를 타진하는 것이다.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영화 Mr.3000의 스탠 로스가 결국 기록 대신 팀의 승리를 택했듯, 오늘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은퇴도 팀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끝나버린 노래를 다시 부를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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