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8일 월요일

어느 극단주의자들에 대한 소고

 1. 폭력엔 거대한 역효과가 따라오지만 폭력으로만 달성할 수 있는 것들도 얼마든지 있다. 그래서 나는 '절대로 폭력을 이용해서는 안됩니다' 그런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대신 국가가 폭력을 독점적으로 행사하는 것에 동의하고, 그 폭력이 정당성이라는 포장을 거칠 수 있게 항상 시민들이 감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사적인 폭력은 불가피한 경우에만 사용해야 한다고 보며, 어느 정도가 불가피한 폭력인지는 사안에 따라 접근할 것이지만 자기를 방어하기 위해서 할 것, 공권력의 도움을 먼저 구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할 것, 수단에 맞는 최소한도로 할 것, 약자에게 사용하는 것을 피할 것, 선빵치기 전엔 꼭 다시 생각해볼 것 등의 기준은 대부분의 사람이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개개인이 사적 폭력 케이스들을 그런 기준에 따라 이른바 '차칸 사적 폭력'과 그렇지 않은 '나쁜 사적 폭력'으로 분류하는 것도 가능한 일이다.

 2. 우리 사회에서 여성은 사회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약자이기 쉽고, 차별받아왔다. 90년생까지 신생아 성비가 여아 100명당 남아 성비가 116.1에 달하고, 셋째아 이상의 남아 성비는 2005년까지도 128이나 되었다. 몇십년 동안 병아리도 아닌 사람이 한 해 몇만명씩 성별 감별을 당해 세상 빛을 보기 전에 살해당했는데, 태어나고서는 차별이 없다거나 오히려 역차별의 수혜자일 거라면 그건 그렇게 생각하는 자의 판단력에 문제가 있을 확률이 높다. 남아선호사상, 가부장적 사회가 남성들에게도 부당한 짐을 지우는 것이 사실이지만, 같이 없애면 되는 것이다. 역차별 이야기도 매한가지다. 따라서 나는 양성평등 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그 방법 중 부득이 폭력적인 부분이 있을지라도 위의 조건을 어느 정도 충족한다면 무조건 나쁜 사적 폭력으로 매도하는 것에 찬동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고, 필요한 운동이라고 하여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되는 것도 아니다.

 3. 봉사활동을 하러 갔던 곳이 전국 각지에서 온 강남역 살인사건 추모 포스트잇들을 보존한 건물이라 천천히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많은 생각이 들었다. 트위터 극단주의자들이 자주 쓰는 메시지가 꽤 있던 것은 사실이나 주최한 곳이 그 극단주의자들 모임인데다 어느 집단에나 모자란 사람은 있으니 어쩔 수 없는거고 대부분은 고인의 죽음을 슬퍼하고, 여성혐오에 대항해 연대할 것을 다짐하는 선에 그쳤다. 한남충이 어쩌고 저쩌고 하거나 여성들이 남성보다 우월하기 때문에 그걸 두려워한 남성이 여성을 때리는 것이다 그런 수준 이하의 포스트잇도 그대로 있던 거 보면, 최대한 있는 그대로 보존했다고 본다. 강남역 살인사건에서 가해자가 정신병자였기 때문에 범행을 저질렀다는 건 실행의 영역이고 계기는 그의 머릿속에 여성혐오가 있었기 때문에 그랬던 거라고 본다. 그에게 왜 그런 여성혐오가 있었나 전문가가 아니니까 알 수는 없지만, 사회적 요인이 전무했을거라 여기긴 어렵다. 그 4만여장의 포스트잇을 두 달 동안 전수분석했고 이를 여성정책에 반영한다고 하는데, 본질은 조문록인 것을 데이터 마이닝하여 정책에 반영한다는 것은 별로 실효성은 없겠지만 굳이 기를 쓰고 반대할 이유도 없는 사업이다.

 4. 마찬가지로 추모식에는 추모만 해야한다는 선긋기도 화자가 억울하게 죽은 사람을 위한 추모식에 별로 가본 적이 없다는 걸 증명하는 것 외엔 의미가 없다. 어떤 사람의 죽음을 계기로 유사한 처지의 이들의 불만이 같이 폭발하게 되는 건 잦은 일이었고, 그것도 각자의 판단에 따라 착한 추모식, 나쁜 추모식으로 볼 수는 있을 것이나 이번 사건에서도 유가족, 피해자 남자친구(혹은 그렇게 주장하는)를 두고 양 극단에서 자기 편에 불리한 일이 터질 때마다 '유가족(혹은 피해자 남자친구)이 벼슬이냐' 하는 이야기를 하듯 보통 내 입맛에 안맞는 추모식은 나쁜 추모식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같은 맥락에서 피해자의 오빠가 아니라 여성인 가족이 자제를 요청했다 해도 먹히진 않았으리라 확신한다. 그러나 일반적인 기준을 이야기해보자. 유가족의 의사와 반대로 강행되는 추모식이라면 목적에 맞는 다른 집회를 하는 것이 옳다. 착한/나쁜 추모식을 떠나서 기본적인 예의이다.

 5. 살해당한 사람의 추모식에 '치안 1위'를 운운하는 피켓을 들고 간 것이 제 정신을 가진 사람이 할 짓은 아니다. 그러나 경찰이나 관계자를 불러 1인시위 자리를 옮겨달라는 중재를 요청할 수도 있었고 개인적으로 맞피켓을 든다거나 말로 대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얼굴 보이라면서 탈을 벗기려고 흥분한 다중이 달려들어 폭력을 가했으면 그건 집단 폭력 범죄지 그걸 두고 '린치는 사적인 사형 집행에 쓰이는 말이라 린치가 아닙니다' 그런 멍청한 이야기는 뭐하러 열심히 하나 싶다. 사적인 폭력은 주로 약자에게 내려온다. 이번엔 혼자 있던 관심병자가 소수자였고 약자였기 때문에 그 폭력의 타겟이었을 뿐이다. 각자의 입장에 따라 우연히 살아남았다 / 운좋게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표현할 수도 있겠다.

 그 희한한 코스튬 입고 피켓 든 친구가 권력이나 책임을 가진 사람이 아닌데다 집단 폭행 당하면 억하는 사이에 죽을 수도 있는 것엔 성차별이 없었기 때문에 사실 그 타겟이 맞아 죽었다고 하더라도 양성평등, 여성혐오 해결과는 별 연관이 없다. 똑같이 피해자측 가슴에 못질하고, 얼굴 가린채 이상한 옷 입고, 피켓 든 페페페한테도 딱히 이상한 집단이 얼굴 보이라고 물리적 위협을 가하지 않았던 걸로 알고 있다. 그게 사회의 상식이기 때문이다. 저 집단린치 현장에 분기탱천해서 싸우자고 우르르 간 그 사이트 사람들은 너무 답이 없어서 길게 언급하지 않겠으나 탈개체화된 두 집단이 서로가 서로를 김치녀 한남충이라 외치는 모습은 돈 주고도 보기 힘든 진귀한 광경이었으리라.

 6. 난 그들이 주장하는 미러링이란 것이 전혀 의미없는 일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 성추행 피해자 남성에 대해 미러링이랍시고 좌표찍고 우르르 몰려와서 2차 가해를 가한 사건을 보고 회의감을 느꼈고, 이어 강남역 추모식장과 넥슨 시위장소에서 벌어진 몇건의 폭력이 철저하게 다중의 위력을 이용한 방식인 것을 보곤 저들의 자정작용을 믿을 수 없게 되었다. 혐오에 혐오로 대응하여 경각심을 일으키는게 효과가 아예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총기난사 사고가 일어났으니 다같이 무장을 하자는 것 혹은 롤하다가 내가 정신적 충격을 유발하는 폭언을 들은 경험이 많으니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나도 욕을 하겠다 수준과 크게 다른 이야기로 들리지 않고 역효과가 더 큼을 똑똑히 목격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혐오발언을 보면 화자를 혐오발언자로 규정하고 대항하거나 더 이상의 소통을 포기하지, 노노 이기야 붙이고 재기해 그러는 사람의 말을 경청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저 따위 말투가 여혐에 대한 대항과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각종 범죄 모의와 후기에 대해서도, 그것이 실제 범죄로 연결될 개연성이 높지 않기 때문에 주의를 환기하는 차원에 그친다는 말도 어처구니가 없는 이야기다. 발언이 주작인지 여부와 비판은 별개의 문제이다. 개그맨 장모씨가 자기 스타일리스트의 창자를 꺼내서 부모에게 택배로 보내버리고 싶다고 발언한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역겨운 혐오발언이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며, 범죄의 착수에 이를 가능성이 높아서 질타를 받은 것은 아니다. 그런 '미러링'이 일시적일 거라고? 한 번 발생해 자리잡은 혐오는 핑계를 먹고 계속 자라나며 -내 비하엔 이유가 있었어- 여태까지 인터넷 하면서 저 지경까지 전락한 커뮤니티 구성원들이 정신을 차리는 건 단 한번도 본 적 없다.

 7. 넥슨이 근래 녹음한 캐릭터의 음성을 성우의 행동을 이유로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은 과도한 조치였다. 그러나 그 사건이 “Girls Do Not Need a Prince” 티셔츠를 입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저 문구가 조야하다고 생각하긴하나 세상 어딘가엔 보그 걸 보다가 보그로 안 넘어가고 평생을 사는 사람도 있을테니 그건 그렇다치고 저 말 자체를 반대하는 정신나간 이가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문제가 되는 것은 티셔츠의 문구가 아니라, 제작목적과 제작주체이다.

 메르스 갤러리에서 독립하여 만들어진 사이트가 메갈리안이고, 거기서 남성 동성애자 비하와 아웃팅 찬성하는 자들이 빠져나와 세운 것이 워마드며, 저런 자들 나가니까 쫄딱 망한 메갈리안 대신 페이스북으로 가서 규정 위반으로 차단을 반복당하다 자리 잡은 것이 메갈리아4인데 저 세 세력을 불가분의 관계로 보는 것은 비약이 아니다. 또한 저 티셔츠의 디자이너가 워마드에 인증을 한 시점에서 적어도 해당 사건에 대해선 관계가 있음이 확실하다. 그것도 모자라 티셔츠 수익금의 일부는 X린이 사건 당사자, 악플러 등의 법률지원에 쓰이고 있음을 밝혔다면 저 사건을 페미니즘 탄압으로 본다는 것은, 뭐는 지능의 문제라는데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닌가 한다. 강남역 살인사건과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피해자나 유가족의 의사에 반해서 일이 벌어졌고, 이것도 문제가 있는 일이다.

 8. 저 극단주의 무리가 하는 짓이 구리다고 해서 거기에 대응하는 일부의 태도도 반동적이고 졸렬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서든어택2가 노잼과 그보다 더한 막장 운영으로 망했듯, 만화도 마찬가지다. 그런 의미에서 팬들 대하는 태도가 그른 작가들-개중엔 정말 중증의 정신이상자가 존재하긴 한다고 보나 질병에 화를 내고 싶지는 않다-에 대한 보이콧이야 개개인의 선택이지만, 예스컷 운동이나 동인행사에 해코지 하는 건 너 엿되봐라 이상의 의미가 없다. 과거 경험으로 동인행사 하는 사람들 중에 질 낮은 사람들 많이 봤고, 특히 BL 좋아하는 애들은 유달리 극성스럽고 그냥 음란물 좋아하는 거에 자꾸 희한한 가치 부여를 하려고 드는 부류도 많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단속이 잘 미치지 않는 곳에서 성인이 지들 좋아하는 성상품화 망가 사 보는게 엄청난 범죄현장인 것처럼 호도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하는 짓을 가지고 까도 시간이 모자란 것을 뭐 그리 외모비하와 품평을 해대는지 참 한심스러운 일이다. 오히려 골수까지 여혐이 치민 자들이 신나서 날뛰는 것도 쉽게 볼 수 있어 개탄스럽다.

 9. 헛소리를 들으면 병이 드는 오랜 지병을 앓고 있는데, 최근 헛소리들은 메갈리아를 옹호하거나 비판하는 당사자들 사이에서 골고루 나오고 있고 이상한 진영논리까지 세워지고 있어 보는 눈이 썩을 것 같다. 메갈리아-페이스북 메갈리아4 페이지-워마드가 아무 관계도 없다고 주장하는 것, 메갈리아 이전에는 무슨 꼴페미-페미나치 라벨링이 없었던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 미러링으로 인한 혐오발언과 범죄모의는 현실 범죄로 이어진 것이 없기에 괜찮다는 것, 차라리 여혐이 되겠다고 하는 것 등등 한심한 이야기들은 양쪽에서 끝이 없고 마치 1984의 '2분간 증오'를 연상케한다. 머저리들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는데 그런 멍청이 하나 하나 다 조리돌림하는 건 재미로 하는 것이고 별 실익이 없다. 그러나 굳이 저 중에서 제일 단체로 멍청한 소리 하는 걸 하나만 꼽자면, 단연코 호주제 폐지와 메갈리안의 활동을 비교하여 그때도 과격했으니 지금도 과격해도 된다는게 원탑이 아닌가 한다.

출처 : 호주제 폐지를 둘러싼 젠더 거버넌스 황인자(성균관대 대학원)/김영미(상명대)
 호주제 폐지는 여성계의 오랜 숙원이었던 것을 떠나 당시 대통령의 공약이었으며 법무부 장관이 변호사 시절에 호주제 폐지에 대한 논문을 저술했으며 생물학자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이렇게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공감대가 이루어진 상태에서 이론적으로 완성된 운동이었고, 갓 쓴 노인들로 대표되는 호주제 존치론자에 대응하는 방식도 호주제는 한국 전통이 아니라 일본 구민법 계수에 불과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생물학 교수에게도 자문을 구하며 정당성에서도 우위에 섰다. 계속 존치론자들을 토론회에 초대했으나 오지 않는데서 양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느 쪽의 의견이 더 합리적이고 갈등 조정 노력을 기울이는지 알 수 있었다. 거기에 행정력을 동원해 갈등 조정 노력을 기울이며 성공한 운동이 되었다. 첨부한 호주제폐지특별기획단의 구성만 봐도 어떤 식으로 활동을 했는지 보이는 걸 무슨 과격 집회 몇 번 했더니 세상이 바뀐 것처럼 묘사하는 건,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는 피켓이나 들고 앉아있던 호주제 존치론자들이나 할 법한 생각이다. 호주제 폐지 찬성론자들과 온라인을 벗어난 메갈리안들이 어떻게 다른지는 아래 두 짤로 설명을 갈음한다.



 0. 저 극단주의자들은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바로보고 회색영역을 인정치 않으며, 증오와 혐오를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하는 것 말고는 별로 준비한 것이 없기 때문에 함께 무언가를 하기 힘든 무리라는 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다. 앞으로도 여혐에 대항하는 사람들에겐 끝없이 너 메갈이지 소리가 밀려올 것이고, 저 치들이 친 사고는 광장에서 활동하는 다른 이들에게 덧씌워지고 옭아맬 것이다. 또 광장에서 활동하는 이들 중에서도 내심 공적인 자리에서 할 수 없는 비하적인 언행을 극단주의자들이 대신 해주기에 내심 대리만족을 느낄 수도 있으며, 자기 세력에 끌어들이려는 노력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경우가 있다고 하여도 옳은 일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모든 불합리한 차별은 없어져야 한다. 일베와 싸운다면서 일베 말투를 따라하고 있는 한심한 방식에 동의할 수 없을 뿐이다. 앞서 언급한 한 단체는 사고치고 망하니까 빨리 셔터라도 내렸는데, 이제와서 보니까 참 탁월한 선택이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