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24일 수요일

정말 데이빗 오티즈는 쿨한 약쟁이였는가?

 1936년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이 생기고 그때까지의 모든 은퇴 선수와 10년차 이상의 현역 선수들을 피후보로 한 투표 끝에 오직 다섯 명 -타이 콥, 호너스 와그너, 베이브 루스, 크리스티 매튜슨, 윌터존슨- 만이 최초 헌액의 영광을 얻을 수 있었다. 80년 후인 지금 약물의 전당에 최초로 헌액될 5인의 약쟁이를 뽑는다면 나는 배리 본즈, 알렉스 로드리게스, 로저 클레멘스, 라파엘 팔메이로, 마이크 피아자를 꼽겠지만 저기에 매니 라미레즈나 데이빗 오티즈를 넣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올해 알렉스 로드리게스와 데이빗 오티즈가 은퇴를 선언하며 저 쟁쟁한 약쟁이들은 올해를 끝으로 모두 은퇴하게 되고, 이제 메이저리그는 스테로이드 시대와의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거기 선동과 날조로 승부하는 최근의 트렌드와 걸맞게 희한한 바람이 불고 있다. 데탕트의 시대가 도래했는지 데이빗 오티즈의 이전 행적이 재조명되고 있는 것이다. 알렉스 로드리게스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찌질하고 어설펐고, 오티즈는 리더십이 있고 타팀과의 관계가 원만해 은퇴 시즌의 행보가 저렇게 큰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에이로드가 저랬던 것은 맞지만, 오티즈 얘기는 그저 웃음만 나온다. 저 약쟁이가 레드삭스에서 어깨 좀 편 후 어떻게 입을 털고 다녔나 정리해보겠다. 나는 양키스팬이고 레드삭스나 오티즈엔 별다른 관심이 없기 때문에 양키스와 엮였던 에피소드만 기억하고 있는 편이다.

 1) 2006년 지터와의 MVP 경쟁에 대해

출처 : 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110&g_serial=223593

 떠벌이 케빈 밀라가 떠난 후 오티즈가 마이크를 잡았던 시기. 2005년엔 에이로드가 MVP를 타고, 2006년엔 지터에게 밀릴 것 같으니까 (실제 수상은 모노) 기자에게 저렇게 입을 털었다가 역풍을 거하게 맞았다. 

 2) 2007년 스테로이드 적발 밑밥

출처 : http://sports.news.naver.com/mlb/news/read.nhn?oid=003&aid=0000414148

 2003년 메이저리그 도핑테스트는 익명을 전제로 시행되었으나, 실제로는 선수 개개인을 식별할 수 있었고 약속된 샘플 폐기도 이뤄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MLB 도핑테스트는 통과했으나 그 샘플을 폐기하지 않고 있다가 2009년 미 정부가 재조사해서 스테로이드를 검출해낸 배리 본즈의 케이스에서 2003, 2004년 샘플 중 어느 것을 사용했는지가 증거능력 유무와 관련해 쟁점이 되기도 했다. 오티즈는 이미 2004년 선수노조 회장과 면담을 가져 자기가 도핑테스트에 걸렸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저렇게 훗날을 위해 미리 밑밥을 깔아두는 치밀함을 보였다.

 3) 2007년 에이로드 옵트아웃, 양키스 당시 조 토레 감독 계약만료에 대해

http://nypost.com/2007/09/16/papi-to-a-rod-make-yanks-pay/

출처 : http://www.nytimes.com/2007/10/12/sports/baseball/12torre.html

 에이로드는 뉴욕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고, 양키스가 조 토레 감독과 재계약하지 않으면 후회할 거란 내용. 다른 팀 계약에 대해 저 정도로 감놔라 배놔라 하는 오지라퍼는 이때 처음 봤는데, 다행스럽게도 그런 정신병자는 오티즈 이후엔 또 등장하지 않고 있다. 

 4) 2009년 2월 "금지약물 사용 선수 1년 못뛰게 해야"

출처 : 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110&g_serial=223593

  2009년 2월, 에이로드가 PED 복용을 시인하자마자 저렇게 입을 열었는데, 자기도 같은 테스트에 걸려놓고 왜 저런 말을 했는지 의문이다. 심지어 오티즈는 자기가 2003년 도핑 테스트에서 양성반응이 나온 것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위에 적었듯 노조 회장과의 대화로 이미 결과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5) 2009년 4월 양키스 투수 챔벌레인에 대한 경고

출처 :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11&aid=0000143279

 약밍아웃 당하기 직전이라 기가 끝까지 살아서 날뛸 때이다. 에이로드가 커리어 동안 보스턴한테 쳐맞은 사구는 21개로 오티즈와 유킬리스가 양키스에게 맞은 사구의 합계보다 많다. 당시 라이벌리가 아직 뜨거웠던 것은 사실이나,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해꼬지는 아니었다. 

 6) 2009년 7월 과거 도핑테스트 양성반응 폭로, 그리고 이후의 대처

출처 : http://boston.redsox.mlb.com/news/press_releases/press_release.jsp?ymd=20090730&content_id=6154540&vkey=pr_bos&fext=.jsp&c_id=bos
출처 :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51&aid=0000002223

 그 찌질하다던 에이로드는 적어도 자기가 약을 빤 것을 인정하고 팬들에게 사과를 했다. 오티즈의 첫 반응은 노 코멘트였고, 두번째는 성명문을 발표해 무슨 약물에서 양성반응이 나왔는지 파악하고 언론과 팀에 알리겠다는 것이었고, 세번째는 기자회견에서 영양제 드립을 치는 것이었다. 물론 오티즈가 부주의로 잘못된 성분이 들어있는 영양제를 샀을 수도 있다. 기자회견 내용에서도 봤듯 자기가 드러그 스토어 (자기 말론 GNC 스토어)에서 적법한 영양제를 샀다고 하지 않는가? 그 말을 고스란히 믿는 것도 웃기지만 일단 믿는다면 무슨 성분이 나왔었는지는 발표했어야 했다. 그게 밝혀진 것은 6년이 지난 2015년이었다. 본인이 플레이어스 트리뷴에 기고한 감성팔이 글에서인데, 거기서는 또 영양제에 스테로이드 성분이 있었음을 인정하고 있다. 그 글과 반박문은 링크로 첨부한다. 감성팔이 기고문(클릭), 기고문에 언급된 기자의 반박문(클릭)  한편 오티즈의 도핑 적발에 대해 매니 라미레즈는 “we’re like two mountains. We’re going to keep doing good no matter what.” 라며 약대산맥들의 우애와 클래스를 널리 과시했다.

 쓰다보니까 귀찮아서 이 정도로 정리는 그만하겠는데, 이 정도만 해도 중증의 인성 아닌가? 저런 식으로 사안을 넘나들며 입을 터는 선수는 정말 듣도 보도 못했다. 특히 PED에 관련해서 자기를 NEBIDO달라는 오티즈의 태도는 나중에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 2013년에도 여전히 왜 약물이 자기 몸에서 나왔는지 모른다는 발언으로 빈축을 샀고, 2014년에도 자기 약물 전력이 쇼월터 감독의 발언과 맞물려 MLB 네트워크에 방송되니까 무려 Upset까지 하셨다. 2015년엔 전술한 기고문을 올렸다가 비웃음(그리고 레드삭스-네이션들의 동정)을 샀다. 도핑 테스트에 한 번 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말도 웃긴 것이, 그런 식으로 치면 알렉스 로드리게스도 2003년 이후엔 도핑 테스트에 걸린 적이 없다. B급 이상 약쟁이만 되도 도핑 코디네이터의 도움을 받기 때문에, 공급책을 털지 않는 이상 잡히지를 않기 때문이다. 

 변한 것은 오티즈의 태도가 아닌 성적이었다. 32세, 33세 시즌에 완만한 내리막을 걷던 기량이 그 이후 갑자기 급반등하기 시작한 것이다. '빅데이터 베이스볼'에 따르면 35세 이후에도 절정의 기량을 발휘한 타자는 오로지 2000년 이후의 배리 본즈밖에 없었고 그래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가 짐 토미를 잡지 않았다는 대목이 나온다. 본즈와 비슷하게 오티즈도 35세 시즌이었던 2011년부터 시간을 거꾸로 돌린다. 2008년부터 2013년까지의 wRC+ 변동은 다음과 같다. 124-100-134-154-170-151. 2013년 보스턴 테러사건 때 오티즈가 연설을 한 것에 사람들이 감동받아서 사랑을 받는다고 하는데, 2012년 90경기만 뛰면서 23홈런을 때려낸 몬스터 시즌이 없었으면 애초에 연설은 커녕 재계약을 할 기회나 있었을까? 심지어 은퇴시즌인 올해는 40세의 나이가 무색하게 wRC+가 170에 달한다. 테드 윌리엄스와 배리 본즈도 40세 시즌엔 안식년을 가졌다. 푸홀스와 미기가 같은 나이에 오티즈와 비슷한 활약이라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결코 그렇진 못할거라 단언할 수 있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클럽하우스 문화를 설명하는 커트 실링의 증언으로 내가 생각하는 이유를 갈음하겠다.

출처 : http://sports.hankooki.com/lpage/baseball/201302/sp2013020908130857390.htm

 생각보다 길게 써진 글인데, 마무리해보자. 데이빗 오티즈는 PED 문제에 관해서 반성한 적이 없는 약쟁이며, 더 나쁘기도 힘든 매너를 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성적을 내서 팀에 기여했기 때문에 팬들이 그를 좋아하고 은퇴를 아쉬워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걸 넘어서 지금처럼 쓸데없는 포장을 하는 것은 기가 찰 뿐이다. 무슨 리더십과 인성을 겸비하고.. 그런 말은 켄 그리피 주니어, 데릭 지터나 나중에 그 팀 페드로이아 은퇴 때나 하는거지 저런 행동을 한 약쟁이를 그렇게 포장하는 걸 보자면 비웃음이 절로 나온다. 

 한줄 요약 : 오티즈 재평가는 NEBI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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