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14일 화요일

근거없는 정치문화 '부심'을 경계한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민주주의가 일본보다 성숙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대략적으로 드는 이유는 1) 시민의 자발적인 정치 참여가 일본보다 많음 2) 일본의 지역구 세습 문화 3) 일본 정계의 폐쇄적인 파벌 문화 4) 아베 정권 극우 드라이브 5) 적극적으로 운영되는 한국 헌법재판소 등을 이야기 하는 것 같다. 일부 수긍하는 이야기도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한일 양국의 과거사를 고려하지 않은 단편적인 주장이며 정신승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확고한 중앙집권 국가인 조선과 봉건주의 국가인 에도 막부가 같은 선상에서 현대 민주주의 국가로 출발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일제강점기 36년, 넓게는 개항부터 군부독재 시절까지 좋건 나쁘건 일본의 영향을 안 받은 분야가 없는 나라에서 유독 민주주의만 더 성숙할 여건이 마련되었다고 볼 근거들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가끔은 저런 것도 일종의 컴플렉스가 아닌지 의심이 된다.

 1) 일단 태극기 집회라는 이름의 신정일치 운동이 그 반례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한국이 70년대 노동운동, 80년대 민주화운동, 90년대 환경/여성/소비자 운동 등으로 대표되는 시민 운동을 거쳐왔다면, 제국주의의 대가로 원자폭탄을 쳐맞고 맥아더 막부(GHQ) 아래서 전범국으로 관리 받았으나 훨씬 일찍 부를 쌓은 일본에서도 당연히 더 일찍 시민 운동이 발달해왔다. 노동조합은 이미 40년대 후반부터 결성되었고 50년대 경찰관직무집행법 개정 반대운동 / 평화운동을 거쳐 60년대에는 공해병으로 인한 환경운동이 시작되었고 70년대에는 반전운동이 펼쳐졌다. 뭐 저 시기에 한국에서 일본 시민단체처럼 베트남 전쟁 반대하고 그랬으면 무슨 일을 당했을지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해도 되겠다. 더구나 일본의 시민운동은 (역시 봉건제가 오래 지속된 역사상의 이유가 크겠지만) 풀뿌리 운동으로 일찍 발전해왔다는 점에서 오늘날 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은 90년대 지방자치가 시작되고 나서야 지역 네트워크에 눈을 떴기 때문이다.

 2) 기본적으로 국토의 대부분이 한국전쟁에서 초토화되어 신분제를 완전히 리셋한 한국에 비해 근대화를 봉건 영주 연합이 이끈 일본에서 세습 직업 정치인이 요직을 차지하는 비율이 아직도 높은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건 과거사에서 비롯된 것이지, 한국 정치가 세습에서 자유롭냐면 그건 아니다. 오히려 세습정치는 여기서 더 심해지고 있지 않은가? 현 대통령이 당선될 때 선진국인 미국도 못 가져본 여성 국가수반이라고 치켜세우는 것을 보고 참 기가 찼다. 생각보다 많은 정치 후진국에서 여성 국가수반을 배출한다. 유력 정치인의 아내/딸들이 남편/아버지이 죽은 뒤 그 지위를 (선거의 형식으로) 세습하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 스리랑카, 파키스탄, 필리핀, 인도, 파나마 이런 국가들이 뭐 대단히 민주주의가 성숙했기 때문에 여성 지도자를 국가수반으로 앉혔다고 생각하는건지는 모르겠다. 불과 2년여 전만 해도 국가 수반, 여당 당대표, 여당 원내대표가 모두 2세 정치인이었던 적도 있는데 남의 나라 세습정치 비웃기에는 뒷통수가 따갑다.

 3) 일본 자민당, 일본 민주당이 일종의 계파간 연립 정당인 것은 맞으나 구 새누리당, 구 열린우리당 등 3당 합당 이후 당대의 한국 여당을 보면 여긴 계파가 없다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합리적 보수랍시고 갈라져나간 바른정당 지지율이 정의당보다 안 나오고 이런 시국에도 특정지역에선 새누리당 지지율이 1위로 복귀했다는 것은 그 동안 구 새누리당의 지지기반이 어떤 계파였는지 그대로 이야기해주는 거 아닌가.

 4) 열도에서 채택률 1%도 안되는 역사왜곡 검정 교과서를 만들면 '자학사관' 개념 그대로 수입해다가 이것이 반도의 대답이라며 국정 역사교과서로 화답하고, 또 비밀보호법을 테러방지법으로 받는 것이 한국의 상황이었다. 애초에 자기 지지율 떨어지니까 반등카드로 일왕 사과요구, 독도 방문해서 우애 외교 표방하던 일본 민주당 정권에 치명타를 입히고 자민당 세운 것에 기여한 것이 전임 MB정부의 동북아 정책이었다. 그걸 또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도호쿠 대지진이라는 대형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서 정권을 잃은 거라고 애써 외면하던 것이 한국의 언론이었다. 그럼 자민당이 정권을 잡고 있었다면 발전소가 안 폭발하고 지진이 안 일어났으며 복구를 더 잘했을 거란 말인가?

 5) 이건 입헌군주국의 한계가 맞다고 본다. 1인의 절대주권을 상정한 군주라는 개념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라는데 동의하고 그러한 상황에서 군주 아래 있는 헌법기관엔 권한의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최순실 게이트 이전 현 정부의 지지율은 내내 40%를 웃돌았고 그 지지 이유 1,2위는 항상 안보, 외교를 잘한다 그런 거였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는 지지 사유다. 차라리 일본에서 아베 정권 지지율 조사할 때 주요 지지 이유로 집계되는 딱히 이유는 없다, 자민당 정권이라서 이런 건 차라리 솔직하기라도 하다. 옆나라 까는거야 세계인의 스포츠지만 내 눈에는 잘해봐야 거기서 거기고 딱히 우월감의 근거가 보이지 않는다. 근자감은 우리 모두에게 독이면 독이었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