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2일 목요일

비루한 가을 문화생활 (피파15, 데빌메이크라이 DmC, 씬시티2, 위키드, 크리스 제리코 자서전)

 장점보단 단점 위주로 이야기한다.

 1. 피파15 (PC)

 엔진을 갈아엎은 신작이 다 그렇듯 조금 하다보면 눈이 금방 익숙해져서 뭐 딱히 그래픽이 좋은 것도 모르겠네, 모션이 그렇게 자연스럽지도 않네 싶지만 다시 피파14를 보면 내가 이런 게임을 했나 싶을 정도로 간사해지는 내 모습을 체험할 수 있었다. 발매 직후엔 온갖 희한한 버그가 다 있어서 조롱을 듣기도 했으나 내 경우엔 하이라이트 장면으로 전환될 때 살짝 그래픽이 깨지는 것 외에 플레이에 지장을 주는 버그는 없었다. 아마 심각한 버그들은 불법복제 방지 장치가 잘못 작동하는 경우로 추정된다.

 이 게임의 정수를 느끼려면 얼티밋 모드를 해야겠지만 귀찮아서 안해봤고, PC판 온라인 이용자는 그렇게 많은 것 같지는 않다. 새벽에 K리그팀으로 서치를 돌렸더니 한참이 지나도 방이 잡히지 않았다. 비슷한 수준의 팀끼리 매칭시켜주기 때문인 것 같은데 뭐 해외 강팀을 고르면 서치가 안잡힐 정도는 당연히 아니겠고.

 현재 선수 커리어 모드로만 대충 50시간 정도 한 듯 한데, 위닝 시리즈의 비컴 어 레전드 모드와 비교해보면 위닝이 경기 평점을 통해 경험치를 얻거나 훈련을 통해 능력을 육성시킬 수 있다면 피파는 경기에서 행동 성공 숫자를 카운트해 일정 숫자가 될 때마다 능력치가 올라가는 멍청한 방식에 따로 훈련도 없어서 문제가 된다. 감독 AI도 한심스러워서 선발 출전/결장 외엔 교체 출전 조차도 없고, 계약기간도 따로 없어서 이적, 임대 요청을 하지 않는 한 천년만년 기본 주급을 받고 염가봉사 클럽 지박령이 되고 만다. 이적 요청을 하더라도 위닝처럼 다수의 팀에서 온 오퍼들을 한번에 검토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한 번에 한 팀씩이랑 협상이 되는... 아, 부족한 점은 이것만은 아니지만 더 자세하게 말하기도 귀찮다. 물론 그렇다고 저 모드 하나 때문에 이미 관짝에 들어간 위닝을 권하는 것은 아니다. 피카츄 배구가 DOA 익스트림 비치 발리볼보다 나은 점이 하나 정도는 있다고 DOA 거르고 피카츄 배구를 사라는 이야기는 못하겠다.

 전통적으로 피파 시리즈의 장점이 다양한 리그의 라이센스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번 작에도 기본적으로 K리그의 승강제,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같은 건 탑재되지 않았다. 아시안컵이나 네이션스컵도 없는 것 같다.

 안 좋은 점을 많이 쓰긴 했는데, 그래도 새 엔진을 탑재했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장점이 있는 신작이다. 만약 그래도 아직은 위닝이다 라거나 피파온라인 짱짱맨 이런 사람이 아닌 이상 사서 후회할 것 같지는 않다. 유저 한글 패치가 존재한다.

 2. 데빌메이크라이 DmC + 버질의 몰락 (PC)

 우선 이 게임은 데메크 시리즈 본가와 관계없는 리부트 시리즈라고 한다. 처음에는 인물 설정이 확 바뀌었기 때문에 그런 줄 알았는데 하다보니 별개의 시리즈가 맞긴 한 것 같다. 전통적인 스타일리쉬 액션은 건재하지만 본가 시리즈가 퍼즐 요소가 강했다면 이 친구는 퍼즐이 쏙 빠진 대신 슈퍼 마리오처럼 끊임없는 점프와 공중 이동을 요구해 패드 잡은 손에 땀이 마를 새가 없었다.

 초반은 사실 별 재미를 못 느껴 아 이렇게 또 게임 쇼핑에 실패했는가 싶었지만 중반부를 넘어가며 스토리와 연출에 급 탄력이 생겨 재미있게 했다. 딱히 나쁜 점을 짚어보면 스토리를 진행하면서 만나게 되는 보스들이 별로 세보이지가 않는다는거 정도.

 DLC인 버질의 몰락은 개발에 별로 돈 안 들인 티가 많이 나지만 별로 비싸지도 않으니 해봐도 괜찮을 것 같다.


 3. 씬시티2 : 다크히어로의 부활 (영화)

 원제는 Sin City : A dame to kill for 니까 목숨을 걸 만한 여자라는 뜻이겠지만 뜬금없이 '다크히어로의 부활'로 부제를 붙여놓으니 한결 더 망작처럼 느껴진다. 미국에서 흥행 참패한 걸 보고 망할 걸 예상은 했다만 1편을 워낙 재미있게 봐서 이번에도 개봉날에 3D로 관람을 했는데 영화 시작할 시간이 다 되어도 나말고 사람이 들어오지 않는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하지원이 주연한 영화 '폰'을 한 지방 극장에서 대여섯명의 다른 관객과 함께 본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당시 기집애들이 어찌나 귀 찢어지게 소리를 지르던지 돌비 서라운드의 새 장을 느꼈었다. 다행히 영화가 시작하니 관객은 나 포함 네 명이 되어서 이제 둘만 남았네 그러면서 살인인형이 찾아오지도 않았다.

 그냥 망할 만한 영화였다. 전작의 인물들은 나름의 정의와 절박함을 가지고 거기에 목숨을 거는 자들이었다면 이번엔 영화 촬영하는 동안 죄다 와우인벤 사사게나 뽐뿌 휴대폰포럼을 했는지 항상 감정 과잉 상태에 빠져 있었고, 그걸 해소하는 방식은 당신이 생각하는 그 사이트식의 무차별 똥발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똥을 던지거나 맞으면 흥미로울지는 안해본 내가 알수가 없지만 지켜본 경험상 전혀 재미가 없다. 특히 제시카 알바의 마지막 에피소드는 보는 내내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는데 후진 연출, 망한 시나리오 양자의 결합이 매우 확고해 이 영화가 왜 이 모양인지 보여주는 총화와도 같았다.

 조셉 고든래빗, 에바 그린이 각각 캐리한 시나리오 두 개는 나쁘지 않았지만 그냥 거기까지였다. 전작과 너무 오랜 갭이 있어 내가 1편을 기억 속에서 너무 미화시킨채 2편을 본 게 아닌가 의문이 들어 돌아오자마자 1편을 다시 틀어보았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듯 수작은 수작이고 망작은 망작이었다. 개봉 2주만에 굿다운로드에 나온 건 필연적인 결과다.

 4. 위키드 (뮤지컬)

 박혜나 - 김소현 조합으로 봤는데 정말 재미있었다. 2층 좌석이라 더 가까이 못본게 아쉬웠다. 보고 나와서 재작년에 미친것처럼 비싸고 같은 정도로 재미없던 라보엠 대신 위키드 내한을 갔었으면 내 인생이 10% 정도는 더 풍요로웠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깔 게 없어서 더 적을 게 없다.

 5. 크리스 제리코 자서전

 라이언스 테일이란 이름의 책이다. 유명한 프로레슬링 뉴스 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이 직접 번역과 감수를 맡아서 굉장히 깔끔하게 읽힌다. 예전에 성민수 해설위원이 하디 보이즈 자서전을 번역 출판한 이래 참 오랫만에 나온 레슬링 서적이라 이것도 예약 구입했다. 크리스 제리코의 말빨도 좋고 인생사도 재밌는데다 작가가 잘 포장도 했을거고, 역자가 애정있게 잘 옮기기까지 했으니 더 길지 않은 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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