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10일 목요일

김승현과 오리온스의 전쟁 : 이면계약 전성시대

 1. 이면계약의 시작

 김승현이 FA 시장에 나온 05-06 시즌 직후는 아직 4대 가드로 이상민,신기성,주희정,김승현의 이름이 오르내릴 때였다. 이상민이 내려오고 주희정, 양동근이 치고 올라오는 형국이었다. 김승현은 강동희-이상민을 잇는 이른바 천재가드 6년 주기설의 적장자였고 실력과 인기를 겸비한 선수였다. 농구화도 잘 팔았던 마지막 KBL선수가 아닐까 싶다. 별로 좋아하는 선수가 아니니 칭찬은 여기까지하고, 김승현을 노리는 팀은 친정팀 오리온스 빼고 대략 3팀 정도였는데, 삼성-동부-LG 정도였다. 18억 내외였던 샐러리캡을 피하기 위해서 스타 선수들에 대한 이면계약이 만연했던 지하경제 활성화 시대에(프로야구 외국인선수 제도랑 똑같다) 김승현이 오리온스와 연봉 4억3천만원에 5년 계약을 맺었을 때, 모두가 직감했다. 진실은 저 너머에 있구나.

 2. 먹튀는 어떻게 단련되었는가

 그리고 FA 계약을 맺은 06-07 시즌 첫해부터 김승현은 살짝 삐끗했다. 아시안게임 소집 전 허리를 삐끗해 부상을 입었고, 2주만에 또 같은 부위를 다쳤다. 자연스레 출장 경기가 줄었는데, 역대 최고의 외국인 스코어러 피트 마이클과 호흡을 맞추며 결장이 좀 있었다 정도지 스탯이 많이 떨어지진 않았다. 그동안 팀에서든 국대서든 그만큼 굴렀으면 한시즌 부진이 큰 문제는 아니다. 이미 허리를 구부리지 못할 정도로 아프다고 했지만 6강 PO에서 발목에 테이핑을 하고 시리즈 수훈선수에 선정될 정도로 투혼을 발휘했다. 이어진 4강 PO에서 급기야 다른쪽 발목을 접질려 아웃된 게 컸다. 시즌이 끝나고 발표된 다음 시즌 연봉은 6억3천만원이었다.

 07-08 시즌엔 1라운드부터 허리 통증을 호소했다. 전 시즌에도 4주 진단을 받았으나 이번에는 2개월 휴식이 필요하다고 하니 많이 악화된 셈이다. 다른 병원에서는 모두 수술을 받으라 했지만 유독 구단측이 소개시켜준 병원만은 재활로도 치료가 가능하다고 했단다. 허리 디스크 수술을 받으면 시즌을 접어야 하니 이유는 알 만하다. 구단은 친절하게 종로 봉침 할아버지와 부산 야매 마사지사를 소개시켜줘 벌침을 300방씩이나 놔주는 배려를 베풀었다. 아마도 저 두 노인은 화타와 편작의 재림이 아닐까 생각된다. 구단은 또 잡아놓은 수술 일정을 꼼꼼하게 대신 취소해주는 원스톱 서비스도 제공했다. 재활치료로 방향을 잡았다. 4라운드에 김승현이 돌아왔지만 팀은 이미 2라운드 전패를 곁들인 11연패를 기록한 뒤였다. 시즌이 끝나고도 수술은 받지 못했다. 연봉은 5억 5천만원으로 깎였다. 김승현이 재활을 불성실하게 한다는 말도 슬슬 나오기 시작했다.

 08-09 시즌은 숫제 장르가 농구도 의료도 아닌 미스테리 추적 드라마로 바뀐다. 출장 경기는 예년보다 늘어났으나, 오리온스의 성적은 망한지 오래건만 구단은 다시 6억을 제시한다. 그런데 김승현은 신기하게도 구단 측에 7억2천만원을 요구하며 연봉조정 절차를 밟았다. 결과는 당연하게도 구단의 승리. 이 시점에서 김승현은 폭탄 하나를 투척하는데, 연봉 조정에 불복하며 KBL에 기존 이면계약서를 제출한 것이다. 사건이 보도되며 파장이 커지자 일단 김승현은 한발 물러나 이면계약서의 존재를 부인하고 연봉 6억을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KBL은 김승현에 18경기 출장정지와 벌금 1천만원, 오리온스에 벌금 3천만원 징계를 내렸다가, 구단의 건의로 출장정지 징계를 반으로 줄인다.

 09-10 시즌이 열렸다. 김승현은 12월 경기 중 상대 선수에게 무릎이 깔려 큰 부상을 얻게 되는데, 똑같은 부상을 당한 삼성 이규섭은 8주를 쉬었건만 팀이 연패중이라며 3주도 안되서 조기 복귀를 하게 된다. 개인 성적도, 팀 성적도 엉망이 되었고 시즌이 끝난 후 반토막난 연봉 3억을 제시받았다. 김승현은 이에 불복했다. 2010년 9월에 이면계약 중 밀린 임금 12억을 달라며 법정 소송에 들어갔다. 연봉조정에 불복한 것이기에 KBL은 규정에 따라 즉각 임의탈퇴 처분을 내린다.

 3. 돈 줘 vs 배 째

 소송에 들어가며 양측의 주장은 다음과 같았다. 김승현은 이면계약에서 보장받은 50여억원을 지급하라 주장했고, 오리온스는 그 계약은 전임 단장이 했고 KBL이 2008년 이면계약에 징계 규정을 강화했으니 지킬 필요가 없으며 김승현이 태업을 했다고 말했다. 양측의 주장과 관계없이 실상 쟁점은 두가지다. 첫째, 실제로 조건이 확정된 이면계약서가 존재하고 유효하느냐, 둘째 그렇다면 당사자 쌍방은 계약을 이행했느냐다. 이 두가지가 문제이지 구단과 계약을 한 마당에 단장이 바뀌었든, 식당 영양사가 바뀌었든 당사자간 효력에 지장은 없다. 오리온스의 주장대로 2008년에 이면계약을 근절하려고 했으면, 김승현에게 청산금을 지급하고 다시 규정에 맞게 계약을 하거나, 계약서상 금액을 모두 주고 방출을 했으면 그만인데 그런 모습은 없었다. 물론 김승현이 승소를 해도 KBL사무국에서 징계는 있겠지만, 어차피 구단과 법정싸움을 했으니 미운 털 박혀서 출전기회도 없을 판이니 그냥 선수생활을 접는 게 나을 수도 있다. 거기다 SK가 주희정과 김승현의 트레이드를 추진했다가 '주희정이 무슨 선수냐'며 거절당한 사실이 밝혀지고(뭐 겨우 KBL 통산 어시스트 1위밖에 못한 미미한 선수였나보다), 김승현을 원하던 다른 팀 감독에게 오리온스 단장이 '김승현을 데리고 있다가 죽이겠다' 말을 했다는 증언이 보도되며 분쟁은 사랑과 전쟁 급으로 진화했다.

 2011년 7월, 1심에서 오리온스가 밀린 임금 12억원을 지급하라는 원고 승소 판결이 나왔다. 김승현의 선택은 12억을 받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돈을 포기하더라도 코트에 복귀하는 것이었다. 오리온스 측은 변호인단을 다시 꾸려 2심은 자신있다고 했지만, 김승현측 변호사가 종로 봉침 할아버지 정도 되면 가능한 이야기다. 더구나 오리온스는 그룹 오너가 300억대 비리 연루로 구속되어 재판받고 있는 판에, 그룹 법무팀이 저런 미미한(?) 소송에 신경쓸 수가 없으니 협상을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대화가 재개되었다.

 4.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다

 오리온스는 김승현에게 고소를 취하해 받을 12억과 그에 대한 이자 2억원을 모두 포기하고 KBL 샐러리캡 규정에 맞는 새 계약을 맺으면 선수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나, 승소한 12억원을 받으려면 복귀할 생각은 하지 말라고 했다. 새 계약 금액을 구체적으로 제안하진 않았다니 코트에 돌아오려면 10-11 시즌 전 제시한 3억원을 받고 14억원은 포기하라 그런 말이다. 말로는 양측이 서로 양보하자는데 김승현은 11억을 포기한다치고, 오리온스는 뭘 양보하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협상은 계속됐다. 이유는 알수없지만 오리온스는 김승현에게 1심 변호사를 해임하라고 했다.(승소했으니 변호사에게 성공보수를 줘야하는데 정작 김승현은 소를 취하하고 협상을 하느라 구단으로부터 돈을 받지 못했다) 김승현은 그대로 따랐다. 구단에 사과문을 쓰라고 했다. 돈 떼인 놈이 떼먹은 놈에게 사과문을 써서 보냈다. 이것도 김승현이 직접 쓴 사과문도 아니고, 오리온스가 김승현에게 사과문을 보내 도장을 찍으라고 한 다음 김승현이 쓴 사과문이라며 공개했다고 하는데 이쯤되면 이상하지도 않다. 처음에 김승현은 오리온스 복귀를 원했으나, 몸값도 계약기간도 맞지 않아 다시 양측은 조건없는 즉시 트레이드에 합의했다.

 그런데 갑자기 오리온스가 조건을 바꿨다. 복귀 직후부터 잔여경기 절반 이상에 나와 10분 이상 뛰는 조건에 합의서를 작성하면 시즌이 끝나고 트레이드를 시켜준다는 것이다. 요컨대 김승현의 가치가 떨어져 있는 상황이니 가격을 올린 다음에 팔겠다는 말이다. 연봉 협상도 문제가 됐다. 김승현은 KBL 샐러리캡을 감안해 2억 5천만원을 요구했다. 그 정도 금액이면 다른 팀이 자기를 데려가는데 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오리온스가 6억여원을 준다고 했다. 다른 팀에 가지 말라는 이야기다. 다 된 협상이 또 결렬되었다.  선수 죽이기인지, 보내기 아까워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서로 감정이 쌓일 대로 쌓였는데 즉시 트레이드에 합의해놓고도 굳이 오리온스에서 경기를 뛰라고 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심지어 일단 5경기만 뛰면 바로 트레이드 시켜줄 수도 있다고 기사를 내기도 했다. 다시 여론의 비판이 거세졌다. KBL 한선교 신임 총재도 개입했다.

 2011년 11월 24일, 총재의 중재 끝에 합의서가 완성됐다. 김승현은 소송을 취하하기로 했고, 오리온스는 김승현의 의사를 존중해 원하는 팀으로 트레이드 시키기로 했다. 한선교 총재는 책임지고 임의탈퇴를 철회하기로 했다. 그런데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마지막 뒷끝이 작렬한다. 처음부터 김승현은 삼성에 가는 것을 원했다. 재활 시스템이 잘 되어있고, 가드가 부족해 출전시간을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합의서대로라면 그냥 삼성에 보내면 그만이다. 하지만 오리온스는 LG-전자랜드-삼성 세 팀과 협상을 진행한다. 즉시전력감 선수가 필요하다는 현장의 요청이 있어서였다. 협상 끝에 오리온스는 LG와 구두계약을 맺었다. 김승현을 보내는 대신 LG 김현중과 현금을 받기로 하며 보도자료까지 교환했다. 김현중은 동료들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짐을 쌌다. 삼성으로 가기 원한 김승현으로서는 미칠 노릇이었다. 거세게 반발했다. 다시 오리온스는 일방적으로 LG와 계약을 취소하고, 삼성으로 김승현을 보내고 포워드 김동욱을 받는 트레이드에 도장을 찍었다.

 물을 먹은 LG는 크게 분노했다. 구두계약까지 해놓고 상도의가 아니라는 것이다. LG는 KBL에 제소했고, 오리온스는 500만원의 제재금을 내야했다. 김승현이 갑자기 삼성행을 요구했다며 해명하고(갑자기가 아니라 꾸준히로 단어를 바꾸면 맞는 말이다), 재심의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오리온스가 LG측에 사과를 하는 것으로 사태는 일단락됐다. 끝까지 코미디로 끝났다.

 1년을 쉬고 삼성에서 다시 선수생활을 시작한 김승현은 11-12 시즌에 30경기 넘게 출전했다. 몸이 덜 만들어져 수비가 문제였고, 재활을 병행하며 체력을 관리받느라 출전시간은 26분에 그쳤으나 경기당 7.2득점, 5.1어시스트를 할 정도로 감각은 살아있었다. 오리온스 시절 사제관계였던 이충희 해설위원이 아직 허리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지적을 하기도 했지만 삼성측은 이를 반박했다. 사실 문제가 된 것은 허리가 아니였다. 복귀 시즌을 마치고 12-13시즌을 대비해 9월 ABA 대회에 참가하던 중 목 디스크 진단을 받았다. 병원 측은 발병 이유를 알 수 없다고 했으나 처음 아플 때 제대로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단순한 진리가 떠오른다. 당초엔 재활로 방향을 잡았으나, 10월에 방침을 바꿔 수술을 받기로 했다. 수술은 잘 끝났고, 2013년 1월 현재 복귀를 준비하고 있는 단계다.

 5. 총평

i. 각 구단에 이면계약이 만연하고, 그게 아니더라도 CF 등으로 연봉 보전을 해주던 때였다(모기업 광고로 허재랑 KCC선수단이 거북선 안에서 덩크슛하고 김주성이 프로미 아저씨라며 보험회사 직원으로 나왔다고 뭐라 하는 사람도 없었다)
ii. 그런 와중에 김승현과 오리온스가 이면계약을 맺은 것 자체는 양 당사자 모두 잘한 일이 아니지만 비일비재한 일이었다
iii. KBL이 이면계약을 모두 청산하고 정리금을 지불하면 이전의 이면계약은 문제 삼지 않겠다던 2008년, 오리온스는 정리금 지급 없이 이면계약만 파기하기로 혼자 다짐했다
iv. 구단 측의 주장대로 김승현이 재활을 불성실히 하며 태업을 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구단의 반대로 수술도 못 받고 뛴 것은 사실이며, 계약서상 보장된 연봉 중 최소 12억을 받지 못했다는 건 법정에서 가려진 일이다
v. 이후 오리온스의 행보는 역대급이었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여담이지만 이 분쟁이 일어나고 있을즈음 오리온스는 연고지 야반도주, 국가대표 전임감독 헤드헌팅, 김승현 이면계약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하며, 32연패와 3승 42패로 승률 0.067을 기록해 해외토픽에 오른 98-99시즌의 저력을 다시 한번 발휘하기도 했다. 오리온스는 김승현이 입단하기 전 시즌인 00-01 시즌에 승률 2할에 간신히 턱걸이한 막강 꼴찌팀이었다. 그러나 그가 입단한 01-02 시즌에 36승 18패로 압도적인 1위에 오른 이후로 6년 연속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었고, 김승현이 쓰러진 07-08 시즌부터 PO는 커녕 8위가 최고 성적이다. 초코파이보다 가나파이나 오예스가 맛있는 이유가 있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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