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8일 화요일

SK : 뜻밖의 해임

 지난 7일 SK 와이번즈 신영철 사장은 신년사(링크)에서 의례적인 덕담 대신 쓴소리를 선택했다. 내용인즉 구단이 느슨해져있고 정신상태 등 실망스러운 점이 많으며 팀이 위기에 빠져 있다는 위기조성, 정신무장 강조 발언이었다. 만약 팀보다 개인을 우선시하는 사람이 있다면 구단에 필요가 없으니 조치를 하게끔 주위에서 알려달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정초부터 수위가 좀 '쎄긴' 하지만 1-1-2-1위하던 팀이 백투백 준우승을 했으니 의례 할 법도 한 이야기다. 다만 어딘가 실소가 나오는 이유가 있다. 1-1-2-1 시즌이 끝나고서는, 어딘가 빈틈도 있어 보이고 막걸리 냄새나는 팀컬러를 추구하고 싶다던 2009년 11월 신영철 사장과 2013년 1월의 그가 동일인물이라고 생각하기가 어려워서다. 그때는 호강에 겨웠었는지, 아니면 허허실실 외유내강의 팀컬러를 추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당시 SK는 2011년 8월 잘나가던 김성근 감독을 해임하고, 이만수 감독대행체제를 선택했다.

 SK의 창단 이후 역사부터 간략하게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을 듯하다. 99년 전북을 연고지로 하던 쌍방울 레이더스가 모기업이 쫄딱 망하며 휘청이자, KBO는 이사회를 열어 해외자본도 프로야구에 참여할 수 있게끔 하고 쌍방울 매입 후보 기업을 물색한다. 맥주회사 밀러, 한솔그룹, SK그룹 등이 후보였고, SK가 인수가 아닌 창단 형식으로 팀을 꾸린다. 본래 서울이나 수원을 연고지로 원했으나, 마침 인천 연고팀이었던 현대가 수원으로 야반도주하며 인천에 입성했다. 2000년 창단팀이기에 각 구단에서 선수를 2명씩 드래프트 받을 수 있었다. 쌍방울 소속 선수들도 전원 웨이버 공시되서 자유계약 신분으로 SK 와이번스에 입단했고 강병철 감독이 초대 감독을 맡았다. 창단 초기 SK 와이번스는 LG와의 악연으로 유명했다. 2001년 민경삼 LG코치가 SK 프론트로 적을 옮겼고, 2002년 LG가 김성근 감독을 경질한 이후엔 김성근 감독의 아들인 김정준, 노석기 전력분석원이 LG로 이직했다. 2003년에는 SK와 LG가 서로 구장에 카메라를 설치해 포수 사인을 훔치지 않았냐고 아웅다웅 다퉜고, 이듬해에 SK가 이상훈을 트레이드로 데려오고, 그 다음해엔 FA로 김재현을 영입하며 화룡정점을 찍었다. 한편 팀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 조범현 감독이 부임한 2003년에는 한국시리즈 준우승, 2005년엔 4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2006년에 6위로 쳐지며 SK는 새 사령탑을 물색하게 되는데, 그 대상이 바로 2002년 LG에서 11번째 해임을 당한 김성근 감독이다.

 김성근 감독과 김은식 작가의 인터뷰에 따르면, SK와의 계약은 처음부터 순탄치는 않았다고 한다. 구단은 김감독에게 2군 감독 계약을 제시했다가, 다시 이만수 코치를 수석코치로 두는 조건으로 1군 감독직을 제시했다. 사장과 단장이 배석한 자리에서는 3년 계약을 제시했다가 이내 다시 2년 계약으로 바꾸었다. 한국의 전통놀이에 널뛰기가 있긴 하지만, 협상 기간이 아닌 명절에 했었어야 하지 않나는 아쉬움이 든다. 아무튼 김 감독은 SK를 맡기로 마음을 정했고, 아들인 김정준 팀장은 '아버지는 구단에 신세를 갚는 길은 이기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회고한다. 그리고 김성근 감독의 조련이 펼쳐진다. 06 시즌이 끝난 팀에 도착하자마자 '(그때 내가 봤을땐) 이건 팀도 아니지 싶어요' 말하며 담금질을 시작했고, 2007년 첫시즌에 정규리그 1위를 기록한다. 한국시리즈에 올라온 팀은 두산 베어스. 비록 SK가 정규리그 1위라고 해도, 2위로 시즌을 마친 두산 베어스도 플레이오프에서 한화를 3:0으로 스윕하고 올라왔고, 무엇보다 정규시즌 상대 전적에서 SK는 두산에 8승 10패로 근소하게 밀리고 있었기에 팽팽한 승부가 예상지만 2패 후 내리 4연승을 거두며 SK가 우승했다. 다음 시즌인 2008년엔 전년보다 10승을 더하며 승률 0.659라는 무시무시한 성적을 거뒀다. 한국시리즈에서도 두산과 다시 만나 4승 1패로 백투백 우승을 달성했다. 시즌이 끝난 후 김성근 감독과 신영철 사장은 자정까지 훈훈하게 술자리를 가지며 연봉 4억원선의 3년 재계약을 맺었다. 2007년 시즌 중반, 인터뷰에서 김 감독이 '구단에 세대교체를 이뤄주고 팀컬러를 바꾸러 부임했기에 재계약 이야기는 넌센스다' 할때와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2007년에 이미 차기 감독 내정설 뉘앙스가 있었으나, 김성근 감독이 2회 우승을 거뒀으니 이야기가 다르다.  이제 SK 왕조가 열리는 시점이 왔다. 

 그러나 물밑의 상황까지 마냥 좋은 것은 아니었다. 백투백 우승 후 SK는 공공의 적이 되었다. 2008년 윤길현 욕설 사건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짧게 요약하면 SK 관계자가 경기 이후 레이번이 9-0으로 지는 팀이 무관심 도루를 한 건 야구 에티켓에 어긋난 게 아니냐며 최경환에게 한마디 한 것이라고 해명했으니 사건은 1실점한 레이번이 무관심 도루로 실점했다고 징징거린 것을 알아들은 최경환이 레이번에게 항의했고, 1차 벤치클리어링이 시작됐다. 이후 SK 윤길현이 최경환에게 위협구를 던져 2차 벤치클리어링이 터졌고, 다시 삼진을 잡고 내려가는 와중에 욕설을 내뱉고 덕아웃에서 재연을 한 것이 카메라에 잡히며 전 인터넷은 폭발했다. 나중에 김성근 감독측이나 팬들은 3연전 내내 기아에게 빈볼을 맞아 선수단이 격해진 상태여서 보복구를 던졌다는 논리를 펴기도 한다. 분명 레이번은 1실점 했다고 징징거렸지 보복구를 던진 것은 아니지만, 다른 SK 선수들은 동료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런 의식을 가졌을수도 있을 법하다. 종합하자면 1차 벤치 클리어링(징징)과 2차 벤치 클리어링(보복)은 같은 날 같은 선수에게 일어났을 뿐이지 다른 동기로 시작되었을 수도 있다. 사실 윤길현이 제대로 최경환을 맞췄으면, 벤치 클리어링이 다시 벌어졌어도 니네가 맞췄으니 우리도 맞췄다 식으로 넘어갈 수 있을 일이었는데, 쌍욕과 재연으로 끝났으니 경기가 끝나고 어떻게 11년 선배에게 그럴 수 있냐며 대대적 폭격이 시작되었다. 그동안 잊혀졌던 SK 채병룡의 안경현 빈볼사건, 김동주 헤드락 사건, 김재걸 빈볼 사건 등이 재발굴되었다. 설상가상 김성근 감독이 사사구를 던지고 사과를 한 투수를 사과했다는 이유로 2군으로 보냈다 등 온갖 음해와 루머에 가까운 이야기가 퍼지며 온갖 짤방과 조롱이 재생산되었다. SK 프론트도 사과문을 거는 등 나름 대처를 하지만 사건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고, 결국 한국야구사 처음으로 사장-단장-감독이 모두 사과를 하고 김성근 감독이 하루 결장을 하고 나서야 파문은 수그러들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2008년에 있었고, 김성근 감독 재계약은 이 시즌이 끝난 후 이뤄졌다. SK 구단은 분명 김성근 감독을 재신임한 것이다. 이해 신영철 사장이 한 강연회에서 '우승보다 관중 2배 증가가 더 좋다'고 말을 했지만, 스포테인먼트를 강조했다는 취지였기에 불거지진 않았다. 시즌 중 김성근 감독의 1000승을 기념하는 티셔츠도 제작되었고, 분위기는 드디어 야인 김성근이 재계약까지 했으니 용으로 승천할 자리를 잡았다는 쪽이었다.

 이듬해인 2009년에도 SK 채병룡의 공이 롯데 조성환에 맞아 심각한 부상을 입혔다. 이번엔 구단 프론트가 사직구장으로 내려가는 선수단을 보호하기 위해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롯데 유니폼을 입은 팬들이 김 감독의 방까지 들어온 상황이었지만 신 사장은 KBO에도, 롯데에도 경비를 요청하지 않았다. 김 감독은 프론트가 선수단을 보호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감독과 프론트간 신뢰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만수 코치와의 사이도 벌어졌다. 2009시즌 전 스프링캠프 때 김 감독은 이 코치를 두고 야구를 보는 시야가 아직 좁고, 선수단 장악 능력이 떨어진다는 평을 했다. 실제로 이 코치와 몇몇 선임 선수들간 갈등이 있었을 때였다. 설상가상 이 코치가 사석에서 김감독의 야구관과 정반대인 자신의 야구관을 설명한 게 김 감독의 귀에 들어가기까지 했다. 차기 감독 내정설이 파다한 수석코치의 항명으로 들릴 수 있다. 여담이지만 김응룡 감독은 이런 경우에 정말 짤없이 내치는 스타일이었는데, 김성근 감독은 아직 그 선에까지 이르지는 않았다. 그리고 SK의 2009 시즌은 준우승으로 끝났다. 2009년 11월 신영철 사장은 급기야 '성적보다는 이제 SK가 얄밉다는 이미지만은 벗고 싶다. 어딘가 빈틈도 있어 보이고 막걸리 냄새 나는 팀컬러를 추구하고 싶다'라는 발언을 한다. 재계약 첫해부터 김 감독은 흔들리고 있었다. 

 2010년은 갈등이 표면으로 드러난 해였다. 김 감독은 이 코치를 2군 감독으로 보냈고, 두달 후 다시 1군 수석 코치로 복귀시켰으나 둘 사이는 이제 루비콘 강을 건넌 뒤였다. 팀은 한국시리즈에서 다시 우승을 차지했으나 대접이 달라졌다. 2007년 우승 후에 SK 선수단은 가족을 동반해 괌으로 여행을 갔다. 08년 우승 때는 하와이에 갔다. 10년 우승 때는 상품권을 포상으로 받았다. 전지훈련이나 아픈 선수를 일본 병원으로 보내는 의료비용, 코치진의 규모 등에서도 전체적으로 말이 나오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사실 나는 당시 SK 지정 병원에서 치료도 받아본 적 있었고, 가족이 그곳에 입원한 적도 있었는데, 아무래도 일본 쪽이 노하우도 있겠고 굳이 비행기 태워 보낸 이유가 없진 않다고 생각한다) 이제 김 감독과 프론트의 전쟁은 김 감독 대 이 수석코치의 대리전 양상으로 흘러간다. 

 2011년은 김 감독의 3년 재계약이 만료되는 시즌이었다. 1월에 이 수석코치가 야구를 주제로 한 동화책을 출간한다. '사인볼과 나의 꼬마친구'라는 책인데, 이 코치가 김 감독에게 선물을 했지만 반응이 서늘했다. 책을 쓸 때 김 감독에게 말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다. 동화책 쓰는 거야 무슨 큰일이 있겠냐만은 사소한 일이라도 감독이 알아야 나중에 무슨 일이 생겼을때 감독이 대응할 수 있다는 취지다. 이제 감독경험을 쌓아야 한다는 명분을 들어 이 코치를 2군 감독으로 보냈으나 내려간 이 코치가 다른 2군 코치 한명을 가정사 이유로 사전 보고 없이 하루 휴가를 줬던 것도 문제가 됐다. 시즌 중반까지 SK는 3위에 있던 와중, 김 감독과 SK의 재계약은 난항을 맺었다. 6월 즈음 그룹 차원에서 계약에 대한 방침이 정해졌다는 이야기가 돌았고, 신 사장은 시즌 중에 재계약 조건을 협상하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상황이 묘하게 돌아간다. 재계약 협상은 세차례나 미뤄졌고, 심지어 김 감독의 재계약을 협상하는데 이 코치의 양해를 얻어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다시 이 코치가 과거에 삼성 복귀를 시도할 때를 생각해보자. 삼성은 이 코치가 무리한 대우를 원한다며 협상을 접었다. 이 때 이 코치와 삼성의 중개 창구였던 모 인사가 다른 구단과도 접촉했었고, 과거 또다른 구단으로부터 감독직을 제안 받은 적도 있다고 한다. (링크) 이를 종합해보면 애초에 수석 코치로 부임할 때부터 차기 감독으로 '사실상' 내정됐다고 봐도 그리 틀리지 않을 것이다) 마침내 운명의 8월이 다가왔다.

 2011년 8월 16일, 감독실에 신영철 사장이 찾아온다. 김 감독의 말에 따르면 신 사장은 왜 이만수 코치를 2군에 보냈느냐고 언성을 높혔다고 한다. 단장에게 이야기한 일이라 반론하니, 통보였지 않냐고 고함을 치고 코치 인사권은 구단 것이라 주장했다. 코칭스탭 인사권은 구단에 있으니 원칙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저래선 한 산에 호랑이가 두 마리 사는 꼴이다. 이에 이튿날 김 감독은 올해까지만 선수단을 이끌겠으며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기자회견을 가졌고, 18일 SK는 김성근 감독을 해임하며 이 코치를 감독대행으로 임명한다. 팬들이 경기장에서 시위를 벌이고, 유니폼을 불태웠지만 이미 버스는 떠났다. SK는 경기당 2천만원의 인센티브를 걸며 이만수 대행 체제에 힘을 싣어줬고,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거둔 이 대행은 시즌 후 당연히(?) 정식 감독으로 취임한다. 김성근 감독의 해임 이후 벌어진 일련의 팬 숙청작업이나 이 감독의 친정팀 팬 중 일부가 조직적으로 SK팬인냥 각 커뮤니티에 위장전입해 분란을 일으키는 등 여러 논란이 있긴 했는데 중요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이후에 SK측은 김성근 감독에게 거액의 전별금과 은퇴식 등을 제의한 모양이나 얼핏 생각해도 저런 부질없는 일이 세상에 또 있나 싶다.

 물론 양측의 입장에 다 일리가 있다. 재계약을 약속한 구단이 계속 약속을 차일피일 미루고, 코치의 양해까지 얻어야 한다고 하니 김성근 감독 입장에서야 당연히 팀에 대한 신뢰가 사라졌을 테다. 그러나 김 감독이 시즌 중임에도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는 기자회견을 했으니 또 팀 입장에선 '체면'상 사령탑을 끌고 가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래도 굳이 잘잘못을 가려야 한다면 결론은 뻔하다. FA 영입 한 명 없이 1-1-2-1을 만든 감독에게 프론트는 예우를 다하지 않았다. 구단이 경비를 줄이고 싶을 순 있다. 김 감독이 외부 코치들을 많이 데려왔고, 아픈 선수들을 굳이 일본 병원에 보내니 돈 꽤나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보면 몇십억하는 FA 영입도 없었고 오히려 이진영 같은 선수는 잡지도 못하는 와중에, 임기 내내 한국시리즈에 진출해서 3번을 우승했으면 코치 인건비야 감내할 만하지 않나 싶다. SK는 김성근 감독 취임 전인 2006년엔 관중 33만에 2000원 객단가를 기록하다, 2010년에는 100만 관중에 객단가도 7000원까지 올라갔다고 한다. 저만하면 관중도 돈도 많이 몰아준 것 같다. 프로야구단을 1년 운영하는데 대략 200억~300억 선이 든다고 하는데, 이 중 굳이 코치진을 축소해 운영비를 줄이겠다면 김 감독과 상의를 하든가, 재계약을 포기하든가 하는 게 맞는 일이다. 약속한 재계약 협상만 자꾸 미룬다고 운영비가 줄어드는 건 아니다.

 우리는 지갑을 열어 투자를 하기 싫을 때는 부하들의 정신무장만 주구줄창 강조하는 윗사람을 더러 봐왔다. 정신무장, 참 좋은 이야기인데 책임과 보상이라는 더 합리적인 방법이 있다. 더구나 프로야구 선수들은 정년이 보장된 사람들도 아니고, 성과 나온대로 몸값 책정 받고, 필요가 없어지면 방출되는 프리랜서들이다. 얄미운 우승 구단을 추구하든, 막걸리 구단을 추구하든 그건 구단 운영의 부차적인 개념이지 성적을 내야 밥벌이를 하는 프로야구 선수의 본질이 변하는 건 아니다. '몸쪽 공을 못 던지는 투수 집에 가보면 냉장고에 김치밖에 없다'는 김성근 감독의 명언이 있지 않은가? 애초부터 과감하게 동료 타자의 몸쪽에 공을 꽂아넣을 수 있어야 연봉이 올라가는게 프로의 세계인데, 2년 연속 준우승이 못한 것인지도 모르겠거니와 과연 선수단의 정신상태 문제뿐일까 의심이 된다. 

댓글 1개:

  1. 마 이제 향후 3년은 삼성 잡기가 오룝지 않나 시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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