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19일 토요일

조던, 코비 그리고 르브론 제임스

 큰 나무가 있으면 주변 나무가 못 큰다는 말은 언제 어디서나 통한다. 스포츠에서도 계왕신급 한 명이 뛰는 동안은 물론이고 은퇴한 뒤에도 현역들이 두고두고 계왕신과 비교되며 평가절하되는 걸 보면 짠할 때도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추억팔이들과 뉴비들의 대결로 흐르면, 대부분의 키보트 배틀이 그렇듯이 모두가 개똥밭에 뒹굴거나 빠(혹은 까)가 까(빠)를 만드는 식으로 끝나기 쉬우니 각자의 추억과 자료를 음미하려고 눈팅하다가는 정신건강에 적신호가 오기 마련이다. 만선이 된 떡밥 논쟁과 3유 핸드폰 정책은 타지 않는게 이롭다.


 조던-코비-르브론의 관계는 저 짤방 하나로 요약이 된다 (물론 르브론이 파이널 MVP 하나 추가하긴 했다). 사실 조던은 어떤 선수였는지 설명할 필요가 없고, 코비는 오래도록 그 큰 산을 넘기는 커녕 그늘에서 나오기도 힘들었던 선수였다. 같이 쓰리핏을 이룩한 오닐이 마이애미 가서 웨이드 멍석 까는 동안에 코비의 레이커스는 무슨 고시엔도 아니고 플레이오프 1라운드 참가에 의의를 둬야했으니 어쩔 수가 없다. 3쿼터까지만 뛰고 62득점, 81득점 그런 기록들이야 코비의 다른 대기록들과 함께 길이 회자됐겠다만 서코비-동티맥은 코비의 압승인데 산왕-디트의 시대지 쟤네 시대는 아니었다 정도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레이커스는 가솔을 업어와 2연패를 달성했고, 보스턴은 가넷-피어스-알렌이 모여 우승을 했으니 버드와 매직 이래로 다시 보스턴 - 레이커스의 구도가 이뤄지고 있었다. 백투백 우승의 주축은 당연히 손가락 인대가 파열되고도 투혼을 발휘한 코비였기에 안티들도 줄었다. 사실 코비도 그동안 그만큼 해줬으니 올타임 넘버투 슈팅가드라고 자칭해도 수긍할 만한데, 연차까지 감안하면 너무 까여온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일반인같으면 인생퇴갤하기 쉬운 누명을 쓴 적도 있지만 늘 성실히 농구에 임해왔다.    

 그러나 르브론 제임스가 저 이합집산의 유탄에 맞은 것은 사실이다. 클리블랜드도 팀 전력 강화를 위해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가 너무 명확하다. 르브론이 입단하기 전 승률 .207 팀이었던 클리블랜드는 르브론이 뛰던 7시즌 동안엔 평균 승률 .608을 기록했다. 그리고 르브론이 나가자 다시 승률 .232 팀이 되었다. 르브론과 함께하며 올해의 감독상까지 받은 마이크 브라운은 레이커스 감독에 취임해 스티브 내쉬와 드와이트 하워드를 선물받고도 1승 4패로 시즌을 시작하며 4년 계약 중 1년 반만에 해임됐다. 그렇다고 디시즌쇼 같은 짓을 한 게 잊혀지진 않지만 사우스 비치로 재능을 가져간 것 자체는 -마이애미하니 생각나는데 사우스 비치가 에이로드의 재능도 데려가면 좋겠다- 필연이었다고 생각한다. 마이애미 빅3를 젊은 놈들이 우승반지 날로 먹으려한다며 삼당합당 급으로 까는 사람들도 많았고 그 말에도 일리가 있지만, 르브론이 못해서 반지원정대 결성이 불발된 것은 아니다. 일례로 오닐은 보스턴에 베테랑 미니멈 130만불 정도를 받고 뛰다 은퇴했는데, 그 전 시즌에 클리블랜드에서는 2100만불을 받았다. 우승이 아쉬운 마지막 퍼즐급 선수가 시장에 흘러넘치지도 않을 뿐더러 미니멈 받고 가려면 원맨팀 말고 다른 대도시 강팀들도 많을 뿐이다.

 또 시간이 지났다. 코비는 다섯번째 반지 이후에도 흔들림 없이 달려왔으나 댈러스 사기꾼에 당하고 오클라호마 영건들에 치여 아직 반지는 추가하지 못했지만, 올시즌에 최연소 3만 득점을 달성했고 엉망인 팀성적에 가렸을 뿐이지 득점왕 레이스 선두를 달리고 있다. 르브론은 빅3 결성 재수 끝에 각성한 모습으로 돌아와 오클라호마를 이기고 첫번째 파이널 MVP와 세번째 MVP를 수상했고, 코비에 뒤이어 최연소 2만 득점도 돌파했다. 작년 파이널에서 리그 득점왕과 올림픽 우승 주역으로 성장한 듀란트가 르브론과 격돌하는 모습도 인상 깊고 의미심장했지만 시간이 더 지나기 전에 코비와 르브론이 높은 곳에서 만나는 걸 보고 싶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둘이 국적이라도 다르면 베이징이랑 런던에서 강제 결승 정모라도 했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라 더 그렇다.

 어제는 마이애미 대 레이커스 경기가 있었다. 워낙 흥행돋는 대진이라 ESPN이 정성들여 프로모 영상도 만들었고, 코비의 장문 인터뷰도 인터넷을 통해 실었다. 경기 전에는 1) 레이커스 홈이고 2) 마이애미는 백투백 두번째 경기고 3) 하워드와 가솔이 다 돌아왔기에 레이커스가 살짝 우세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중반까지는 코비만 못하는 레이커스와 르브론 웨이드만 잘하는 마이애미의 대결이었다. 그래도 점수 자체는 접전이라 4쿼터에 각성한 코비가 분전하고 이에 자극받은 알렌도 회춘하는 모습을 보여 재밌게 봤다. 평소에 KBL만 보다가 빅매치 있을 때만 NBA보니 선수들은 전국구급 아니면 잘 모르는데, 사실 어떤 종목이든간에 최고 애들 모여서 경기하면 보는 것도 참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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